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 열국지 201∼300 회

​제 283 화. 신하가 군주와 옥사를 벌린다.

서 휴 2022. 12. 18. 14:44

283 . 신하가 군주와 옥사를 벌린다.

 

       주공, 그보다는 천자를 왕궁이 아닌 다른 장소로

       불러내어 맹회를 여는 게 좋을 것입니다.

 

       천자를 다른 장소로 불러내면 맹주의 명분도

       서게 될 것이며, 왕실의 재정부담도 덜게 되고

       천자의 번거로운 행차도 간편해질 것입니다.


선진先軫과 호언狐偃의 제안이 현실에 적합하지 않다며, 회맹 장소를

왕궁이 아닌 다른 곳으로 정하여, 취약한 왕실의 재정에 부담도 주지

않고, 또한 주양왕周襄王이 행차하는 데 따른 번거로움에서 피하는

다른 장소로 불러내자는 조쇠趙衰의 말에 모두가 의아해하였다.

 

       다른 장소라면 어디가 적당하겠소?
       주공, 남양의 온읍溫邑은 왕성과 매우 가까우며

       천하의 한 가운데 있어 적합한 장소가 되옵니다.

 

       주공, 온읍溫邑에는 세 가지 이로운 점이 있나이다.

       첫째는 왕궁과 가까워 서로 의심하지 않을 곳이며

       두째는 천하의 중심인바 수고로움을 덜하게 되옵니다.

 

       세째는 옛날 태숙 대가 지은 궁궐이 있는바

       임시 왕궁을 다시 짓는 번거로움이 없는 곳입니다.

 

​       따라서 천자를 온읍溫邑에 임하게 한 후에

       주군께서는 제후들을 이끌고 조현朝見을 행하십시오.

 

       조쇠趙衰, 우리가 청한다고 온읍溫邑으로 오시겠소?

       주공, 어찌 불가하다는 생각을 하십니까?

 

       천자는 우리 진晉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기뻐하시고

       계실 것이므로, 즐거운 마음으로 온읍溫邑에 납시어

       제후들의 조현朝見을 받으실 것입니다.


       제후가 천자를 왕성 밖으로 불러내도

       왕실의 예법에 어긋나지 않겠는가?


       주공, 당연히 예법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어찌 온읍溫邑에 모실 수 있겠소?

       주공, 뜻이 있는 곳에 어찌 길이 없겠나이까?

       주공께서는 왕실에 사자를 보내시어

       천자에게 온읍溫邑으로 사냥을 나오게 청하십시오.

 

       그런 후에 주공과 제후들이 사냥 나온 천자를

       찾아뵙게 하는 형식을 취하게 된다면

 

       조금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며

       회맹은 자연스레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왕실에 가야 하겠소?

       신이 왕실에 사자로 가서 천자께서 반드시

       온읍溫邑에 납시어 조현朝見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조쇠趙衰의 제안에 진문공은 즉시 사자로 삼아 왕실에 보냈으며,

왕도에 도착한 조쇠趙衰는 주양왕周襄王을 알현했다.

 

       진의 군주이신 중이重耳가 천자께서 방백으로

       책봉하신 은혜에 보답하고자 제후들을 거느리고

       왕성에 들어와 조현朝見의 예를 행하고자 하나이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천자께서는

       삼가 중이重耳의 청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       알겠소. 짐이 생각해 볼 것이오.

       잠시 영빈관에서 기다려 보시 오.

 

왕실의 어려운 형편을 아는 주양왕周襄王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조쇠趙衰가 물러가자, 즉시 왕자 호를 불러들였다.

       진후晉侯가 제후들을 거느리고 왕성에 와서

       조현朝見의 예를 행하겠다고 청하는데

       진후晉侯의 본마음을 알 수가 없으니

       어떤 구실을 붙여 물리쳐야 하겠는가?

 

       신이 우선 진의 사절을 한번 만나 그 뜻을

       살펴보고, 이유가 부합하지 않으면 거절하겠나이다.

왕자 호 주양왕周襄王의 면전에서 물러 나오자, 관사에 묵고

있는 조쇠趙衰를 찾아가 조현朝見의 일에 관해 물어보게 되었다.

 

       진후晉侯께서 왕실을 받들어 제후들을 이끌고

       이미 행하지 않는지 오래된 조현朝見의 예를

       새삼스레 거행하고자 하시는 일은

       진실로 왕실의 큰 복이라 할 수 있겠소이다.

 

       다만, 열국의 수레와 병거 들이 물고기의 비늘처럼

       한꺼번에 수없이 많이 몰려들어 오게 되면,

       그 행렬로 왕도의 길이 막히게 될 것입니다.

