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이야기

멍 애

서 휴 2019. 2. 4. 15:05

멍 에
서 휴  
 
      야, 너는 어떻게
      어머님이
      우리들 동창회 비를 다 내게 만드나.
 
      미안해
      내가 지금 하늘에 있잖아
  
그래 맞아
내가 동창회장을 할 때야
내가 모 금융회사에 상무로 있을 때였어.
 
내가 다니는 회사로
점잖은 어머님 같은 분이 찾아왔었어.


나는 고객이신 줄 알고
내방으로 정중히 모셨지
 
봉투를 내놓으시는 거야
내 아들 동창회비라며
 
아니 동창회비라니요
우리 동창 노길생이 하늘로 갔다는 거야
아들대신 동창회 비를 가져왔다는 거야.
 
어떻게 하여야할지 말을 할 수가 없었어.
나와 어머님은 눈물이 맺혔었지
 
           야, 너는 어떻게
           어머님이
           우리들 동창회 비를 다 내게 만드나


           미안해
           내가 지금 하늘에 있잖아
  
그때 우리는 고교졸업 40회 기념식을 성대히

개최하자며 모두에게 연락을 띄우며 바빴었지
그게 벌써 십 년 전일이야
 
요즘 우리 동창 카페에는
내년에 50회 졸업기념 식을 하자며
준비위원들이 바쁘게들 움직이지만
 
나는 지방에 있어
어느 날 동창 카페를 보다 깜짝 놀랐어.
 
그 어머님
노길생의 어머님께서 동창회비에 쓰라며
일천만원을 보내시겠다는 거야
 
        어머니 무리하지마세요
        아니야
 
        네 대신 동창 회비를 내는 거야
        네가 동창회에 나가는 거지
 
        그래도 어머님
        나는 이미 하늘에 와 있잖아요.


        동창 회비를 낸다면
        어머님 마음만 아파요
 
        너는 몸이 아파
        다른 친구들처럼
        동창회에 나가질 못했어.
 
        아픈 네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내 마음이 미어졌던 거야
 
        네가 떠나고 난 다음부터
        나는 네 마음의 동창 회비를
        내기로 하였어.
 
        내가 무슨 돈이 있니
        노령연금으로 10년간 적금을 부었지.
 
        내 나이가 벌써 90이 넘어가니
        널 낳은 지도 70년이 넘는구나.
 
        유난히 엄마를 따르던 내 아들 길 생아
        나는 오늘 적금을 털어 동창회에 보낸다.
 
어머님은 안양의 작은 아파트에 홀로 사셨어요.
한사코 오지 말라며 거절하시는걸.
우리 동창들 십여 명이 찾아갔지요.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있는 모습에서
노길생의 학교 다닐 때의

모습과 마음가짐이
어머님으로 부터 비롯되었음을 알게 하였지요.


       어머님 절 받으시지요.
       어머님
       우리 모두가 어머님의 아들입니다
 
       그래 괜찮아요.
       어쩜이리. 모두 다 잘생겼지
       자꾸 눈물이 날려고 해
 
       어머님
       우리 모두가 아들 노릇을 하겠습니다.
       그래 괜찮아요.
 
       세월이 지나니
       하얀 머리가 까맣게 되었어.
       염색한 게 아니야
 
       이리들 와 봐요
       길생이 가 쓰던 방이야
 
       걸려있는 사진들
       꽂혀있는 책들
       길생이 가 쓰던 물건들이야
  
천주님께 기도 올리시며 사시는 맑은 마음이
아름다움을 지니게 하였을까
 
나이를 초월하신 밝고도 아름다우신 모습이
우리 모두의 어머님이기에 과분한 분이셨다 


        아름다운 우리들의 어머님
        이제는 아들에 대한 돌을 내려놓으시고
        편안히 사시지요.
 
        차마 우리는 이 말을 하지 못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체
        어머님의 배웅을 받으며 돌아선다.
 
