(초안) 열국지 201∼300 회

제 252 화. 제 버릇 남 주겠나.

서 휴 2022. 10. 29. 04:59

252 . 제 버릇 남 주겠나.

 

주양왕周襄王은 북망산北邙山 기슭 좋은 곳에 장막을 세우게 되자,

화려한 수포繍袍를 입고 있는 외후隗后를 위로하기 위해 잘 관전할

수 있는 자리를 잡아주고, 즐거운 마음으로 영도 내렸다.

       지금부터 큰상을 내리리라.

       30마리 이상을 잡아오는 자는 전쟁 물자를 옮기는

       큰 수레인 돈거軘車3이나 줄 것이며,

 

       20마리 이상을 잡는 자에게는

       전투시 돌격용의 병거인 충거衝車 2승을 내릴 것이며,

 

       10마리 이상을 잡은 자에게는

       사다리를 장착한 수레인 소거轈車 1승을 내리겠노라.

 

       10마리를 넘지 못한 자는 상이 없도다.

       빨리빨리 열심히 사냥하도록 하라.

 

주양왕周襄王의 영이 떨어지기 무섭게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벌떼처럼 숲속으로 달려갔다. 한참 구경하던 외후隗后가 일어난다.

 

       주상, 데려온 비녀婢女 들 모두 말을 잘 탑니다.

       사냥터에 달려 보게 하시옵소서.

 

       주상, 소녀도 한번 사냥을 해볼까 합니다.

       허 어, 잘할 수 있겠소?

       허나, 멀리는 가지 마시오.

 

외후隗后는 주양왕周襄王의 승낙이 떨어지자마자, 아름답게 수놓아

화려한 두루마기 수포繍袍를 벗어 시녀에게 맡겼다.

 

       수포繍袍 안에는 소매가 좁고

       짧은 저고리가 보였는데

 

       가볍고 가느다란 황금 줄을 걸친

       화려한 사냥용 갑옷이었다.

       봉황의 금비녀를 머리에 단단히 꽂았으며

       비단 실 오색 허리띠를 질끈 동여매고는

 

       허리에는 전통을 차고, 손에 주궁朱弓을 들고

       말 위에 뛰어오르자마자 멀리 내달리었다.

 

외후隗后는 왕비의 신분으로 그렇게 유별난 몸치장을 하고도 전혀

개의치 않았으며, 주양왕 또한 즐겁게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이때 외후隗后의 모습을 노래한 시를 한번 읽어보자.

       花般綽約玉般肌 (화반작약옥반기)

       꽃처럼 아름다운 용모에 옥처럼 하얀 살결,

 

       幻出戎裝態更奇 (환출융장태경기)

       갑옷 입고 꿈속에서 나오다니 그 모습 기이하구나!

 

       仕女班中夸武藝 (사녀반중과무예)

       궁녀들 속에서 무예를 힘껏 뽐내더니

 

       將軍隊里擅嬌姿 (장군대리천교자)

       장군 대열에서는 교태를 마음껏 부리는구나.

 

외후隗后가 멀리 달려나가 한참 동안 보이지 않게 되자, 몹시

불안해진 주양왕이 주변을 둘러보며 큰 소리로 말하였다.

 

       누가 외후隗后를 쫓아가 데려오겠는가?

       누가 외후隗后를 찾아 잘 호위할 수 있겠는가!

 

       주상, 감공甘公 이옵니다.

       ​신이 힘을 다해, 모셔오도록 하겠습니다.

       좋도다. 빨리 가 보도록 하라.

 

주양왕의 동생 태숙太叔 는 급하게 말에 올라 외후隗后를 찾아

달려나갔으며 얼마 가지 않아 만나게 되었다.

 

       외후는 시녀들과 한 떼의 기마대를 이루며 달린다.

       태숙太叔 도 외후의 뒤를 따라 달렸다.

       외후는 태숙太叔 를 보자 더욱 말을 달리다가

       활을 쏘아 노루 한 마리를 잡았다.

       태숙太叔 도 달려가다 사슴 한 마리를 잡았다.

 

두 사람은 산허리를 돌아가자 말의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외후隗后가 비단 말고삐를 잡아채며 멈추어 서서를 칭찬했다.

 

       주상의 동생님, 반갑습니다.

      ​ 하하, 어찌 아시었소.

       주상과 연을 맺어 주셨는데 모를 리 있겠어요.

 

       오랫동안 왕자님의 큰 재주를 사모하였는데

       오늘에서야 보게 되어 기쁩니다.

 

       외후께선 말도 잘 타시고활도 잘 쏘십니다.

       신이 솜씨는 왕후마마에 비하면

       만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겠습니다.

 

       공자는 풍채가 준수하시고 기골도 장대하신바

       참으로 빼어난 남아가 되십니다.

