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이야기

그때 있었던

서 휴 2016. 3. 7. 00:50


그때 있었던

 

 

 

    stainlessaluminium이 나오기 전에는

무쇠를 녹여 자동차 엔진을 만들었었지요.

 

부족한 기술에 많은 실패를 거듭 하며

나오게 된 국산자동차 가솔린 엔진의 역사는

2016년으로 기준하여 보면 44년이나 됩니다.

 

자동차엔진을 개발할 그때에 있었던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본 글을 만들었습니다.

 

 

. 저사람 또 오네.

누구 말이요

 

허어. 저사람 참 끈질겨

며칠 안보이더니

또 리어카를 또 끌고 오누먼.

 

여기가 어디라고

영등포에서 예까지

리어카를 끌고 온다니

 

우리공장 고물古物

다 가져가겠다고 온다는 거야

 

부지런한 거야

멍청한 거야

돌은 사람은 아닌 거 같은데

 

수위 아저씨들 안녕하셨시 유.

어떻게 또 왔소.

 

오늘은 돈 가지고 왔지 유.

뭔 돈. 헛소리 하지 마러.

 

회장님 심부름으로

돈을 가지고 왔다니까 유.

보세유. 이게 다 돈이지 유.

 

리어카에 실린 게 다 돈이라고.

못 믿으면 보따리마다 끌러 봐 유.

 

에키. 이사람 농담 하지 마러

오늘은 줄게 없어. 돌아가요

 

그런데 뭔 보자기를 저리 많이 싣고 왔나 

빨리 비서실로 연락해 줘 유.

 

농담하지 말고 돌아가. 이 사람아 

이거 봐 유. 이게 다 돈이잖아 유.

 

하 아. 저 보따리도 다 돈이라고

그래 유.

 

어디 보자.

아니참. 어어어 다 돈이네

빨리 비서실로 연락해 줘봐 유.

 

부장님. 부장님 총무부장님

저기 있지요.

그 사람 있지요

돈을 한 리어카나 싣고 왔어요.

 

천천히 말씀하세요.

돈을 한 리어카나 싣고 왔다니까요.

회장님 심부름으로 왔데요

 

저 총무부장입니다.

이 많은 돈을 리어카에 싣고 오시다니요.

들어가시지요.

 

        회장실 접대용 테이블 위에

        보따리마다 올려놓고 펼쳐놓는다

        많은 돈이 쌓였다

        회장은 앉기를 권한다.

 

자 앉으세요.

제가 김철호 입니다.

예예. 저는 충청도 이 누구인데 유.

 

이 많은 돈을 왜 가져왔지요

이 돈으로 자동차엔진을 만더러 봐 유.

 

이 돈이 다 누구 겁니까

제 돈이지 유.

 

이 많은 돈이 자기 것이라고요.

예 에. 그러믄 유.

 

. 드시지요

제가 항상 마시는 찹니다.

 

보아하니 어렵게 만든 돈 같은 데

어떻게 이 많은 돈을 가져왔지요

 

만드시는 자동차 엔진

성공하라고 가져왔지 유.

 

자동차 엔진 참 어렵습니다.

선진국 기술을 못 따라가

실패를 거듭하고 있지요

 

실패할거라며 도와주질 않습니다.

돈 구하기가 참 어려워요

 

고생하시는 걸 알고

그려.  제가 돈을 가져왔지 유.

 

이 돈을 다 쓰고도 성공을 장담 못해요 

이 돈이 떨어지면

더 이상 돈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떻게. 갚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못 갚을 수도 있고요.

잘 생각해보세요.

 

제가 다  책임지는 돈이 지유

절대 원망하지 않을 거예 유

 

믿어도 되나요.

믿어도 되고 말구 유.

 

세상에 별난 일이 다 생기는구먼.

매일 밤잠을 설치는 데

이런 사람이 나타나다니 -

 

김철호 회장은 충청도 촌티가나는

촌사람이 이 많은 돈을 가지고 온

사실이 믿기지 않아 한참을 바라보다가

 

총무부장.

