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 열국지 201∼300 회

제 230 화. 나를 알아주는 자 누군가.

서 휴 2022. 10. 6. 11:45

230 . 나를 알아주는 자 누군가

 

      주공, 공손 고가 말씀 올리겠습니다.

      의 공자 중이重耳 일행이 제나라를 떠나!

      우리 상구商丘 성에 입성하였습니다.

 

      중이重耳와 가신 일행이 정말로

      우리 송나라에 찾아왔단 말인가.

 

      주공, 정말 그러하옵니다.

      호오, 너무나 반가운 일이로다.

 

      반드시 국군國君의 예로써 대접하여야 한다.

      어서 빨리, 공자 일행을 공관에 모시어라.

 

      국군國君의 예로써 일곱 마리의 소를 잡아

      환영 잔치를 베푸는 칠뢰七牢를 준비하라.

 

칠뢰七牢 , 돼지 각 한 마리를 1라 하는데, 7

하면 각기 7마리씩 잡아, 음식을 후하게 많이 차린다는 뜻이 된다.

  

공손 고는 이러한 송양공宋襄公의 명을 즉각 호언狐偃에게

알리면서, 국군國君의 예로써 대접한다는 말도 전하였다.

 

      송양공宋襄公이 우리를 귀하게 대접하다니

      너무나 고마운 일이로다.

 

      비록 제환공齊桓公이 돌아가셨지만, 그분이

      우리에게 대접한 걸 송양공宋襄公이 안 모양이오.

 

송양공宋襄公의 환영 연회가 끝나자, 다음 날 공손 고공관으로

찾아와 호언狐偃을 만나면서 이야기를 청하였다.

 

      지난날 제환공齊桓公은 어떤 대접을 하였습니까.

      그때 수레 20대에 말 80마리를 내려주셨습니다.

 

      또한, 공자에게 저택을 제공하시고,

      공녀를 내주어 가정을 꾸리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가신들에게도 살 집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사마司馬께선 왜 물어보는 것이오.

      아니 오. 별 뜻은 없소이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중이重耳가 머무는 공관 앞에 수레 20

늘어서 있었으며 또한, 80마리의 말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아니, 이게 다 뭡니까.

      우리 주공께서 내리신 선물입니다.

      지금 공자께서 머무실 저택도 알아보는 중입니다.

 

      우리 주공께서는 중이重耳 공자 일행이

      힘겹게 열국을 다니시지 마시고,

 

      우리 송나라에 계속 머무시면

      어떠하겠냐며 권하고 있습니다.

 

      송양공宋襄公의 환대에 감격합니다만

      이렇게 많은 선물은 우리에게 부담이 됩니다.

 

대접도 지나치면 부담이 된다고, 호언狐偃은 사마司馬 공손 고에게

말하고는, 밤새 여러 생각을 하게 되면서 고민이 깊어졌다.

 

      이는 공자를 이곳에 붙잡아두려는 뜻이 아닌가.

      대접을 받다 보면 송나라에 눌러앉게 되지 않겠는가.

 

      나라 임치臨淄에서 탈출한 이유가 무엇인가.

      오르지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던가.

 

      지난번 제나라를 떠날 때 얼마나 어려웠는가.

      만일 그렇게 된다면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니로다.

 

호언狐偃은 다음날 새벽녘에야 굳은 결심을 세우고, 날이 밝아오자

마침 공손 고가 문안 인사차 공관에 들렀을 때 그에게 말하였다.

 

       사마司馬께 죄송스러운 말씀입니다만,

       단도직입적 單刀直入的으로 여쭤야 하겠습니다.

 

       아니,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어서 말씀해보십시오.

 

       다름아니라, 우리는 고국에 돌아가려는 일념뿐이오.

       귀국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송은 초나라에 폐하고 난 후

       너무 어려워져 힘을 펴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주공의 병세가 더욱 악화하여

       우리로선 군사를 동원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사마司馬 임의 솔직한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아니, 벌써 떠나실 작정입니까.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몹시 섭섭하나, 그 뜻을 잘 알겠습니다.

       좋은 후견 국을 만나 큰 뜻을 이루십시오.

 

       사마司馬 , 이해해주시어 정말 고맙습니다.

       아니 괜찮습니다.

