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 열국지 201∼300 회

제 284 화. 군주가 유죄 판결을 받는다.

서 휴 2022. 12. 19. 23:02

284 . 군주가 유죄 판결을 받는다

 

진문공晉文公은 주양왕周襄王의 허락이 떨어지자, 왕자 호

자기가 묶고 있는 공관에 모시고 오게 하였으며, 제후들도 참관인

자격으로 좌정을 마치자, 이에 자리가 모두 정돈된 것을 보고는

천자의 명으로 위성공衛成公을 불러오게 하였다.

 

       위성공衛成公이 죄수가 되어 사람들 앞으로 끌려왔다.

       위의 대부 원훤元暄도 역시 같은 시각에 당도했다.

       위성공衛成公과 위의 대부 원훤元暄이 나란히 섰다.

       그 뒤에는 대부 영유寧兪, 침장자鍼庄子, 사영士榮

       나란히 서 있어, 이제 재판을 시작하게 되었다.

 

춘추시대春秋時代가 시작된 이래 그때까지, 한 나라의 제후와

신하 간에 소송을 벌이는 일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었다.

 

       역사상 서로 간의 불화不和가 수없이 생겼지만,

       대부분 자기 들의 힘의 논리에 의해 해결되었었다.

 

       신하가 힘이 세면 제후가 피살되거나 쫓겨났고,

       제후가 힘이 세면 신하가 주살 당하거나

       신하가 타국으로 망명하는 것이 기본이었으며

       물론 둘 사이에 타협을 보기도 하였었다.

 

어떻게 보면 회맹 석상에서 벌어지는 재판이므로 주양왕周襄王

판결할 일이었으나, 그러나 주양왕周襄王은 이 재판에서 빠졌다.

 

왕자 호는 양쪽의 관계되는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걸 확인하자,

준엄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군주와 신하가 맞대면하여

       시시비비를 따진 일은 예에 없었던 일인바

       군주 쪽에서는 다른 사람을 대신 내세워도 무방하오!

왕자 호가 즉시 위후衛侯를 공관의 한 방에서 기다리게 하자,

대부 영유寧兪는 위후衛侯의 곁을 따라다니며 단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으려 하면서 적극적으로 보호하려 했다.

 

       먼저 위의 대부 원훤元暄 부터 말하라.

       신 대부 원훤元暄은 빠짐없이 말씀 올리겠습니다.

 

       처음 위후衛侯가 초구성에서 탈출하여 양우襄牛

       피신할 때 숙무叔武에게 나라를 지키라고 하였나이다.

 

       원래 위후衛侯는 의심이 많은바 안심시키기 위해,

       신은 자진하여 아들을 위후衛侯께 인질로 보냈습니다.

 

       숙무叔武와 신이 천토踐土 회맹에 간 사이에

       위후衛侯는 우리가 군위를 넘본다고 의심하여

       신의 아들 원각元角을 살해하였나이다.

 

원훤元暄은 위후衛侯가 숙무叔武를 의심하여 믿지 못한 나머지

천견歂犬을 선발대로 보내고, 또한 천견歂犬이 숙무叔武를 살해한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말했다.

 

       위후衛侯를 대신할 사람은 앞으로 나오라.

       신 대부 침장자鍼庄子 이옵니다.

 

       그 일은 천견歂犬의 계속된 참소에 위후衛侯께서

       잘못 받아들여 생긴 일이므로 모두

       위후衛侯의 잘못으로 일어났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침장자鍼庄子는 이미 죽은 천견에게

       책임을 모두 미뤄서는 안 됩니다.

 

       천견歂犬이 처음에, 이 원훤元暄을 찾아와서

       숙무叔武 임을 옹립하자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때 신이 그의 말을 쫓았다면 어찌

       위후衛侯께서 환국하여 복위할 수 있었겠습니까?

 

       숙무叔武 임께서 형제간에 우애하는 진실한 마음을

       지니고 계셨으므로 이 원훤元暄은 천견歂犬

       유혹하는 말을 거절했습니다.

 

       위후衛侯가 만약 숙무叔武 임에 대해 의심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천견歂犬이 아무리

       참소했다, 해도 어찌 그 말을 들었겠습니까?

 

       이 원훤元暄이 아들 원각元角을 보면서

       위후衛侯를 잘 모시라고 말한 일은

 

       나의 마음에 아무런 사심이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밝히고자 한 것입니다.

