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6 화. 중이, 또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날 밤 중이(重耳)는 그동안 정들었던 어여쁜 부인 계외(季隗)를
끌어안고 밤을 새워가면서 이별의 정을 나누게 되었다.
내가 없는 동안이라도 자식을 잘 키우고 있소!
서방님, 천하에 뜻을 두고 있는 대장부가
이제 떠나신다고 하니, 어찌 만류하겠나이까?
다만, 가시면 언제쯤 오실 것 같사옵니까?
넉넉잡아 25년이면 어떻겠소!
25년이 지나면 나를 생각지 말고 알아서 하시오.
제 나이 28세인데 그리 오랜 세월이 지나면
그때는 이미 할머니가 되어있을 것입니다.
공자께서는 대장부의 큰 포부를 세우십시오!
뒤뜰에 심어 놓은 노송나무를 공자처럼 바라보며
자식들만 잘 키우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 당시에는 귀족들만이 집안의 제당(祭堂) 인 가묘(家廟) 뒤뜰에
나무를 심어 신분을 확인시키게 해주는 풍습이 있었다.
왕실(王室) 에서는 소나무(松송)를 심고,
제후(諸侯)는 노송나무(檜木회목)를 심었으며,
대부(大夫) 집안은 모감주나무(欒木란목)를 심었고,
일반 선비(士)의 집안은 회화나무(槐木괴목)를 심었다.
계외(季隗)는 시집오자, 고집을 피워가며 노송나무를 심게 하고는
훌륭한 제후가 되어야 한다며 공자의 앞날에 두 손 모아 빌었다.
가신들도 이 시각에 괴로운 눈물을 흘리며,
가족과 이별의 슬픔을 나누고 있었다.
조쇠(趙衰)의 아내가 되는 숙외(叔隗)는 계외(季隗)의 언니이면서,
조쇠(趙衰)를 만나 아들 순(盾)을 낳았는데, 나이가 많아져 아들을
보게 된 조쇠(趙衰)는 더욱 순(盾)을 아끼면서 잘 가르치고 있었다.
어여쁜 숙외(叔隗)는 잘 있소!
아들 순(盾)을 잘 키워주시오.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오.
아버지가 조쇠(趙衰) 라는 걸 자랑스럽게 해주오!
서방님, 언제라도 돌아오시기만 하세요!
머리가 하얘지더라도 기다리고 기다리겠나이다.
이별이 끝난 이른 아침에 맨 먼저 중이(重耳)가 나타나, 타고 갈
수레를 호숙(壺叔)에게 준비하게 하고, 두수(頭須)를 불러 황금과
비단을 챙기게 하면서 떠날 채비(差備)를 마치고 있었다.
전갈이 또 왔습니다.
내시 발제(勃鞮)가 곧 도착할 거랍니다
공자, 어서 빨리 떠나야 합니다.
그놈이 그리도 빨리 온다니?
이것저것 채비(差備) 차릴 겨를이 없구나!
내시 발제(勃鞮)가 자객들과 함께 중이(重耳)를 죽이러 책(翟)으로
쳐들어오고 있다고 하자, 할 수 없이 가신 모두가 떠나게 되었다.
책(翟) 땅에 머문 지 12년이나 되다 보니, 그 사이에 70여 명의 가신
중에서 떠나겠다고 모인 사람은 40여 명에 불과하였다.
그래, 간다면 어느 나라로 가야 한단 말인가?
공자, 초(楚) 나라가 좋지 않겠습니까?
초(楚) 나라는 이제 야만족이라고 비웃지 않습니다.
신(申) 나라를 점령하여 중원으로 길을 튼 지 오래되었고
우리 진(晉) 나라 와도 가까우므로,
필요할 때는 초(楚) 나라의 도움을 받기가 좋습니다.
조쇠(趙衰)가 초(楚) 나라를 말한 것은 지리적 여건(與件)과 아울러
초(楚) 나라의 능력을 인정한 것이므로, 호언(狐偃)도 동의하는
눈빛으로 중이(重耳) 공자를 바라보았다.
갈만한 나라는 초(楚), 진(秦), 제(齊), 세 나라가 있사온데
진(秦) 나라는 이오(夷吾) 공자와 관계가 깊어져 있으므로
굳이 초(楚) 나라가 아니라면, 아무래도
아주 먼 제(齊) 나라로 가야겠습니다.
그래, 아무래도 제(齊) 나라 좋겠구먼!
제(齊)나라는 관중(管仲)과 공손습봉(恭遜襲封)이 연달아
죽었고, 제환공도 나이가 이미 80이 넘었으니
국정을 도울 신하를 구하지 않겠는가?
공자, 제환공은 패공이면서 아량도 크다니
우리 진(晉) 나라에 변이 생기면 도움을 청할 수 있어
제(齊) 나라에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관중(管仲)을 이어받아 제(齊 )의 재상직은 어떻겠소?
우리가 제(齊) 나라를 잘 이끌지 못할 이유가 있겠소?
공자, 공자님의 재능과 그만한 덕이라면
어찌 관중(管仲) 만 못하오리까?
