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 열국지( 201∼300회)

제 269 화. 고굉지신은 어떤 사람인가.

서 휴 2023. 9. 27. 00:35

 269 고굉지신은 어떤 사람인가

 

      개자추(介子推)의 본명은 개추(介推이며,

      중간의 ()는 후일에 붙인 호칭이다.

      자(子)는 그만큼 존칭의 뜻이 들어있었다.

 

개자추(介子推)는 산서성(山西省북쪽의 개휴(介休)라는 지방의

면상(綿上)에서 태어났으며, 사족(士族출신의 젊은이였다.

 

      면상(綿上)은 산간 마을이라 면산(綿山)으로도 불리며,

      그는 일찍이 큰 뜻을 품고 면상(綿上)을 떠나,

      (나라의 강성(絳城)으로 향하던 중에

 

      명망이 자자하던공자 중이(重耳)가 포읍(蒲邑)

      거처한다는 소문을 듣고발길을 돌려

      포읍(蒲邑)에 찾아 들어가 가신단에 합류했다.

 

개자추(介子推)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묵묵히 자신이 해야

일을 솔선해 하였으므로좀처럼 중이(重耳)나 다른 가신들의

눈에 띄지 않는무명의 가신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개자추(介子推)가 중이의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은 책(나라를

떠나 유랑 길에 오르면서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이 생길 때마다.

그가 먼저 나서서 해결하곤 하는 성실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대에게 너무 많은 신세를 지는구려

     장차 무엇으로 은혜를 갚을 수가 있겠소

 

     신 개자추(介子推)를 비롯한 우리 가신들은

     공자를 모시고 귀국하오면 공자의

     고굉지신(股肱之臣)이 되고 말 것입니다.

 

고굉지신(股肱之臣이라는 말은

넓적다리 고(). 팔뚝 굉(). 갈지(). 신하 신()으로

 

가장 믿고 중히 여기는 신하가 되어진심으로 임금을 위하는

팔다리가 되겠다는 뜻으로 서경(書經)의 익직(益稷) 편에 나온다.

 

      개자추(介子推)의 말은 온몸을 바쳐

      중이(重耳공자의 팔다리 역할을 다하겠다는

      맹서(盟誓) 이며, 지극한 희망이었으리라.

 

개자추가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내 국을 끓여 중이(重耳)에게

바쳤다는 일화는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다만 자신의 은공을 드러내지 않는 개자추(介子推)의 성격을 잘

나타나게 하려고 지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개자추(介子推)가 허벅지 살을 베어내 국을 끓였다는

      일화는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

      좌구명(左丘明)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국어(國語등에도 실려 있는 내용은 하나도 없다.

 

      다만 장자(莊子)의 도척(盜蹠편에개자추(介子推)

      충성이 지극한 사람으로 자신의 허벅다리 살을 베어

      배고픈 주인을 먹였다.라고 기술되어 있을 뿐이다.

 

장자(莊子)가 서술한 것은 중이(重耳일행이 (나라로 가는

도중에 겪는 고통과 시련이 얼마나 참담(慘澹하였는가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이야기라 할 것이다.

이에 염옹(髥翁) 이 시로써 개자추(介子推)의 충성심을 노래하였다.

 

       孝子重歸全 (효자중귀전)

       효자는 몸을 중히 보전하여야 하나니

 

       虧體謂親辱 (휴체위친욕)

       몸을 상하는 행위는 부모를 욕보임이라.

 

       嗟嗟介子推 (차차개자추)

       감탄하노라 개자추여!

 

       割股充君腹 (할고충군복)

       허벅지 살을 베어 주군의 배를 채워주는구나.

 

       委質称股肱 (위질칭고굉)

       이처럼 충성하는 일을 고굉(股肱)이라 할지니

 

       腹心同禍福(복심동화복)

       가슴속은 주군과 화복을 같이하려는 일념이리라.

 

       豈不念親遺(개불년친유)

       어찌 부친이 물려준 몸을 괘념치 않았겠는가

 

       忠孝難兼國(충효난겸국)

       충효는 나랏일처럼 이루기 힘든 일인데

 

       彼哉私身家(피재사신가)

       집안의 사사로운 몸만을 생각하는 그대들이여

 

       何以食君祿(하이식군록)

       그렇게 록을 받아먹기가 부끄럽지 않은가

 

중이(重耳)와 가신 일행은 지치고 허기진 배를 움켜잡으며겨우

멀고 먼 제(나라를 애처롭게 찾아가, 비로써 관문에 당도한다.

 

      아아저기가 임치(臨淄) (인가

      임치(臨淄) ()을 바라보니 절로 눈물이 나는구려

 

      허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를 반겨줄 거냐 요

      어서 성문에 가서 연락이나 해봅시다.

 

(나라는 주문왕(周文王)과 강태공(姜太公)이 합세하여 상(

나라를 무너트리고 세운 나라이다. 그 공로로 강태공(姜太公)

산동반도(山東半島)를 봉토(封土)로 받아 제(나라를 탄생시켰다.