 

       혹여, 아직 그러한 광경을 한 번도 보지 못한

       백성들이 망령되게 함부로 의심하여

       갑자기 난리가 났다는 요언을 퍼뜨리거나,

 

       혹은 서로 비방하면서 조소하게 되어,

       오히려 진후晉侯의 충성스러운 일편단심의

       뜻을 저버리지나 않을까 크게 걱정되는 바이오,

 

       조쇠趙衰께서는 진후晉侯를 잘 이해시키시어

       그만두게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소이다.

 

       저희 군주께선 천자를 뵙고 싶은 지극한 생각에

       소신이 나라를 떠날 때 이미 각국의 제후들에게

       조현朝見의 소집을 알리는 격문을 모두 띄워

       온읍溫邑에 일제히 모이라고 했습니다.

 

       만약에 이 일을 폐하여 조현朝見을 거행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왕실의 일이 아주 우스꽝스럽게 될 것입니다.

 

       소신은 감히 돌아가 저희 군주께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합니까?

       소신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지만

       차마 말씀을 올리지 못하겠습니다.

 

       조쇠趙衰께서는 어떤 좋은 계책이 있으면서

       감히 명을 따르지 않으려 하십니까?

       왕자 호, 옛날부터 천자께서는

       열국을 순수巡狩 하신 전례가 많기도 합니다.

 

       그 목적은 사방을 두루 시찰하시면서

       백성들의 생활을 살펴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천자께서 만약 순수巡狩를 행한다는 명분으로

       어가를 움직이시어 온읍溫邑에 오시면 됩니다.

 

순수巡狩는 천자天子의 필요에 따라 제후諸侯가 지키는 영토領土

두루 돌아본다는 뜻이 되며, 봄에는 백성百姓 들의 경작耕作 하는걸

살펴보면서 부족不足 한 것을 보충補充 해 주고, 가을에는 백성들의

수확收穫 하는 것을 살펴서 모자라는 것을 보조해 주었다.

 

이때의 주 왕실의 재정은 워낙 취약脆弱 하여, 주양왕周襄王

도울 힘이 없다는, 이러한 약점을 조쇠趙衰가 잘 파고든 것이다.

 

       천자께서 온읍溫邑에 당도하는 그때

       저희 진후께서도 제후들을 인솔하여

       조현朝見의 예를 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리되면 위로는 왕실의 존엄을 잃지 않으며

       밑으로는 저희 군주님의 지성스러운 충성 된

       마음을 저버리지 않을 수 있게 되나이다.

 

       왕자 호께선 어찌 생각하십니까?

       그 계책은 진실로 상하가 모두 만족할 만한 합니다.

       돌아가 천자께 주청드려 허락을 받아 내겠습니다.

 

왕자 호가 왕실에 입조하여 조쇠趙衰가 제안한 내용을 전하자,

그때야 주양왕周襄王은 크게 기뻐하여, 그해 겨울 시월 초하루

날을 택하여 온읍溫邑의 하양河陽 땅에서 회맹을 열기로 약조했다.

 

       주공, 신 조쇠趙衰 왕실에 다녀 왔나이다.

       주양왕周襄王께선 조현朝見의 예를 행한다고

 

       이번 겨울 시월 초하루에 제후들을

       온읍溫邑의 하양河陽 땅에 모이라고

       천하에 널리 알리라 하셨나이다.

 

       호오, 묘안妙案을 완벽하게 시행하고 오다니!
       조쇠趙衰는 과연 태공망太公望 이라 부르겠소!

 

진문공晉文公은 조쇠趙衰의 능수능란한 수완에 감탄하였다.

이윽고 약정한 시월 초하루가 가까워졌다.

 

제소공齊昭公 을 비롯해 송성공宋成公 왕신王臣이 당도했으며, 

이어서 노희공魯僖公 申, 채장공蔡庄公 갑오甲午, 진목공秦穆公

임호任好, 정문공鄭文公 등이 줄지어 당도하였다.

 

       진문공晉文公은 안녕하셨소?

       진목공秦穆公 임께선 어서 오십시오!

       지난 천토踐土 때는 길이 멀어 회맹의 날짜를

       넘기지나 않을까 하여 길을 떠나지 못했소.

 

       이번엔 꼭 참석하여 제후들의 맨 말석에나마

       서 있으려고 이렇게 오게 되었소이다.

 

진문공晉文公은 먼 길에도 불구하고 회맹에 참석해 주시어

고맙다며 진목공秦穆公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올렸다.

 

       그때 진나라는 진목공陳穆公이 죽고,

       세자 삭이 새로 진후陳侯의 자리에 올라

       상중이었으나, 의 위세에 눌리다 보니

       상복을 입은 채로 참석하게 되었다.

