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 열국지 201∼300 회

제 226 화. 아무리 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람.

서 휴 2022. 10. 4. 12:56

226 . 아무리 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람.

 

정문공鄭文公과 문미文羋는 두 딸인 백미伯羋 와 숙미叔羋를 데리고

초성왕楚成王을 모시었으며, 초군楚軍의 군영까지 가게 되었다.

 

      허 어, 이제야 다 왔구나.

      과인은 두 생질녀 甥姪女에게 잠자리 시중을 받겠노라.

 

      정문공鄭文公과 문미文羋는 그리 알고 돌아가라. 

      아니 오라버니, 백미伯羋와 숙미叔羋는 요.

 

      아니, 둘 다 조카 딸이어요

      허 어. 내가 알아서 한다고 하였잖느냐.

 

정문공鄭文公과 문미文羋는 초성왕楚成王에게 해괴망측駭怪罔測

한 일을 당하게 되었으나, 위세에 눌려 감히 아무런 말도 못 했다.

 

해괴망측駭怪罔測

놀랄 해, 기이할 괴, 없을 망, 헤아릴 측.

헤아릴 수 없으며 놀랄 만큼 기이하다.

 

      백미伯羋와 숙미叔羋 .

      너희들은 과인을 잘 모셔야 한다.

 

      알았느냐. 어서 이리 가까이 오너라.

      좋다. 이리 더 가까이 오너라.

      좋도다. 한 이불 속에 같이 들어가자.

 

초성왕楚成王은 조카인 두 자매를 침실로 불러들여 밤새 품고서는,

이튿날이 되자, 수레에 싣고 초나라에 데려가 후궁으로 삼았다.

 

이 일이 벌어지자, 나라 재상인 숙첨叔詹은 초성왕楚成王

몹시 원망하였으며, 그의 인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초성왕楚成王은 왜 저리 난잡하게 사는 것인가.

      어찌 두 조카딸과 잠자리를 같이 한단 말인가.

 

      우리 정나라가 그를 천하의 패왕覇王으로

      극진히 대접하였건만 정말 슬프구나

      짐승 같은 짓을 우리에게 하다니.

 

      뿌린 씨앗은 시간이 지나면 거두어지게 되려니

      왕은 그 일생을 깨끗이 마치지 못할 것이다.

 

      저자는 능히 패왕覇王이 될 능력을 갖추고 있건만

      자기의 행동을 억제하지 못하는구나.

 

      아쉽구나, 후안무치厚顔無恥 한 행동으로

      자기의 덕을 쌓지 못하니

      어찌 일생을 곱게 마칠 수 있으리오.

 

      또한, 그렇기도 하도다.

      초성왕楚成王이 비록 오라비라 하더라도

 

      술 취한 남자에게 탐욕과 음욕이 생긴다는 걸

      문미文羋는 그때까지 모르고 살았더란 말인가.

 

      화려한 연회장에 두 딸을 데리고 가선

      연거푸 술잔을 올리게 하였다니,

      이미 예견된 결과가 오지 않았겠는가.

 

      이는 모두 약삭빠른 정문공鄭文公

      과잉충성過剩忠誠 하려다 벌어진 일이려니

      원망을 해본 들 누구에게 하겠느냐.

 

숙첨叔詹의 이런 말은 결국 덕을 쌓지 못하는 초성왕楚成王끝내

천하의 패공霸公 이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예견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후안무치厚顔無恥 란 말에 관해 알아보자.

              두꺼울 후, 얼굴 안, 없을 무, 부끄러워할 치.

              낯가죽이 두꺼워 뻔뻔하고 부끄러움을  모른다.

     

              옛날 하나라 계啓 군주의 아들인 태강太康

              백성을 위한 일은 하나도 하지 않으면서,

 

              오르지 사냥만을 즐겨 하다가 끝내 나라를

              빼앗기고 쫓겨나게 되었다.

 

태강太康의 다섯 형제는 나라를 망친 형을 원망하며, 번갈아 가면서

노래를 불렀는데그중에서 막내의 노래가 전해오고 있다.

 

      萬姓仇予, 予將疇依. 鬱陶乎予心, 顔厚有.

      (만성구여 여장주의  울도호여심  안후유)

 

      만백성이 우리를 원수라고 하니,

      우린 장차 누굴 의지할지 답답하고 슬프도다,

      이 마음, 낯이 뜨거워지고 부끄러워지누나

 

      巧言如簧  顏之厚矣 (교언여황  안지후이) 

      피리 소리처럼 교묘한 말을 하였으나

      낯이 두꺼워도 부끄러워진다.

