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 열국지 301∼400 회

​제 304 화. 효산에서 위령제를 지낸다.

서 휴 2023. 1. 17. 17:35

304 . 효산에서 위령제를 지낸다.

 

한편 진양공晉襄公은 진군秦軍이 쳐들어오기 위하여 출정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자, 그해 겨울이 되자마자 송, , . 세 나라에

사신을 보내 연합군을 결성할 수 있도록 출병을 요청했다.

 

       이에 송나라는 대부 공자 성,

       진나라는 대부 원선轅選을 보내왔으며

       정나라는 대부 공자 귀생歸生

       대장으로 삼아 정군鄭軍을 보내왔다.

 

진양공晉襄公은 다시 선차거先且居를 대장으로 삼았고, 세 나라의

군사와 연합군을 결성하였으며, 진군秦軍의 공격을 기다리기보다는

선제공격先制攻擊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나라를 먼저 침공했다.

 

       이번은 백리시가 말을 받으러 왔던 보답이로다.

       패자국覇者國의 위엄을 단단히 보여주도록 하라.

 

       진군晉軍이 주도한 연합군이 먼저 하수河水를 건너

       진나라의 왕과 팽아彭衙, 두 고을 빼앗았다.

 

이번 싸움은 진문공晉文公이 죽은 이후, 두 나라 간에 세 번째

벌어진 싸움으로, 나라가 먼저 침범하여, 단지 두 고을만을

빼앗고는 지킬 군사를 남겨두고 조용히 본국으로 회군했다.

땅은 지금의 섬서성 징성현澄城縣에 있었으며, 춘추시대

때는 섬진령의 고을이었다.팽아彭衙는 풍익군에 있는 성으로,

오늘날 섬서성 백수현 동북쪽에 위치하였다.

 

       주공, 의 두 고을을 빼앗고 돌아왔나이다.

       기쁜지고, 두 고을은 백리시百里視가 지난번

       말을 받기 위해 쳐들어오며 가지고 온 선물이렷다!

       옛날에 곽언郭偃이 점괘를 얻은 바가 있었도다.

       한번 치니 세 번 상한다는 점괘였도다.

 

       이것은 진이 세 번 패배한 일을 말하는 것으로

       과연 그 점괘는 모두 맞았다고 할 수 있겠도다.

 

나라의 진양공晉襄公은 기뻐하였지만, 의 신료와 백성들은

자국의 영토에 침입하여, 두 고을을 빼앗기는 모습을 그저 보고만

있었다고, 진군秦軍의 백리시百里視, 서걸술西乞術, 건병蹇丙

비겁한 장수라고 몹시 비난하기 시작했다.

 

       ​주공, 면목이 없사옵니다.

       세 장수는 우리의 원수를 반드시 갚을 것이오.

       다만 아직 때가 이르지 않은 것뿐이오.

       때를 기다려 이기는 것이 장수가 아니겠는가?

 

진목공秦穆公의 믿어주는 말에 세 장수는 감격하였으며, 이에

일심 단결하여 군사를 보충하고 병거兵車를 수리하며, 다음 해

여름 5월이 되자, 진목공에게 전쟁을 감독해 주기를 청하였다.

 

       주공, 이제 우리 진군秦軍은 정예병이 되었나이다.

       주공, 이제 진나라와 일전을 겨뤄볼 만하나이다.

 

       좋도다. 이제 출전하여 이기도록 하라!

       ​주공, 이번에도 옛날의 원수를 갚지 못한다면

       맹세컨대 살아서 돌아오지 않겠나이다.

 

       진과의 세 번에 걸친 싸움에서 모두 패했도다.

       만약 이번에도 우리가 이기지 못한다면, 과인인들

       무슨 면목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겠는가?

       세 장수는 병거兵車 500승을 선발하고

       길일을 택해 진나라로 진격하도록 하라.

 

진목공秦穆公은 싸움터에 나가는 군사들의 집에 양식과 포목布木

후하게 나누어주면서 사기를 북돋우자, 모두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려고 하였으며, 군영마다 군사들의 사기士氣가 충만해졌다. 이에 

진군秦軍은 포진관蒲津關에 당도하여 모두가 하수河水를 건너갔다.

 

       포진관蒲津關은 포판관蒲阪關의 다른 지명이며

       섬서성과 산서성을 건너는 포구浦口가 있었으며

       포구 양쪽에 관문을 설치해서 사람들의 통행을 감시했다.

 

       섬서성 쪽의 관문은 임진관臨晉關 이며

       산서성 쪽의 관문은 포진관蒲津關 이었다.

 

진군秦軍은 하수河水를 건너가 모두가 모래사장에 정렬을 마치자,

백리시百里視가 다음과 같이 큰 소리로 명령하였다.

 

       타고 온 배들을 모두 불태워라!

       ​아니, 모든 배를 불태우라니 어떻게 돌아가려고

       어찌 이런 군령軍令을 다 내리는 것이오!

 

       주공, 이기지 못하면 돌아갈 수 없나이다.

       군사들이나 모두가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하나이다.

