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00 화. 진과 진, 하곡에서 싸우는가.
초목왕(楚穆王)은 제후들에게 다음 날 아침 동틀 무렵까지 말들을
모두 병거에 매달게 하고, 각 수레에는 각기 부싯돌과 마른 풀을
싣고, 불을 붙여 사용하게 될 때를 대비하라고 영(令)을 내렸다.
이윽고 사냥할 날이 밝아오자, 네 나라의 군사들은
서로 대열을 지으며 모두 사냥터를 에워싸고
초목왕(楚穆王)의 어가(御駕)를 기다렸다.
잠시 후에 초목왕(楚穆王)이 사냥터의 우측에서
어가(御駕)를 타고 초군과 함께 질풍같이 내달려 왔다.
그때 마침 한 떼의 여우들이 초목왕(楚穆王)의 시야에
나타나자 모두 여우의 뒤를 쫓아갔다. 그러나 여우들은
약삭빠르게 도망가다가 깊은 굴속으로 숨어 버렸다.
이때 초목왕은 송소공을 쳐다보며 부싯돌과 마른 풀을 꺼내 연기를
피우라고 했다. 그때 송소공의 어자(御者)는 깜박하고 부싯돌을
챙기지 못하여 연기를 피울 수 없게 되었다.
대왕이시여, 사마(司馬) 신무외(申无畏) 이옵니다.
송소공(宋昭公)이 영을 위반한 죄를 처벌치 않으면,
패자(覇者)의 영(令)을 세울 수 없게 되나이다.
청컨대 송공(宋公)의 어자(御者)를 붙잡아
죄를 다스리도록 허락해 주시기 바라나이다!
초(楚)의 사마(司馬) 신무외(申无畏)는 송소공(宋昭公)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송소공(宋昭公)의 어자(御者)를 붙잡아 큰 소리로
꾸짖고, 곤장 300대를 치며 제후들에게 경계심을 갖게 했다.
이에 송소공(宋昭公)은 마음속으로 깊은 모욕(侮辱)을 느꼈다.
이때가 주경왕(周頃王) 2년이며 기원전 617년의 일이었다.
그 당시 초(楚)의 세력은 중원(中原) 제후국(諸侯國) 들보다
월등하게 강해졌으므로 마음대로 전횡하고 있을 때였다.
초목왕(楚穆王)은 투월초(鬪越椒)를 제(齊)와 노(魯)에
사신으로 보내, 중원의 패자(霸者)로 받들어주길 바랬다.
그때 진(晉) 나라는 초(楚) 나라를 제어할 만한 힘이 없었다. 예전에
조돈(趙盾)은 진(秦)에 있는 공자 옹(雍)을 옹립하겠다고 청해놓고,
옹(雍)을 모시고 온 진군(秦軍)을 한밤중에 기습하여 쫓아 보낸 지도
벌써 5년이 지나가 진영공(晉靈公) 6년이 되었을 때였다.
조돈(趙盾)을 비롯한 진(晉) 나라 대부들은
그때의 영호(令狐) 전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나 진(秦) 나라 사람들은 그때의 배신감과
분노를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었다.
그 해는 진강공(秦康公)도 군위에 오른 지 6년째였으며, 그 5년간
미리 중원의 여러 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으며 우호를 다져놓았다.
진군(秦軍)의 백리시(百里視), 서걸술(西乞術), 건병(蹇丙),
등 장수들은 그동안 손실된 치중(輜重)과 군마를 보충하고
병거도 수리하여 언제든지 출진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주경왕(周頃王) 4년인 기원전 615년이 되자, 모든 출정 준비를 점검한
진강공(秦康公)은 군신들을 모두 불러 조당(朝堂)에 모이게 했다.
과인이 영호(令狐) 땅에서 진군(晉軍)에게 당한
원한(怨恨)을 품은 지 어느덧 5년이나 지나가고 말았소!
지금 조돈(趙盾)은 대신들을 도륙(屠戮) 하느라,
국방의 일에는 아직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소?
진(陳), 채(蔡), 정(鄭), 송(宋), 네 나라가 다시
마음을 바꾸어 초(秦) 나라를 받들게 되었음에도
진(晉) 나라는 이를 막지도 못하고 있소!
