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 열국지 201∼300 회

제 228 화. 냉대하는 자, 누구인가.

서 휴 2022. 10. 5. 15:47

228 . 냉대하는 자, 누구인가.  

 

       공자, 이 호언狐偃은 유쾌하게 웃고 있습니다.

       공자, 이 얼마만의 일입니까.

 

       공자, 이 호언狐偃은 무릎을 꿇나이다.

       공자께서 저를 죽여 꿈을 이루실 수 있다면

       저는 사는 것보다 죽기를 바라나이다.

 

       공자, 저희는 부모 형제 처자까지 버리고

       공자를 따라 만리타국萬里他國을 떠돌면서

 

       서로 도우며 서로 버리지 않는 것은

       공명을 죽백竹帛에 길이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공자가 성공하지 못하신다면, 저희는

       아무것도 남길 수가 없는 사람이 되옵니다.

 

       지금 고국은 진혜공晉惠公이 무도하여

       우리 진나라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 있습니다.

 

       어느 누가 공자에게 천하를 갖다 바치겠습니까.

       저희 모두가 함께 공모한 짓입니다.

 

       공자, 저는 아직도 강성絳城 밖 고원高原 에서

       지내던 시절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공자, 이제 노여움을 푸십시오.

 

       나, 위주魏犨가 한마디 하겠소.

       대장부는 천하에 이름을 떨치는 것이며

       그 명성을 후세에 전하도록 힘을 쏟아야 하거늘

 

       어찌 일시적인 환락에 연연하여 평생을 두고

       품고 다니던 뜻을 돌보지 않으려 하십니까?

 

중이重耳 앞에 무릎 꿇은 호언狐偃 옆으로 가신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더니 모두 무릎을 꿇으며 눈에서는 이슬이 맺히었다.

 

       꿈, 그래, 우리에게는 꿈이 있지요.

       호언狐偃 외숙, 천하라 하였소.

 

       호언狐偃 외숙, 이제 마음이 풀리셨습니까.

       나도 나의 가슴이 뭉클해지오.

       한줄기 뜨거운 열기熱氣가 가슴에 가득 차고 있소.

 

       자 다들 들으시오.

       그대들은 임치臨淄 를 떠나오자마자

       옛날처럼 굶기를 시작하려는 것이오.

       하하하. 배들 고프지 않소.

 

유쾌한 중이重耳의 음성에 모두 자리에서 털고 일어났으며,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일어나, 미리미리 준비하여 가지고 온 음식들을

꺼내, 아침 겸 늦은 점심을 먹기 시작하였다.

 

       고진감래 苦盡甘來라는 말이 있다.

       쓸 고, 다할 진, 달 감, 올 래.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온다는 말이다.

 

       흥진비래 興盡悲來 라는 말도 있다.

       즐거운 일 뒤에 슬픈 일이 온다는 말이다.

 

       苦盡甘來 興盡悲來 (고진감래 흥진비래)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오며 즐거움 뒤에 슬픔이 온다.

 

세상일은 좋고 나쁜 일이 돌고 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인가.

우리는 고진감래苦盡甘來 만을 생각하며, 좋은 일만 빨리 오기를

항상 바라면서, 애타게 행운만을 기다리며 사는 것 같다.

 

       그래요. 우리 다 같이 좋은 일만을 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행운이 다가오길 기다려봅시다.

 

중이重耳와 가신 일행도 고진감래苦盡甘來 만을 생각하면서,

힘없는 발 길이긴 하나, 미리 준비하여온 수레와 말과 양식 등으로

예전보다는 훨씬 여유롭게 출발할 수 있었다.

 

       어디로 갈 것이오.

       어디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까.

 

       더 생각할 게 있는가. 어서 초나라로 가자.

       공자임, 좋습니다. 나라로 갑시다.

 

나라에서 초나라로 가려면 두 가지 길이 있다.

첫 번째는 노나라를 거쳐 송, , , 나라를

지나며, 나라 쪽으로 가다가 영성郢城에 이르는 길이다.

 

       공자, 조쇠趙衰가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이 여정은 임치臨淄와 영성郢城을 직선으로

       잇는 것으로, 가장 빠른 길이기도 합니다.

 

       하오나 이 길은 수십 개의 강을 건너야 하며,

       수십 개의 늪지대를 지나야 합니다.