       우리 주공께는 제가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날로 중이重耳 일행은 떠날 준비를 하였으며, 사마司馬 공손 고

호언狐偃이 말한 뜻을 송양공宋襄公에게 그대로 보고하였다.

 

      공자를 잡지 못함은 나의 부덕함이로다.

      너무나 아쉬운 일이로다. 여행에 필요한

      충분한 수레와 말들을 보내주도록 하여라.

 

송양공宋襄公은 여정에 필요한 양식과 의복과 물품 등을 충분히

챙겨주었으며, 중이重耳 일행은 송양공宋襄公의 후의에 깊이

감사드리면서 정나라와 초나라를 향하여 떠나갔다.

 

      세자 왕신王信은 잘 듣도록 하라.

      나는 목이目夷의 말을 듣지 않다가

      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도다.

 

      세자가 군위에 오르게 되면

      매사每事를 목이目夷에게 물어 시행하라.

 

      나라는 불공대천不共戴天의 원수이다.

      나라와는 절대로 우호를 맺지 말라.

 

      중이重耳는 천하의 패공霸公이 될 기상이 있도다.

      중이重耳가 돌아가면 진의 군후가 될 것인바

 

      세자는 중이重耳와 친분을 각별히 두터이 하여

      나라를 안전하게 지켜내도록 하라.

 

중이重耳 일행이 상구商丘 성을 떠나고 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송양공宋襄公은 홍수전투 泓水戰鬪에서 초성왕楚成王이 쏜 화살이

공교롭게도 허벅지에 꽂히었으며, 그 후유증이 더욱 심하게 퍼졌다.

 

      송양공宋襄公은 세자 왕신王信에게 마지막으로

      유훈을 남기면서 안타까이 세상을 떠나가고 만다.

 

송양공이 재위 14년 만인 기원전 637년에 죽자, 세자 왕신王信

눈물로써 아버지 송양공宋襄公에게 재배하고 유언을 받들었다.

세자 왕신王信이 곧 송성공宋成公 이라 불리게 된다.

 

이에 염선髥仙이 시를 지어 송양공은 이룩한 업적이 하나도 없는데

어찌하여 춘추오패의 대열에 세우냐며, 온당치 못한 일이라고 하였다.

 

       一事無成身死傷 (일사무성신사상)

       하나도 이룬 공 없이 전쟁에서 입은 상처로 죽었도다.

 

       但將迂語自稱揚 (단장우어자칭양)

       엉뚱한 말만을 늘어놓으며 스스로 망한 위인인데

 

       腐儒全不稽名實 (부유전불계명실)

       부패한 유학자들이 명분과 실리를 전혀 살피지 않고서

 

       五伯猶然列宋襄 (오백유연열송양)

       송양공 같은 위인을 오백의 반열에 올려놓으려 하는구나!

 

중이重耳와 가신 일행은 송나라를 떠나 정나라 쪽으로 가면서

조쇠趙衰는 중이重耳와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조쇠趙衰, 뭐가 그리 기분이 좋으시오.

      공자님, 들어보십시오.

 

      열국의 군 후들이 이제야 비로써

      공자의 영웅 됨을 알아주기 시작하였습니다.

      공자, 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송양공宋襄公은 군자의 풍모

      갖추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요.

 

      다만, 죽고 사는 치열한 전쟁에서

      병법이란 걸 전혀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인의 仁義를 지키면. 적군도 내가 하는

      인의 仁義, 따라올 줄로 편안히 생각한 것이지요.

 

      이런 군주만 있다면 천하가 얼마나 태평하겠습니까.

      송양공 宋襄公께서 빨리 병상에서 일어나길 바라며

      앞으로 큰 뜻을 펼치시길 기원하는 바입니다.

 

자기 마음을 잘 내비치지 않던 조쇠趙衰가 모처럼 기뻐하자, 나머지

가신들도 따라서 쾌활하게 떠들며, 나라에 가까워졌다.

 

      뜻밖의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이오夷吾가 병상에 누웠답니다.

 

      그거 확실한 이야기이오.

      진궁晉宮에 들렸다 나온 사람의 이야기랍니다.

 

이오夷吾 라면 중이重耳의 동생으로, 지금의 진혜공晉惠公을 말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형제의 우애가 남달리 깊었으나, 이오夷吾

군주가 되면서부터는, 중이重耳가 군주 자리를 탐낼까 봐, 죽이려고

암살까지 시도하였었다.