이는 진(晉)의 국세가 약해졌음을 알 수 있음이라!
이럴 때 우리가 진(晉) 나라를 정벌하지 않는다면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오겠소?
주공, 우리 신료들은 주공의 뜻에 따르겠나이다.
원하옵건대 목숨이 다하도록 힘을 다하여
주공의 원한(怨恨)을 풀 수 있도록 하겠나이다!
진강공은 나라 안의 병거를 대대적으로 징발하여 직접 사열한 다음에
백리시(百里視)에게 도성을 지키게 하고, 서걸술(西乞術)을 대장으로,
건병(蹇丙)을 부장으로 삼고, 사회(士會)를 군사마로 임명했다.
진군(秦軍)은 병거 500승으로 하수(河水)를 건너갔으며
진(晉)의 하동(河東)을 지나자, 그 기세를 몰아붙이며
기마성(羈馬城)을 함락시키고 그곳에 주둔했다.
그때 진(晉) 나라는 진군(秦軍)이 갑자기 침공했다는 급보를 받게
되자, 몹시 당황하였으며, 더구나 선멸(先篾)과 사화(士會)가
진(秦) 나라로 망명해 가버린바. 진군(晉軍)의 수뇌부 자리가
많이 비어있어, 군부를 급하게 재편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돈(趙盾) 자신은 중군 원수가 되고,
상군 원수 순림보(荀林父)를 중군의 부수로 옮겨
죽은 선극(先克)을 대신하게 하였다.
시미명(提弭明)을 발탁하여 극결(郤缺)이 맡고 있던 차우 장군으로
삼고, 극결(郤缺)은 처형된 기정보(箕鄭父)를 대신하여 상군 원수로
삼아 재편성을 완료하고는 쳐들어오는 진군(秦軍)을 막으려 했다.
그때 진영공과 매제지간이며 총애를 받고 있던 조천(趙穿)이 있었다.
조돈(趙盾) 형님, 종제(從弟) 조천(趙穿) 입니다.
이 동생은 전쟁터에 나가 공을 세워보는 것이 소원입니다.
형님, 이 동생은 상군 부수가 되고 싶습니다!
너는 용기는 조금 있다고 하나 아직 어린 나이다.
더 경험과 수련을 쌓은 후에 다시 오도록 하라!
조천(趙穿)은 자청하여 상군 부수를 원했으나, 조돈(趙盾)은 쉽게
허락하지 않고, 이어서 유병(臾騈)을 상군 부수로 임명하고 말았다.
다시 란지(欒枝)로 하여금 하군 원수로 삼아
선멸(先篾)을 대신토록 하고,
서신(胥臣)의 아들 서갑(胥甲)을 부수로 삼아
처형된 선도(先都)를 대신토록 했다.
이로써 3군 원수(元帥)와 부수(副帥)의 자리를 확정시켰다. 이때 이를
알게 된 조천(趙穿)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조돈(趙盾)을 찾아갔다.
형님, 6장(六將)은 아깝게 이미 정해졌다 하오니
그렇다면 저에게 편장(編將) 이라도 시켜주십시오.
이번에 꼭 나가 반드시 공을 세워보고 싶습니다!
편장(編將)은 편대장(編隊長)에 해당하며, 병거 100스을 지휘하는
직위이므로, 조돈(趙盾)은 그것마저 거절할 수 없어, 조천(趙穿)을
하군의 편장(編將)에 임명했다.
이제 남은 자리는 유병(臾騈)이 맡고 있던
군사마(軍司馬) 직에 누구를 임명해야 하는 문제였다.
한자여(韓子輿)의 아들에 한궐(韓厥)이 있었다.
한궐(韓厥)은 어렸을 때부터 사람됨이 어질고 재주가
있어, 조돈(趙盾)의 집에 자주 드나들며 인정을 받았다.
한궐(韓厥)은 장성하여서도 조돈(趙盾) 집의 문객이 되었는바, 그의
인품을 잘 아는 조돈(趙盾)은 진영공에게 천거하여 사마(司馬) 직에
임명했다. 이로써 진군(晉軍)의 편제는 모두 완성되었다.
중군 원수는 조돈(趙盾), 부수(副帥)에 순림보(荀林父),
차우장군(車右將軍)에 시미명(提弭明)
군사마(軍司馬)는 한궐(韓厥).