 

       그동안 우리가 세 번이나 패하다 보니

       오르지 이길 수 있는 방도는 이것뿐이옵니다.

 

       주공, 다행히 우리가 싸움에서 이기기만 한다면

       어찌 하수河水를 건너가지 못하겠나이까?

 

       주공, 우리 진군秦軍은 죽을 각오로, 오로지

       전진만 있을 뿐이며 후퇴는 없다는 것입니다.

       백리시百里視 대장, 참으로 훌륭한 생각이오!

하수河水를 건넌 백리시百里視는 스스로 선봉장이 되어,

영내를 계속 진격하여 왕관성王官城을 공격하고 함락시켜 버렸다.

 

       주공, 왕관성王官城이 함락되었나이다.

       진군秦軍이 가는 곳마다 모두 점령당하는구나.

 

       어찌하면 좋은지 어서 말을 해보시오.

       진군秦軍을 물리칠 계책을 세워야 할 것이 아니오!

 

진군秦軍이 거침없이 계속 쳐들어오자, 다급해졌다는 걸 알게 된

나라의 진양공晉襄公, 나라의 대소 신료들을 모두

조당朝堂에 모이게 하여 진군秦軍을 물리칠 계책을 세우게 했다.

 

       주공, 신 조쇠趙衰 이옵니다.

       진군秦軍은 분노가 극에 달해 있으며,

       온 국력을 기울여 죽을 각오로 싸울 것입니다.

 

       또한, 진목공秦穆公 도 친정親征을 하고 있어.

       우리가 직접 대적하면 불리해 집니다.

 

       차라리 싸움을 피하여, 잠시 그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가 적당한 기회를 보아,

       두 나라 사이의 분쟁을 종식해야 할 것입니다.

       ​주공, 중군 원수 선차거先且居 이옵니다.

       힘이 약한 미물微物도 궁지에 몰리면 사나워지는

       법인데, 하물며 진 나라야 오죽하겠습니까?

 

여기에서 곤수유투困獸猶鬪 라는 말이 나온다. 즉 짐승도 곤경에

빠지면 발악한다는 뜻으로,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이 되면 더욱

저항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진군秦軍 모두가 싸움에서 진 것을 치욕으로 여기고

       있을 것이며 또한, 세 장수는 모두 용기를 갖춘

       장수들일 뿐만 아니라, 그들은 싸움에서 이길 때까지

       그만두지 않을 굳은 결심으로 쳐들어온 것입니다.

 

       주공, 그들과 일단 전쟁을 벌이게 되면, 언제 싸움이

       끝날지 아무도 예측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주공,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보건대

       대사마 조쇠趙衰의 말씀이 옳사옵니다.

진양공晉襄公은 조당朝堂의 중론衆論을 들어 사방의 성읍城邑에게

지키기만 할 뿐, 절대 진군秦軍에게 대응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한편 진군秦軍의 요여繇余는 싸움에 응하지 않고 굳게 지키기만

하는 진군晉軍의 태도를 보고 있다가 진목공秦穆公에게 말했다.

 

       주공, 아무리 싸움을 걸어도 응하지 않고 있나이다.

       주공, 나라는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진나라의 영토에 아무 거리낌 없이 침공하여도

       겁을 먹은 진군晉軍은 그림자도 비치지 않습니다.

 

       주공, 지난 전투에서 치욕스럽게 죽어간 우리 군사들의

       시신이 효산崤山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사옵니다.

 

       주공, 이번 기회에 효산崤山에 올라가시어, 우리

       군사들의 시신을 거두어 주시면 어떠실는지요?

더는 진군晉軍과 싸울 수 없게 된바, 진목공秦穆公은 할 수 없이

요여繇余의 말에 쫓아, 즉시 진군秦軍을 이끌고 모진茅津에서

다시 하수河水를 건너 동효산東崤山에 이르러 진채를 세웠다.

 

모진茅津은 지금의 하남성 삼문협시三門峽市의 황하 대안對岸

있었던 고을로, 황하黃河를 건너던 나루터가 있었다.

 

       진목공을 비롯한 진군은 하늘로 올라간다는

       상천제上天梯를 바라보기도 하고

 

       말이 떨어질 만큼 위험한 타마애墮馬崖

       너무 높고 깊은 절명암絶命巖을 쳐다보며

 

       사람의 혼백도 흩어진다는 낙혼간落魂澗,

       귀신도 근심에 쌓인다는 귀수굴鬼愁窟을 보았다.

 

진군秦軍은 우리가 어찌 저렇게 험한 곳을 지나갈 수 있었냐며,

감회가 깊어졌으며,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아연俄然 해하였다.

 

       자, 모두 들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의 죽어간 시신과 해골들을 거두어

       풀을 베어 관처럼 만들어 모으도록 하라.

 

       골짜기 중에 평평한 곳을 찾아라.

       관들을 모두 그곳에 모아 매장하도록 하라.

 

진군秦軍은 죽어간 시신屍身과 해골骸骨을 다 모아 매장하고 나자,

다시 효산崤山에 제단을 준비하고 말을 잡아 희생으로 바쳤으며,

죽은 군사들의 혼령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소복으로 갈아입은

진목공秦穆公이 손수 술잔을 바치면서 소리 높여 울기 시작했다.

