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 열국지 201∼300 회

제 275 화. 패한 자의 갈 곳은 어디인가.

서 휴 2022. 12. 5. 14:06

275 . 패한 자의 갈 곳은 어디인가.

 

선진先軫은 진문공晉文公의 명을 받들어, 즉시 휘하장수들에게

초군楚軍의 뒤를 더 쫓거나 더 죽이지 말라는 영을 내렸다.

이 일에 대해 호증 선생이 시를 지어 노래했다.

 

​       避兵三舍爲酬恩 (피병삼사위수은

       초군에게 삼사를 후퇴하며 은혜를 갚으려 했네

 

       又誡窮追免楚軍 (우계궁추면초군)

       다시 영을 내려 궁지에 몰린 초군을 쫓지 말라 하였네.

 

       兩敵交鋒尙如此 (양적교봉상여차)

       싸우는 두 나라도 은혜를 못 잊어 하거늘

 

       平居負義是何人 (펑거부의시하인)

       옳음을 버리고 사는 사람은 어찌 된 사람일까?

 

이로써 초군 진영에 참가했던 진, , , 의 연합군

장수들과 군사들은 참혹한 전쟁으로 태반이 죽었으며, 살아남은

자들은 제각기 흩어지면서 목숨을 구하여 본국으로 돌아갔다.

추월초鬪越椒와 성대심成大心은 진군의 포위망을 무너뜨리면서

수많은 초군의 군사들을 이끌고 겨우 탈출하여 모일 수 있었다.

 

       아직 진군晉軍 과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대채待寨 진지에서 전열을 가다듬을 것이며

       다시 한번 자웅을 겨뤄 반드시 이기고 말리라!

 

성득신成得臣은 휴땅에 세워둔 대채待寨 진지로 힘없이

가면서 너무나 억울하게 패한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면서

눈물을 머금으며 진군에 대한 복수심을 더욱 불태우게 되었다.

그때 앞에서 전초병이 달려오더니 급하게 보고하였다.

 

       원수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냐! 어서 말해보라!

 

       속히 병거兵車를 딴 곳으로 돌려야 합니다.

       우리 대채待寨 진지엔 제군齊軍과 진군秦軍

       두 나라가 벌써 점령하여 깃발이 나부끼고 있습니다.

 

       아니 정말이란 말이냐?

       언제 그리 빨리 움직였더란 말이냐?

 

선진先軫 원수는 제군의 국귀보國歸父와 진군의 소자은小子憖에게

초군 진영 부근에 매복하면서 기다리다가, 성득신成得臣이 중군을

이끌고 나오면 곧바로 휴땅의 대채 진지를 급습하여 초군楚軍

군량과 마초와 일체의 치중들을 노획하라고 명했었다.

 

       휴땅의 대채待寨 진지는 모든 군수품과 식량을

       보관하는 곳이므로, 그곳을 빼앗겼다는 것은 곧

       더 싸우거나 버틸 수도 없다는 것을 말한다.

 

초군은 감히 대채 진지로 향하지 못하고 할 수 없이 유신산有莘山

뒤편의 험한 길을 택하면서 힘들더라도 우회하며 진군과의 싸움을

피하면서 수수睢水의 강변을 따라 초나라로 회군하려 하였다.

 

그때 투의신鬪宜申과 투발鬪勃 도 각기 좌군과 우군의 살아남은

패잔병들을 수습하여 급히 오다가 성득신의 본대를 만나게 되었다.

 

       성득신 원수님, 힘을 내십시오.

       이곳이 공상空桑 이라는 곳입니다.

 

       이 공상空桑을 지나면 우리 초의 땅이 되며

       ​조금만 더 가면 연곡성連谷城이 나옵니다.

 

공상空桑은 제왕세기帝王世紀의 기록에 따른 기현지杞縣志를 보면

지금의 하남성 옹구현雍丘縣 이거나, 지금의 하남성 개봉시開封市

기현杞縣을 그 위치라고 하기도 한다.

 

이때 막 공상空桑을 지나려고 하자, 갑자기 전면에서 연주포連珠炮

소리가 콩 볶듯이 울리면서 한때의 군마가 퇴로를 막고 있었다.

 

       아니, 저놈들은 또 뭐냐?

       아니, 깃발에 대장大將 라고 써 있다!

 

       아니, 저놈이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야?

       저자는 맨손으로 맥을 때려잡은 놈이 아니냐?

 

대장大將 라는 깃발은 곧 위주魏犨를 말하는 것으로, 옛날

중이重耳와 가신들이 초나라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었을 ,

어느 날 초성왕을 비롯한 신료들과 사냥을 나갔다가 맥貘이라는

짐승을 만난 일이 있었다.

 

그때 그 맥貘을 맨손으로 때려잡은 일이 있어, 초나라의 사람들은

위주魏犨귀신같은 용력勇力을 알고 모두가 겁을 내게 되었다.