 

       강태공(姜太公) (나라를 제일 발전한 나라로

       만들었으며, 원래 영구(營丘)가 도성이었으나

       영구(營丘) 성 옆으로 치수(淄水)가 흐르고 있어

 

       사람들이 자꾸 치수(淄水)건너게 되면서

       점차 임치(臨淄) 라 부르게 되었다.

 

임치(臨淄)는 원래부터 큰 도시였음에도, 제환공(齊桓公)이 즉위하고

관중(管仲)이 재상이 되어,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펼침으로써 더욱

발전하며, 임치(臨淄)성 밖에도 마을이 생겨날 정도로 더 화려하고 

더 번화해졌으므로,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감탄하였다.

 

      이것이 패업(覇業)을 이룬 나라의 도성이로구나

      공자, 지금 감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나라처럼 우리를 받아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소

 

중이(重耳)와 가신 일행들은 끊임없이 걸으며 이틀은 거르고

하루는 얻어먹으며, 마침내 제(나라에 당도하게 되었다.

 

       이제는 더 갈 곳도 없도다

       겨우 있다고 해봐야

       아주 먼 남방의 초(나라가 있을 뿐이다.

 

그 먼 곳까지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이제 또 구걸하며 걸어간다는

것은, 갈 만한 힘도 남아 있지 않았으므로, 모두 불안해지며 감히

수문장 앞으로 나서기가 두렵기까지 하였다.

 

이때 중이(重耳일행은 얼굴에 쌓인 때로 얼룩져 있었으며머리는

먼지를 뒤집어써 엉겨 붙어있고, 옷에는 고약한 냄새가 풍겼으며

신발은 해어져 맨발과 같았고, 굶주림에 지친 얼굴은 가련함을

넘어서 섬뜩하기까지 하였다.

 

       뭔 저런 거지 떼들이 다 있어

       뭐하러 왔는지 물어봐라.

 

       어휴뭔 냄새가 뭐 이리도 지독해

       당신들은 씻지도 않고 돌아다니는 거지들이요

 

       당신들은 뭐하러 이곳에 온 것이오

       당신들은 어서 빨리 멀리 돌아들 가시오

 

       나는 호언(狐偃이라는 사람이오.

       나는 수문장을 만나고 싶소

 

그러나 호언(狐偃)의 굵으면서 위엄 서린 음성과 선비처럼 정중한

태도는 상대를 제압하기에 충분하였다. 성 문지기 군사는 자신도

모르게 주춤하더니 돌아서서 수문장에게 뛰어가 보고하였다.

 

      무슨 일이오?  제가 수문장입니다.

      반갑습니다. 우리는 진(나라 공자 중이(重耳)

      그 가신들이오

 

      제후(齊侯)를 알현하고 자 만릿길을 달려왔소이다

      그렇습니까 곧바로 궁에 보고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나라는 위()와 달리 관리들의 행동이 절서정연(秩序整然)

하였고또한 제환공(齊桓公)은 예전에 진혜공(晉惠公) 즉위하는

자리에 있었으며그 후에도 서방의 진(나라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까지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다.

 

      (나라 공자 중이(重耳라고 하였느냐

      주공틀림없이 그러하옵니다.

 

      그는 군위에 오를 수 있음에도 욕심을 내지 않았다.

      공자 중이(重耳)는 현자로다

      어서, 성안에 들게 하여 모두 영빈관에 모셔라

 

중이(重耳일행은 영빈관(迎賓館)에 들어오게 되었으며오랜만에

목욕도 하게 되면서더구나 받은 새 옷으로 갈아입게 되자

그들의 행색은 삽시간에 바뀌어 어엿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서방 진(나라의 현자여 어서 오시 오

      그대와는 비록 초면이긴 하지만,

      그대의 명성을 들은 지 오래되었소.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매우 기쁜 마음이오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소

      이제 마음 놓고 이곳에 머무르시구려.

      집들과 양식도 넉넉히 줄 것이오.

 

      가족들은 다 데려왔소

      피해 다니는 사람들이 어찌 가족을

      대동(帶同할 여유가 있었겠나이까

 

      그러면중이(重耳공자가 홀몸이란 말이오

      허 허많이 불편하겠소이다.

 

      종중(宗中)에서 참한 처자를 고를 것이오.

      ,  조금 쉬면서 기다려 보시 오.

 

제환공(齊桓公)은 초라한 망명객들에게 머무를 집과 많은 양식과

()까지 마련하여 주면서더욱이 중이(重耳)가 홀몸임을 알게

되자, 종중(宗中)에서 어여쁜 제강(齊姜)을 뽑아 같이 살게 해주었다.

 

      중이는 제환공이 패업을 성취하여 천하를 통솔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면서, 제환공의 인품에 깊은 감명을

      받게 되면서, 자신의 마음을 크게 깨닫게 된다.

 

중이(重耳일행이 임치(臨淄) 성에 정착한 해는 기원전 644년이며,

관중(管仲)이 병석에 누워있을 때이기도 하였다.

     

 270 . 운명을 어떻게 미리 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