 

       주와 거두 나라는 소국이라

       참가할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한편 위성공衛成公은 자신이 지은 죄를 알기 때문에 맹회盟會에

참석하지 않으려 했으나, 영유寧兪 등이 거듭 간하게 되었다.

 

       주군께서 만약에 참석하시지 않으신다면

       죄가 더욱 무거워져 회맹이 끝나면, 진후는

       반드시 우리나라에 토벌군을 보낼 것입니다.

 

위성공衛成公은 할 수 없이 대부 영유寧兪, 침장자鍼庄子, 사영士榮,

이 세 사람을 대동하고 온읍溫邑의 하양河陽에 당도하였으며,

곧바로 진문공晉文公에게 접견을 청했다.

 

그러나 진문공晉文公은 만나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군사를

보내 위성공衛成公과 그 신하들을 모두 잡아 감금시켜 버렸다.

 

       이때 오직 허나라 만이 여전히 옛날부터

       시종일관 초나라 편에 섰기 때문에

       명에 따르지 않고 맹회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온읍溫邑의 하양下陽에 당도한 제후는 구금된 위성공衛成公

제외하고, , , , , , , , , ,

莒, 등을 합해 모두 열 명이었다.

 

       제후들은 한 곳에 모두 모여 서로 상견례를 치렀다.

       그다음 날 주양왕周襄王의 어가가 회맹 장에 당도했다.

 

       진후晉侯가 제후들을 인솔하고 천자를 마중하여

       이윽고 임시 왕궁의 어전에 들어가 옥좌에 앉자

       제후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조현朝見의 예를 올렸다.

그다음 날 오시午時가 되자, 면류관冕旒冠과 화려한 예복을 잘

차려입은 열국의 제후들이 소리도 요란한 값비싼 패옥佩玉

늘어트리고 위풍도 당당히 왕궁에 들어서자, 뜰 안을 가득 메운

무희舞姬 들이 앞으로 나오며 북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흔들어대는 무희舞姬 들의 옷자락이 마치

       꽃잎을 흔들어대는 듯 현란하게 나부끼며

       뭇시선을 받아내며 흥을 돋웠다.

 

       무희들의 흥겨운 춤사위가 끝나자,

       제후들은 각기 자기가 다스리는 땅의

       주인 자격으로 천자께 공손히 보고하면서,

 

       자기 지방에서 나오는 특산물을 수레에

       가득 실은 채로 조공을 바쳤다.

 

       천자의 즐거운 안색을 흐뭇하게 쳐다보며

       내려진 작위에 따라 예를 취하는데

       그 태도가 공손하기 그지없었다.

 

온읍溫邑의 하양河陽에서 시행한 조현朝見 의식은, 천토踐土에서

행한 맹회盟會 의식보다 더 화려하고 더 엄숙하였다.

조현朝見의 예를 행한 일에 대해 노래한 시가 있어 읽어본다.

 

     1. 衣冠濟濟集河陽 (의관제제집하양)

         화려한 의관의 제후들이 하양 땅을 가득 채우고

 

         爭睹云車降上方 (쟁도운거항상방)

         수많은 수레에 실은 조공품을 다투어 바치는구나!

 

         虎拜朝天鳴素節 (호배조천명소절)

         천자를 배알 하는 제후들이 자기의 지조를 밝히자

 

         龍顔垂地沐恩光 (용안수지목은광)

         천자는 용안을 들어 굽어보시며 은혜를 베푸시네.

     2. 酆宮勝事空前代 (풍궁승사공전대)

         풍경酆京은 주나라 위엄을 전례 없이 드높였으나

         (땅은 서주西周가 도읍을 정한 곳으로 호경鎬京

          이라 했으며, 지금의 섬서성 호경鎬京 부근이다.)

         郟鄏虛名慨下堂 (겹욕허명개하당)

         겹욕郟鄏의 궁궐은 허명만 남아 땅에 떨어지게 되었다.

         (겹욕郟鄏은 동주東周가 도읍으로 정한 낙읍洛邑 일대)

 

         雖則致王非正典 (수즉치왕비정전)

         비록 왕을 모셨다고 하나 올바로 한 일이 아니었네

 

         托言巡狩亦何妨 (탁언순수역하방)

         순수를 핑계로 불러내다니 어찌 무방하다 하리 오?

​​

조현朝見 의식이 끝나자, 진문공晉文公은 계획한 대로 위나라

태숙 숙무叔武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주양왕周襄王에게 고하면서

왕자 호로 하여금 소송에 관한 판결을 해달라고 청했다.

 

284 . 군주가 유죄판결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