 

       외후 야 말로 빼어난 미모와 화려한 모습은

       천상의 선녀 같사옵니다.

 

       공자, 자주 만났으면 좋겠어요.

       좋습니다. 외후께 할 말도 있습니다.

 

       외후께선 내일 오후에 태후 궁에 들르시지요.

       어마마마께 인사 올리러 가겠습니다.

 

이때 태사太史가 주양왕에게 해가 이미 서산에 기운다고 고하자,

장수들과 군사들은 말을 타고 다니며 사냥터의 포위망을 풀었다.

 

사냥터에서 잡은 노루와 사슴과 토끼 등을 주양왕에게 바치자,

주양왕은 골고루 상을 나누어 주고 즐겁게 사냥놀이를 파했다.

 

       외후, 즐거웠소? 얼굴이 밝아 보여 좋소.

       주상, 너무나 좋았어요,

       다음에 또 사냥했으면 좋겠어요?

       허허, 좋소, 또 가도록 해봅시다.

다음날 태숙太叔 는 조정에 입조 해 주양왕에게 인사를 올리고,

곧이어 모친인 혜후惠后에게 문안 인사를 올리고자 내궁에 들어갔다.

 

       오 우, 외후가 먼저 와 있었군요.

       어서오세요. ​방금 왔습니다.

 

외후隗后는 이미 태숙太叔을 흠모하고 있었던바 두 사람의 눈동자가

부딪치는 걸 본 생모 혜후惠后이상한 눈치를 채고는 말하였다.

 

       나는 잠시 다녀올 때가 있느니라.

       너희는 이야기 나누고 있거라.

 

혜후惠后는 좋지 않은 분위기를 말리지 않고, 오히려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자, 시녀들도 눈치 빠르게 따라 나가는 것이었다.

 

어제 이미 마음을 맞춘 두 사람은 곧바로 격하게 몸을 섞었으며

맘껏 정을 나눈 후에도 미련이 남아 끌어안고 놓지를 못하였다.

 

       공자, 아무 때고 서로 만나면 좋겠어요.

       주상이 알게 되어 의심할까 두렵소

 

       시녀들은 첩이 알아서 하겠습니다.

       이미 뇌물을 풀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내궁의 궁인들도 두 사람의 관계를 알게 되었으나, 혜후惠后

사랑하는 아들일 뿐만 아니라, 일의 사안이 워낙 중대하다 보니,

감히 입 밖으로 발설하지 못했으며, 혜후 역시 두 사람의 불륜을

알았으나 말리지 않고 오히려 궁인들에게 당부하며 엄포를 놓았다.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자는

       목숨을 부지하지 못하리라!

 

알만한 시녀들은 이미 혜후惠后와 외후隗后 로부터 후한 뇌물을

받았기에 오히려 남의 이목을 피하는데 거들기까지 했다.

 

       태숙 대는 태후가 사랑하는 아들이고

       만약 왕이 죽기라도 한다면

       태숙이 왕위를 이어받을 터인데

 

       뇌물이라도 챙기고 말일이지

       무엇 때문에 관여하여 죽기라도 한단 말인가?

 

이런 분위기 속에 태숙太叔 는 매일같이 숨어들어왔으며

저녁때까지 궁중 밀실에서 외후隗后와 밀회를 즐기다 보니,

이 일을 모르는 사람은 오르지 주양왕周襄王 한 사람뿐이었다.

이에 한 사관이 시를 지어 한탄했다.

 

       ​太叔无兄何有嫂 (태숙무형하유수)

       형도 죽이려던 태숙인데 형수인들 염두에 두겠는가?

 

       襄王愛弟不防妻 (양왕애제불방처)

       동생을 사랑한 양왕은 마누라를 지키지 못하는구나!

 

        一朝射獵成私約 (일조사렵성사약)

       어느 날 사냥터에서 은밀한 약속을 하였구나

 

       始悔中宮女是夷(시회중궁녀시이)

       오랑캐 여인을 중궁에 들였으니 후회가 시작되었도다.

또한, 주양왕周襄王이 지난날 태숙太叔 를 처벌하지 않고 다시

불러들여 스스로 화를 불러온 일이라며 비난하는 시도 읽어보자.

 

       明知纂逆性難悛 (명지찬역성난전)

       반골은 고치기 힘들다는 걸 누구나 알련마는

 

       便不行誅也絶親 (편불행주야절친)

       죽이지도 않고 형제의 의도 끊지 않았으니

 

       引虎入門誰不噬 (인호입문수불서)

       집안에 끌어들인 호랑이가 어찌 물지 않겠는가?

 

       襄王眞是夢中人 (양왕진시몽중인)

       진실로 양왕은 꿈속에서 헤매는 사람이로구나.