경리부장 들어오라고 해요

이 돈을 다 세어 봐요

 

차 한 잔씩 더 가져와요

. 드시지요

 

마땅찮으면 커피를 타오라 할까요.

괜찮아 유.

 

우리 회사를 어떻게 알게 됐습니까.

벌써 이삼 년이 됐지 유

엔진 개발에 고생하신다고 들었 씨 유.

 

아니 혹시.

리어카를 끌고 매일 온다는 그분 아닙니까.

 

총무부장. 말하던 그 사람 맞지요

예 예. 바로 그분입니다.

 

아니. 어떻게 저를 아시나 유.

몇 번 물어봐 알았지요

 

그런데 이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니요

제가 다 책임지는 돈이지 유.

걱정 말고 쓰세 유.

 

이 돈을 어떻게 갚으면 좋겠습니까.

갚을 거 없 시 유.

예 에. 어떻게 없다니요.

 

회사에서 나오는 고물古物을 다 주세 유.

고물古物로 가져 가겠시 유.

 

아니 고물古物로 다 가져간다고요

그래 유. 한 장 써주시면 되지 유.

 

고물古物로 가져간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래 유. 현재의 가격으로 주시면 되 유

허어 참. 총무부장 다 들었지

잘 써가지고 와요

 

한 가지 부탁이 있는 데 유.

뭡니까.

오늘부터 형님이라 부르겠시 유.

 

아니 나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아니지 유.

제가 열세 살이나 아래 지 유.

 

제가 고생을 많이 해가지고 유.

원래 생김도 나이 들어 보이지 유.

그래요.

 

형님은 OOO생이고 저는 OOO생이지 유.

아니. 어떻게 그걸

알아봤지 유. 맞지 유.

 

형님으로 모시려 마음먹고 찾아왔어 유.

허어 하아 하하하

 

그래 오늘부터 형제가 되자 구.

그래 형 동생으로 부르자고

 

하하 하하하

형님. 고마워 유. 형님

 

동생 술 한 잔 하나

몸이 안 받아유.

 

담배는 피우나

안 배웠지 유.

 

. 심심한 동생을 만났구려.

하하 하하하

 

 

   1910822일 일본의 강압에 의하여

   한일병합 조약을 맺게 되며

 

   우리나라는 통치권을 빼앗기고

   식민지가 됩니다.

 

   이때에 관직에 있던 양심 가들은

   사직을 하며 독립운동에 나서거나

   고향에 묻히어 살게 됩니다.

 

   이때 충청도 관찰사로 있던

   높은 무관이 관직에서 물러나며

   하나뿐인 아들을 앉혀놓고 이야기를 합니다.

 

   나라 형편이 애통하지만 한동안은 갈 것 같다

   너는 독자이니 절대 앞으로 나서선 안 된다

 

   내일부터는 나돌아 다니지 말고

   나와 같이 농사일 외에는 한눈을 팔지 말자.

 

 

이렇게 이 집안은 충청남도 합덕에 터를 잡고

농사일에만 전념하며 열심히 살게 되었지요.

 

독자이신 아드님은 아들 삼형제를 두게 되며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하였음에도

삼형제 모두를 공부를 시키지 않았습니다.

 

나돌아 다니지 말고 나서지 말며

농사만 지으며 조용히 살자는 것이었겠지요.

 

삼형제 모두가 매달리기에는 논밭이 작았고

젊음이 있다 보니 다른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그중 힘이 좋은 막내가

아내와 자식을 데리고 무작정

서울 영등포에 올라와 막일을 하게 되지요

 

 

1945년이 지나며 영등포는  산업시설에

지원 역할을 하는 상점들이 많아지며

일반 시장도 번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960년대 후반부터는

여기저기 공장들이 들어서며

 

각종 철재상들과

각종 자재를 취급하는 상점들이 많아져

영등포는 더욱 바쁜 곳이 되었지요.

 

너도나도 애를 쓰며 열심히 살던 때였습니다.

그래요. 그리 바쁜 곳이라 해도

막일은 일거리가 매일 있는 게 아니지요

 

이 누구는 기웃거리며 막일을 찾아다녔어요.

그래도 힘이 좋으니 좀 나은 편이었지요.

