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 열국지 301∼400 회

​제 303 화. 낭심, 죽을 곳을 택하는가.

서 휴 2023. 1. 15. 20:28

303 . 낭심, 죽을 곳을 택하는가.

 

초목왕楚穆王을 죽이려고 모의하던 상공商公 투의신鬪宜申

대부 중귀仲歸를 죽이고 돌아온 투월초鬪越椒는 영윤令尹 자리를

탐하여, 초목왕楚穆王에게 영윤令尹 투반鬪班을 참소를 하게 된다.

 

       왕이시여, 투반鬪班이 하는 말을 들으셨습니까?

       무슨 말을 하였다는 것인가?

 

       영윤令尹 투반鬪班은 자기들 부자가 대를 이어

       우리 초나라의 정사를 맡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선왕의 크나큰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라며

       선군의 뜻을 거스를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선군의 뜻이란, 반드시 공자 직을 우리 초

       세자로 세워 왕위를 잇게 하자는 말입니다.


투의신鬪宜申은 일찍이 성득신成得臣과 함께 성복城濮 전투에

참여했다가 대패하게 되자, 초성왕楚成王이 패전의 책임을 물어

자결을 명했으나, 마침 사면을 받고 상땅으로 좌천되었었다.

 

       왕이시여, 투의신鬪宜申이 상땅에서 영성郢城

       들어온 것은, 실은 투반鬪班이 불렀기 때문입니다.

 

       이제 투의신鬪宜申이 잡혀 죽게 되자, 투반鬪班

       마음을 안정시키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고 있나이다.

 

       분명히 다른 음모를 꾸미고 있을 것입니다.

       왕이시여, 투반鬪班을 분명하게 살펴보셔야 하옵니다.

 

투월초鬪越椒는 명재상 투곡어토鬪穀於菟의 동생이었으나,

늘 높은관직과 권력을 꿈꾸고 있었으며, 그 성격이 음험하기로

치면 초목왕楚穆王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투곡어토鬪穀於菟가 죽은 후 그의 아들 투반鬪班이 영윤이 되자,

투월초鬪越椒는 몹시 억울하게 생각하면서 벼르던 중에 자기와

뜻이 통하는 상신商臣이 왕이 되자 적극적으로 앞장서게 되었다.


       왕께서는 영윤 투반鬪班을 조심하십시오.

       초성왕楚成王에게 많은 은혜를 입었다면서

       공자 직을 왕으로 모실 생각을 하고 있나이다.


초목왕楚穆王은 그렇지 않아도 역모를 두려워하여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던 차에 투월초鬪越椒의 참소를 자꾸듣자 마음이 흔들렸다.


       요즘 영윤 투반鬪班은 무얼 하시오?

       왕이시여, 요즘 조용히 지내고 있사옵니다.


       경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되겠소?
       무엇이든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경은 지금 곧 공자 직을 죽이고 오시 오.
       무슨 까닭으로 공자 직을 죽이려 하십니까?

       아무 죄 없는 공족公族을 죽여서는 아니 됩니다.

 

       너는 선왕의 뜻을 받들어 공자 직을 앞세워

       왕을 만들려고 반란을 꾸미고 있지 않으냐?


       왕이시여, 신은 반란을 생각해본 일이 전혀 없습니다.

       말이 많구나, 저자를 당장 죽이도록 하라!


초목왕楚穆王은 투반鬪班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뒤편에 감춰두었던

큰 망치로 부복俯伏 하고 있던 투반鬪班의 뒤통수를 내리치게 했다.
이 소식은 금방 공자 직의 귀에도 들어갔다.

 

       허 허, 공자 직은 어딜 가려고 하시오.
       사마司馬 , 나를 좀 살려주시오.

 

눈치 빠른 사마 투월초鬪越椒는 성문을 지키고 있다가 진나라로

도망가려던 공자 직을 붙잡아 한칼에 목을 베어버렸다.

       초목왕楚穆王은 투반鬪班을 죽이고 나서

       대부 성대심成大心을 영윤令尹 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성대심成大心은 깊은 병으로 곧바로 죽었다.
       마침내 투월초鬪越椒가 영윤令尹 자리를 차지했다.

       그가 맡고 있던 사마司馬에는 위가蔿賈가 올랐다.

 

초목왕楚穆王은 투반鬪班을 죽이고 나서 후회하게 되면서, 명재상

투곡어토鬪穀於菟가 초를 크게 부흥시킨 공을 인정하여, 그의

손자이며 투반鬪班의 아들인 투극황鬪克黃을 잠윤箴尹에 임명했다.

 

       ​잠윤箴尹은 초楚 나라에만 있던 관직 이름이며, 왕에게

       올바름을 간하는 업무와 외교와 군사활동에 참여했다

 

이때 진나라의 진양공晉襄公은 초목왕楚穆王이 부왕父王

초성왕楚成王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자,

마침 곁에 있던 조쇠趙衰의 아들인 조돈趙盾에게 물었다.

 

       조돈趙盾은 어찌 생각하는가?