        그리고 다시 찾아갔다
        식사를 대접하고자 모시려하였으나
        손수 준비하신 음식에 대접을 받고 말았다
 
        작은 선물을 드리며
        내년 50회 기념식에 꼭 모시러 오겠습니다.
 
        우리는 총총 걸음으로 나서며
        어머님의 얼굴을 한참이나 보았다


 우리는 나오며 아파트 경비실에 찾아가
 어머님께 무슨 일이 생기시면
 곧바로 연락을 달라며 전화번호를 남겨 놓았다.


  2013.12. .


 총동창회에 보고하여 감사패를 만들어
 받으려 하지 않으심에도 드렸으며
 
 어머님이 주신 동창 회비를 명분 있고
 보람 있는 일에 쓰자며 의논들을 하였지요.
 
 어머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자식 동창이라고 하나 70줄 나이이니
 누구아빠하고 부를 테니 이름들을 가르쳐줘요.
 
 다음에 찾아뵈니
 우리를 맞으시며 OO아빠 △△아빠로
 십여 명의 이름을 하나도 틀리시지 않으시며
 다 부르심에 우리는 놀라고 말았다
   
       아니 어머님
       어떻게 이름들을 다 외우셨어요.
  
       뭘 까만 머리가 다시 나듯
       기억력이 조금 살아나나 바
 
멀리 나갔다 돌아온 아들을 반기는 양
오랜만에 아들을 만난 듯 반가워하시며
다정한 이야기를 하여주신다.
 
지나간 옛날이야기와 더불어
시도 읊으시고 노래도 부르시며
눈물 빛은 전혀 비치지 않으셨다.
  
천주님을 믿으시며
가슴속에 얼마나 십자가를 그었을까


가슴의 십자가는 멍이 들다가 멍에가 되어
오랜 기도 속에


이제는 그마져 다 사그라진 가슴에
우리를 끌어안으며 품고 계시었다.
   
2014.10.15.


일 년이지나 어머님께서는 1천만 원을
더 쾌척하시어 일금 2천만 원을
동창회에 쓰라며 기금에 보태셨습니다.
 
어머님의 정성은
우리 모두의 마음을 모으게 하시어
엄숙하고 가슴 뭉클한 가운데
50회 졸업 기념식이 성대하게 치렀습니다.
    
우리 모두는 어머님의 만수무강을 빌며
아름답게 보답하고자
모두 일어나 큰절을 올렸습니다.
 
2015.08. .


노길생 이 친구는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온 선천적 심장병이 있었지요.
    
심장은 간과 폐와 더불어
생명을 이어가게 하는 중요한 장기이며
 
심장은 간에서 영양분을 받고
폐에서 산소를 받아 피를 통하여
우리 몸에 보내주는 역할을 하지요.
 
심장에 이상이 생기면
온몸에 피를 잘 돌게 하질 못하여
몸의 모든 기관이 어려움을 겪게 되며
   
폐의 활동을 돕지 못하여
숨쉬기가 힘들거나 가슴이 조여 오며
빈혈 등으로 쓰러지기도 하지요


    그때는 그랬단다.
    대학에 다니는 여자들은

    졸업하자마자 혼인을 하거나


    결혼하기 위하여
    대학을 그만 두는 학생이 많았단다. 
 
    길생아
    20살도 안 된 내가 무슨 철이 있었겠니.


    그래도 길생아.
    아들이 귀한 교하交河 노盧씨 집안에


    내가 시집와 첫아들을 낳으니
    내 가슴이 얼마나 뿌듯하였는지 아니.


    너는 첫아들로 축복을 받으며
    온 집안을 기쁘게 하였단다.


    그러나 누가 알았겠니.
    네가 자라며 누가 알았겠니.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온
    선천성 심장병을 누가 알았겠니.
 
