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 열국지 301∼400 회

제 302 화. 고모를 격분시켜 아버지를 죽인다.

서 휴 2023. 1. 14. 16:32

302 . 고모를 격분시켜 아버지를 죽인다.

 

초성왕楚成王은 큰아들 상신商臣을 세자로 세우려고 할 때,

항상 믿고 의논하던 투발鬪勃 장수를 불러 자문諮問을 받았다.

 

       왕이시여, 나라의 왕위 계승 문제는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유리하나이다.

 

       이는 세자를 정하고도, 나중에 똑똑한 아들을

       알게 되면, 바꾸려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은 옛날부터 당연한 일로 여겨져

       왔으며, 지금까지도 그대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왕이시여, 신이 상신商臣의 관상을 살펴본 바는

       눈이 벌과 같이 동그랗고, 목소리는 늑대처럼

       쇳소리를 내고 있어 성정이 매우 잔인할 것입니다.

 

       만약 대왕께서 상신商臣을 사랑하여 세자로 세우시고

       후일에 그를 싫어하시어, 상신商臣을 세자에서

       쫓아내려 하신다면, 반드시 변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초성왕楚成王은 투발鬪勃의 말을 듣지 않고, 상신商臣을 세자로

세워 자기의 뒤를 잇게 하고 반숭潘崇을 불러 태부太傅로 삼았다.

 

       투발鬪勃이 자기의 세자 책봉을 반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세자 상신商臣은 마음 깊이 원한을 품게 되며,

       나름대로 유사시를 대비하게 된다.

그때 마침 투발鬪勃이 허와 채를 구하기 위해 초군을 이끌고

출전하였으나, 한 번도 싸우지 않고 아무런 공도 세우지 못하고

돌아오자, 상신商臣이 초성왕楚成王에게 투발鬪勃을 참소했다.

 

       아바마마, 투발鬪勃은 진군晉軍의 양처보陽處父에게

       뇌물을 받아먹고, 퇴군의 명분을 만들었나이다.

상신商臣의 참소를 믿은 초성왕楚成王은 투발鬪勃을 만나주지 않고,

사람을 시켜 단검을 전하게 했다. 투발鬪勃은 스스로 무고한 죄를

밝힐 수 없다고 생각하자, 그 단검으로 목을 찔러 자결하고 말았다.

       왕이시여, 신 성대심成大心이 호소하나이다.

       진군晉軍 대장 양처보陽處父가 우리를 속이고

       퇴군하는 바람에 우리도 회군하게 된 것입니다.

 

       왕이시여, 대장 투발鬪勃에게 죄가 있다면

       신에게도 죄가 크옵니다.

       대장 투발鬪勃을 따라 신도 자결하겠나이다.

 

성대심成大心이 눈물을 흘리며 회군한 연유를 자세히 고하게 되자,

이에 초성왕楚成王은 성대심成大心의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경은 허물이 있다는 말을 하지 말라!

       과인도 투발의 자결을 후회하고 있노라!

초성왕楚成王은 이때부터 세자 상신商臣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기

시작했으며, 그 일 후에 나이 어린 아들 직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으며, 상신商臣을 세자에서 폐하고 직을 세우려고 결심했다.

 

그러나 상신商臣이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하여, 차마 폐하지!

못하고, 상신商臣이 잘못을 저지를 때, 죄를 물어 죽이려 했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주저하다 보니, 눈치 빠른

       내관이 세자 상신에게 남몰래 알려주게 된다.

 

상신商臣은 내관의 말을 믿지 못하고 주저하며 골똘히 생각하다가

태부太傅 반숭潘崇을 찾아가 의견을 물었다.

       세자는 서둘지 마시고 침착하십시오.

       먼저 그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알아야 합니다.

 

       스승님, 어떤 계책이라도 있으신지요?

       고모이신 강미江羋를 이용해 알아보십시오.

 

       고모 강미江羋는 부왕께서 어릴 적부터

       사랑하는 단 하나의 친 여동생입니다.

 

       강나라에 시집간 고모는 오랫동안 이곳 궁실에

       머물고 있으므로, 소문의 진위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강미江羋는 성격이 참을성이 없고 조급합니다.

       세자께서 연회를 베풀어 성심껏 대한 후에,

       강미江羋의 마음을 분노하게 만드십시오.

 

       강미江羋에게 화를 돋운다면 반드시 부왕과 궁실에서

       있었던 일을 입 밖으로 누설하고 말 것입니다.

태부太傅 반숭潘崇의 계책을 다 듣고 난 상신商臣은 곧바로 동궁에

호화로운 연회를 마련하고 고모 강미江羋를 모셔오게 했다.

 

       고모, 그동안 잘 모시지 못해 용서를 바랍니다.

       세자, 무슨 일이 있는 거요?

 

       아닙니다. 그저 정성껏 모시고 싶었습니다.

       호오, 세자의 정성에 감격하겠구려.

