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 열국지( 301∼400회)

제 372 화. 새 인물과 함께 새 시대를 여는가.

서 휴 2023. 11. 29. 17:43

 372 . 새 인물과 함께 새시대를 여는가.

 

내관은 재삼 사양하는 극결(郤缺)에게 진문공(晉文公)의 명을

적극적으로 권하게 되면서간신히 어가에 태워 입궁하게 되었다.

 

       극결은 머리에 비녀를 꽂고 관을 썼으며,

       잘 다린 도포를 단정하게 차려입고는

       조당에 들어가 진문공을 알현하게 되었다.

 

극결(郤缺)은 신장이 아홉 척에 달하고, 콧날은 우뚝 솟았으며

턱은 넓고, 목소리는 마치 큰 종소리가 울리는 것처럼 우렁찼다.

 

진문공(晉文公)은 극결(郤缺)을 보자마자, 첫눈에 그 인품(人品)

알아보고는몹시 마음에 들어 하며 기쁘게 맞이했다.

 

       그러나 극결(郤缺)의 능력은 아직 모르는바

       하군 대장 서신(胥臣)을 돕도록 하군 부장을 삼았다.

 

진문공은 재위 8년 차인 기원전 629년에당시의 진군의 군제였던

삼행(三行)을 신이군(新二軍)으로 개편하여 모두 5군으로 만들었다.

이에 군별 주장과 부장을 아래와 같이 임명하게 된다.

 

       군별(軍別) 주장(主將) 부장(副將)
 삼군(三軍) 중군(中軍) 선진(先軫) 극진(郤溱)
상군(上軍) 란지(欒枝) 선멸(先蔑)
하군(下軍) 서신(胥臣) 극결(郤缺)
   신이군
 (新二軍)
신상군(新上軍) 조쇠(趙衰) 기정(箕鄭)
신하군(新下軍) 서영(胥嬰) 선도(先都)

 

       신상군의 원수를 대사마 조쇠(趙衰)로 삼았으며

       그 밑의 부장으로 기정(箕鄭)을 세웠다.

 

       신하군의 대장에는 서신(胥臣)의 아들인

       서앵(胥嬰) 삼고, 부장에는 선도(先都)를 임명했다.

 

()나라는 기존의 3군에 새로운 2군을 더하여 모두 5군을 두게

되면서천자국에 버금가는 군 편제를 갖추게 되었다.

 

       이때 나라 안의 많은 호걸을 불러들이며,

       기정(箕鄭), 선도(先都) 등을 뽑아 장수로

       삼는 등으로, 군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으며

       군기도 빈틈이 생기지 않도록 훈련을 거듭했다.

 

       진(나라는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초강대국의

       면모를 갖추게 되면서이 소문은 금방 퍼져나갔다.

 

천하의 무법자로 행세하던 초성왕(楚成王)도 진군(晉軍)의 소문을

듣게 되자마자, 이에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으므로, 곧바로 장수

투장(鬪章)사자로 보내면서 수호를 맺자고 청했다.

 

       진문공은 옛날 초성왕이 베풀어준 은혜에 감사하며

       대부 양처보(陽處父)를 답례 사절로 보낸다.

 

()과 초()는 오랜만에 우호 관계를 맺게 됨으로써, 진문공

마지막 백업(伯業)이 달성되는 것이며이는 곧 그의 생애에서

패공(覇公)이 완성되는 순간으로 봐도 될 것 같다.

 

       다음 해에 정문공(鄭文公)이 재위 45만에 죽었다.

       그때가 주양왕 25년이며 기원전 628년의 일이다.

 

이때 정(나라 군신들은 모두 합심하여, 세자인 공자 란()

옹립하여 정백(鄭伯)으로 세웠다이가 곧 정목공(鄭穆公)이 된다.

 

이제 진문공(晉文公)도 생을 마감하며 떠날 때가 된 것인가재위

기간은 비록 9년밖에 되지 않았으나, 그는 많은 실적을 쌓았으며,

그해 12월에 병석에 눕게 되자, 마지막으로 중신들을 불러들였다.

