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 열국지( 301∼400회)

제 399 화. 초목왕, 회맹의 맹주가 되는가.

서 휴 2023. 12. 20. 21:27

 399 .  초목왕회맹의 맹주가 되는가.

 

() 나라의 정목공(鄭穆公)이 ()에 항복하자초목왕(楚穆王)

양광(兩廣)정예병을 이끌고 초(나라로 돌아갔다.

 

       그러나 진(나라로 쳐들어간식공자(息公子()

       싸움에서 패하고부장인 공자 패()마저 생포되어

       (나라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식공자(息公子()는 전황을 하소연하고자  초목왕(楚穆王)

배알(拜謁하러 낭연(狼淵)으로 갔다가초군(楚軍)이 회군하는

바람에 그 뒤를 따라가 만나게 되었다.

 

       어찌 작은 나라에 그리 처참하게 진단 말인가

       대왕이시여죽을죄를 지었나이다

 

       싸움에 진 장수는 죽음이 있을 뿐이다.

       짐이 진()에 쳐들어가겠으니 반드시 공을 세우라

       지금부터 진(나라를 정벌하러 가자

 

초목왕(楚穆王)이 대로하여 직접 양광(兩廣군을 이끌고 진(

나라를 정벌하고자 준비에 들어갔다.

 

       대왕이시여(나라에서 사자가 왔나이다.

       어서 (나라 사자를 들여보내라

 

       대왕이시여강녕하셨나이까

       저희 진()나라는 항복을 청하오며초군의 포로를

       모두 돌려보내고, 여기 국서를 바치나이다.

 

       으음어서 국서를 읽어보라

       진공공(陳共公()이 초왕께 국서를 보내나이다.

 

       과인 삭()이 다스리는 진(나라는 그 땅이

       한쪽 변방에 치우친 아주 조그만 나라가 되어

       아직 군왕의 좌우에 시립하여 모시지 못했나이다.

 

       대왕께서 한 떼의 군마를 보내시어 우리 진()

       훈계하시려고 하는데국경을 지키는 어리석은 자가

       상국의 공자를 욕보여 죄를 얻게 되었나이다.

 

       이 삭()은 황송하여 밤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한 사람의 사자를 보내는 것이오며상국의 거마를

       하나도 빠짐없이 돌려보내 드리고자 하옵니다.

 

       , ()은 원하옵건대 상국의 그늘에 남아 보호받고자

       하오니대왕께서 저희의 항복을 받아 주시옵소서.

 

       허허허우리가 죄를 묻기 위해 토벌군을 보내지 않을까

       매우 두려워하여 국서를 보내 항복을 구하고 있는구나

 

       허허(나라 군주 진공공(陳共公()

       가히 세상 돌아가는 형세를 아는 자라 하겠도다

 

초목왕은 흔쾌하게 진(나라의 항복을 받아들이고, 격문을 써서

()과 진(두 나라의 군주에게 전달하게 하고채후(蔡侯)

함께 그해 겨울 10월 초하루에 궐맥(厥貉땅에 모이라고 하였다.

 

       궐맥(厥貉)은 지금의 하남성 항성시(項城市)

       남쪽의 말릉진(秣陵鎭부근이다.

한편 진()의 원수 조돈(趙盾)은 정(나라가 사태의 위급함을

급하게 알려오자그는 즉시 진영공(晉靈公)에게 고하였다.

 

       주공(나라가 정(나라를 침공하고 있는바

       우리 진군(晉軍)은 정(나라를 구해야 합니다.

 

       주공(나라를 지켜줘야만, 선군의 유지를 받들어

       주공께서 패공(霸公)의 지위를 이어나갈 수 있사옵니다.

 

       주공그러하오나 우리 진(나라는 선군이신

       진양공(晉襄公때 삼군(三軍이행(二行)

       편제에서 이행(二行)을 폐하였던 바라,

 

       우리 진군(晉軍혼자로는 초군(楚軍)을 상대하기에

       우리 군사의 수가 너무나 부족하옵니다.

 

       주공(), (), (), (네 나라에 사자를

       보내 연합군을 결성하여 정(나라를 돕겠나이다.

 

조돈(趙盾) 4개국 연합군을 결성하게 되자(나라를 구하기

위해 진군(晉軍) 연합군을 독려하며, 열심히 행군을 시작했다.

 

       그들이 미처 정(나라의 경계에 당도하기 전에

       (나라가 이미 초(나라에 항복하였으므로,

       초군(楚軍)은 이미 본국으로 돌아갔으며, 뒤이어

       진(나라도 초()에 항복한 걸 알게 되었다.

 

그때 연합군으로 가담한 송군(宋軍)의 대부 화우(華耦)와 노()의

대부 공자 수()는 조돈(趙盾)에게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조돈(趙盾원수님()과 진()이 초군(楚軍)의 힘에

       눌려 항복한 것이오니()과 진()을 구해내면서

       초군(楚軍)을 몰아내야 만이 중원(中原)이 조용해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과 진() 버릇을 고쳐 놔야,

       앞으로 중원(中原나라들이 초()에 굴복하지 않게 됩니다.

 

       그렇긴 하나우리 구원군이 빨리 달려오지 못해

       결국은 두 나라가 초(나라에 항복한 것이므로

       그들에게는 죄가 있다고 할 수 없소이다.

 

       지금 초군(楚軍)도 회군하여 영성(郢城)으로 돌아갔으므로

       어찌 우리가 초(나라를 정벌할 수 있겠습니까?

       귀국하여 다음 기회를 기다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조돈(趙盾)은 즉시 연합군의 군사들을 모두 자기 나라로 돌아가게

독려하고는 자기도 진군(晉軍)을 이끌고 강성(絳城)으로 돌아갔다.