    정성을 다 드려
    내 피와 살을 나누어 주었건만
    몹쓸 심장병을 가지고 태어나다니
 
    아들아. 내 잘못이야  
    너의 운명이라 말할 수는 없어
    다 내 잘못이야
   
    이 고통을 네가 어이 감당하느냐
    이 죄를 내가 어이 씻어야 하느냐
   
    너는 1945년 해방되든 해에 태어나니
    그때는 수술은 생각할 수도 없었단다.
    약도 제대로 있지도 않았단다.
  
    나는 성당에 나가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올리며 매달렸지
 
    견디며 자라며 학교에 들어가게 되자
    오래오래 살라며


    네 이름을 바꾸어 등록하였지
    네 이름이 길생 吉生이가 된 거야
    오래오래 잘 살라는 이름이야


    다행이 토목학과를 나와
    큰 회사에 취직도 하였었지
   
    그러나 왼쪽 가슴이 답답하고
    바늘로 콕콕 찌르듯이 아프다가
    쓰러지기도 하여
 
    안정을 찾느라 직장은 쉬게 되고
    조바심 속에 세월은 자꾸 흘러갔었어.
 
    길생아. 그래
    너를 따르던 신붓감도 있었어.
    참하고 예쁘기도 하였지.
   
    찾아와 매달리는 사랑을
    너는 화를 내며 자꾸 쫒아버렸어
 
    말없이 집을 나가
    먼 산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어.
 
    먼 산을 바라보고 있지만
    네 가슴엔 얼마나 눈물이 흘렀겠니.


    천주님
    내 아들을 건강하게 보살펴주소서.


    천주님
    저 아리따운 처자와 같이
    오순도순 살아가게 하여 주소서
   
    말을 해서 무엇 하니
    운다고 마음이 풀리니
 
    흐르고 흐르는 내 가슴에 
    쌓여 흐르는 눈물을
    아마 너는 알고 있었던 것 같아.
 
    길생아.
    오늘 네 친구들을 부른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 날
2015년 8월 5일, 화요일
 
안양 변두리 20여 평 아파트
큰 재산도 없이 조촐하게 홀로 사시는
 
향년 92세에 발끝치기 운동을
하고 계시는 우리들의 어머님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 형준 애빕니다.
 
     언제 오시려나. 한시가 바빠
     노인네 건강은 믿을 게 못 돼요.
     밤새 안녕이거든.
 
     와 줘서 고마워요.
     이 날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이 돈 다 채우기 전에
     명줄을 놓을 까봐 노심초사하며
     이제 겨우 마쳤다네.


     약속도 빚이라고
     이제야 긴장이 풀리는구먼.
    
     자네와 약속하지 않았더라면
     포기할 뻔 하였어.
 
     늙은이 말이라 믿기지 않았을 텐데
     도와줘서 고마워요.


     이 더위 속을 다니시다니요
     몸도 불편하신데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2015.08.13.
어머님 모시고 다니던 모교를 찾아갔습니다.
 
     길생아
     오늘 네 친구들을 불렀다


     내 마지막 가진 돈
     1억 원을 학교에 보내련다.
 
     네 비록 하늘로 갔으나
     이 세상에 너를 살려두고자
     네 이름인 노길생盧吉生 장학금을 만든다.
  
 이레야
 내 마음에 너를 살려낼 수가 있어
 너를 향한 내 마음이 풀릴 수가 있어


 사랑하는 네 이름이 영원하도록
 사랑하는 내 아들을 살려내는 거야


 사랑받는 네 이름이 영원히 살아있도록
 네 이름인 노길생 장학금을 만드는 거야


     내가 네 학교에다가 장학금을 내었다.
     장학금을 냈으니깐
     내가 평생을 소원하던 소원을 풀었다.
 
     잘 가거라.
     엄마도 바로 갈 거야.
     이제 알았지.
 
먼저 떠나보낸 아들을 가슴에 묻어둔 채
살아오신 애달픈 어머니의 마음이
노길생 장학금을 만들었습니다.
 
장영자 여사님의 아들 사랑은
노길생 장학회를 탄생 시켰습니다.
 
2015.09.14.


다들 왔네.
차가 몇 대야. 됐구먼.
 
