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이야기

훌륭한 친구

서 휴 2013. 9. 24. 21:10

훌륭한 친구

서 휴

 

 

뭐 좋은 일 있었어요.

오늘은 돌이 잘나가고 있네요.

어제 훌륭한 친구를 만났지요.

 

오랜만에 회포를 풀다보니 마음도 홀가분하고

깊은 잠을 많이 자서인가 봐요.

 

그래요. 바둑의 승부라는 것도

그 날의 마음과 기분이 좌우하지요.

 

자 아. 소주 한잔 받아요.

아니지요. 선배님이 먼저 받으셔야지요.

 

뭔 말씀을. 병권甁權을 내가 잡았는데.

아니. 병권兵權 이라니요.

 

이 병권甁權이 얼마나 큰 권한인데

함부로 가져가려고 해요.

아 하. 병권兵權을 함부로 달랄 수는 없지요

 

. 가득 받아요.

. 이제는 선배님이 받으셔야지요.

 

원래 토목과를 나와 건설 회사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벌써 20여 년이

훌쩍 지나간 거 같지요.

 

. 세월이 참 빨라요.

고생할 때는 모진시간이 왜 이리 안 가나

눈물도 꾀나 흘렸지요.

 

풍파가 좀 있었던 모양이지요.

좀이 뭡니까. 혹독하게 고생하였지요.

 

건설 회사를 어느 정도 다니다 보니

공사 현장에서 중장비 업자들이

일도 많고 돈도 잘 버는 것 같았지요.

 

집 사람과 의논하여 집도 잡히고 빚을 내어

제일 큰 1루베 짜리 포클레인을 3대 나 샀지요.

 

다니던 회사에서 봐 주기도하고

여기저기 다니며 한 삼년 참 열심히 하여

꿔온 빚은 거의 갚아지고

 

집 저당 만 해결하면 포클레인을 3대는 벌지요.

한 대당 일억이 넘을 때였지요.

그런데 IMF를 만났어요.

 

갑자기 일거리는 없고 수금은 안 되고

포클레인 3대가 하루아침에 놀게 되니

 

말도 안 되는 헐값에 처분하여도

은행 빚을 못 갚아 집이 날아갔지요.

참 암담하였습니다.

 

매일 바둑이나 두고 술이나 먹고 들어가니

집사람하고도 매일 싸우다시피 하였지요.

 

거의 삼년 여간 참 암담하였습니다.

IMF. 그때는 저마다 많은 풍파를 겪었지요.

 

선배님. 정치를 잘못하면 백성들만

고생 하게 된다는 옛말이 맞는 거 같아요.

 

IMF 때 암담하게 산 사람들이 많았지요.

자 아. 술 한 잔 더 들어요.

 

어느 날 한참 바둑을 두고 있는데

잘 만나지 않던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지요.

 

개업식을 하니 시간 있으면 들리라고요.

불러주는 사람도 없는 터에 찾아갔지요.

 

가보니 허름한 컨테이너에 달랑 책상 하나와

전화기 한 대와 허름한 냉장고 하나만 있었어요.

직원도 없고 부인하고 둘이서 근무한데요.

 

소위 비철금속 고물상이라고 하는데

전선電線 부스러기와 모르는 물건들과

쓰레기 같은 게 마당에 조금 쌓여있었지요

 

처음 보는 개업식 풍경이었어요.

고물상 개업식은 처음 보는 광경이니까요.

 

이야기가 점점 재밌어 지는 듯해요.

자 아. 한 잔 더 받아요.

 

병권兵權을 아니 병권甁權을 이리주세요.

선배님도 한잔 더 받으셔야지요.

 

개업식에 찾아오는 사람도 별로 없고

딱히 갈 곳도 없고 하여

따라 주는 술이나 마시고 있는데

 

해질 무렵이 되니 우리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한결같이 검정 잠바에 허름한 바지들이예요

 

김 사장 잘해봐.

예 예. 고맙습니다.

친구는 연신 굽실굽실 인사하는 것입니다.

 

바둑도 얼굴 봐서는 실력을 알 수 없듯이

고생에 찌든 것처럼 허름한 얼굴들이라

뭐하는 사람들인지 알 수가 없었지요.

 

분위기가 무르익자 술내기 하자며

자기들끼리 고스톱을 치는데 깜짝 놀랐어요.

 

이 호주머니 저 호주머니 마다

돈들이 가득가득 들어 있는 거 같았어요.

 

IMF. 이 어려운 시기에 무슨 돈들이 저리 많을까.

하 아. 이 어려운 시기에도

돈 버는 사람이 따로 있었구나.

 

그 사람들은 그 업계에서

경륜이 쌓인 고물상 사장님들이었습니다.

 

며칠 후 개업식을 한 그 곳에 찾아갔지요.

친구에게 이곳에서 근무하면 어떻겠느냐고요.

 

그 친구 의아하게 나를 보며

직원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봉급 안줘도 조의니 일을 좀 배우자고 하였지요.