 

그렇게 일 년이 흘러 입에 풀칠은 되나

형편이 나아지질 않았지요.

 

지개를 지며 힘들어 뻘뻘 땀을 흘리는데

한 리어카 꾼이 여기저기 어슬렁거리며

매일 고물古物을 걷어 싣고 가는 거였습니다.

 

철 쪼가리든 헌 철판 나무상자 신문지

헌책 헌종이나 유리병 등 별 볼일 없는

물건들을 다 주어가는 겁니다.

 

궁금하였지요. 저런 게 돈이 될까

리어카 꾼을 살피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느 날인가 우연히 이야길 나누게 되었지요.

 

리어카 꾼은

스무 살 가까이 나이 많은 노인분이지만

같은 충청도라며 친절히 대해주셨지요.

 

. 고물古物 수집 한번 해보려고

리어카 끌어 볼 생각 있어

아니 유. 글쎄 유.

 

아직 젊은 나인데 좀 있다 끌어도 될 거야.

하기야 막노동 보다는 났지

 

막노동 보다는 났다니요

이건 매일 매일 벌이가 되

 

막노동 보다 났습니까.

좀 그래 그냥

 

몇 달이 지난 후에

리어카 꾼은 지나가는 이 누구를 불렀습니다.

 

여보게.

내 하던 일을 자네가 맡으면 어쩌겠나.

 

아니 왜 유.

몸이 안 좋아 고향으로 가야겠어.

 

벌이는 적으나 꾸준히 하면

막노동보다는 나을 거야

부끄럽다 생각 말고 리어카를 끌어봐

 

 

기아산업의 김철호 회장은 을사늑약이

일어난 해인 1905년 경북 칠곡군

가산면 학하리에서 태어났습니다.

 

192217살에 어려운 가정 형편을 도우려

돈을 벌고자 일본의 대표적인 공업도시

오사카로 갑니다.

 

이때에 막노동을 하며

무척이나 힘겹고 고생하던 때였습니다.

 

낮에는 삼화제작소에서

자전거 부품을 만들게 되고

밤에는 야간 공업학교를 다니게 됩니다.

  

1926년 야간 공업학교를 졸업할 무렵

삼화제작소는 자전거를 생산하게 되며

 

성실하고 부지런한 김철호 회장을

공장 지배인으로 임명하게 되었습니다.

 

이 자전거 사업은 얼마못가 문을 닫으며

공장과 기계들을 넘겨받게 됩니다.

 

1930  삼화제작소 문을 다시열고

열심히 노력한 끝에

 

사업이 순조롭게 운영되다가

일본이 일으킨 무분별한 전쟁으로

 

군수물자의 수요가 급격히 많아지면서

몇 개의 공장을 더 확장하며 돈을 벌게 되지요.

 

194412월 일본이 패망할 것으로 보이자

귀국하여 서울 영등포에 경성정공를 설립하고

자전거부품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19506.25 동란이 터지자 부산으로

피난을 가 부산영도에서 자리를 잡게 됩니다.

 

1952년 대한민국 최초의 자전거인

3000리 호를 부산영도 공장에서

처음으로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이 자전거 부분은 1979년도에 완전히 독립하여

오늘날의 삼천리 자전거 공업주식회사가 됩니다.

 

19537 6.25 사변이 끝나자

서울에 올라 와 시흥에 공장을 착공합니다.

   

영등포에서 가까운 시흥에

공장 신축계획을 세우며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향한다는 뜻을 가진

기아산업()로 회사의 이름을 새롭게 만듭니다.

 

1957년 시흥공장을 준공하여

철제파이프를 생산하며

자전거 또한 만들어 판매를 계속합니다.

 

1959년 일본의 마쓰다 공업과 기술제휴를 하여

1961100cc 짜리 오토바이를 만들어 내놓고

 

1962년에는 앞바퀴 하나에 뒷바퀴 둘 달린

화물차인 삼륜자동차 K-360을 내놓아

안 팔려 고전을 하게 됩니다.

 

1967년에는 K-360 보다 크기와 적재량을

넓인 큰 화물차 T-2000을 내놓아

오랜만에 고전을 회복하게 됩니다.