 

세자 상신商臣은 동궁東宮에 당도한 고모 강미江羋에게 깍듯이

절을 올리며 맞이하는 태도를 공손하게 하여 감격하게 했다.

 

       고모, 이쪽 상석에 앉으시지요.

       고모, 술 한잔 받으시오.

 

       으응, 내가 술이 약하니 조금만 따루어라.

       고모, 그래도 한 잔은 더 하셔야지요.

 

       호호, 세자에게 이렇게 공손한 면이 있었던가?

       고모, 어릴 때부터 얼마나 좋아했는지 아십니까?

       호호, 세자 고맙고 고맙소.

 

고모 강미江羋가 연회석의 상석에 앉자, 상신商臣은 술잔을 연거푸

권해 올리며 대하기를 극진히 했다. 그러나 술잔이 몇 순배 돌면서

분위기가 익어가자, 상신商臣의 태도는 점점 거만을 떨기 시작했다.

 

       너는 거기 있지 말고 술 좀 따루어 드려라.

       야 이년아, 고모에게 잘 좀 해드려라.

 

상신商臣은 어여쁜 시녀들도 많은데, 못생기고 나이 들어 음식이나

챙겨주는 여자를 시중들게 하면서, 점점 고모를 무시하는 행동을

서슴없이 거칠게 하면서 쳐다보지도 않았다.

 

       애야, 너는 참으로 어여쁘구나, 이리 오너라.

       너의 젖무덤이 너무나 이쁘구나.

       한번 보자, 뭐 부끄럽다고, 에 라이

 

고모 강미江羋가 보고 있음에도 상신商臣은 가까이 있는 시녀의

가슴을 만지다가 이제는 옷을 벗기려 하였다.

 

       세자, 왜 그러느냐. 체통을 지키도록 하라

       허허, 세자. 그만두지 않고 왜 그러느냐?

 

고모 강미江羋가 두 번이나 말을 걸며 만류시켰으나, 상신商臣

전혀 못 들은 척하고 쳐다보지도 않으며 더욱 거칠게 놀았다.

 

드디어 체면이 구겨진 고모 강미江羋가 크게 화를 내더니 벌떡

일어나면서, 음식상을 발로 차버리고 크게 소리 지르고 나간다.

 

       이 버릇없는 망나니 같은 놈아!

       네 행동거지가 이러하니 대왕께서 너를 죽이고

       직을 세자로 세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겠냐?

고모 강미江羋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상신商臣은 깍듯이 사죄하는

척 만류했으나, 고모는 너무 화가 나버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삐 가면서도 억울하다는 듯이 욕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모든 걸 짐작하게 된 상신商臣은 그때 밤이 깊었음에도 태부太傅

반숭潘崇의 집으로 달려가 고모와 있었던 이야기를 모두 털어놨다.

 

       세자가 지금 한 말이 모두 사실이오?

       스승님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그렇다면 세자께 몇 가지 물어보겠소?

       세자는 세자 자리를 동생 직에게 물려주고 나서

       어린 동생 직을 왕으로 모실 수 있겠소이까?

 

       스승님, 나이 많은 형이 되어, 어찌

       어린아이를 왕으로 모실 수 있겠습니까?

 

       세자, 세자께서 어린 동생을 모실 수 없다면

       다른 나라로 도망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도망을 가다니요? 그럴 이유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치욕스러운 일을 어찌하라 하십니까?

 

       세자, 동생 직을 왕으로 섬기든가, 그게 싫다면

       타국으로 도망가는 방법 외에 다른 수가 있겠소?

 

상신商臣이 계속해서 다른 방법을 일러 달라고 매달리자, 엉뚱한

야심을 품고 있던 태부太傅 반숭潘崇은 마지 못하는 듯이 말했다.

 

        한 가지 계책이 있기는 한데 해낼 수 있겠소?

       세자는 행동이 매우 재빨라야 하고, 또한 세자께서

       정말 해낼 수 있도록 큰 결심이 있어야 합니다.

 

       스승님, 죽음이 목전에 와 있는데

       무슨 일인들 어찌 망설이고 있겠습니까?

세자 상신商臣이 굳은 결심을 나타내자, 반숭潘崇은 상신商臣

귀에다 대고 뭐라고 속삭이더니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자, 이 방법밖에 없소이다.

       성공만 한다면 전화위복 轉禍爲福이 될 것이오.

       스승님! 꼭 그렇게 하고 말겠습니다.

상신商臣은 그날 밤으로, 미리미리 준비해 두었던 동궁의 군사를

동원하여 궁중에 변이 일어났다는 핑계를 대고 왕궁을 포위했다.

 

그 사이에 반숭潘崇은 검을 빼 들고 힘센 장사들을 거느리고

궁궐로 들어가더니, 곧바로 초성왕楚成王의 침전에 당도하였다.

       태부太傅 반숭潘崇은 무슨 일러 왔는가?