 

백리시百里視를 비롯한 모든 진군秦軍은 땅에 엎드려 통곡하면서

오랫동안 일어설 줄 모르며 눈물을 흘리지 않은 군사들은 한 명도

없었다. 이에 염선髥仙이 시를 지어 슬프게 노래했다.

 

       ​曾嗔二老哭吾師 (증진이노곡오사)

       옛날 출정할 때 두 노인에게 성을 내더니

 

       今日如何自哭之 (금일여하자곡지)

       오늘은 어이하여 스스로 곡을 하고 있는가?

 

       莫道封尸豪擧事 (막도봉시호거사)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잘 치렀다고 뽐내지 말라!

 

       崤山雖險本無尸 (효산수험본무시)

       효산이 비록 험하지만 본래 시신은 없던 곳이었다.

 

한편 진군晉軍에게 점령당하였던 왕과 팽아彭衙의 백성들은

자기들의 진군秦軍이 진나라에 쳐들어가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모두 용기를 얻어 진군晉軍의 선차거先且居

남겨두고 간 수장守將을 쫓아내 버리고 다시 진나라에 복속했다.

 

진군은 개선가를 부르며 옹성雍城으로 귀국했으며, 진목공秦穆公

백리시百里視를 아경亞卿으로 임명하면서, 두 서장庶長인 요여繇余,

공손지公孫枝와 함께 국정을 다스리게 했다.

 

       또한, 서걸술西乞術과 건병蹇丙 에게도 상을

       내리고 관작을 올려주었으며,

       또 포진관蒲津關이름을 대경관大慶關으로 바꾸어

       부르게 하여 이번에 출정한 군사들의 공로를 기리게 했다.

 

한편 서융주西戎主 적반赤斑은 진군秦軍이 진군晉軍에게 세 번이나

패하는 것을 보게 되자, 진군秦軍이 허약하다고 판단하여, 여러 부족을

선동하여 반기를 획책한다는 첩보가 나라로 들어왔다.

 

       서융주西戎主 적반赤斑이 쳐들어올 것이라고 하오

       우리 진군秦軍이 개선하여 돌아온 이 여세를 몰아

       군사를 서쪽으로 돌려 적반을 토벌하면 어떻겠소

 

       주공, 신 요여繇余 이옵니다.

       우선 격문을 써서 보내 적반의 태도를 보아가며

       군사를 일으켜도 늦지 않을 것이옵니다.

 

진목공秦穆公의 허락을 받은 요여繇余는 적반赤斑이 그동안

조공朝貢바치지 않은 것을 꾸짖으며, 당장 조공사를 보내지

않으면 군사를 이끌고 가서 토벌하겠다는 격문을 써서 보냈다.

 

       그때 서융주西戎主 적반赤斑은 옛날과 달리

       진군秦軍이 진군晉軍 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개선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는 즉시 서쪽 융족戎族24여 개 부족의 추장을

       이끌고 옹성雍城에 들어왔으며, 조공을 올린 후에

       진목공을 서방의 방백方伯으로 받들기로 맹세했다.

 

이에 대해 진목공이 대장 백리시의 능력을 믿고 여러 번의 패전에도

끝까지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기에 백업을 이룰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이후에 한 사관이 진목공에 관하여 논하기를

       천군의 병사는 얻기 쉬어도 한 사람의 장수는

       구하기 어렵다, 라는 말을 실천한 것이라 했다.

 

이 일로 인하여 진나라의 국위는 주나라 왕실에까지 전해졌으며

이에 주양왕周襄王이 윤무공尹武公에게 말했다.

 

       진과 진은 서로 그 국세가 비슷한 나라이다.

       두 나라는 선대에 왕실에 공을 세운 바가 크도다.

 

       옛날에 진의 중이重耳가 중원에서 회맹을 주재할 때

       짐이 왕명으로써 후백侯伯으로 임명했었노라.

 

       오늘 임호任好가 다스리는 진나라의 국세가

       진나라에 뒤떨어지지 않으니,

 

       역시 임호任好를 진과 같은 후백侯伯으로

       임명하고자 하는데 경의 생각은 어떠한가?

       왕이시여, 은 스스로 후백侯伯이 되었지만

       아직 진은 우리 왕실을 받들지 않고 있나이다.

 

       오늘날 진과 진이 서로 사이가 나빠져 있는데

       진양공晉襄公은 부친의 뒤를 이어 후백의 역할에

       아무런 잘못 없으며, 또한 잘 이행하고 있사옵니다.

 

       이런 판에 만약 왕실에서 진의 임호任好

       후백侯伯에 봉한다면 진은 몹시 싫어할 것입니다.

 

       후백으로 임명하기 것보다는 차라리 서융의 백주伯主

       되었음을 축하한다는 국서를 써서 보내시옵소서.

 

       그리하시면 임호任好는 감사하는 마음을 표할 것이고

       진후晉侯 또한 우리를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허허, 윤무공尹武公의 말이 옳도다.

305 . 퉁수 소리로 봉황을 부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