 

       맥이란 동물은 생김새는 곰같이 생겼으며

       코는 코끼리처럼 생기고 머리는 작고 다리는 짧으며

       쇠붙이를 먹고 산다는 신화神話 속의 괴수怪獸를 말한다.

 

그런데 오늘 이렇듯 험한 곳에서 초라한 패잔병들이 용력이 고강한

위주魏犨를 만났으니, 모두 넋이 빠져 얼어붙는 듯 기절초풍하였다.

 

       하하, 성득신이 이제야 오시는가?

       나, 진나라 장수 위주魏犨를 알아보겠는가?

       여기서 너희들을 기다린 지 오래되었도다.

 

       너희들은 이곳을 지나가지 못한다.

       가고 싶은 놈은 나를 이기고 지나가거라!

 

       여러분은 원수님을 잘 보호하시오!

       좋다. 위주魏犨 , 나와 겨뤄보자!

 

앞장서 가던 추월초鬪越椒 성대심成大心에게 성득신成得臣

잘 보호하라고 하면서 고함지르며 뛰쳐나갔다. 이에 투발鬪勃

투의신鬪宜申 도 달려나가 온 힘을 다하여 옆에서 도우면서 일대

싸움판이 벌어진다.

 

       어느 놈이 먼저 덤비겠느냐?

       좋다. 모두 함께 덤벼라!

 

       위주魏犨 , 여기 성득신成得臣이 있다.

       나와 단둘이 한번 겨뤄보자?

       허허, 좋도다. 기다리던 바다!

 

위주와 성득신의 불꽃 튀는 싸움은 천지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재빠르면서 서로 간에 물러 시지를 않았다. 이에 다른 장수들은

감히 덤벼들지 못하고 양편으로 갈리어 고함을 질러대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먼지가 일면서 한 파발병擺撥兵이 북쪽에서부터

비호같이 말을 타고 달려오면서 큰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멈추시오. 싸움을 멈추시오!

       위주 장수는 싸움을 멈추시오!

 

       한창 싸움이 무르익는데 무슨 일이냐?

       주공께서는 특명을 내리셨소이다.

       선진 원수께서 주공의 명을 전하는 것이오.

 

       초군을 쫓지도 죽이지도 말라고 하셨소!

       주공께서 초성왕의 은혜에 보답하겠다는 뜻이오!

 

위주魏犨는 초군의 성득신成得臣과 그의 장졸들을 모두 사로잡을

참이었는데 몹시 아쉽게 되었다고 하면서 싸우던 창을 거두었다.

 

       초군에게 길을 비켜줘라!

       빨리 사라지지 않고 무얼 꾸물대느냐?

 

       이번엔 살려서 돌아가게 한다만 

       다시는 절대로 내 앞에 나타나지 마라!

 

위주魏犨의 진군晉軍이 양쪽으로 물러서며 길을 열어주자, 초군은

공상空桑의 험지를 겨우 빠져나왔으며 이윽고 연곡성連谷城

당도하게 되자, 성득신成得臣은 초군의 실태를 점검하게 명했다.

 

       원수님, 중군은 살아남은 자가 6할은 돼 오나?

       좌우 군은 3할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신읍申邑과 식읍息邑, 두 고을의 군사들은

       살아남은 자가 1할 정도밖에 안 되며

       거의 다 참혹하게 전멸 당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어떤 사람이 이때 벌어진 성복城濮 전투에서 참혹하게

전사한 군사들의 혼을 위해 시를 써서 조의를 표했다고 한다.

 

      1. 勝敗兵家不可常 (승패병가불가상)

          싸움에는 이기고 지는 일을 항상 가려내기 어렵네

 

          英雄幾个老沙場 (영웅기개노사장)

          얼마나 많은 영웅이 모래밭에 사라졌는가?

 

          禽奔獸駭投坑阱 (금분수해투갱정)

          놀란 짐승은 날아가거나 굴속에 몸을 숨겨버리고,

 

          肉顫筋飛飽劍鋩 (육전근비포검망)

          떨어져 나간 살점은 칼날만 배부르게 하였네.

      2. 鬼火熒熒魂宿草 (귀화형형혼숙초)

          푸른  불꽃은 영롱하고 혼백은 풀잎에 머무네

 

          悲風颯颯骨侵霜 (비풍삽삽골침상)

          슬픈 바람은 쌀쌀하고 뼈들은 서리가 끼는구나.

 

          勸君莫羨封侯事 (권군막선봉후사)

          그대여 제후에 봉해지는 일을 부러워하지 마라!

 

          一將功成万命亡 (일장공성만명망)

          한 장수의 공을 위해 많은 생명이 죽어가리니!