       하늘이 마침내 무도한 초성왕楚成王을 벌한 것인가?

 

       주공, 초성왕楚成王이 비록 횡포를 부리기는 했으나

       그래도 예의로써 백성들을 교화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상신商臣은 부친을 무자비하게 죽였으니

       항차 다른 사람의 목숨이야 안중에 두겠습니까?

 

       머지않아 초목왕楚穆王의 화가 중원에 닥칠 것인바

       신은 그때가 몹시 걱정이 되옵니다.

조돈趙盾의 말대로 과연 몇 해가 지나지 않아, 초목왕楚穆王

초무왕楚武王 못지않은 무법자가 되었으며, 재위 4년 차인

기원전 622년에 초군楚軍을 사방으로 출동시켰다.

 

       제일 먼저 강나라를 그 후 육과 료를 차례로

       침략하며, 조용하던 한수漢水 일대를 군마로 짓밟으며

       중원中原에도 거센 회오리바람을 몰고 왔다.

 

       강나라는 진나라와 같은 영씨 성의

       제후국으로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식현息縣에서

       서쪽으로 20지점에 있었으며, 회수淮水

       강안江岸에 위치했던 작은 제후국이었다.

  

       육나라는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동북의 육안시六安市

       있었던 언과 성등의 작은 제후국이었다.

 

       료나라는 무나라고도 부르며 처음에는 희성姬姓

       제후국이었으나, 후에 고도皐陶의 후예로 교체되었다.

 

       료나라의 위치는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고시현固始縣

       북쪽으로 당시 여수汝水와 회수淮水가 합류하는

       곳에 있던 작은 제후국이었다.

 

한편 진과 진의 악화된 관계는 복수전으로 이어지며, 곧바로

매년 마다 군사충돌로 그 결과가 나타났다

 

       이 일로 인해 진나라는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의 힘을 진의 공격에 대비하는데 썼다.

 

한편 진나라는 진목공秦穆公 재위 35년에 진군秦軍을 출동시킨다.

이때가 진나라 진양공晉襄公 3년이었으며, 주양왕周襄王 28년으로,

기원전 625년인 봄 이월에 생긴 일이다.

 

       주공, 신 진군秦軍 대장 백리시百里視 이옵니다.

       주공, 효산喬山에서의 패배를 설욕하고자 합니다.

       장하도다. 반드시 진군晉軍을 무찌르고 돌아오라!

 

백리시百里視의 뜻을 장하게 여긴 진목공秦穆公이 진나라에

대한 정벌을 허락하자, 백리시百里視는 서걸술西乞術, 건병蹇丙

부장으로 삼아 병거 400승을 이끌고 출동하였다.

 

그때 진양공晉襄公은 세작細作을 풀어 진의 소식을 정탐하게

하고 있다가, 드디어 진군秦軍이 원수를 갚기 위해 쳐들어온다고

하자, 자신감을 가지고 웃으면서 말했다.

 

       진나라 세 장수가 이제야 과인에게

       인사를 드리고 말을 받아 가려고 오는구나!

 

       선차거先且居를 대장으로, 부장에는 조쇠趙衰,

       차우車右 장군에는 호국거狐鞫居를 임명하노니

       국경에 가서 진군秦軍을 막도록 하라.

 

진군楚이 출동하려는 순간에 낭심狼瞫이 개인적으로 모은 사병이

1백여 명이나 달려와서 종군시켜 달라고 자청하였다.

 

       선차거先且居 대장님! 우리도 함께 가겠습니다.

       목숨을 바쳐야 하는 전쟁이다.

       너희들은 죽어도 괜찮겠는가?

       대장님, 저희는 싸우다 죽으러 온 것입니다.

 

진군楚은 낭심狼瞫의 부대와 함께 출진하였고, 그때 진군秦軍

아직 진나라의 경계에 당도하기 전이었다.

 

       진군의 장수들은 나 선차거의 말을 들어보시오.

       이곳에서 진군秦軍을 기다려 싸우기보다는 차라리

       우리가 진의 경계로 쳐들어가 싸우는 것이

       우리 백성에게 피해도 적고 유리할 것이오.

 

진군晉軍의 장수들이 모두 동의하자, 선차거는 즉시 진군을 이끌고

서쪽으로 하수를 건넜으며, 마침내 진과 진두 나라의 대군은

팽아彭衙 라는 곳에서 조우遭遇 하게 되며 서로 진채를 세웠다.

 

팽아彭衙는 지금의 섬서성 징성현澄城縣 북서쪽 20지점이며

하수河水를 건너 락수洛水 강안江岸의 섬진 령의 고을이다.

       선차거先且居 대장님! 낭심狼瞫 입니다.

       작고하신 선진先軫 원수께서 이 낭심狼瞫

       용기가 없다 하시면서 저를 쓰지 않으셨소.

 

       더욱이 주군께서 내려 주신 차우車右 장군의

       자리마저 파직시키며 쫓아냈소!