 

야 아. 고물상 아무나 하냐.

나도 십여 년간 배워 겨우 차린 거야

 

나도 그렇게 할게.

너는 안 돼.

.

 

너는 대학도 나왔지. 머리도 좋지.

너는 사업도 해봐서 내 거래처 다 뺏어간다.

 

그 친구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중퇴하며 고생을 많이 하였지요.

 

착하고 부지런한 그 친구는 자기와는

차원이 다르다며 내 말은 인정도 않는 거였어요.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직업이나 사업별로 학벌도 있는 것이구나.

 

대학 나온 학벌이 걸림돌이 된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지요.

 

그러면 할 수 없지. 종종 놀러 올께

그래. 잘 가.

 

집에서 빈둥거리며 곰곰 생각 하여봐도

딱히 할 일도 없고 갈 곳도 없어

또 그 친구를 찾아갔지요.

 

마침 큰 차에서 실고 온 고물들을

다 내리고 큰 차를 돌려보내며.

 

야 아. 점심 먹었냐.

아 니.

 

들어가자.

부인 어디 갔냐.

으 응. 급한 일 있다며 다녀온데.

 

친구 부인이 놓고 간 도시락을 먹고 난 후

그 친구는 마당에 나가 부려 논 고물들을

종류 별로 모으며 정리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저도 쫒아나가 도우려 하였지요.

야 아. 장갑 껴야지. 저 안에 장갑 있어.

한 참을 정리하는데 종류도 참 많더군요.

 

플라스틱 병을 콩알처럼 쪼개 담은 부대들

알루미늄 쪼가리 묶음들. 스테인리스 쪼가리들

 

실같이 가느다란 통신선 뭉치들

구리선 銅線이나 구리봉銅封 쪼가리들

여러 가지 전깃줄들. 제법 많은 량이었습니다.

 

둘이서 그 많은 량을 다 정리하였지요.

한 참을 도와주고 왔지요

 

다음에 가니

친구 부인이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전번 날 고생하셨다 며요.

뭘 요. 친구는 어디 갔어요.

예 에. 금방 와요

 

마당에는 지난번에 정리한 물건들이

그대로 쌓여있었습니다.

 

무료하게 앉아있는데 빵 소리가 나더니

많이 실은 큰 트럭이 들어오며

친구가 나를 보더니 싱긋이 웃는 것입니다.

 

또 그 친구를 도와 한참을 정리하였지요.

씻자

으 응 그래. 알겠어.

 

수돗가에서 씻고 컨테이너에 들어오니 친구 부인이

간략한 반찬에 소주 한 병을 준비하여 놨더군요.

 

그 친구는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거의 내가 마셨지요.

 

그런 계기가 되어 자주 가게 되었지요.

그 친구는 없고 친구 부인이 보더니 반가워하며

 

잠간 다녀올 테니 전화 좀 받아주세요.

예 에. 다녀오세요.

 

말상대도 없는 컨테이너 박스에

좀 앉아있으니 친구가 왔습니다.

 

그 친구는 바둑도 못 두고

자기 일만 열심히 하는 친굽니다

 

어 이. 비철금속이 뭐냐

야 아. 비철도 몰라

글쎄. 저게 다 비철이야

비철금속은 쇠붙이가 아닌 걸 말한대요.

 

저 중에 돈 되는 건 구리선銅線 뿐이야.

그런데 저게 계산하기 참 힘든 단다.

 

싸고 있는 비닐은 돈이 안 되고 구리가 돈인데

사람들은 부피로 계산하려고 하는 거야.

 

구리가 얼마나 들어있는지 얼른 계산해서

구리가격을 쳐야지. 그게 참 어렵단다.

 

부피를 보고 구리가 얼마나 들어있는지

저 부피 중에 구리값이 얼마나 될까.

그 값을 측정해 사와야 돈을 번대요.

 

나는 그 말이 뇌리에 박혀 측정하는 방법이

무얼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그렇게 되어 점점 고물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어느 날 손가방에 바둑책 한권을 넣고 갔지요.

바둑책은 오가며 버스 안에서 보지요.

 

친구나 부인. 아무도 없는 사이에 쌓여있는 전깃줄을

굵기나 종류별로 30cm씩 잘라 가방에 넣었지요.

 

그렇게 여러 번 가져갔습니다.

무얼 하냐고요.

집에서 저울에다 달아보는 겁니다.

 

전체 무개가 얼만데 껍질(피복)은 얼마고

구리선銅線 무개는 얼마나 되는지

그 비율은 어떻게 되는지 달아보는 거지요.

 

당신. 매일 뭐하는 거야

으 응. 취직은 안하고 놀기만 하면 어떡해.

 

애들하고 어떻게 살 아아.

어 휴. 속상해 속상해 죽 겠 써 어.

나만 고생시키고. 어휴 우. 어휴.

 

고물상은 왜 드나들어. 가서 뭐하는 거야.