 

1970파티프자전거를 미국에 수출합니다.

197011월 소하리 23만평부지에

자동차 공장을 착공합니다.

 

19719월 일본의 동양공업()와 추가로

기술계약을 체결하고 4륜구동트럭

타이탄 TAITAN이라 부르는

 

 E-2000E-3800을 만들어 시판하며

상용자동차 업계에서 선두주자가 됩니다.

 

자동차에서 제일 중요한 게 엔진이지요.

1968년부터 자동차 가솔린엔진 개발을

시도하나 실패를 거듭합니다.

 

증권시장이 생겼어도

돈 구하기가 사채마저도

참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 누구 가 리어카노인과 같이 찾아간

고물상古物商은 영등포에서 제일 큰 곳으로

 

넓은 마당에 여러 가지 고물들을 많이

쌓아놓고 리어카 꾼도 여럿 있었습니다.

 

이 누구는 결심하며 리어카를 넘겨받습니다.

이 누구는 고물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돈을 벌어보자고 굳게 마음 다짐을 합니다.

 

다음날부터 부지런히 움직였지요

돈이 될 만 한 건 모두 끌어 모았어요.

 

힘이 좋아 무거운 물건들도 잘 들어 옮겨주며

상점마다 도우면서 고물을 가져오게 됩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모두 다 도와주면서 다니니

작은 상점이나 작은 공장 사람들과도

친히 지내게 되어

 

찾아가면 모두 반가워하며

준비한 고물들을 주는 것이었지요.

 

고물상古物商 사장님이 놀라는 겁니다.

매일 쉬지 않고 남들의 서너 배를 가져오는 데

돈이 될 만한 물건을 많이 가져오니까요.

 

고물 중에 돈이 되는 철 쪼가리가 많은 거지요

이 누구는 이때부터

쇳덩어리인 철에 대하여 알게 됩니다.

 

하루 수입도 막노동할 때보다 좋아졌습니다.

그렇게 쉬지 않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며

어언 일 년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더 많은 고물을 모을 수는 없을까

그러던 차에 기아산업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이 누구는 오전에 부지런히 두세 리어카를

고물상에 넘기고선 빈 리어카를 끌 으며

걸어서 기아산업을 찾아가게 됩니다.

 

영등포에서 시흥까지의 거리는 멀기도 합니다.

힘이 좋으니 남보다 빠르기도합니다

 

공장을 찾아가보자 큰 규모에 놀라며

공장 주변을 기웃거리다

돈이 되는 쇳소리를 듣게 됩니다.

 

역시 공장이 커야

고물이 많이 나온다는걸 알게 되고

 

철제품을 생산하니

고물도 철에 따른 게 많을 거라며

혼자 짐작하여 깨닫게 되지요

 

다음날에도 그 먼 곳을 다시 찾아갑니다.

공장주변을 돌며 가져갈 고물이 있나

 

살피는데 트럭 두 대가 철로 된 고물을

잔뜩 가득 실고 나오는 겁니다.

 

이 누구는 깜짝 놀랍니다.

저 트럭은 몇 리어카나 될까

저 무거운 걸 리어카에 싣고 갈수나 있을까

 

골똘히 생각하다

빈 리어카를 끌고 터덜터덜 돌아옵니다.

 

걸어오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지요 

돈으로 치면 얼마나 될까

 

내가 기아산업의 고물을 다 맡아서

가져 올수 있을까

그러려면 어떻게 하여야하나

 

이 누구는 모든 지혜를 짜내며

연구를 거듭 하게 되지요

 

그래 맞아.

씨앗을 심기 전에 땅을 고르고

거름을 주고 비를 맞게 하며 

그때 씨앗을 심으면 더 좋지

 

이 누구는 무릎을 탁치며

생각을 정리하고 결심을 합니다.

 

농사지을 때의 경험을 살리려 하는 거 같아요.

무슨 뜻인지

농사를 모르는 사람은 알 수가 없지요

 

다음날부터 오후 네 시만 되면

어김없이 기아산업 정문에 나타납니다.