 

       오늘 이 낭심狼瞫이 선봉에 서겠소이다.

       선봉을 자청하는 것은 저의 용기를 시험해 보기

       위해서이지, 결코 공이나 녹을 바라서가 아니라!

 

       오로지 옛날에 받은 치욕을 풀고자 함이오.

       이 낭심狼瞫의 청을 들어주시오!

낭심狼瞫은 이렇게 말하자마자 그의 친구인 선백鮮伯과 선두에

서더니, 같이 온 100여 명과 함께 대장 선차거先且居의 어떤

명령이 떨어지기도 진군秦軍의 진영으로 돌격해 들어갔다.

 

       갑자기 아무런 신호도 없이 낭심狼瞫의 일행은

       폭풍처럼 돌격하여 진군秦軍을 셀 수 없이

       살상하며큰 혼란에 빠트렸다.

 

       적진인 진군秦軍 진영을 살펴보던 선차거先且居

       진군秦軍이 낭심狼瞫의 일행으로 무너져 혼란에

        빠진 모습을 보고 진의 대군을 휘몰아 돌격하였다.

 

       선백鮮伯은 불행히도 건병蹇丙의 창에 찔려 죽었다.

       진군秦軍은 돌격해 오는 진군晉軍을 도저히 당해 내지

       못하고 크게 패하여 군사를 수습하면서 후퇴했다.

 

선차거先且居가 낭심狼瞫을 구출해 본영으로 데리고 와서 살펴보니

온몸에 상처투성이였다. 낭심狼瞫은 피를 한 말도 넘게 토하더니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진군晉軍은 전사한 낭심狼瞫

시신을 떠메고 개선가를 부르며 영성郢城으로 귀국했다.

       주공, 신 선차거先且居 이옵니다

       이번의 승리는 낭심狼瞫의 분전奮戰 때문이며

       소장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나이다.

       과인은 낭심狼瞫의 충성심을 찬양하노라.

       낭심狼瞫에게 상대부에게 행하는 예를 갖추어

       모든 신하는 장례행렬에 참석 토록 하라.

 

진양공이 낭심狼瞫의 공로를 높이 사며 후한 장례를 치러주자,

백성들은 인재를 알아보는 진양공을 칭찬하며 따랐다.

이에 한 사관이 시를 지어 낭심狼瞫의 용기를 칭찬했다.

 

     1. 壯哉狼車右 (장재랑차우)

         장하다, 차우 장군 낭심이여!

 

         斬囚如割鷄 (참수여할계)

         죄수의 목을 닭모가지 자르듯 했구나!

 

         被黜不妄怒 (피출불망노)

         쫓겨났으나 오히려 분노를 삭히어

 

         輕身犯敵威 (경신범적위)

         적진으로 몸을 날려 위엄을 세웠도다.

 

     ​2. 一死表生平 (일사표생평)

         한번 죽음으로써 영원히 사는 모습을 보였구나

 

         秦師因以摧 (진사인이최)

         진군은 이로 인하여 물러갔도다!

 

         重泉若有知 (중천약유지)

         만일 멀고 먼 구천이 있다고 한다면

 

         先軫應低眉 (선진응저미)

         선진은 마땅히 눈썹을 깔고 고개 숙였으리라!

 

한편 진목공秦穆公은 싸움에서 다시 패하고 돌아온 백리시百里視

비롯한 서걸술西乞術과 건병蹇丙에게 패전의 책임을 추공하지 않고

세 장수를 비난하는 말은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주공, 신 백리시百里視 또 패하고 돌아왔나이다.

       군법으로 죽음을 내리시옵소서.

 

       아니다, 그대들은 죽음으로 죄를 갚으려하나

       장수된 자는 패인을 분석하여 이겨야 되느니라.

 

오히려 옛날처럼 사람을 시켜 교외에 나가 세 장수들을 영접하도록

하고, 위로의 말을 전하며 군사에 관한 일을 계속해서 맡게 했다.

 

백리시百里視를 비롯한 서걸술西乞術과 건병蹇丙은 싸움에서 패배한

일을 스스로 부끄러워한 나머지, 모든 가재를 털어 싸움터에서 전사한

군사들의 가족을 위로하고 더욱 강한 군사로 거듭나겠다고 맹세했다.

 

       진군秦軍의 군사들은 오로지 충성스럽고

       의로운 마음으로 온힘을 다해 훈련을 거듭했다.

 

       한동안이 지나자, 진군은 거듭된 훈련으로 신체와

       정신이 단단해지자, 다음 해에 진을 정벌하려고 했다.

 

       ​나라의 진목공秦穆公은 덕과 신과 지혜를

       두루 갖춘 만만치 않은 군주였다.

 

       비록 진문공晉文公의 위세에 눌려 중원까지

       뻗어 나가지는 못했지만,

 

       이제는 언제든지 그럴 만한 능력과 야망을

       품고 있는 사람이었으며, 끈기 있게 세 장수를

       믿음으로 독려하며 추진하고 있었다.

 

304 . 효산에서 위령제를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