상군 원수는 극결(郤缺), 부수(副帥)에 유병(臾騈),
하군 원수에 난돈(欒盾), 부수(副帥)에 서갑(胥甲),
하군(下軍) 편장(編長)에 조천(趙穿)
진군(晉軍)의 삼군은 새롭게 조직된 바이므로, 군기가 매우 엄숙했다.
그러나 강성(絳城)을 빠져나와 십여 리도 못 갔을 때, 갑자기
병거를 타고 행렬 속으로 돌진해 오는 자가 있었다.
저자가 누구길래 행군의 진용(陣容)을 흩트리느냐?
저자를 빨리 잡아 오도록 하라!
사마(司馬) 한궐(韓厥) 임, 저는
조돈(趙盾) 원수님의 수레를 모는 어자(御者) 입니다!
무슨 일로 행렬을 흩트리고 달려가느냐?
원수님의 찻잔을 빠트려 급히 가지고 오는 중입니다.
행군의 진용(陣容)은 정해진 순서대로 가고 있는데
어찌 병거를 타고 행군 속을 내달릴 수 있단 말이냐?
저놈은 군법을 어겼다. 끌고 나가 참수시켜라!
저는 원수님을 위해 급히 가는 중입니다.
나는 사마(司馬)의 직을 맡고 있을 뿐이다.
누구든지 간에 오직 군법만을 지키게 할 뿐이다!
한궐(韓厥)은 주저 없이 어자(御者)를 참수시키고, 그의 병거를 부숴
버렸다. 이에 장수들이 흥분하여 조돈(趙盾)에게 달려가 말했다.
원수께서 천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궐(韓厥)은
원수의 어자(御者)를 참수시키고 병거도 부숴버렸습니다.
저자는 은혜를 저버리는 자이니, 반드시
사마(司馬) 직을 빼앗아 버리고 쫓아내야 합니다!
알겠소. 한궐(韓厥)을 불러오도록 하라!
조돈(趙盾)이 즉시 사람을 보내 부르니, 한궐(韓厥)은 분명히 죄를
물을 것으로 생각하고 원수의 장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는 이미
장수들이 모두 모여있었으며, 다 같이 한궐(韓厥)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때 조돈(趙盾)은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 밑으로 내려와 예를 취하고
한궐(韓厥)에게 다가가 큰 소리로 말했다.
군주를 모시는 자는 무리를 짓지 않는다고 하였소!
그대는 군법을 집행하기를 이처럼 엄하게 하니
내가 천거한 뜻을 저버리지 않았소이다!
앞으로 더욱 기강이 서도록 힘써 주기 바라오!
이에 한궐(韓厥)이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원수의 장막에서 나가자,
의외라고 생각하는 장수들에게 조돈(趙盾)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은 한궐(韓厥)의 기품(氣品)을 보았소?
두고 보시 오! 장래에 우리 진(晉) 나라의 국사는
한궐(韓厥)이 책임지게 될 것 같소이다!
또한, 한씨(韓氏) 문중도 그로 인해 번창할 것이오!
장수들은 조돈(趙盾)의 말에 숙연해졌으며, 진군(晉軍)의 행군은
계속되어 하곡(河曲) 땅에 당도하자 군별로 진채(陣寨)를 세웠다.
원수님, 상군(上軍) 부수(副帥) 유병(臾騈) 입니다.
진군(秦軍)은 그 정기(精氣)를 5년간 축적하였으므로
그 예봉(銳鋒)을 꺾기가 매우 어렵다고 봅니다.
청컨대 도랑을 깊이 파 놓고 보루를 높이 쌓아
단지 지키기만 할 것이며 절대 나가 싸워선 안 됩니다.
저들은 멀리 온바, 군량미 등의 보급이 원활치 않아
오랫동안 우리와 대치(對峙)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시일이 지나면 틀림없이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며
반드시 군사를 돌려 되돌아가고 말 것입니다.
진군(秦軍)이 후퇴할 때를 기다려 뒤를 추격한다면
그때는 반드시 진군(秦軍)을 이길 수 있습니다.
제 401 화. 분탕질하는 자는 항상 있는가.
'춘추 열국지( 301∼400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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