무릇 세상일이란 좋은 일은 날이 거듭될수록 적어지고 이와는 반대로

사악한 짓은 날이 거듭될수록 커지게 되는 법이다.


       태후 궁 소속의 궁녀 중에 소동小東 이라는

       시녀가 있었는데 얼굴이 이쁘장하고

       옥 퉁소를 잘 불어 혜후惠后가 아끼고 있었다.

 

이때 주양왕은 이미 50이 넘었으므로 아직 어린 나이에 정욕에

불이 붙은 외후를 힘으로는 도저히 당해내지 못하고 외후와 같이

하는 잠자리를 피해 다른 침실로 가서 잠을 자곤 했다.

       소동小東 , 외후가 왜 오지 않느냐.

       밤이 깊어 안 올 것 같습니다.

       오늘은 그냥 돌아가시옵소서.

 

       허 어, 아쉽구나,

       저 술상을 다시 가져오너라.

 

       술은 취해오고 임은 오지 않고

       소동小東 , 옥 피리를 불어보아라.

 

       밤이 늦었사온데 어찌 퉁소를 불라 하십니까.

       밤이 되어 퉁소를 못 불겠다!

 

       좋다, 그러면 옷을 벗어 보아라.

       아니 아니 되옵니다.

       외후隗后 마마가 아시면 쉰내는 죽습니다.

 

       뭐라고 네가 죽고 싶은 게로구나.

       이러지 마십시오. 살려주십시오.

       쉰내가 벗겠습니다.

 

어느 날 저녁 술에 취한 태숙太叔 가 갑자기 가슴을 풀어헤치고

소동小東을 겁탈하려고 하자, 겨우 틈을 타서 몸을 빼내 도망쳤다.

태숙太叔 가 칼을 빼 들고 쫓아오자, 급해진 소동은 도망치다가

자기도 모르게 주양왕의 침실로 뛰어들어 가 버렸다.

 

       ​아니, 너는 누구냐.

       어찌하여 발가벗고 있느냐.

 

주양왕은 궁녀 소동小東의 말을 듣고서야 태숙太叔 와 외후가

자기 몰래 간통을 해 왔다는 사실을 모두 알게 되었다.

 

       괘씸한 놈이로구나.

       이놈이 어디 있느냐.

 

       태숙은 현재 궁중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래, 내 이놈을 당장 쳐 죽이리라.

 

소동小東의 말을 듣고 크게 화가 나버린 주양왕은 침상 머리맡의

보검을 꺼내 들고 중궁으로 달려가 태숙을 죽이려 일어섰다.

 

그러나 마음 약한 주양왕은 몇 발자국을 달려가다가 마음속에서

다른 생각이 들어 또 망설이고 돌아오고 말았다.

 

       태숙이란 놈은 태후의 총애를 받고 있는데

       내가 만약 태숙을 죽인다면

 

       그의 죄를 모르는 주위 사람들은 필시

       나를 불효자라고 비난하지 않겠는가?

 

       더구나 태숙의 무예는 나보다 고강하여

       만약에 불손한 태도로 칼을 빼 들고

       대항해 오면 내가 당할 수 없을 것이다.

 

주양왕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보검을 놓고 심복 내시를 불러

내궁에 들어가 태숙의 소식을 알아 오게 했다.

 

       태숙은 소동이 주상의 침실로 들어간 걸 알고는

       이미 궁궐 밖으로 도망쳤다 합니다.

       궁궐 출입을 어찌 제 맘대로 할 수 있단 말이냐.

       궁궐 단속이 어찌 이렇게 소홀하단 말이냐!

아침이 되자 주양왕은 중궁의 내시들과 궁녀들을 잡아 오게 하였다.

모두 처음에는 완강하게 부인하였으나 소동을 불러 대질시키자

더는 숨기지 못하고 태숙과 외후가 벌린 전후의 추악한 전모가

하나도 빠지지 않고 전부 드러나게 되었다.

 

       외후를 당장 냉궁에 가두어 놓아라.

       왕사군은 태숙을 잡아 오도록 하라.

 

한편 퇴숙은 외후가 중궁의 자리에서 쫓겨나 냉궁에 유폐 당하고

더구나 놀란 혜후가 병이 들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는 소식마저

듣게 되자, 계책을 마련하기 위해 대부 도자桃子를 찾아갔다.

       이거 큰일이 났소. 어찌하면 좋겠소.

       태숙께선 너무 과한 짓을 하시었소이다.

 

       어쩌겠소. 좋은 방법을 찾아야지 않겠소.

       외후가 냉궁에 갇혀 있으니 적국에 갑시다.

       좋소. 적국의 도움을 받읍시다.

 

253 . 자기만 안 죽으면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