 

       이 또한 아름다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위후衛侯는 무고한 아들을 의심하여 살해하였습니다.

 

       신의 아들을 살해한 위후衛侯는 똑같은 마음으로

       또한, 태숙 숙무叔武를 살해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 사영士榮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대 원훤元暄은 아들 원각元角이 살해된 원한을

       풀기 위함이지 태숙을 위해서가 아닌 것 같소!

       내 아들 원각元角이 죽자, 의 사마司馬

       몸을 빼내어 도망가라 하였나이다.

 

       신은 자식이 죽은 일은 사사로운 원한이지만

       나라를 지키는 일은 큰일이다. 라고 말했소.

 

       이 원훤元暄이 비록 보잘것없는 사람이지만

       감히 사사로운 원한 때문에 큰일을 그르칠

       수가 있느냐고 말했소.

 

       그때 신 원훤元暄은, 내 아들이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그날로 태숙 숙무叔武 임에게

       편지를 써서 진후晉侯에게 빨리 올리게 하여

       위후衛侯의 복위를 간청하도록 했었소.

       그때의 그 편지는 이 원훤元暄의 손으로

       직접 써서 태숙 숙무叔武 임에게 드린 것이오.

 

       이 원훤元暄이 자식의 죽음에 원한을 품었다면

       어찌 이러한 일을 기꺼이 할 수 있었겠소?

 

       신 원훤元暄은 위후衛侯가 일시적으로 잘못 저지른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좀 지나면 후회하고

       있을 것이라고 위후衛侯를 믿고 있었소.

 

       그런데 뜻밖에 다시 태숙임까지 함부로 살해하여

       용서받지 못할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를 줄은 몰랐소.

       신, 침장자鍼庄子가 한마디 하겠소이다.

       태숙이 위후衛侯의 자리에 뜻이 없었다는 사실은

       위후衛侯도 역시 이미 알고 계시는 일입니다.

 

       단지 천견歂犬의 손아귀에 놀아난 것뿐이지

       위후衛侯의 본마음에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소.

       허 어, 그건 말이 안 되오.

       위후衛侯가 태숙이 군위를 탐내고 있지 않다는

       걸 알았다면, 어찌하여 천견歂犬에게 벌을 주지 않고

       오히려 천견歂犬의 참소를 계속 들었겠소?

 

       또한, 무엇 때문에 다시 천견歂犬의 말을 쫓아

       천견歂犬을 앞서가게 하였으며

 

       도성에 당도하게 되자 천견歂犬으로 하여금

       선발대를 앞세워 먼저 성안으로 들여보냈겠소?

 

       그건 천견歂犬의 손을 빌려 숙무 임을 살해하려고

       계획했음이 분명한데 어찌 이를 몰랐다고 하시오?

원훤元暄의 답변에 침장자鍼庄子가 고개를 숙이고 더는 대꾸를

하지 못하고 침묵을 지키자, 사영士榮이 다시 일어나 변명했다.

 

       태숙이 비록 무고하게 살해당하기는 했지만

       태숙도 또한 위후衛侯의 신하가 아니겠소!

 

       예부터 신하 된 자가 그 군주로부터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고 할 수 있소이다.

 

       하물며 위후衛侯는 이미 천견歂犬을 잡아 죽였고

       또한, 태숙 님의 장례를 후하게 치러 주었소.

 

       이렇게 상벌을 분명하게 행했는데 어찌하여

       아직도 위후衛侯에게 죄가 있다고 주장하시오?

 

​       사영士榮, 그건 옳은 답변이라 할 수 없소.

       이 원훤元暄이 말하겠소.

 

       옛날 하나라의 걸왕桀王이 관룡봉關龍逢

       무고하게 살해하자, 나라의 탕왕湯王

       토벌하여 나라 밖으로 추방했소.

 

       다시 은나라의 주왕紂王이 충신 비간比干

       무고하게 살해하자 주나라 무왕武王이 토벌했소.

       탕왕과 무왕은 모두 걸왕과 주왕의 신하였소.

 

       충성스럽고 훌륭한 신하들이 죄도 없이 살해당하는

       모습을 본 탕왕과 무왕은, 즉시 의로운 군사를 일으켜

       그 군주 되는 자를 죽여 백성들을 위로했던 것이오.

