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 열국지 201∼300 회

제 300 화. 시신을 서로 교환하는가.

서 휴 2023. 1. 11. 16:49

300 . 시신을 서로 교환하는가.

 

선차거先且居가 병거兵車를 돌려 달아나자, 그가 패하여 도망가는

줄로 알게 된 백부호白部胡는 자신감이 생겨 1백여 기의 기병을

이끌고 그의 뒤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선차거先且居의 유인 작전에 말려든

       백부호白部胡가 대곡大谷 안으로 들어오자,

 

       란돈欒盾과 극결郤缺의 군사들이 매복하고

       있다가, 좌우에서 몰려나오며 일제히 공격했다.

 

       달아나던 선차거先且居 도 말머리를 돌렸으며

       백부호白部胡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포위망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사이에 뒤따라온 백여 기의

       기병들은 하나둘씩 모두 죽어가기 시작했다.

 

용감한 백부호白部胡는 마침내 죽을힘을 다하여 겹겹이 둘러싸인

진군晉軍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는데, 그의 용력勇力이 얼마나

놀라웠던지 진군晉軍은 감히 그의 앞을 막을 수가 없었다.

 

       휴 우, 이제 대곡大谷을 빠져나왔구나!

       허 허, 이제 오는가? 많이 기다렸도다.

       자, 이제 나의 화살, 맛을 보아라!

 

활에서 떠난 화살은 날아가 백부호白部胡의 얼굴을 정통으로

맞혔으며, 그의 몸이 앞으로 꼬꾸라지자, 그 틈에 진군晉軍

군사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백부호白部胡를 묶어 버렸다.

 

       얼굴에 명중한 화살이 머리를 관통하여 뒤통수까지

       튀어나온 백부호白部胡를 끌어다 병거에 실었을

       때는 이미 숨이 넘어간 뒤였다.

 

대곡大谷의 입구에서 활을 쏘아 백부호白部胡를 죽인 진

장수는, 바로 이번에 새로 임명된 하군 부장 극결郤缺 이었다.

 

       내 화살에 죽은 이 자가 누구냐?

       이자는 책주翟主 백부호白部胡 라고 합니다.

 

극결郤缺은 백부호白部胡의 목을 잘라내고는 원수 선진先軫에게

미리 알리라고 하였다. 그때 중군에 있던 선진先軫은 이 소식을 듣자

너무나 기뻐하며 하늘로 두 손을 높이 올리고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책주翟主 백부호白部胡가 이렇게 쉽게 죽이다니

       책과의 전쟁은 이제 끝난 것이나 다름없도다.

 

       이는 우리 주군의 복이로다!

       참으로 복이 있는 우리 주군이시구나!

 

크게 부르짖은 선진先軫은 즉시 목간木簡과 붓을 찾아 표문表文

작성하여 진양공晉襄公에게 올리도록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원수님, 어딜 가시렵니까?

       너희는 아무에게도 나의 간 곳을 알리지 마라!

 

선진先軫은 영채를 나와 병거兵車를 타고 책군翟軍에게로 향했다.

한편 백돈白暾은 그때까지 형인 백부호가 죽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백돈白暾 역시 형 백부호白部胡의 기질을 닮아 매우 용감무쌍했다.

 

       자, 용사들아, 나를 따르라!

       형님 백부호를 빨리 찾아야 한다!

 

       장수님, 저기 누가 달려오고 있습니다.

       병거兵車를 탄 걸 보니 진군晉軍 입니다.

 

백돈白暾은 형인 백부호白部胡를 구하기 위해 출동하려는 순간에

자기 진영 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한 대의 병거兵車를 보게 되었다.

 

       병거도 한 대고 탄 사람도 한사람이구나.

       장수님, 진군이 우리를 속이려는 것입니다.

 

진군晉軍의 유인작전誘引作戰 이라고 생각한 백돈白暾은 황급히

대도를 손에 들고 달려오는 병거에 대항하려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나 달려오던 병거는 백돈白暾을 쳐다보지 않고 귀신같이 무서운

용력을 발휘하여 책군翟軍이 몰려 있는 곳으로 달려가더니, 손에

들고 있던 창으로, 책군翟軍의 장수 세 명과 용사 20여 명을 찔러

죽였다. 그러나, 그의 몸에는 상처가 하나도 입지 않고 있었다.

 

       내가 책군翟軍의 장수와 병사들을 죽이지 않았다면

       나의 용맹을 알릴 수가 없도다!

 

       이 정도 했으면 이미 나의 용력을 알게 했으니

       책군翟軍을 더욱 많이 죽여서 무엇하겠는가?

 

       주공, 주공께서는 비록 신을 용서하려 했지만,

       내 어찌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겠소이까 

 

       주공, 나는 진나라와 싸우다 죽으려 했습니다

       주공, 이제 죽을 곳은 바로 이곳이 되었나이다!