 

       세자 환()에게 국통(國統)을 잇게 하고 

       모두가 잘 보좌하여, 백업(伯業)은 절대

       다른 나라로 넘어가지 않게 하라

 

       나이 어린 아들 흑둔(黑臀)은 왕실과 친분을

       유지하기 위해 주(왕실로 가서 살게 하라

 

       공자 옹()은 진(나라로 가게 할 것이며

       공자 락()은 진(나라로 보내어

       그곳에서 벼슬을 얻어 살도록 만들어라

 

공자 옹()은 두기(杜祁)의 소생이며공자 락()은 진영(辰嬴)

소생이다진목공의 딸인 회영(懷贏)이 진문공에게 시집오게

되면서, 불리는 이름이 진영(辰贏)으로 바뀌었다.

 

진문공은 아버지 진헌공(晉獻公)이 뒤늦게 여희(驪姬)를 총애하여

형님 되는 세자 신생(申生)이 자살하게 되었으며, 또한 형제들이

흩어지게 되면서, 어려운 시절을 당하며 많은 고생을 하였던바

공실의 안정을 위해 사전 조처를 한 것이다.

 

       진문공(晉文公)의 성은 희(姬)이며

       휘는 중이(重耳)이고 시호는 문공(文公)이 된다.

 

       기원전 697년에 진헌공(晉獻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기원전 628년인 향년 70세에 죽었다.

 

       진문공의 어머니는 책족(翟族)의 호희(狐姬)이며

       외조부 호돌(狐突)과 외숙인 호모(狐毛), 호언(狐偃)

       형제의 영향을 많이 받아 올바른 인성을 갖추게 된다.

 

       여희(驪姬)가 자기 아들 백복(伯服)을 세자로 세우려고

       신생(申生)을 자살시키고공자들을 모두 쫓아냈다.

 

       이로 인해 19년간의 긴 유랑 생활을 하게 되며

       조쇠(趙衰)비롯한 70여 명의 가신이 따랐다.

 

       1만여 리에 달하는 긴 유랑 생활 끝에 돌아오게 되며

       기원전 636년인 61세에 즉위하여, 기원전 628년까지

       9년을 집권하게 되며내내 각종 개혁정책을 펼쳤다.

 

국내가 안정 될 무렵에 송나라를 위해 초(楚)와 전쟁을 벌이면서

방백으로 인정받게 되고춘추오패의 한 사람으로 꼽히게 된다.

어쩌면 진문공(晉文公)은 때가 올 때까지 끝까지 기다리겠다는

각오하에 가신들과 함께 운명을 같이하면서잡초보다도 더

끈질기게 위험한 역경을 이겨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끝까지 때를 기다리며, 하늘이 내려준 복을 받게

       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그의 참모습일 것이다.

 

진문공(晉文公)이 죽자세자 환()이 상례를 주재하게 되었으며

군위에 올라 진양공(晉襄公)이 되면서, 진문공(晉文公)의 장지를

곡옥(曲沃)으로 정했다.

 

       발인(發靷) 하여 강성(絳成)에서 노제(路祭)를

       지내게 되자 수많은 백성이 울며 따라왔다.

 

       영구(靈柩)를 실은 수레가 강성(絳成)의 북문을

       나가려는 그 찰나에 영구(靈柩)에서 갑자기

       소 울음소리 같은 큰 괴성이 울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그때 갑자기

       영구(靈柩)의 무게가 태산처럼 무거워지면서,

       영구(靈柩)의 수레가 꼼짝을 하지 않았다.

 

군신들이 놀라자, 백성들도 모두 놀라게 되었다. 이때  태복(太卜

곽언(郭偃)이 쫓아와 급히 점을 치면서, 다음의 점괘를 얻게 된다.

 

       有鼠西來 (유서서래)  서쪽에서 쥐새끼가 와서

       越我垣墻 (월아원장)  내 집 담장을 넘는 구나

       我有巨梃 (아유거정)  내가 몽둥이를 집어 들고

       一擊三傷 (일격삼상)  한번 내리치니 세 번 상하도다.

