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7 화. 배고픈 설움을 어찌 참으랴.
열흘 가까운 날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태행산맥(太行山脈)을 따라
계속 남하하는데, 갑자기 앞에서 이상한 낌새가 다가오고 있었다.
발제(勃鞮)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냐?
좋다. 네놈의 명줄을 끊어놓고 말리라!
쉬, 위주(魏犨) 는 조용히 해라.
발제(勃鞮) 그놈은 아닌 것 같아?
어느 순간 발제(勃鞮)의 칼날이 번뜩일지 모르기에, 위주(魏犨)와
선진(先進)은 앞장서 척후병 노릇을 하면서 걸어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기척이 느껴져 숲속을 두리번거리는데, 그때 또 퍽! 하며,
위주(魏犨)의 얼굴 옆으로 또 하나의 화살이 날아와 나무에 꽂혔다.
발제(勃鞮)는 아니다.
발제(勃鞮)가 아니라면 누구란 말이냐?
저놈들이다. 오랑캐! 적적(赤狄) 놈들이다!
같은 젊은이라도 선진(先進)은 지적이고 냉철한 편이나, 그 반면에
위주(魏犨)는 가문의 피를 이어받아 저돌적으로 혈기가 왕성하며,
우악스러우면서 성질도 급한 편이었다.
숫자가 우리보다 너무 많구나.
안 돼. 어서 엎드려라!
선진(先進)이 소리치며 외칠 그 순간에 소낙비처럼 화살이 쏟아져
날아왔으며, 가신 중에서 쓰러져 죽는 사람이 생겨난다.
위주(魏犨)와 선진(先進)은 중이(重耳)와 가신들의 경호를 맡은
책임을 지고 있었으므로, 서로 눈짓을 하며 화살이 날아오는 쪽으로
포복하듯이 기어가 적적(赤狄) 인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죽여라! 죽여, 어 큰일이다,
공자의 수레에 다가가지 못하게 하라!
이삼십여 명의 적적(赤狄) 인들이 중이(重耳)의 수레를 습격하자,
가신들과 일대 접전이 벌어졌다.
이때 위주(魏犨)가 달려들며 용맹하게 싸우자,
적적(赤狄) 인들이 베어져 자빠진다.
또한 선전(先進)까지 가세하자,
적적(赤狄) 인들은 매우 놀라며 달아났다.
위주(魏犨)는 진(晉) 나라 최고 명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몸집도 크고 용맹하였기에 적은 숫자임에도 적적(赤狄)을 쫓아냈다.
아니, 이건 또 웬 불화살이냐?
어어, 공자의 수레가 화염에 휩싸인다!
이때 갑자기 적적(赤狄) 인들의 불화살이 쉴새 없이 날아들자,
중이(重耳)가 탄 수레는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이게 되었으며,
가신들 모두가 힘을 합치면서 불을 끄자, 중이(重耳)는 겨우
몸을 피하여 살아날 수 있었다.
위주(魏犨)와 선진(先進)의 활약으로 적적(赤狄) 인들을
물리치기는 했으나, 피해도 여간 심하지 않았다.
중이(重耳)와 가신 일행은 병장기가 없는 사람이 많았으므로, 10여
명의 사상자가 생겼으며, 무엇보다 한 대밖에 없는 수레가 불에
타버렸으므로, 중이(重耳)도 이제는 걸어가야 하는 형편이 되었다.
그래, 이 태행산맥(太行山脈) 남단 쪽으로는
적적(赤狄) 인들이 모두 차지하고 있소.
이제부터는 더욱 적적(赤狄) 인들을 조심해야 하오.
죽은 우리 일행을 잘 묻어주도록 합시다 !
다음 날에 반드시 복수하여 주리라!
불에 그슬린 중이(重耳)는 죽은 가신들을 처연하게 내려봤으며
호언(狐偃)과 조쇠(趙衰)는 부서진 수레 앞에 서서 한숨만 내쉬었다.
공자님, 이제 걸어가게 생겼습니다.
괜찮소. 우리 일행 모두가 다 해어진 옷에
다 터진 신발을 신고 있지 않소?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 시작해야 하고
먼 길을 가려면 가까운 곳부터 출발해야 하오!
가신들은 오히려 중이(重耳)의 위로를 받고 나자, 힘이 생겨났으므로
온종일 걷게 되자, 이제는 몹시 허기를 느끼게 되었다.
그나마 조금씩 가지고 있던 개인별 비상식량도 다 떨어져, 허기를
억지로 참으면서 계속 걷는데, 작은 마을조차 구경하지 못하면서
조금의 음식도 구하지 못하여, 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溪谷) 물로
주린 배를 채우면서 걸을 수밖에 없었다.
오, 저기 마을이 보인다.
뭐라도 먹을 걸 구해보자.
가신들은 마을로 들어서자마자, 서로 흩어지면서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구걸하러 다니며, 음식을 얻은 사람은 그것을 혼자 먹지
않고, 일단 들고 돌아와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다.
서로 약속한 것도 아닌데 서로 나눠 먹으며
서로의 굶주림을 조금이나마 해결하는 것이다.
어느 마을에서는 중이(重耳) 일행의 허름한 몰골을 보고, 아예 발도
들여놓지 못하게 하면, 그런 날은 굶어가며 바위 밑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면 풀을 뜯어 먹기도 하는 거지와 다를 바 없는 신세였다.
조금만 참도록 하라.
이대로 가다가 황하(黃河) 만 건너간다면
위(衛) 나라 초구(楚丘) 성이 나올 것이다.
위(衛) 나라는 우리 진(晉)과 같은 희성(姬姓) 이다.
위(衛) 나라는 조금이나마 대우해줄 것이다.
중이(重耳)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배고프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으며,
처량한 마음이 들어도 그 기색을 보이지 않으면서 의연하였다.