공자, 제환공은 타국의 망명객을 후대한다니
가서 손해 볼 일은 없을 것입니다.
공자님의 뜻이 그러하다면 그리 정하십시오.
가신들에게 모두 이야기하겠습니다.
중이(重耳)가 제(齊) 나라를 찾아가 제환공을 모신다는 것은, 이렇게
열망하며 애타게 기다리던, 진(晉) 나라의 군위 계승을 포기한다는
말이었으므로, 가신들 간에 설전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제(齊) 나라에 가면 공자께서 눌러앉으려 하실 거요!
호언(狐偃)은 어찌하여 제(齊)로 가는 걸 찬성하였소?
여러분, 진목공은 포로까지 삼았던 진혜공을
어떻든 간에 다시 인정하여 돌려보냈으며,
진(晉) 나라의 군위를 지키게 하여 주었소.
여러분, 지금 우리가 돌아갈 곳은 어디에도 없소.
그러므로 제(齊) 나라밖에 없는 것이오!
공자가 제(齊) 나라에서 관직만 받지 않는다면,
공자인들 제(齊) 에만 눌러앉을 까닭이 없지 않겠소?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공자를
제환공의 신하가 되지 않게 할 것이오!
여러분, 진(晉)의 군위 계승은 포기시킬 수 없소이다.
자 여러분, 일단 제(齊) 나라로 가봅시다.
중이(重耳) 일행은 수레를 정비한 호숙(壺叔)이 수레를 끌고 나오자,
모두 급해져 책왕(翟王)에게 인사도 못 하며 급하게 떠나려 했다.
두수(頭須)가 왜 보이지 않느냐?
두수(頭須)가 모든 걸 챙겨 도망쳤습니다.
뭐라! 아니, 정말 달아났단 말이냐?
공자님, 그렇사옵니다.
제가 쫓아가 잡으려 하였지만
때늦어 그만 놓치고 말았사옵니다.
그렇게 착실하게 살림을 잘 꾸리던 두수(頭須)가
이런 황망 중에 황금과 비단을 모두 챙겨 달아나다니,
이거 정말 큰일 났구나!
두수(頭須)가 말을 타고 갔느냐?
아니옵니다. 당나귀로 끌고 간 것 같습니다.
위주(魏犨)와 선진(先進)은 어디 있느냐?
빨리 말을 타고 두수(頭須)를 찾아보아라!
호숙(壺叔)이 눈물을 글썽이며 보고하자, 모두 당황하여 어찌할 줄을
몰랐으며,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한 중이(重耳)와 가신들은 노잣돈
한 푼 없는 신세가 되었으며, 타고 갈 말도 준비하지 못하면서,
걸어가야만 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호숙(壺叔)이 끌고 온 수레가 하나뿐이므로,
수레는 중이(重耳) 공자 혼자서 타고 가며,
가신 모두가 걸어가야 하는 첫 번째 시련이 닥쳤다.
뒤늦게 알게 된 책왕(翟王)은 급히 노잣돈이라도 주기 위해 사방에
군사를 풀어 멀리까지 찾게 하였다.
금방 뭐라고 하였느냐?
중이(重耳) 일행이 책성(翟城)을 떠난 지
반나절이나 되었다고 하였느냐?
아 빨리 올걸! 이거 어떡하면 좋으냐?
노자 라도 줘서 떠나보내야 했는데
정말 큰일이 아니겠느냐?
그래도 빨리, 또 찾아보아라!
책왕(翟王) 임,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습니다.
발제(勃鞮)도 급하게 달려와 수소문하였으나, 중이(重耳)와 가신
일행이 벌써 떠났다는 걸 알게 되자, 진晉 나라로 돌아가 버렸다.
발제(勃鞮) 가 뒤쫓아 올지 모른다.
지름길을 찾아 빨리빨리 멀리 가야 한다.
책(翟) 땅은 진(晉) 나라 북쪽에 있었으므로, 제(齊) 나라로 가자면
진(晉) 나라 국경을 피하며 남쪽으로 가야 한다.
처음에는 황하(黃河)의 지류인 분수(汾水)를 건너야 하며,
곧이어 길게 우뚝 솟아 있는 태행산맥(太行山脈) 줄기를
한없이 따라가다가, 끝나는 지점에 위(衛) 나라가 있으며,
위(衛) 나라에서 동쪽으로 꺾이면서 지나가게 되면,
제(齊)의 임치(臨淄)에 닿게 되는 참으로 머나먼 여정이다.
중이(重耳) 일행은 분수(汾水)를 건너게 되며, 태행산맥(太行山脈)을
따라 계속 남하(南下)하며, 열흘 가까운 날이 지났을 무렵이 되자,
앞에서 이상한 낌새가 다가오더니, 갑자기 하나의 화살이 날아와
퍽하고 위주(魏犨)의 바로 옆에 서 있는 나무에 꽂혔다.
발제(勃鞮)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냐?
좋다. 네놈의 명줄을 아예 끊어놓고 말리라!
쉬, 위주(魏犨) 는 조용히 해봐라.
발제(勃鞮) 그놈은 아닌 것 같아!
제 267 화. 배고픈 설움을 어찌 참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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