 

       길이 여간 험한 것은 아니므로

       오히려 늦어질 수가 있습니다.

 

       더구나 외딴곳이 많아, 가는 도중에

       어떠한 봉변을 당할지 모르며

       양식이 떨어져 곤욕을 치를 수도 있습니다.

 

       그보다는 두 번째 길이 있습니다.

       황하를 따라 서진西進 하다가 조나라를 거쳐

 

       송나라와 정나라를 통과하여

       초나라 땅으로 접어드는 길입니다.

 

       이 길은 약간 돌기는 하지만, 길이 잘 닦여져 있고,

       도중에 여러 나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오오, 두 번째 그 길이 좋겠소.

       이러나저러나 무려 3천 리가 넘는 여정이오.

 

먼 여정이지만 그들의 발걸음은 가볍고 활기가 넘쳐흘렀다.

특히 호언狐偃의 몸놀림은 청년 못지않게 발랄하기까지 했다.

 

       호언狐偃은 나이를 거꾸로 먹는 모양이오.

       공자, 이렇게 희망찬 길은 처음입니다.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오.

       우리 모두 마찬가지로 즐겁습니다.

 

중이重耳와 가신 일행은 모두 다 새로운 희망을 안으며 수일 뒤,

나라 도성에 당도했다. 나라는 작은 나라로 늘 송, ,

나라 사이에 끼어 늘 눈치를 보는 약소국 중 하나이다.

 

       국성國姓은 희로 주왕실 혈통의 제후국이며

       중이重耳와 동성으로 같은 혈족이었으므로

 

       중이重耳 일행은 섭섭지 않은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거라며, 기대를 걸며 들렀다 가기로 하였다.

 

그 무렵 조공공曹共公은 명군과는 아주 거리가 먼 암군暗君으로,

정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으며, 300여 명의 소인배에게 하나씩

감투를 나눠주고서는, 매일 같이 그들과 어울려 장난질이나 하며

매우 바쁘게 살아가고 있었다.

 

2년 전의 일이다. 그들과 유희遊戱를 벌이느라, 송양공宋襄公

소집한 회맹 때 아무런 권한도 없는 대부를 대신 보냈다가,

송양공宋襄公의 분노를 사게 되어 침략을 받은 적도 있었다.

 

       진나라 공자가 성안으로 들어왔다 하였소.

       주공, 그렇습니다.

 

       진공자라고는 하지만 본국에서 쫓겨나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유랑자가 아니오.

 

       우리가 잘 대접하였다가 오히려

       진나라의 원망을 살 수도 있소.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무얼 하겠소.

       그냥 지나가게 놔두시오.

 

       주공, 상경 희부기僖負羈 이옵니다.

       진나라와는 동성 간의 가까운 나라입니다.

 

       공자 중이重耳께서 곤궁한 처지로 지나가오니

       후하게 대접하여 보내셔야 합니다.

 

       상경은 어찌 그리만 생각하시오.

       작은 나라가 열국列國 사이에 끼어

 

       지나가는 자마다 후하게 대접한다면

       나라의 국고 손실이 너무나 크지 않겠소.

 

       주공, 중이重耳 공자의 어짊은 널리 알려진 바이며

       몸도 특이하여 건강한 체질이면서 귀한 관상이라,

       크게 되실 분이 분명합니다.

 

       주공, 헤헤, 신 신혜우申惠雨 입니다.

       헤헤, 주공, 중동重瞳과 변협騈脅이 무언지 아십니까.

 

       허허, 어서 말해보라.

       헤헤, 중동重瞳은 한눈에 눈동자가 두 개입니다.

 

       허허, 그런 눈도 다 있었는가.

       그래 변협騈脅 은 또 무어냐.

 

       변협騈脅 이란, 갈비뼈가 여러 개로 되어있지 않고

       판자처럼 하나의 넓은 뼈를 말합니다.

 

       허허, 그런 갈비뼈가 다 있더냐.

       허허, 세상에 어찌 그런 갈비뼈가 있더란 말이냐?

 

       신도 말만 들었을 뿐 아직 본 적은 없습니다.

       이참에 변협騈脅을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허허, 어떻게 볼 수 있더란 말이냐.

       헤헤, 중이重耳 공자를 공관에 머물게 하시고

       목욕할 때 몰래 보시면 될 것입니다.