 

그해 겨울 10월 초하루가 되기 전이었다. ()의 진공공(陳共公)

()과 정()의 정목공(鄭穆公()이 동시에 (땅에까지

나와서 초목왕(楚穆王)의 어가(御駕)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후(陳侯)와 정백(鄭伯), 두 분 반갑소이다.

       궐맥(厥貉땅에서 회맹 하기로 약속했는데

       어찌하여 이곳 (땅에까지 왕림하시었소

 

       대왕과 약속한 날짜를 어기지나 않을까 염려되어

       대왕을 기다렸다가 궐맥(厥貉)까지 수행하려 합니다.

       하하두 분에게 고맙게 생각합니다.

       대왕채장공(蔡庄公갑오(甲午)께선 이미

       궐맥(厥貉)에서 대왕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수레에 다시 오른 초목왕(楚穆王)은 정()과 진(두 나라의

군주와 함께 나는 듯이 궐맥(厥貉땅으로 달려갔다.

 

       그때 궐맥(厥貉)에서 기다리고 있던 채장공(蔡庄公)

       초목왕(楚穆王)에게 신하의 예로서 영접하며

 

       두 번  절을 올리며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마치 제후가

       천자를 배알(拜謁하며 행하는 의례(儀禮)와 같았다.

이러한 채장공(蔡庄公)의 행동에 진후(陳侯)와 정백(鄭伯)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둘이서 소곤거리고 난 후에 의견을 모아 말했다.

 

       채후(蔡侯)가 이렇듯 굽실거리며 예를 다하는바

       초왕(楚王)께선 우리의 태만(怠慢)을 용서하시옵소서.

 

       대왕께서 어가(御駕)를 이곳까지 몰고 오셨는데,

       가까운 송후(宋侯)가 아직 참배하러 오지 않으니

       대왕께선 마땅히 송()의 죄를 물으시옵소서

       허허두 분은 이미 짐작을 하고 있었군요.

       짐이 이곳에 초군(楚軍)을 주둔시키는 것은

       바로 송(나라를 정벌하려는 것이오

이때 한 대부가 송(나라에 이 소식을 아무도 몰래 긴급히 전했다

그때 () 나라는 송성공(宋成公왕신(王臣)은 이미 죽었으므로,

그 아들 송소공(宋昭公저구(杵臼)가 즉위하여 3년이 지난 때였다.

 

       송소공(宋昭公)의 사람 됨됨이는 소인배들을 쉽게

       믿고서 임용하며공족(公族들은 배척하고 멀리했다.

 

       이처럼 송소공(宋昭公)이 국사를 제대로 돌보지 않자,

       송목공(宋穆公)과 송양공(宋襄公)의 후손들이 이에

       불만을 품고 작당(作黨하여 난()을 일으켰다.

 

       이들이 사마(司馬공자 앙()을 살해하자이에

       사공(司空탕의제(蕩意諸)는 노(나라로 도망갔다.

 

이처럼 내란이 일어나자, 사구(司寇화어사(華御事)앞장서서

내란을 조정하여 겨우 안정시켜냈다.

 

사구(司寇) 화어사(華御事)는 노()에 망명한 탕의제(蕩意諸)

불러들여, 사공(司空)에 복직시키자고 송소공(宋昭公)에게 청했다.

 

       송소공(宋昭公)이 이를 허락하여 탕의제(蕩意諸)

       귀국시키자(나라는 다소나마 안정을 찾았다.

 

그때 송(나라의 군주와 신하들은 초목왕(楚穆王)이 궐맥(厥貉

땅에 진후(陳侯)와 정백(鄭伯) 채후(蔡侯)를 모이게 해 놓고

()을 정벌하려고 기회를 엿본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주공사구(司寇화어사(華御事이옵니다.

       신이 듣기에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지 않으면

       그 나라는 결국 망하게 된다고 하였나이다.

 

       지금 초목왕(楚穆王)이 진()과 정() 

       복종시키고우리 송(나라마저 복종시키려

       궐맥(厥貉)에 초군(楚軍)을 주둔시켰다 합니다.

 

       주공께서 먼저 궐맥(厥貉)에 납시어 초왕을 영접하소서.

       만약 초()의 눈치를 보다가 초목왕(楚穆王)이 정벌을

       결심한 후에 화의를 청한다면 그때는 이미 늦나이다.

 

송소공(宋昭公)이 사구(司寇화어사(華御事)의 진언을 받아들여,

즉시 궐맥(厥貉)으로 찾아가서 초목왕(楚穆王)을 배알하였다.

 

       대왕이시여맹제(孟諸)의 소택지는 아름다운

       사냥터이오니 사냥대회를 여시면 어떠실는지요?

 

       허허, 송공(宋公)은 좋은 제안을 하시었소

       진후(陳侯), 정백(鄭伯), 채후(蔡侯)와 함께 갑시다.

 

맹제(孟諸) (나라 수양성(睢陽城) 북동 쪽으로 30

지점이며단수(丹水)가 흐르는 강기슭이면서 소택지(沼澤地)였다.

지금의 하남성 상구시(商丘市북쪽인 곳이다.

 

초목왕(楚穆王)은 송소공(宋昭公)이 스스로 굴복(屈服)하여 왔으며

또한, 사냥을 가자고 제안하자이에 매우 기뻐하였다.

 

       진후(陳侯)는 전대(前隊)를 맡아 길을 열기로 하고

       송공(宋公)과 정백(鄭伯)은 좌우측을 맡을 것이며

       채후(蔡侯)는 후대를 맡아 초목왕(楚穆王)을 모시기로 했다.

 

 400 진과 진하곡에서 싸우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