 

이에서 후안厚顔 이란 단어가 나오며,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

나오는 무치無恥와 만나 후안무치厚顔無恥 란 합성어가 된 것이다.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 無恥,

      도지이정 제지이형 민면이 무치

 

      정치를 할 때에 백성을 형벌로써 다스리면,

      백성은 처벌에서 벗어나도 부끄러워함을 모른다.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도지이덕 제지이예 유치차격

 

      덕으로써 다스리고 예로써 다스리면,

      부끄러운 줄을 알게 되어 잘못을 바로잡는다.

 

법을 엄하게 하면 사회 질서는 유지할 수 있으나, 법이나 형벌이

지나치게 엄하면, 백성들은 자신의 잘못을 수치로 여기기보다는

형벌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 자신의 잘못을 숨기려 들 것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덕으로써 인도引渡 하고

       윗사람 스스로가 모범模範을 보인다면,

       백성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즉시,

       부끄러움을 느껴 고칠 것이라는 뜻이 된다.

 

법치주의法治主義에 대해 덕치德治와 예교禮敎를 내세우는

유가儒家의 통치 원리를 그대로 보여주는 말이 된다.

 

       한편 당진唐晉의 공자 중이重耳는 주양왕周襄王 8년이며

       기원전 643년에, 내시 발제勃鞮와 자객에게 쫓겨,

       책翟 땅에서 도망쳐 나오게 되었으며,

       어렵게 어렵게  나를 찾아왔다.

 

완연히 거지 꼴이 되었다가, 천하의 패공霸公 인 제환공齊桓公에게

몸을 의탁하게 되자, 뜻밖으로 공적인 대접을 받게 되었다.

 

      중이重耳 공자. 얼마나 고생이 많았소.

      , 제환공齊桓公 도 망명 생활을 하여 봤소.

 

      중이重耳 공자. 가족들은 데리고 오시었소.

      도망 다니는 사람이 어느 겨를에

      가족을 데리고 다닐 수 있겠습니까.

 

      객지의 망명 생활은 참 외로운 것이오.

      내 문중에서 참한 소저小姐를 찾아보겠소이다.

      중이重耳 공자는 잠시 좀 기다려 보시 오.

 

제환공齊桓公은 살 집들을 마련하여 주면서, 별도로 식량수레와

도 넉넉히 베풀어주었으며, 이에 중이重耳 공자와 가신들은

마치 시련이 끝나기라도 한 듯이 정착하게 되어 안정을 찾았다.

 

      그대 소저小姐는 누구시오.

      제강齊姜 이라 불러주세요.

 

      아니, 제강齊姜 이라면

      나라 제후齊侯의 따님이 아니시오.

      아 안 되오, 어서 돌아가시오.

 

      어여쁘기도 하여 좋은 혼처가 많을 텐데,

      하필이면 나 같은 망명객에게 시중들려 하시오.

 

      공자님, 이미 마음을 정하여 돌아갈 수가 없나이다.

      소첩은 공자께서 금의환향錦衣還鄕 하실 날만을

      기다리며 살기로 마음먹었사옵니다.

 

중이重耳와 가신들은 제환공齊桓公의 배려에 너무나 감격하였으며

그때부터 제齊 나라에 정착하게 되면서, 여유로우면서도 즐겁게

자주 사냥가기도 하며한동안 안락한 생활을 이어가게 되었다.

 

      중이重耳는 알뜰하고 살뜰한 제강齊姜의 사랑에 빠져,

      마치 꿈꾸는 듯이 달콤한 나날을 보내게 되며

 

      나라에 두고 온, 아름답고 맘씨 고운 계외季隗

      두 아들의 얼굴이 차츰 기억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는 걸,

      중이重耳 자신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후 제나라 제환공齊桓公의 마지막 보루였던 포숙아鮑叔牙

죽자, 역신인 역아易牙와 시초寺貂로 인하여, 나라의 기강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게 되며, 공자들의 난으로 혼란을 겪게 되었다.

 

      나라가 어떻게 되어가는 것이오.

      제환공齊桓公이 처참하게 죽고, 

      여러 공자가 란을 일으켰으나, 다행히

      공자들의 변란辯難이 이제 끝났다고 하오.

 

      세자 소가 혼란混亂을 수습하고 군위에 올랐소.

