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3 화. 누가 백성을 헐벗게 하나.
뒤늦게 후회한 위의공(衛懿公)은 석기자(石祁子)를 보자, 고개를
떨구면서, 그 즉시 기르던 학(鶴) 들을 모두 날려 보냈다.
그러나 학(鶴) 들은 사랑만 받으며 자라서인지, 살았던 궁의 하늘을
빙빙 돌다가는 제자리로 돌아왔으며, 관리들이 손을 내저으며
쫓았으나, 학(鶴) 들은 예전처럼 편안히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는 석기자(石祁子) 요!
백성들은 여기에 다 모여주시오!
주공께서 잘못을 깨우치시고 후회하고 계시오.
이제 우리는 무기를 잡고 나아가 싸웁시다.
저 북적(北狄) 오랑캐를 무찌르도록 합시다.
백성들이 차츰 모여들며 무기를 잡고 전열을 갖추려는 그사이에
형택(熒澤) 들판에 북적(北狄)이 진채를 세웠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주공. 북적(北狄)이 형택(熒澤) 들판에 진채(陣寨)를
세웠다면, 그곳은 우리의 턱밑이 되옵니다.
북적(北狄)은 대단히 강하여 우리에겐 어렵나이다.
주공, 다른 대안을 세우셔야 하옵니다.
주공, 제(齊) 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구원받아야만
이 난국에서 살아날 수 있나이다!
아니요! 지난날 제(齊) 나라는 왕실의 명을 받아
우리 선친이신 위혜공(周惠公)을 다시 복위시켰으나
우리는 그 뒤로 한 번도 답례한 바가 없소!
무슨 면목으로 도와 달라는 말을 할 수 있겠소?
비록 제환공(齊桓公)이 패공(霸公)으로서
막강한 위엄을 떨치고 있지만, 그러나 차라리
우리 힘으로 오랑캐와 싸워 승패를 가리겠소!
주공, 대부 영속(寜速) 이옵니다.
신이 군사를 이끌고 북적(北狄)을 막아보겠습니다.
다급해진 전황(戰況)에 대부 영속(寜速)이 자원하여, 앞으로 나가
싸우려 하였으나, 위의공(衛懿公)은 결연한 각오로 단호(斷乎)
하게 고개를 내저었으며, 직접 나가 싸우겠다는 말을 한다.
아니 오, 과인이 친히 나아가지 않으면
군사들이 싸움에 전력(戰力)을 다하지 않을 것이오!
과인이 나아가 직접 싸울 터이니!
석기자(石祁子)와 영속(寜速)은 성을 지켜주시오!
위의공(衛懿公)이 친히 중군(中軍)을 이끌며 전대와 후대는 물론
모든 군사와 병거대(兵車隊)를 직접 지휘하겠다고 말하였다.
대부 거공(渠孔)을 장수로 삼고
장수 우백(于伯)을 부장으로 삼으며,
선봉장은 대부 황이(黃夷)가 맡도록 하라.
장수 공영제(孔嬰齊)는 후대(後隊)를 이끌도록 하고
공자 백(伯)은 나의 차우(車右)가 되어라.
우리는 힘을 합쳐 북적(北狄) 놈들을 섬멸시켜야 한다.
이렇듯 위의공(衛懿公)은 죽음을 각오하면서, 다음날 아침 도성을
떠나, 형택(熒澤)에 도착하여 진채를 세우고 저녁 식사를 했다.
위의공(衛懿公)은 홀로 고심하다 늦은 밤이 되자, 가까운 군사들의
군막에서 이상한 노랫소리가 들려오자, 그는 귀를 기울였다.
주공께서는 왜 주무시지 않나이까?
아무래도 잠이 오지 않는구나.
군막(軍幕)에서 군사들이 노래를 부르는구나.
무슨 노래인지 다가가 보자.
위의공(衛懿公)이 노래를 부르는 군막에 다가가자, 군사들은
화톳불 주위에 모여 앉아 노래를 부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鶴食祿民力耕 (학식록민력경)
학은 국록을 받아먹고 백성들은 힘써 농사를 짓네.
鶴乘軒民操兵 (학승헌민조병)
학은 대부의 수레를 타는데
백성들은 호미 대신 무기를 들었네.
狄鋒厲兮不可攖 (적봉려혜불가영)
오랑캐의 창끝이 매우 날카로운데
어찌 감히 그들과 겨룰 수 있겠는가.
欲戰兮九死而一生 (욕전혜구사이일생)
싸우면 열 중 아홉은 죽을 터인데
왜 앞서 나아가 싸워야만 하는가.
鶴今何在兮 (학금하재혜)
지금 학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리고
而我瞿瞿爲此行 (이아구구위차행)
우리만 남아 두려움에 떨며 싸우려 하는가?
정작 사기가 높아야 할 위군(衛軍)은 부모 형제와 처자식을 생각하며
슬픈 노래를 부르면서, 모두 눈물을 글썽이며 맥이 풀려 있었다.
위의공(衛懿公)은 군사들이 부르는 노랫소리를 듣자,
너무 괴로워 밤새 몸을 뒤척이었다.
이른 아침이 되자, 선봉장 장수 황이(黃夷)가 서둘러 형택(熒澤)
들판에 나갔다가, 북적(北狄)의 진채(陣寨)에 사람도 별로 없고
허술하게 보이자, 살펴보고 나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주공. 선봉장 장수 황이(黃夷) 옵니다.