 

      진혜공晉惠公의 병세는 어떠한가.

      금방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 합니다.

 

      만약 진혜공晉惠公이 죽는다면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 다가올지 모릅니다.

 

      나라에 세자 어가 인질로 잡혀있으니

      나라 진목공秦穆公의 태도에 달려 있지요.

 

      그리되면 먼 초나라까지 찾아가

      도움받을 시간이 없지 않겠습니까.

 

      나라 대신 정나라의 도움을 받는다면

      거리가 가까워 더 빨리 귀국할 수 있습니다

 

      나라에 도착하면 좀 더 자세한 상황을 살펴보면서

      정鄭 나라의 도움을 받게 된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중이重耳 일행은 정나라에 간절한 희망을 걸게 되면서, 걸음을

더욱 재촉하여, 드디어 정나라 영토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정문공鄭文公은 정려공鄭厲公의 아들이며

      정려공鄭厲公은 정장공鄭莊公의 아들이다.

 

      정장공鄭莊公은 정나라의 제3대 군주였으며

      정장공鄭莊公 이야말로 정나라의 최전성기를

      이끈 군주로 인정할 수 있다.

 

      정장공鄭莊公 왕실의 경사卿士로 있으면서

      주왕周王을 대신해 제후들을 불러모았으며

      제후들을 불러모으며 회맹도 주재하였었다.

 

어찌 보면 춘추시대春秋時代 최초로 천하의 패권覇權을 쥔다는

패공覇公의 시대를 연 것이 정장공鄭莊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자, 정장공鄭莊公의 화려한 전성기도

      자식들의 패권覇權 다툼으로 완전히 멀어졌지요.

 

      정여공鄭厲公은 형인 정소공鄭昭公

      죽임으로써 끝내 군위를 차지하였지요.

 

      그러나, 정여공鄭厲公의 아들인 정문공鄭文公

      할아버지 정장공鄭莊公 처럼 화려한 역할을 하고

      싶어했지만, 그 역량이 부족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문공鄭文公은 초에 붙었다, 에 붙었다, 하며

      재위한 지도 벌써 36년이나 됩니다만, 나라의

      세력을 키우지 못해 소국으로 전락 되어있지요.

 

      양다리 외교정책은 그 당시의 상황에

      어쩔 수 없는 처사라 할 수도 있겠지만

      굳은 신념으로 의지를 지켜 낼 수도 있었지요.

 

      그건 어떤 이유라고 봅니까.

      그건 정문공鄭文公 줏대 없는 성격 탓이지요.

      깊은 생각 없이 약삭빠르게만 움직였습니다.

 

      정문공鄭文公의 성격은 참으로 이상하지요.

      자기의 아들들을 죽였다거나, 또 추방한 일은

      누구도 선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마 의심 많은 성격상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의심 많은 군주는 누구나

      부강한 나라를 만들지 못하지요.

      아마 진혜공晉惠公 도 의심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중이重耳 일행은 정나라 도성인 신정新鄭 성문에 이르게 되어

정문공鄭文公에게 알리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게 되었다.

 

정문공鄭文公은 중이重耳의 일행이 신정新鄭 성에 당도했다는

보고를 받게 되자, 조정의 군신들을 불러모아 물어보게 된다.

 

      주공, 신 숙첨叔詹 입니다.

​      주공. 신정新鄭 성문에 진의 중이重耳 공자와

      가신 일행이 당도하였다고 합니다.

 

      중이重耳가 알현을 청하니, 불러들이시어

      다소나마 대접하심이 좋으리라 봅니다.

 

      중이重耳는 주공과 같은 희씨姬氏 입니다.

      동성同姓 이오니 예를 갖추심이 좋겠습니다.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중이重耳는 부왕을 거역하여 도망 다니는데

      열국의 제후들이 받아 주지 않아, 유랑 중에

      여러 번 굶어 죽을 뻔했다는 말도 있소.

 

      변변치 못한 위인인 것 같으니 구태여

      예를 갖추어 맞이할 필요가 있겠소?

   

중이重耳 공자 일행이 신정성新鄭城에 와있는 걸 안 숙첨叔詹은,

잘 대접해줄 것을 권하였으나, 정문공鄭文公 단호하게 거절한다.

 

231 . 마지막 때를 기다릴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