 

       하물며 태숙은 위후와 피를 나눈 친 형제간이며

       또한, 나라를 지켜 낸 공이 있는 사람이라 관룡봉이나

       비간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한 사람이오.

 

       우리 위나라는 비록 후작으로 봉해진 나라이기는 하나,

       위로는 천자를 모시고 밑으로는 방백의 명령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있는 제후국 중의 한 나라요.

 

       위후衛侯는 걸왕이나 주왕처럼 천자의 고귀한 지위도

       없으며 사해四海에 걸친 부를 가지고 있지도 못하오.

       그런데 어찌하여 죄를 받지 말라고 하는 것이오?

 

       허허, 이 사영士榮이 말하겠소이다.

       그대의 말대로 위후衛侯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한들

       그대는 위후衛侯의 신하 된 사람이 아니요

 

       신하 된 자가 자기의 주군을 위하여

       모든 정황을 충심으로 받들어야 하거늘

 

       어찌하여 그 군주가 입국하는 마당에 그대는

       오히려 나라 밖으로 도망쳐버렸으며

 

       어찌 신하 된 자로 군위에 복귀하는 주군에게

       경하의 인사를 드리지도 않았소?

       도망친 것이 무슨 도리라고 보는 것이오?

       이 원헌元暄에게 태숙과 함께 나라를 지키라고

       명한 사람은 사실은 위후衛侯 이었소.

 

       위후衛侯가 자기의 동생인 태숙도 용납하지 못하고

       죽이는데 어찌 이 사람인들 용납했겠소?

 

       이 원훤元暄이 나라 밖으로 도망친 이유는

       죽음이 두려워하여 목숨을 탐해서가 아니라

       태숙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서였소.

 

이때 진문공晉文公은 쌍방 간에 오가는 변론과 진술을 다 듣고

나자 왕자 호에게 말했다.

 

       세 사람 사이에 오고 가는 말을 들어보니

       그 일의 전말顚末을 모두 알 수 있겠습니다.

 

       원훤元暄이 하는 말은 모두가 이치에 맞습니다.

       위후衛侯 은 곧 천자의 신하 된 자입니다.

 

       위후衛侯의 처분은 감히 제 마음대로

       처리하지 못하겠으니 우선 그 신자 된

       자들부터 형을 집행해야 하겠습니다.

 

진문공晉文公은 왕자 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하자, 즉시

좌우를 돌아보며 호령을 하면서 말하였다.

 

       위후衛侯를 따라온 신하 된 자들은

       한 놈도 남김없이 모두 죽여버려라!

       진문공晉文公은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이 호가 할 말이 있습니다.

 

진문공晉文公이 소송에 대하여 위후를 따라온 영유寧兪, 사영士榮,

침장자鍼庄子를 참수시키려 하자, 왕자 호가 이의를 달고 나왔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위후衛侯를 따라온

       영유寧兪 란 사람은 위나라의 현인이라 하오.

   

       그가 형제지간의 마음을 조정하느라 마음속 고생이

       매우 심했을 것이나 결국, 위후衛侯가 듣지 않았으니

       그로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옥사에서 영유寧兪를 함께 포함하여

       죄주는 일은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처사가 되어

       너무 가혹한 판결이라 할 수 있소이다.

 

       이 송사는 영유寧兪 와는 무관한 일이니

       그에게 누가 되게 한다면 안 될 것입니다.

 

       사영士榮은 위나라의 사사士師의 일을 대신

       행했을 뿐만 아니라, 그 이치를 따지는 논리에

       억지가 심하여 그 죄가 제일 크다고 하겠으며

 

       침장자鍼庄子가 원훤元暄의 말에 대꾸하지

       못한 것은 그 스스로 도리를 알고 있는 듯하니

       그 죄를 감하여 사형만은 면하게 해주기 바랍니다.

 

       오로지 진후께서는 잘 생각하시어

       열국의 제후들에게 본보기를 보이시기 바랍니다.

 

진문공晉文公이 왕자 호의 권하는 말과 같이 사영士榮

참수형에 처해 죽이고 침장자鍼庄子는 한쪽 다리를 자르게

했다. 그러나 대부 영유寧兪는 그 죄를 사면하여 불문에 부쳤다.

 

285 . 귀신의 힘을 빌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