 

성복城濮 전투는 진과 초두 나라가 크게 싸우는 전쟁이며

춘추시대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때 퇴피삼사退避三舍 라는 고사성어가 생겨난다.

       표면상으로는 진문공이 초성왕에 대한 은혜를 갚는

       도의적인 행동이라고 인식하게 했지만

 

       실제로는 상대방의 예봉을 피해 도망가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적을 교만에 빠지게 하며 유리한 지형으로 계속 유인하며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제압하는 책략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열세의 병력으로 우세한 병력을 격파한

       최초의 전형적인 전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후 퇴피삼사는 후세의 병법가들에게 강적과 대치할 때

       먼저 일보를 후퇴하면서, 적의 약점을 잡아내어

       일격에 분쇄하는 사상의 기본으로 삼게 하였다.

 

성득신은 연곡성連谷城으로 들어가 군사들을 정비하고 쉬게 하며

한숨을 돌리게 되자, 비로소 자신의 패배를 절감하고는 땅을 치며

원통 해하면서 장수들에게 말하게 된다.

 

       초나라의 위엄을 만 리 밖에 세우려 하였더니

       뜻밖에 진나라 놈들의 계략에 빠져버렸도다.

 

       이는 공을 탐하다가 군사들만 잃어버렸으니

       이 죄를 어떻게 고해야 하겠는가?

 

성득신成得臣은 차마 초성왕이 머무는 신성申城으로 갈 면목이

없다고 생각하여, 수하 장수인 투발, 투의신, 투월초 등과 함께

연곡성連谷城에 머물며 죄를 청하고자 아들 성대심을 보냈다.

 

       대왕이시여, 소신 성대심成大心 이옵니다.

       모든 잘못이 저희에게 있어 죄를 청하나이다.

       부디 용서하여주시옵소서!

 

       과인의 명을 거역하면서까지 승리를 장담하더니,

       오히려 초나라의 위신만 땅에 떨어뜨렸구나.

 

       싸움에 이기지 못하면 군령을 달게 받겠다고 하였는데

       지금에 와서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냐?

       대왕이시여, 대단히 죄송하나이다.

       신의 부친은 그 죄를 알아 스스로 죽음을 택하고자

       하시었으나, 실은 소신이 잠시 만류시켰나이다.

 

       아버님께서는 대왕의 직접 명을 받고 죽어야!

       나라의 법을 밝히는 일이라고 말하였나이다.

 

       싸움에서 진 장수는 죽음으로써 사죄함이

       초나라의 국법인 걸 알고 있지 않은가?

 

       이번 싸움에 패전한 장수들은 책임을 지고

       마땅히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할 것이다.

 

      죽음을 머뭇거리지 말라!

      짐의 부월斧鉞을 써야 하겠느냐?

 

       너는 가서 전하여라.

       패장은 자결하여 부월斧鉞을 더럽히지 말라!

 

부월斧鉞은 예전의 왕들이 살생권殺生權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중요한 사람을 죽일때 사용하는 작은 도끼와 큰 도끼를 가리킨다.

 

       아, 하늘은 진문공을 택한 것인가?

       아, 하늘은 왜 나를 택하지 않았는가?

 

       그 열대여섯 밖에 안 된 위가蔿賈 라는 놈이

       나 성득신成得臣이 초의 전군을 지휘하고

       나랏일을 맡길 만한 큰 재목이 못 된다고 하였던가?

 

       나를 그렇게밖에 평가하지 않았단 말인가?

       아니다. 나는 그렇게 작은 그릇이 아니다.

       내 운명이 아직은 끝나지 않았다!

 

       결코, 지지 않을 싸움에 진 것이다.

       다시 한번! 나에게 기회가 온다면

       반드시 나의 참모습을 보여주고 말 것이다.

 

성득신成得臣성복城濮 싸움의 내용을 회상해보면서 통한의

탄식으로 눈물을 삼키며 혼자의 생각을 되씹고 있었다.

 

       초성왕楚成王이 패장들의 죄를 단호하게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하자, 성대심成大心은 흐느끼면서

       돌아가 아버지 성득신에게 그 결과를 그대로 전했다.

 

연이어 사자가 연곡성連谷城에 당도하여 초성왕의 뜻을 전하자,

성득신은 멍석을 깔고 꿇어앉아 품속의 단도를 꺼내 들었다.

 

       나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노라.

       비록 왕이 나를 용서한다 하더라도

       나는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도다.

 

       살아있는 다 하더라도 신읍申邑과 식읍息邑

       백성들을 어찌 대할 것이며, 더구나

       자식을 잃은 부모들을 어찌 볼 수 있겠는가!

 

       대왕이시여, 이 신은 세 번 절을 올리나이다.

       건안 하시옵고 부디 초나라를

       부강하고 강력한 나라로 만드시옵소서!

 

276 . 나의 운명은 재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