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6 화. 자랑삼아 기밀을 말하나.
중보(仲父)의 말대로 왕자 성보(成父)를 보내자,
장(鄣) 나라 군주가 스스로 찾아와 귀순하였다.
이에 제환공은 또다시 관중의 계책에 탄복하였으며, 이런 소문이
퍼져나가자, 노(魯) 니라의 재상 계우(季友)가 찾아오게 되었다.
주공, 노(魯) 나라 재상 계우(季友)가 입성하여
알현(謁見) 하고 자, 어제부터 기다리고 있나이다.
허 어, 어서 빨리 들라 하라.
신, 계우(季友), 제후(齊侯)께 인사 올리나이다.
너무 늦게 찾아뵙게 되어 죄송하나이다.
노(魯) 나라를 이끄는데 고생이 얼마나 많소.
노魯 나라의 형편은 어떠하오.
물심양면으로 보살펴 주시어 안정이 되었나이다.
이번엔 무슨 일이 있어 온 것이오.
그간 주(邾) 와 거(莒), 두 나라와 분쟁을 하였던 바라
공교롭게도 형邢과 위衛 나라를 구원하는 전쟁에
도저히 참전할 수가 없었나이다.
이제 강(江), 황(黃)과 회맹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어
기다리던 바라 성급히 달려와 우호를 맺을까 하나이다.
하옵고, 초(楚) 나라를 정벌하고자 한다면
저희 노(魯) 나라가 선봉에 서고자 하나이다.
초(楚) 나라 정벌은 비밀로 하였으나
이미 알고 있다면 기쁘게 받아들이는 바이오.
출정 날짜를 언제로 정하셨나이까.
출정 3개월 전에 회맹 요청을 하겠소.
하시오면, 그때 저희 주공이 참석하게 될 것입니다.
좋소. 그때 서로 만나길 바라오.
제환공(齊桓公)은 노(魯)의 제안에 크게 기뻐하였으며, 이에 더욱
힘을 얻어, 굳은 마음으로 초(楚) 나라 정벌을 다짐하게 되었다.
그때는 이미 산융(山戎)과 북적(北狄)을 패퇴시켜,
융족(戎族)의 침공을 대비하여 놨으므로,
북방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해 겨울이 시작하자, 송(宋), 노(魯), 진(陳), 위(衛), 정(鄭), 조(曺),
허(許), 등에 채(蔡) 나라 토벌을 위한 격문(檄文)을 보냈으며, 군사를
일으켜, 신년 초에 상채(上蔡) 땅에 모여주길 요청했다
신년 정월이 되자, 제환공(齊桓公)은 왕실의
주혜왕(周惠王)에게 신년 하례를 드리고 나서,
낙양에서 50리 떨어진 호뢰관(虎牢關) 옆의
상채(上蔡) 땅에 도착하여 회맹을 열었다.
기만(欺瞞) 전술로 먼저 채(蔡) 나라에 쳐들어가고, 초(楚 )나라 정벌은
철저히 비밀에 붙이자고 합의하면서 모든 계획을 마치고 연합군을
결성하게 되었다.
이때 이처럼 군사의 출동은 춘추시대(春秋時代)가 개막된 이후로
가장 큰 규모의 연합군 동원이었다고 한다.
주공, 태복(太卜)이옵니다.
7일이 가장 길한 날이 옵니다.
좋도다. 7일 날 모두 출동합시다.
총대장(總大將)은 중보仲(父)께서 맡으시고,
포숙(鮑叔)과 공손습붕(恭遜襲封), 그리고
빈수무(賓須无), 개방(開方), 시초(寺貂), 등이
함께 출전하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시오.
초(楚)를 속이려면, 채(蔡)를 먼저 쳐야 하는데
누가 채(蔡)에 쳐들어가 점령하겠는가.
이때 제환공(齊桓公) 옆에서 시중들던 내관 수초(竪貂)가 공을 세우고
싶은 마음에, 앞으로 재빨리 나서며 청을 올리었다.
주공, 신 수초(竪貂) 이옵니다.
신이 채(蔡) 나라를 잘 아는바 신을 보내 주십시오.
수초(竪貂)는 잘 할 수 있겠는가.
주공, 가자마자 채(蔡) 나라를 점령하고 말겠나이다.
좋도다. 말한 약속을 지키도록 하라.
군사 2천을 이끌고 먼저 쳐들어가 점령하라.
이때가 주혜왕(周惠王) 21년이며, 제환공(齊桓公)은 재위 30년으로
기원전 656년의 일이었다.
수초(竪貂)는 병거(兵車) 300승과 갑사(甲士)
1만 명을 이끌고, 채(蔡) 나라로 출진하였다.
그 무렵 채목공(蔡穆公)은 초(楚) 만을 믿고, 국경에 대한 경비는
신경 쓰지 않고 있다가, 느닷없이 제군(齊軍)이 침공해오자, 크게
당황하며, 그때야 비로써 방어할 준비를 하려 하였다.
제군(齊軍) 장수로는 누가 왔는가.
수초(竪貂) 라는 내관(內官) 입니다.
뭣이라고, 내관 수초(竪貂)라 하였느냐.
주공, 내관 수초(竪貂)가 맞나이다.
오호, 내관 수초(竪貂) 라면 아주 잘 되었도다.
채목공(蔡穆公)은 제군(齊軍) 장수가 수초(竪貂)라는 말에, 갑자기
표정이 밝아진 이유가 있었다.