 

       허허, 그거 좋은 생각이로다.

       진공자 중이重耳를 공관으로 모셔라.

 

조공공曹共公은 아첨꾼 대부 신혜우申惠雨의 말에 호기심이 잔뜩

생기게 되자, 중이重耳 일행을 공관으로 안내하게 하였다.

 

       모든 짐승의 갈비뼈를 늑골肋骨 이라 한다.

       갈비뼈는 활 모양으로 휘어져 있으며,

       사람에게는 12쌍의 늑골肋骨이 있다.

 

       늑골肋骨은 몸속의 장기臟器를 감싸 보호하고

       몸의 근육조직筋肉組織을 지지하여 준다.

 

중이重耳 일행이 공관에 안내되었으나, 환영의 연회도 베풀어주지

않았으며, 조공공曹共公과 고위직들도 찾아오지 않고 있었다.

 

또한, 공관에서 대접하는 음식도 형편없었으므로, 중이重耳

일행은 푸대접받는다는 걸 알게 되어, 며칠 좀 쉬었다가, 떠나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공관公館의 욕당浴堂은 괜찮구나.

       먼 길 오다 보니 목욕하고 싶구나.

       어서 물을 데워줄 수 있겠느냐.

 

중이重耳은 몹시 섭섭하였으나, 워낙 땀과 먼지로 몸이 더러워져

있었기에, 목욕부터 하고자, 옷을 벗고 욕당浴堂에 들어갔다.

 

       욕당浴堂의 문을 열어봐라.

       중이重耳의 몸이 정말 신기하구나.

       다 봤으면 나가도록 하자.

 

중이重耳가 발가벗고 한창 목욕하고 있을 때, 조공공曹共公대부

신혜우申惠雨를 비롯한 측근들이 평복으로 변장하고, 예의도 없이

욕당浴堂의 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오더니, 발가벗은 중이重耳

알몸을 빤히 들여다보고는 낄낄거리다가 나가버렸다.

 

      여봐라, 저자들은 누구이냐.

      무엇 때문에 이곳에 들어와

      시시덕거리다가 나가버리는 것이냐.

 

      공자께 죄송하옵니다.

      우리나라 주공과 그 대부들입니다.

 

공관 관리가 몸 둘 바를 몰라 당황해하며 대답하자, 중이重耳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당하여, 분노와 불쾌감을 참지 못하고,

옷을 입고 나와, 호언狐偃 등 가신들을 불러 선언하듯 말하였다.

 

      한 나라의 군주라는 자가 어찌 이리도

      무례한 행동을 할 수 있더란 말인가.

 

      이곳은 더 머물 곳이 못 되도다.

      이곳을 곧바로 떠나야겠도다.

 

호언狐偃은 당황했으나 욕당浴堂에서의 일을 다 듣고 나서는

오히려 더 길길이 뛰면서 가신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버르장머리 없는 조공공曹共公 이오.

      후일 공자께서 조나라를 용서하려 해도

      제가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때의 일을 사기史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국어國語 , 모든

사서史書 들에 한결같이 실린 것으로 보아, 실제로 중이重耳

나라에서 이러한 모욕을 당하였음이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재상 희부기僖負羈는 조공공曹共公이 중이重耳 일행을 공관에

들게 했다는 말을 듣고 기뻐하였으나, 욕당浴堂에서 목욕하는

중이重耳의 발가벗은 몸을 보았다는 말에 크게 실망하였다.

 

      아니, 어리석어도 그렇지,

      어찌 저런 짓까지 하는가.

      우리 조나라 체면이 말이 아니구나.

 

      무얼 그리 한숨을 내리 쉬세요.

      궁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요.

 

희부기僖負羈의 아내 여씨呂氏는 남편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걸 보고 물었으나, 희부기僖負羈는 말하기가 거북하여 망설이다가

매우 답답해지자, 할 수 없이 조공공曹共公과 중이重耳 사이에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말해 주게 되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었소.

      너무 창피해 말을 못 하겠소.

 

      제가 오늘 낮에 잠시 성 밖에 나갔다가

      마침 진공자 일행을 보았지요.

 

      공자의 얼굴은 보지 못했으나,

      그 가신들은 한결같이 영걸英傑 이었어요.

 

229 . 뼈에 사무친 원한은 어떻게 풀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