수만(瞍瞞) 부족은 다들 어디로 갔는지 1천여 명밖에
보이지 않으며, 질서도 전혀 잡혀 있지 않고
진채(陣寨)도 엉성한 것이 싸울 준비가 안 되어 있습니다.
북적(北狄) 오랑캐가 강맹(强猛) 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역시 오랑캐는 오랑캐입니다.
이참에 나아가 모두 전멸시키고 말겠습니다.
황이(黃夷)는 자신감을 가지고 북을 울리며 북적(北狄)의 진채를
습격하자, 북적(北狄)은 대항치 않으며, 패한 듯 달아나면서,
매복군이 있는 곳으로 유인하여 갔다.
저놈들, 위군(衛軍)을 포위하라!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어어. 이게 뭐냐?
북적(北狄)의 매복(埋伏) 군이 아닌가!
모두 북적(北狄)의 포위망을 뚫고 나아가라!
한순간에 숲속에서 신호가 오르자, 숨어있던 북적(北狄)의 매복군이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며, 위군(衛軍)의 선봉대를 삽시간에 포위하였다.
우리 선봉대(先鋒隊)가 포위당했다!
우리 중군(中軍)은 선봉대(先鋒隊)를 구하라.
대부 거공(渠孔0 부대는 빨리 진격하라.
이를 본 위의공(衛懿公)이 손수 북을 쳐 사기를 돋우며 일대 혼전이
일어났으나, 위(衛) 나라 군사들은 처음부터 싸울 마음이 없었기에,
점차 북적(北狄)에게 기선을 제압당하고 있었다.
공격하라. 물러나지 말고 싸우라.
위군(衛軍)은 도망가지 마라.
한 사람도 도망가지 말고 싸우라.
위의공(衛懿公)이 목청 돋우어 소리 높였지만, 이미 등을 보이고
달아나는 위군(衛軍)의 군사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었으며,
어느덧 위의공(衛懿公)의 주변에 있던 군사들마저 점차 흩어지고
있으면서, 병거대(兵車隊) 마저 많은 숫자가 너무 줄고 있었다.
위의공(衛懿公)의 주변에는 갑옷 입은 갑사(甲士)와
병거대가 별로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대신에 북적(北狄)의 기병(騎兵) 들은 모여들면서,
위의공(衛懿公)의 주변으로 에워싸기 시작했다.
위의공(衛懿公)이 대기(大旗)를 집어 들어, 또 지휘하려고 하자,
옆에 있던 장수 거공(渠公)이 황급하게 고함을 지르며 만류했다.
주공. 사태가 매우 매우 급합니다.
주공께서는 대기(大旗)를 버리시고, 수레에서
내리시어 적군을 속이고 달아나십시오.
알겠노라.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내가 대기(大旗)를 버린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거공(渠公) 장수는 잘 듣도록 하라.
나는 죽음으로써 백성들에게 사죄하겠노라.
우리 위군(衛軍)은 절대 물러서지 마라
우리 위군(衛軍)은 계속 공격하라!
위의공이 큰소리로 외치면서 끝까지 대기(大旗)를 흔들어대자, 이는
곧 신호가 되어, 마침내 북적의 오랑캐들은 위의공을 에워싸며,
칼과 창을 마구 휘두르면서, 점점 더 덤벼들기 시작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북적에 포위된 선봉대와 후군은 완전히 궤멸
당하였고, 선봉장 장수 황이(黃夷)는 전사하였으며, 후군 대장
공영제(孔嬰齊)는 자기 칼로 자기 목을 치고 자결하고 말았다.
이제 위의공(衛懿公)과 얼마 안 되는 친위대만 남게 되었다.
차우(車右) 공자 백(伯)이 적병의 칼에 죽었단 말이냐.
병거를 지휘하던 거공(渠公) 마저 사살되었단 말이냐.
탄식하던 위의공이 마지막으로 화살을 맞고 병거에서 떨어졌다,
이에 북적의 군사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수십 개의 창과 칼
들이 위의공(衛懿公)의 몸을 난자(亂刺)하였다.
그때는 해가 저무는 석양이었다.
저무는 석양 저편에서 때아닌 학(鶴) 이 모여들며
위의공(衛懿公)의 시신 위를 빙빙 돌다가
어느 사이에 그의 영혼(靈魂)을 다 같이 떠메고
길게 울부짖으면서, 황혼이 짙은 저편의
붉은 저승길로 한없이 날아가는 것이다.
한나라의 군주가 되는 복록(福祿)을 받으며, 태어난 위의공은
오직 학(鶴) 만을 사랑하다가, 뒤늦게 깨달으며 후회하였으나,
끝내 많은 백성을 죽도록 만들고는, 학(鶴)과 어울려 먼 곳으로
떠나가고 말았다.
제 174 화. 위나라는 망하는가.
'춘추 열국지( 101∼200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 175 화. 노래가 나라를 구해내고. (0) | 2023.06.21 |
---|---|
제 174 화. 위나라 끝내 망하는가. (0) | 2023.06.20 |
제 172 화. 학 아, 전쟁터에 나가자. (0) | 2023.06.18 |
제 171 화. 욕심에 몸이 쪼개지는가. (0) | 2023.06.17 |
제 170 화. 악연의 사랑은 어찌 될까. (0) | 2023.0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