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거도의 선녀봉
서 길 수
선녀 봉에선 옷을 벗지 마세요
가거도에 도착하면 먼저 회룡산에 오르게 됩니다
회룡산에는 선녀봉이 있습니다
선녀봉 가는 길목에는
자주빛 빠알간 천선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무도 풀도 없는 바위 봉우리에
여러개의 샘이 있습니다
선녀샘 입니다
선녀가 목욕하며
작은 입술로 천선과를 깨물던 샘이랍니다
그 샘은 언제나 고여 흐르며
새로운 선녀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답니다
선녀 봉에 올라가 샘물에 손을 담가
천선과를 먹으며
홍도 흑산도 진도 맹골군도 나르도 거문도
남해안 여러 곳의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을 따라가며
비잉둘러 추자도 지나 제주도까지
해가 지는 낙조를 바라보다가
넋을 잃기 쉽습니다
아름답지요
바라보다 해가지면
내려오는 길을 못 찾아 헤메기도한답니다
어두운 밤 갑작스런 산새들에 놀라고
산모기가 얼굴을 할퀴려하며
몸에는 바닷거머리가 붙지요
그러나 효능이 좋은 천선과 덕에
밝아진 눈이 길을 찾으며
선녀들처럼 오랫토록 살수있다합니다
선녀봉
여자분이 앉아 있으면 선녀가 되어
먼 곳의 섬들과 먼 바다를 보며
건너편 선녀들과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지요
그 빼어난 경치에 반하여
나도 모르는 이야길 나누다
해지는 낙조를 바라보면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아름답지요
선녀봉은
선녀처럼
마음이 아름다운 여자 분이 오르셔야 한답니다
오르실 때에는 천선과를 따먹지 마세요
그 향기가 피어오르며 샘가에서 옷을 벗게 되지요
옷을 벗지마세요
나무꾼이 몰래와 훔쳐가기도 한답니다
같이온 남자분이 있으시면 괜찮겠지요
그러나 그분이
혹여 나무꾼이 아닌지 살펴보세요
옷만 훔쳐가는게 아니라
그곳에선 마음까지도 훔쳐 간데요
가거도에 사시는 선녀분들은
다 그렇게 눌러 살게 되었다 하는군요
그래서인지
선녀봉에 다녀간 여자분들은
나뭇꾼의 굳은 맹세에 홀려
반드시 사랑이 이루어진다합니다
나무꾼이 작은 도둑이 아닌 모양이에요
남의 인생을 송두리체 훔쳐갔으니 말이 예요
큰 도둑이지요
그래도 아이들 잘났고 아름답게 산답니다
모두다 선녀님의 참넓고 아름다운 아량이겠지요
앞으로 가거도에 가시는 선녀분들은
이 남정네가 나무꾼인지 괜찮은 나무꾼인지
잘 살피셔야 한답니다
판단이 안서시면 선녀봉에 다녀와
가거도 선녀분께 의논하시면 용하게 알아맞힌답니다
선녀분들 끼리는 통하는 게 있는 모양 이예요
아무래도 경험 있는 선녀분이 계시니까요
다녀오신 선녀분 이야기입니다
어기야디여 아하 어기야
어기야디여 아하 어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