가자고
북한산자락 송추 가막골 갈빗집으로
 
다른 뜻은 없어요.
불쌍하게 먼저 간 길생이 몫으로
 
내가 죽기 전에
장학금을 내겠다는 결심을 하였지
 
언제 얼마를 기부할지 정하지 못하고
절약 절약하며 열심히 모으며 지내왔어
 
자식들도 내 뜻을 알고 있지만
일부러 알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부모와 형제간 마음은 좀 다른 것 같아
다들 힘들게 살고 있잖아
소문 내지 말고 조용히 하여주면 좋겠어.
 
그동안 고생들 하였지. 안 그래.
갈비를 마음껏 푸짐하게 들어요.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일산 호수공원을 모시고 산책하였다.
 
영감이 육 년 전에 돌아가셨지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마음고생을 많이 하였어.
 
부인이 잘못하는 일이 아무리 생겨도
가슴에 못 박는 막말은 절대 하면 안돼요


어머님은 가슴을 쓰다듬으며
우리에게 교훈을 주신다.
 
저 세상에 먼저 간
내 큰아들 길생이를 위해
남은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해요
 
이제 우리도 헤어질 때가 된 것 같아
앞으로 나를 찾지 말아줘
오늘이 마지막 만남이다. 알겠지.
 
    이제 할일을 다 하였으니
    이제 우리도 헤어지자는
    말씀을 들으며 눈물이 핑 돌았다.


    어머님의 가슴속에 든 무거운 돌
    아들에 대한 멍에가 된 십자가를
    이제야 내려놓으시는 듯


    홀가분한 어머님의 얼굴은
    맑은 하늘처럼 밝아 보였다.
 
YTN 뉴스 홈 >사회 Posted : 2015-08-18 17:00
[영상] "가슴에 묻어 둔 내 아들의 이름으로"
  
  서울 북아현동 한성고등학교에
  돈뭉치 들고 나타난 아흔두 살 할머니
  과연 무슨 사연일까요
  
  13년 전 선천적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들
   
  넉넉지 못했던 형편
  남들처럼 결혼생활 한번 누려보지 못한 채

  홀연히 떠나버린 아들이 못내 한스러웠던
  어머니
 
  그렇게 10여년이 흘러
  아들의 모교에 찾아간 92세의 노모는
 
  가슴에 묻혀있는 아들의 이름으로
  1억 원을 기부합니다.
   
      내가 네 학교에다가 장학금을 내었다.
      장학금을 냈으니깐
      내가 평생을 소원했던 내 소원을 풀었다.
 
      잘 가거라.
      엄마도 바로 갈 거야.
      이제 알았지.


  YTN PLUS
  (3Dpress@ytnplus.co.kr">press@ytnplus.co.)



     2019. 01. 03. 향년 96세


     어머님은 가슴속에 묻어둔
     아들을 찾아 먼 길을 떠나셨다.


     어머님의 자녀분들도 부모님을 닮으시어
     준수하시고 어여쁜 분도 있으시며
     사회의 필요한 역할을 충실하게 하신다.


     우리는 어머님의 둘째 아들이시며
     길생이의 동생인 노盧교수와 연락하여
     어머님을 찾아뵈었다.


  어머님

  여기 아들들이 모여 조촐히 음식을 차려놓고

  큰 절을 올리오며

 

  어머님의 마음을 길이 간직하고 져

  묵념으로 어머님을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어머님 편안한길 가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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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졸업 40주년 기념행사를 치룬

송평종 회장과 임원진들


이제 50주년 기념행사를 치룬

소광 회장과 임원진들이

그간에 어머님을 찾아뵙거나 만나 담소를 나누며


또한 정성껏 침을 놔 드리거나
크고 작은 선물이라도 드린 동창들이

올린 글과 사진들에

나의 마음을 아울러 쓴 글임을 밝히며

 
이 글의 부족하고 미약한 부분을 말씀하여주시면
첨가하거나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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