중이(重耳)가 가신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자, 이 말을 믿으면서 열심히
걸어갔으며, 또한 구걸하면서도 힘든 줄을 몰랐다.
저기 황하(黃河)가 보인다.
저 황하(黃河) 만 건너면 고생이 끝난다.
자, 어서 배를 구하라.
겨우 배를 얻어타고 황하(黃河)를 건너오자, 모두가 생기가 돌면서
위(衛) 나라 초구성(楚丘城)에 들어가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거라며, 잔뜩 기대를 걸게 되니, 입에서 먼저 군침이 고이었다.
도도히 흐르는 누런 물결의 황하(黃河)를 건너 또 한동안 걸어가자
먼 저편으로부터 초구성(楚丘城)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틀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도다.
이제 안심하고 다가가 보자!
적적(赤狄) 인들에게 행패를 당하였던 곳은 태행산맥(太行山脈)의
서쪽에 있었으며, 그 산맥을 지나가면 위(衛) 나라가 있었다.
위(衛) 나라의 초구성(楚丘城)은 불과 16년 전에 세워진 곳이다.
위문공(衛文公) 앞의 위의공(衛懿公)이 학(鶴)을 사랑하는
취미 생활만을 하면서 백성을 전혀 돌보지 않다가,
북적(北狄)의 부족장인 수만(瞍瞞)이 갑자기 쳐들어오자,
위의공(衛懿公)은 맞서 싸우다가 전사하였으며,
북적(北狄)에 쫓기던 위(衛) 나라는 공실마저 버린 채
도성(都城)을 떠나 겨우 도망쳐 왔으며,
황하(黃河)를 건너지 못하면 몰살당할 처지에
제환공(齊桓公)과 송환공(宋桓公)이 위(衛) 나라를
구하려 보낸 배들을 만나 겨우 살아날 수가 있었으며,
황하(黃河) 동쪽 강변을 따라가다가 조(漕) 땅에 이르러서야,
비로써 힘든 행렬을 멈추게 되었다.
이 어려운 시기에 대를 이어받은 위문공(衛文公)은 제환공(齊桓公)이
보내준 비단옷도 입지 않고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성심껏 백성을
위하자, 이에 감복한 제환공(齊桓公)이 다른 제후(諸侯) 들과 힘을
합하여, 넓은 초구(楚丘) 땅에 초구성(楚丘城)을 쌓아준 것이다.
이런 내용을 잘 아는 호언(狐偃)과 조쇠(趙衰)는 이처럼 고생했던
위문공(衛文公) 이므로 냉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크게 기대하였다.
공자님, 이른 아침 녘인데 이제야
저기 위(衛) 나라 관문(關門)이 보입니다.
며칠을 굶으셨으니 얼마나 배고프시겠습니까?
위(衛) 나라에 말하여 도움을 받아보겠습니다.
우리는 진(晉) 나라 공자 중이(重耳)를 모시고 있소.
지금 제(齊) 나라로 가는 길이 오,
귀국의 길을 빌리고자 이곳에 잠시 들렀소.
알겠소. 내가 수문장이라 하지만
내 맘대로 못하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 오.
초구성(楚丘城) 성문 앞에 서 있는 중이(重耳)와 가신들은 너무너무
허기져 안간힘을 다하며 겨우 버티고 서있는 모습들이다.
주공, 진(晉) 나라 공자 중이(重耳) 라며 찾아왔습니다.
중이(重耳) 공자가 웬일로 찾아왔다던가 ?
모두 30여 명이며 모두 허름한 복장으로
몹시 허기져 쓰러질 듯 서 있사옵니다.
상경(上卿) 영속(寧速)이 나가서 데려오시오.
요기라도 시켜 보내야 하지 않겠소!
상경 영속(寧速)이 성문에 나가 중이(重耳) 일행과 서로 인사하며
성안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갑자기 내시가 쫓아오더니, 영속(寧速)을
성안으로 데리고 들어가고 나서는 성문을 굳게 닫아버린다.
진(晉) 나라의 중이(重耳) 공자라고 하였는가?
중이(重耳)는 적족(狄族)의 피가 섞여 있도다.
우리와 철천지원수인 적족(狄族)의 후예가 아닌가?
우리가 초구(楚丘)에 새롭게 나라를 세웠으나
진(晉)나라는 눈곱만큼도 우릴 도운 적이 없도다.
진(晉) 나라는 우리 위(衛) 나라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
더구나 떠도는 망명객을 무엇에 쓰겠느냐?
성에 들어오면 체면상 대접도 하여야 하고
보낼 때는 노자(路資)라도 넉넉히 주어야 한다.
노자를 적게 주면, 천하에 소문만 나빠진다.
내시는 쫓아가 상경께 그냥 돌아가라고 전하라.
진(晉)의 공자를 입성시키지 말라 하여라!
위문공(衛文公)은 제환공(齊桓公)이 베풀어준 은혜는 너무나 고맙게
받들였으나, 적족(狄族) 이라면 치를 떨 정도로 싫어하였으며, 또한
어려울 때 조금도 도와주지 않은 진(晉)에 대해 좋은 마음이 없었다.
제 268 화. 없는 사람은 처참한 괄시도 받는가.
'춘추 열국지( 201∼300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 269 화. 고굉지신은 어떤 사람인가. (0) | 2023.09.27 |
---|---|
제 268 화. 없는 사람은 처참한 괄시도 받는가. (0) | 2023.09.26 |
제 266 화. 중이, 또 어디로 가야 하는가. (0) | 2023.09.26 |
제 265 화. 나를 왜 죽이려고만 하는가. (0) | 2023.09.23 |
제 264 화. 본마음이 어디로 가겠는가. (0) | 2023.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