       왕이시여, 신 반숭潘崇이 말씀드리겠나이다.

 

       대왕께서는 왕위에 계신 지 이제 45년이 되었습니다.

       그간 큰 공을 이루셨으니 물러나실 때가 되었습니다.

 

       지금 나라 안의 사대부들은 새로운 왕이 서기를

       모두 매우 몹시 갈망하고 있습니다.

       청컨대 왕위를 세자에게 전하시기 바랍니다.

 

       세자에게 양위讓位 만을 바란다면 그렇게 하마!

       ​태부太傅는 과인을 어찌하겠는가?

       태부太傅는 과인의 목숨을 구할 수 있겠는가?

 

       한 나라에 어찌 군주가 둘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현 군께서 죽어야 새로운 군주가 설 수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살 만큼 사셨는데, 어찌하여

       그 나이가 되었음에도 살려고만 하십니까?

 

       그렇다면 한 가지 부탁이 있도다.

       조금 전에 곰 발바닥 요리를 시켰노라.

 

       그 곰 발바닥이 익기를 기다려 먹을 수 있다면

       내가 비록 죽는다 해도 한이 없겠노라!

       대왕께선 무슨 말씀을 그리하십니까?

       곰 발바닥 요리는 몇 날 며칠을 끓어야 합니다.

 

       대왕께서 시간을 끌고 있다가 외부로부터

       구원군이 오기를 기다리겠다는 것입니까?

 

       대왕이시여, 스스로 목숨을 끊으십시오!

       신이 꼭 손을 써야 하겠습니까?

태부太傅 반숭潘崇이 말을 마치면서 자기의 허리띠를 풀어 던졌다.

이때 초성왕楚成王은 천장을 쳐다보며 탄식했다

 

       지혜로운 그대 투발鬪勃 이여!

       그대의 말이 너무나 생각나는구나!

 

       그대의 말을 듣지 않아 스스로 화를 불렀구나!

       지하에서 그대를 무슨 면목으로 만나겠는가?

초성왕楚成王은 탄식의 말을 마치고 반숭潘崇이 던져 준 허리띠를

스스로 자기의 목에 걸었다. 이때 반숭潘崇의 장사들이 허리띠를

힘차게 잡아당기고 말았다.

 

       초성왕이 죽은 걸 알게 된 고모 강미江羋

       자기 때문에 오빠인 초성왕楚成王이 죽었다며

       울면서 목을 매어 자결하고 말았다.

 

이때가 기원전 626년의 겨울인 10월 정미일 丁未日로써,

주양왕周襄王 26년이며, 진양공晉襄公 2년이고, 진목공秦穆公

33년이었으며, 초성왕楚成王은 재위 45년에 일어난 사건이다.

 

초성왕楚成王은 자기 형을 시해하여 왕위를 차지하였으며, 이제는

자기 아들에게 시해당하게 되니, 하늘의 인과응보因果應報

언제나 분명하다면서, 염옹髥翁이 시를 지어 이 일을 탄식했다.

 

       ​楚君昔日弑熊艱 (초군석일시웅간)

       초성왕이 옛날에 형인 웅간을 죽이고 왕이 되더니

 

       今日商臣報叔寃 (금일상신보숙원)

       오늘 상신이 아비를 죽여 큰아버지의 원수를 갚았구나.

 

       天遣潘崇爲逆傅 (천견반숭위역부)

       하늘이 반숭을 보내 반역의 스승으로 삼게 했는데

 

       痴心猶想食熊蹯 (치심유상식웅번)

       어리석은 성왕은 죽기 전에 곰 발바닥 타령을 했도다!

상신商臣은 지체하지 않고 아버지인 초성왕楚成王이 갑작스러운

병으로 죽었다고 공표하고 스스로 초왕楚王의 자리에 올랐다.

 

상신商臣은 초목왕楚穆王으로 즉위하였으며, 태부太傅 반숭潘崇

태사太師높여 부르게 하였으며, 왕성의 군권을 관장하게 하고,

세자 시절에 쓰던 동궁東宮을 내주어 그곳에 살도록 해주었다.

 

       그때 영윤 투반鬪班은 초성왕楚成王이 피살된

       사실을 알게 되었으나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이 소식을 들은 상공商公 투의신鬪宜申은 조문을

       핑계 대며 영성郢城에 들어와서는 대부 중귀仲歸

       모의하여 즉위한 초목왕楚穆王을 죽이려 했다.

 

       그러나 이들의 모의는 사전에 누설되었으며

       사마 투월초鬪越椒가 두 사람을 살해해버렸다.

옛날 범땅의 무속인인 율사矞似가 친 점괘에서 초성왕楚成王,

성득신成得臣, 투의신 鬪宜申, 이 세 사람은 모두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으리라! 했는데, 지금에 이르러보니 그 점괘가 맞았다.

 

303 . 낭심, 죽을 곳을 택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