 

이렇게 외친 진의 장수는 이제는 창을 어깨에 비스듬히 꼬나 잡고

치켜뜬 양쪽 눈꼬리가 찢어지면서 피가 흐르는 얼굴로 백돈白暾

향해 큰소리로 외치며 돌진해 오고 있었다. 바로 선진先軫 이었다.

 

       네 이놈들아여기가 어디라고 쳐들어왔느냐!

       네놈들을 하나도 살려 보내지 않으리라!

 

백돈白暾이 매우 놀라 뒤로 수십 보 물러서자, 궁수들이 활을 쏘아

죽이려고 했으나, 두꺼운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있었으므로

책군翟軍이 쏜 화살은 한 군데도 상처를 입히지 못하고 있었다.

 

       이놈들이, 이 선진先軫을 죽이지도 못하느냐?

       좋다, 갑옷과 투구를 벗어주마!

 

모두 벗어버린 선진先軫은 빈 몸이 되었으며 빗발치듯이 날아오는

화살을 맞고는, 마치 고슴도치가 된 몸으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러나 선진先軫의 몸은 이미 시체가 되었으나

       쓰러지지 않고 여전히 그 자리에 꼿꼿이 서 있었다.

 

백돈白暾이 선진先軫의 목을 베어 수급首級을 가져가려 했으나,

선진先軫의 시신이 꼿꼿이 서서 눈을 부릅뜨고 수염을 곤두세워

노려보고 있으므로 모두가 놀라면서 두려움이 생기게 되었다.

 

       이 사람은 진군晉軍의 원수 선진先軫 입니다.

       오, 그런가! 이렇게 훌륭한 장수였단 말인가?

 

       장군께서는 사람이 아니옵니다.

       장군은 죽어서 진실로 신이 되었습니다.

 

       장군이시어! 제가 우리 책나라로 모시고 가서

       제사를 지내 드리며 신으로 모시겠나이다.

 

       허락하신다면 서 있지 마시고 누우시기를 바랍니다.

       장군이시여! 그냥 서 계시는 뜻이 무엇이옵니까?

 

       장군이시여! 으로 돌아가길 원하십니까?

       이제 알겠나이다. 마땅히 보내드리겠나이다.

       제가 고국으로 돌아가시도록 해 드리겠나이다.

 

선진先軫을 알고 있는 사람이 백돈白暾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백돈白暾은 즉시 책군翟軍과 함께 선진先軫의 시신 앞에 정성껏

절을 올렸으며 이윽고 축을 끝내자, 그제야 서 있던 선진先軫

시신이 쓰러지면서 수레로 옮겨 눕힐 수가 있었다.

 

       백돈白暾 장수님,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무슨 일이 있었느냐?

       우리의 책주翟主께서 돌아가셨나이다.

 

진군晉軍이 쏜 화살에 책주翟主 백부호白部胡가 전사했다는 사실을

대곡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온 용사가 백돈白暾에게 알려주었다.

 

​       형님, 이제 아셨습니까?

       형님, 나라는 하늘이 돕기 때문에

       쳐들어가면 안 된다고 그렇게 간했잖습니까?

 

       형님, 마침내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       형님, 이 슬픔을 어찌 감당해야 하옵니까?

 

백돈白暾은 눈물을 흘리며 원수를 갚겠다고 하면서 선진先軫의 목을

베어내려고 하다가 백부호의 시신과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극결郤缺은 백부호白部胡의 수급을 들고서 여러 장수와 함께

중군 막사로 찾아가 선진先軫에게 바치려고 했다.

 

       선진先軫 원수 임은 어디 계시냐?

       어디로 가시는지 묻지 말라 하셨나이다.

 

       원수께서는 병거兵車 한 대만을 타고 영문 밖으로

       나가시면서 영채를 굳게 지키라고만 하셨습니다.

선진先軫의 아들 선차거先且居는 마음속으로 불안한 생각이 들어

장막帳幕 안을 살펴보다가 탁자 위에 놓인 표문表文을 발견했다.

       신 원수 선진先軫이 주공의 만수무강萬壽無疆

       빌면서 감히 주공께 글을 올리나이다.

 

       신은 주군에게 무례를 저지른 일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군께선 신에게 죄를 물어 죽이지 않으셨습니다.

 

       또 불러 중용하시니 다행히 싸움에서 이기게 되어

       주공, 신이 또 상금을 받게 되었나이다.

 

       주공, 신이 돌아가 상을 사양하고 받지 않는다면

       공을 세웠음에도 상이 없는 일이 되옵니다.

 

       그렇다고 만약 제가 상을 받는다면 이것은 주군에게

       무례를 저지른 신하에게 상을 내리는 일이 됩니다.