      세자 소가 이제 제효공齊孝公이 된 것이오.

 

중이重耳와 가신 일행은 새롭게 즉위한 제효공齊孝公의 태도에

크게 실망하게 되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제효공齊孝公은 너무나 얄팍한 행동을 하고 있소.

      자신을 도와준 송양공宋襄公을 배척하였소이다.

 

      송양공宋襄公은 자기 분수도 모르는 헛된 야망으로

      나라 전체를 몹시 어렵게 만들어 놨소.

 

      초성왕楚成王은 초나라의 강성함 만을 믿고

      인의仁義 와 도덕道德을 저버리면서

      후안무치厚顔無恥 한 행동을 하고 있소이다.

 

      제효공齊孝公은 우리에게 호의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악의적이지도 않소이다.

 

      그저 선군이신 제환공齊桓公이 베푼 봉록俸祿

      그대로, 우리에게 주고 있을 뿐이오.

      제효공齊孝公은 야심도 없는 인물인 것 같소.

 

      제효공齊孝公은 우리에게 아무런 대가를

      요구하지도 않고 있으니

      나라에서 살기에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소.

 

      우리 중이重耳 공자께서도 점점 야심을 버리며

      나라에서 제강齊姜과 더불어 살기를 좋아하오.

 

      중이重耳 공자도 어느덧 60을 넘기고 있소.

      나 위주魏犨 와 선진先軫 40줄이오.

 

      이대로 있다간 아무 일도 안되오.

      우리 가신들은 어떻게 하여야 하겠소.

 

      공자에게 희망과 포부를 다시 일깨워 줘야 하오.

      우리는 임치臨淄에 무덤을 마련하고자 온 것이 아니 오.

      

      고향과 가족을 버린 채 이곳까지 온 것은

      고작 밥 세 끼 잘 먹기 위해서가 아니지 않소.

 

      더 생각할 필요가 없소이다.

      이제 미련 없이 제나라를 떠나야 합니다.

 

호언狐偃과 조쇠趙衰는 가신들의 의견을 모으면서 좌장座長

역할을 충실히 하며, 일마다 중이重耳를 잘 이해시키고 있었다.

 

      공자, 나라는 왕자의 난이 수습되었으나

      국력도 예전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하니

      앞으로 도움받기가 어렵게 된 바이옵니다.

 

      공자, 이제 제나라를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허 어. 꼭 떠나야 한다면 어느 나라가 좋겠소.

 

고국인 진나라에는 언제 돌아가게 될지 알 수가 없었고,

나라마저, 진혜공晉惠公의 아들이며 세자인 어가 볼모로 잡혀

있었으니, 나라에도 찾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되어있었다.

 

       먼 초나라밖에 없는데, 초성왕 楚成王

       제환공 齊桓公처럼 아량이 클지 모르겠소이다.

 

       초성왕 楚成王이 송양공宋煬公을 굴복시켜

       맹주가 되었고, 제일 강한 나라가 되었으므로

       왕의 기세가 만만치 않을 것 같소이다.

 

       이제. 의지할 나라는 송나라와 초나라밖에

       없으니 어찌하면 좋겠소.

 

       두 나라 모두에게 기대를 걸기가 어렵소이다.

       어쩔 수 없소. 일단 떠나가 보기로 합시다.

 

호언狐偃과 조쇠趙衰를 비롯한 가신들은 제나라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중이重耳 공자에게 떠날 결심을 촉구促求 하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어느 나라에 망명을 가서

      그 나라에 많은 신세를 지게 되면

 

      반드시 신세를 갚거나 좋은 명분을 내세워

      정중하게 떠나야 하는 때이었다.

 

      만약 떳떳한 절차를 밟지도 않고,

      정중하게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아무도 몰래 그냥 떠나는 것은

 

      예의에 벗어나는 짓이었으므로, 만약

      발각되어 붙잡히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

 

나라가 혼란을 수습하였으나, 안정을 찾으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이며, 중이重耳와 가신들은 제효공齊孝公성격상 어떤 희망을

걸 수 없었으므로, 체면없지만, 몰래 떠나기로 모두 합의하였다.

 

그때가 제환공齊桓公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리를 잡고 산 지가 어언

7년이나 되어,  제효공齊孝公은 때가 되었으며, 주양왕周襄王

14년이며 기원전 637년의 일이었다.

 

227 . 중이, 긴 여정이 시작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