 

저사람 왜 매일 오는 거야

뭐하는 사람이야

 

리어카를 끄는걸 봐 고물장산 가

리어카에 고물이 좀 있는 거 보니

고물 줍는 사람이구먼.

 

여보. 젊은 이. 이리 와 봐요

뭐 하러 여기 오는 거요

고물이 있을까 해서 유.

 

여기에 무슨 고물이 있겠어.

종이상자. 이거라도 가져가

 

공장에서 나오는 고물을

다 가져갈 순 없겠 시 유.

 

뭐라고 미쳤나

그건 아무나 못 가져가

 

그걸 다 가져가면 좋은 디

헛소리 하지 말고 어서 돌아나 가요

 

이런데 오는 게 아니야

자네 리어카로 가져갈게 하나도 없어

헛걸음만 쳐

 

쓸데없는 데 찾아오지 말고

딴 데 가서 열심히 끌어 모아 봐

어서가요

 

아저씨들 고마워 유.

내일 또 뵙겠시 유.

 

이렇게 매일처럼 찾아가 인사를 하고

돌아오며 이것저것 생각도 하고

또 연구도 합니다.

 

그렇게 쫓아다닌 지 일 년 가까이 되며

수위 아저씨들은

이 누구 가 안보이면 궁금하기도 합니다.

 

말벗도 아니지만 잠시 보고 싶어지는

구수한 사람으로 자리 잡게 되지요.

 

이 누구는 수위 아저씨들과

기아산업에 대하여 이야기 나누며

이것저것을 알게 되며 돌아갑니다.

 

 

이 누구 씨 이리 좀 와 봐요

또 기아산업에 갔다 왔어요.

예 에.

 

가지 말라니까 왜 자꾸 다녀요

쳐다볼 걸 바라봐야지

 

안될 걸. 왜 쳐다보고

왜 쓸데없이 왔다 갔다 해요

 

이 누구 씨가 수집하는 게 반으로 준지가

얼마나 됐는지 알아요. 몰라요

 

. 잘 압니다.

일 년이요. 일 년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곧 결정 납니다.

 

뭐가 결정 난다는 거요

곧 계약하게 된다니까 유

 

내 참. 뭘 보고 계약해주겠소

리어카 끌고 다니는 주제에 누가 인정하겠소.

 

정신 차려요. 정신

신경 쓰게 하지 말고

자꾸 이러려면 그만 둬요. 그만둬

 

마지막 경고합니다.

경고요

 

   그래도 남보다는 많이 수집하고 있는데

   내 할 만큼 하고 있잖아

   이 누구는 이런 맞대응을 하지 않습니다.

 

   점잔은 충청도 양반이잖아요

   될 때까지 참는 거지요

 

   이 누구는 더 열심히 쫒아 다닙니다.

   새벽에 일어나 점심때까지

   두세 리어카를 열심히 하고난 후

   네 시면 어김없이 기아산업을 찾아가지요

 

 

회장님 오셨습니까.

박 사장 물건 많이 싸놨네

, 내일 나갈 겁니다.

 

박 사장이 잘되니 보기 좋아

. 고맙습니다.

 

이젠 자리 잡혔지

그럼요. 벌써 십년인데요.

 

세월이 참 빨라. 벌써 십년이 지나다니

다 회장님 덕분이지요.

 

그 사람. 이 누구는 안보여

내 참. 그 사람 기아산업에 갔을 겁니다.

 

아직도 쫒아 다니나

기아산업에서 개근상 타려나 봐요

 

되지도 않을 걸 쫒아만 다니니

신경 쓰여 죽겠어요.

그만 두게 하려고 해요

 

괜찮은 사람 같던데

그래도 자기 몫은 하고 있잖소.

 

그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까지 물들까 봐서요.

 

이 누구 그 사람

기아산업에 누굴 안다고 하나

몇 사람 안다고 해요

 

왜 빨리 결정 못 짓고 그러지

글쎄요. 내일 내일하고 있어요.

 

다 되가나. 내일 내일하게

글쎄요. 모르겠어요.

 

잘 지켜봐요.

집념이 강하고 성실하게 꾸준한 사람은

일을 해낼 수 있다고 하지 않소.