돈도 안 벌고. 뭐 하러 가는 거야.

집 사람 잔소리를 참 많이 들었지요.

 

이렇게 반복하여 저울질을 하니 전깃줄의 부피를

보고 동의 무개를 비슷하게 맞출 수가 있더군요.

 

많은 량은 어떻게 실습을 해보지.

한번은 싣고 온 전깃줄을 전부 내린 친구가

 

아무래도 비싸게 사온 것 같다.

1톤은 나와야할텐데.

잘 못 사온 것 같아.

 

아니야. 1톤은 조금 넘겠다.

네가 뭘 알아.

 

그래서 재미삼아 저울로 달아본 이야기를 했지요.

그래. 그러면 한번 달아보자.

 

친구와 둘이서 땀을 흘리며 전깃줄 피복을 벗기고

열심히 달아보니 다행히 1톤이 조금 넘었습니다.

친구는 흡족해 하였지요.

 

야 아. 너 고물상 하려고 하냐.

아아 냐. 심심해서 해본거야. 돈도 없잖아

그 후부터는 고물을 사러갈 때 데리고 가더군요.

 

따라다니다 보니.

사들이는 방법이나. 가격치는 방법이나.

거래처 사람들을 좀 알게 되었지요.

 

간혹 용돈도 친구가 챙겨주었습니다.

그렇다고 매일 출근하는 건 아니지요.

친구 사무실에 취직한 게 아니니까요.

 

이럭저럭 1년이 되어 가더군요.

집사람 잔소리에도 이력이 붙고

고물상에 대한 자신감이 붙는 겁니다.

 

결심을 하고 집사람과 의논하였지요.

돈 좀 구해달라고요.

 

무슨 소릴 하고 있어.

다 망했는데. 어디서 어떻게 돈을 구해.

 

어머님에게도 부탁하였지요.

대학 나온 놈이 할 게 없어 고물상 하냐며

역정을 내시었지요.

 

매일 사정하니 아버님과 장인께서 도와주시어

어렵게 600만 원을 빌릴 수가 있었지요.

 

그동안 알아둔 수집상을 찾아다녔지요.

한 달 가까이 쫒아 다녔으나 아무도

저에겐 고물을 주지 않겠다는 겁니다.

 

오래토록 사가는 거래처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가 없다는 거지요.

 

오래 거래한 의리도 있고

더구나 저에 대한 믿음이 없는 거지요

 

큰일이 났습니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돈을 써보지도 못하고

한 달 이자를 물어야 되게 생겼어요.

 

집 사람도 걱정하지. 어머님도 물어보시지.

잠이 안 오더군요.

 

하루는 결심을 단단히 하고 물건을 많이

가지고 있는 나이 드신 분을 찾아갔지요.

 

또 왔소. 안된다고 하였잖소.

사장님 제 이야기 좀 들어보세요.

 

무릎을 꿇다 십이하며

딱한 사정이야기를 다 하였지요.

 

제 얼굴을 한참 쳐다보시던 사장님이

한숨을 푹 쉬며 하루 말미를 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처음으로 많은 물건을 사서

되파니 꼭 배가 남더군요.

그 사장님이 싸게 준 거지요

 

며칠간 잠이 안 오더군요.

몇 년 만에 돈을 만져보니 잠이 안 오지요.

집사람이 제일 좋아하고요.

 

며칠 후. 친구한테서 술이나 하자며 전화가 왔지요.

나는 가슴이 덜컹하는 거예요.

친구한테는 한마디도 안하고 벌린 일이니까요.

 

선술집에서 한잔씩 마시다가.

. 너 요즘 뭐하냐.

그저. 그래

 

장사 재미 좀 봤냐. 어때

. 어떻게 알았냐.

 

소문이란 게 발이 달려 있잖아.

미안하다.

손해는 안본 모양이구나. 다행이다

 

조금 있으니 물건을 주신 사장님이

빙그레 웃으며 들어오십니다.

저는 벌떡 일어났지요.

 

괜찮아요. 그냥 앉아 있어요.

내가 김 사장 부탁을 받고 물건을 준 것이요.

 

친구도 빙긋이 웃으며

이 업계에서는 처음 물건 사기가 참 어려워.

나하고 의논할 줄 알고 기다리다 부탁을 드렸지.

 

저는 처음으로 진한 눈물을 흘렸어요.

이렇게 훌륭한 친구가 내 곁에 있었다니

저는 펑펑 눈물을 쏟았습니다.

 

간혹 만나나요.

필요할 때 함께하는 따뜻한 동업자지요.

IMF. 긴 터널을 빠져 나오게 한 친구입니다.

 

어제 그 친구를 만난 모양이지요.

오랜만에 가슴 뿌듯한 이야기를 듣네요.

 

. 이제 병권甁權을 이리 줘요

자 아. 한잔 더 받아야지요.

 

아 아니 지요. 선배님이 먼저 받으시면

병권을 드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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