 

       공이 있는데 상을 내리지 않는다면 앞으로 장수들에게

       무슨 명분으로 공을 세우라고 권할 수 있겠으며,

 

       만일 주군에게 무례한 짓을 저지른 자에게 상을

       준다면 어찌 죄를 지은 자를 벌할 수 있겠나이까?

 

      주공, 그리되면 공과 죄가 뒤섞여 문란하게 되므로

      결코, 나라를 다스릴 수 없게 되고 맙니다.

 

       신이 홀로 병거兵車를 몰아 책군翟軍의 진영으로

       돌진하여 생을 끝내려고 하는 마음은

 

       책인翟人 들의 손을 빌려 주군에게 지은 죄를

       속죄하고 또한 책군翟軍을 물리치려 한 것입니다.

 

       신의 아들 차거且居는 대장으로 갖추어야 할

       지략이 있사오니, 마땅히 적소에 임용하시옵소서.

 

       신은 죽음에 임하여 외람되이 이 표문을 올립니다.

       주공, 만수무강萬壽無疆 하시옵소서

 

선차거先且居는 아버지 선진先軫의 표문表文을 다 읽고 나자마자

대성통곡大聲痛哭 했으며, 그리고 눈물을 뿌리며 말했다.

 

       제 부친께서 홀로 병거를 몰고 책군翟軍에게

       달려가신 것은 스스로 죽기 위해서요!

       나는 부친을 찾아 책군翟軍 진영으로 갈 것이오

       잠깐만 기다리시오어찌 혼자 가려 합니까

 

막무가내로 떠나려는 선차거先且居를 영채로 모여든 장수들이

모두 달려들어 진정시켰다.

 

       자, 모두 침착합시다. 어서들 앉으시오.

       먼저 원수의 생사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그런 연후에 군사들을 출동시키도록 합시다.

​       전초병이 보고드립니다.

       책주翟主의 동생 백돈白暾이 전할 말이

       있다며 사자를 보내왔습니다.

 

       책의 사자를 들여보내라.

       책의 사자는 무슨 일러 왔는가

 

       우리 임금 책주翟主와 귀국 원수 선진先軫

       두 분의 시신을 바꾸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부친이 정말 돌아가셨단 말인가

 

사자가 전하는 말을 들은 선차거先且居는 부친이 이미 세상을

떠났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다시 대성통곡했으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마음을 진정시키고 책군翟軍의 사자에게 말했다.

 

       내일 우리 진영 앞에서 진시辰時

       각기 시신을 가지고 나와 교환하기로 하자.

 

책국翟國의 사자가 돌아가자, 선차거先且居를 비롯하여 장수들은

모여서 이일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했다.

 

       책족翟族은 융족戎族이오.

       융족戎族은 속임수가 많소이다.

       내일 만반의 준비를 하고 만나야 하오.

 

       ​란돈欒盾과 극결郤缺은 전처럼 좌우 양쪽으로

       포진하여 숨어 있다가, 만약 양군이 싸우게 되면

       즉시 달려와 양쪽에서 협공하기로 합시다.

 

       호석고狐射古와 호국거狐鞫居는 원수가 계시지

       않으니 중군을 단단히 지켜야 할 것이오.

 

다음날 아침 진시辰時가 되자, 양쪽은 군사들을 이끌고 진채에서

나왔으며 출동하면서 서로 대치하게 되었다.

 

       양쪽은 각기 수레에 시신을 싣고 앞으로 나왔다.

       선차거先且居가 소복을 입고 혼자서 병거에 올라

       부친 선진先軫의 시신을 받으려고 했다.

 

선진先軫의 영혼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던 백돈白暾은 그의

시신에서 화살을 모두 뽑아내고 깨끗한 물로 염을 한후 향수를

뿌리고 자기의 비단 전포를 벗어 입혀서 수레에 실었다.

 

       선진先軫의 시신은 마치 살아있는 모습이며

       이에 수레에 싣고서 선차거에게 넘기려고 했다.

 

       진군晉軍도 역시 책주翟主 백부호白部胡의 수급을

       수레에 실어 책군翟軍 진영으로 보낸다.

 

그러나 책군翟軍이 보낸 선진先軫의 시신은 산사람 같았으나

진군이 보낸 백부호의 수급은 피가 엉겨 붙은 머리통뿐이었다.

이에 억울함을 참지못한 백돈白暾이 분노를 터트리고 말았다.

 

       진 나라 놈들아! 어찌 이렇게 속일 수 있단 말이냐

       어찌하여 온전한 시신을 보내주지 않는가?

       나는 선진先軫의 아들 선차거先且居 이다.

       너희가 백부호의 시신을 전부 찾아고 싶다면

       대곡大谷의 골짜기 시체더미에서 찾아가라

 

       뭐라고,이나쁜 놈들아

​       어찌 사람의 도리를 모른단 말이냐?

 

301 . 싸움을 청하고는 그냥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