 

       아니이게 무슨 뜻입니까

       이 곽언(郭偃)이 점사(占辭)를 풀어 보겠소

 

       조만간 서쪽 변경에서 병사에 관한 소식이 들어오며

       우리 군사가 그들을 물리쳐 크게 이긴다는 뜻입니다.

 

       선군의 영령께서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제를 올리며 모두 절을 올립시다!

 

군신들이 모두 수레에 실린 진문공의 영구(靈柩)에 절을 올리자

영구(靈柩)에서 나던 소리가 멈추게 되면서 또한영구(靈柩)

수레도 움직이게 되었고, 평상시와 같이 행차를 할 수 있었다.

 

       이 선진(先軫)이 말하겠소이다.

       서방(西方)은 곧 서쪽의 진(나라입니다

 

       선군께서 앞날에 대한 근심이 염려되시어

       새로운 군주에게 영을 내리시는 겁니다.

       세작을 보내, (나라 소식을 알아보겠소이다

 

한편 황하(黃河서쪽의 진목공(秦穆公)은 일찍부터 패업에 대한

야망을 품고 있었으므로명재상 백리해(百里奚) 등을 등용하여

부강한 진()나라로 만들어 나갔다.

 

       그러나 진문공(晉文公)의 장인이 되면서 

       진문공(晉文公)에게 협조하게 되면서

       중원 진출의 꿈을 펼쳐보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진(晉)나라에서 진문공의 상례 사절이 오자

자기도 모르게 패공(覇公)의 야망이 다시 살아나면서, 모처럼

기회가 왔다면서 조급한 마음이 생기게 된다.

 

       진목공(秦穆公)은  2년 전, 진문공(晉文公) 요청으로

       정(나라의 신정(新鄭)을 포위하며 공격하다가,

 

       (나라 대부 촉무(燭武)의 말에 현혹되어, ()

       동맹을 깨버리면서대신에 ()과 동맹을 맺고는

 

       진문공(晉文公)에게는 아무런 통고도 없이

       한밤중에 진군(秦軍)을 철수시킨 일이 있었다.

 

그때 정()을 돕기 위해 기자(杞子), 봉손(蓬孫), 양손(楊孫)에게 

2천의 군사를 맡겼으며, 신정(新鄭)의 북문 안에 주둔하게 하였다.

 

이 세 장수는 공자 란()이 진(나라에서 귀국하여 세자에

책봉(冊封)되는 광경을 바라보고는 몹시 화가 나게 되었다.

 

       우리는 정(나라를 위해 진()의 공격으로부터

       신정(新鄭)을 지켜주고 있는데우리에겐 아무런

       연락도 없이 진(나라에 항복하고 말았소!

 

       그동안 정(鄭) 나라를 지켜주려고 노력한 일은,

       이제 모두 헛수고가 되어 버린 것이 아니겠소?

 

이들은 즉시 이러한 사실을 재빨리 본국에 보고했다. 이 보고를

받은 진목공(秦穆公)도 화가 났으나단지 진문공(晉文公)의 위세에

눌려 감히항의하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 후에 정문공(鄭文公)이 죽고 공자 란()

       정백(鄭伯)의 자리에 올라 정목공(鄭穆公)이 되었다.

 

새로운 군주가 된 정목공(鄭穆公)은 진(나라의 세 장수에게

자신의 즉위에 대해 통고하지도 않고 아무런 예도 취하지 않았다.

 

       우리는 정(나라를 위해 원정 나온 것이오!

       신정(新鄭)에 주둔한 지 벌써 2년이나 되었소

 

       언제 본국으로 돌아갈지 알 수 없게 되었소!

       우리가 주군에게 군사 출동을 권하여,아무도 몰래

       정() 나라를 점령해 버린다면 어떻게 되겠소?

 

       우리 모두는 전공을 세우게 되는 것이 되며

       동시에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겠소

 

 373 자기의 운명을 스스로 아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