지난날 채씨(蔡氏) 부인이 제궁(齊宮)에 머물고 있을 때,
내관(內官) 인 수초(竪貂)가 채씨(蔡氏) 부인의 뇌물을
적지 않게 받은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채씨(蔡氏) 부인이 쫓겨날 때, 채(蔡) 나라까지 데리고 온
사람도 수초(竪貂)였으며, 그때도 뇌물을 주었던바, 채목공은
내관 수초(竪貂) 라는 말에 귀가 번쩍하였던 것이다.
그자 수초(竪貂)는 변변치 못한 인물이다.
황금과 비단을 한 수레 가득 실어 보내줘라.
그 날 밤, 채목공(蔡穆公)은 수초(竪貂)와 일면식이 있는 한 대부를
시켜 황금과 비단을 한 수레 가득 실어 보내 주자, 수초(竪貂)는
매우 흡족하게 생각하며 반가워하였다.
수초(竪貂) 장수 오랜만이오.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허 어, 이게 다 무엇이오.
적은 선물이오나 긴요하게 쓰십시오.
채후(蔡侯)께 고맙다고 전해주시오.
수초(竪貂) 장수, 우리의 옛정을 생각하여서라도
천천히 공격하여 주시면 고맙겠소이다.
허 허, 알겠소. 너무 염려치 마시오.
뇌물을 주자 수초(竪貂)의 입이 크게 벌어지는 걸 본 채(蔡) 나라
대부는 여러 가지를 은근히 물어보자, 수초(竪貂)는 거만하게 웃으며,
짧은 생각으로 이번 작전의 기밀마저 자랑삼아 말하고 만다.
제군(齊軍)까지 오는 것입니까.
머지않아 중원(中原)의 8개국 연합군이
이곳 채(蔡)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 것이오.
아니, 제(齊) 나라뿐만 아니라 연합군도 옵니까.
그렇소. 채후(蔡侯)에게 초(楚) 나라에 도움 청할
생각은 아예 버리고, 속히 항복하는 것이
채(蔡) 나라가 살아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해주시오.
제환공은 언제쯤 도착합니까.
벌써 지금 이리로 오고 있소.
그뿐만이 아니오,
이참에 초(楚) 나라까지 정벌할 것이오.
아니, 초(楚) 나라까지 정벌하려는 것입니까.
그렇소. 이번에 둘 다 박살이 날 것이오.
제(齊)와 연합군이 초(楚) 나라를 몰래 기습하려는 것은 중대한
일급비밀이었으나, 수초(竪貂)는 원래 자만심이 가득 차 있었고,
또한, 값진 뇌물을 받게 되자, 너무 자랑삼아 말해버리게 되었다.
채(蔡) 나라 대부는 채성(蔡城)으로 급히 돌아가자마자 보고하니,
이 엄청난 소식을 듣게 된 채목공(蔡穆公)은 아주 깜짝 놀랐다.
제(齊)와 연합군이 우리 채(蔡) 나라를
짓밟고 지나가려는 것이 아닌가.
초(楚) 나라가 무너지면 우리 채(蔡) 나라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며 심한 고초를 겪게 되리라.
채목공(蔡穆公)은 그날 밤으로 친족과 궁인들을 이끌고 초(楚)로
달아났으며, 알게 된 내용을 모두 초성왕(楚成王)에게 고하였다.
초성왕(楚成王)은 제환공(齊桓公)이 대규모 원정군을 편성하여,
먼 남방까지 쳐내려올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하였다가
채(蔡) 나라의 급한 연락을 받게 되자, 대경실색하고 말았다.
아니 이럴 수가 있느냐.
제(齊) 나라가 우리 초(楚) 나라에 쳐들어온단 말이냐.
허허, 8개국 연합군이 우리를 공격한다는 것이냐.
허허, 이거 정말 큰 일이로구나.
영윤(令尹) 투곡어토는 어찌 생각하시오.
이를 어떻게 대비하면 좋겠소.
투곡어토(鬪穀於菟)는 초(楚)의 관중(管仲)이라 불릴 만큼 지략이
뛰어난 재상이었기에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답변한다.
우리가 정(鄭) 나라를 자주 침공하였기에,
중원(中原)의 여러 나라가 합세하여
연합군을 결성했으므로, 우리는 그들과
정면으로 맞서 싸워서는 아니 됩니다.
먼저 정(鄭) 나라를 치러간 투렴(鬪廉)과 투장鬪章을
불러들여 막아낼 수 있는 방어 진지를 구축하면서
따로 말 잘하는 사람을 특사로 보내
저들의 침략이 명분이 없음을 밝히며
스스로 물러가게 하면서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그래도, 저들이 물러가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소.
저들은 천 리가 넘는 길을 달려온 원정군입니다.
시간을 끌면 그들의 군사들도 피곤할 것이며,
특히 무엇보다도 군량(軍糧)이 부족하여
오래 머물 수가 없을 것입니다.
관중(管仲)은 필시 중원(中原)의 세(勢)를 과시함으로써
위협할 것이며 함부로 무력을 쓰지는 않을 것입니다.
왕께서는 속히 투렴(鬪廉)과 투장(鬪章)을 불러들이시고,
서둘러 제환공(齊桓公)에게 특사(特使)를 보내십시오.
누구를 특사(特使)로 보내면 좋겠소.
대부 굴완(屈完) 이라면 능히 해낼 수 있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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