 

필요할 때 연락해요

. 회장님. 안녕히 가십시오.

 

   이 누구의 결단력과 집념에

   성실함이 보태어져

 

   주변의 여러 사람에게서 인정을 받으며

   고물 사장과 회장의 도움으로

   기아산업에 들어갈 큰돈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매달 몇 번씩 고물을 싣고나오지요

   그리고 빈터를 마련하여

   고물을 쌓아놓고 팔게 됩니다.

 

 

총무부장. 이 누구 오늘 안 왔나

아마 곧 오실 겁니다.

나 좀 보자고 해요

 

동생 앉게나.

무슨 일이 있어 유.

 

자내 여유가 되나

왜 유.

 

소하리 23만평에 우리공장 짓는 거 알지

. 알고 있지 유.

 

우리공장 앞으로 시흥대로가 뚫려

아마 8차선이 될 거야

그렇게 넓은 도로가 뚫리나유.

 

시흥대로에서 우리공장 진입로가 생겨

그래유.

 

공장 진입로 입구 쪽에 땅을 좀 사놔 봐

뭐에 쓰지 유.

 

자네가 좋아하는 쇳덩어리 철

철재단지를 만들어 봐

 

철제단지가 뭐지 유.

파이프든 철판이든 함석이든 철봉이든

 

전국에서 찾아와 다 사가는

철제단지를 만들어봐

. 그래 유.

 

몇 평이나 사야 겠시유.

넓을수록 좋지

 

사업이란 남보다 앞서 생각하고

남보다 앞선 방법을 찾아내어

남보다 앞서 시작해 나가는 거야

 

그게 참.

사업이란 게 재밌는 거지. 허어 하하

 

열심히 해봐.

동생은 철제단지를 만들 수 있을 거야

 

    김철호 회장이 17살에 집을 나설 때

    들려주신 아버님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사귀는 사람을 너무 가리지 말며

    사귀는 사람을 의심하지 말며

    사귀는 사람을 비방하지 말아야한다

  

    두 분은 친형제 이상으로 가까이 지내며

    두 분이 서로 아끼는 마음은 남달랐습니다.

 

    이 누구는 삼만 여 평의 땅을 사드리고

    그 땅으로 시흥대로가 뚫리어

    철제단지의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1972년 국내최초로 자동차용 가솔린 엔진이

개발되어 11월에는 일본에 수출도 합니다.

 

19736월 소하리에는 연간 25,000대를

생산할 수 있는 우리나라 최초로

일관 공정시스템이 갖춰지는

종합 자동차 생산 공장을 준공하게 됩니다.

 

197410월 소하리에서

소형승용차 부리사 BRISA가 생산됩니다.

 

BRISA는 국산 가솔린엔진을 장착하고

부품의 국산화 비율이 90%이상으로

만들어져 국민차라 불리며

 

승용차 시장을 완전히 석권하게 되고 여유가

생기면서 연관된 회사들을 사들이게 됩니다.


1975년 기아산업은 처음으로

미국에 완성 자동차를 수출합니다.

 

19731122

기아산업의 큰 별이 떨어집니다.

             

소하리에 종합 자동차 일관공장을

준공하고 난후 6개월이 체안 되어

김철호 회장은 과로로 유명을 달리합니다.

 

김철호 회장은

우리나라 기계 산업의 선봉에 서있던

진정한 선구자로써

 

항상 해낼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실천해오며

시련과 역경을 주도적으로 해쳐나가는

진정한 기업가로 이름을 남깁니다.

 

이 누구 그 분은 인품이 좋아

사람들에게서 많은 존경을 받았으며

 

김철호 회장의 별세에

한동안 칩거하여 많은 생각을 하다가

 

고향인 충청남도 합덕에 내려가

집을 새로 짓고 넓은 터에

 

우리나라 희귀종稀貴種 나무를 많이 심고

가꾸며 관악농장에서 소일하게 되니

 

학생들이 소풍을 오는

고향의 명소가 되게 하고 떠나셨습니다.

 

철재단지는 땅은 확보하여 그림을 그렸으나

김철호 회장이 돌아가시자

의욕을 잃어 끝내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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