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 열국지 201∼300 회

제 243 화. 마음을 고쳐먹으면 어떻게 되나.

서 휴 2022. 10. 14. 16:57

243 . 마음을 고쳐먹으면 어떻게 되나.

 

발제勃鞮는 고량高梁 땅 등에서 한동안 도망 다녔으나, 가지고 나온

비용도 떨어지고 더 다닐수가 없게 되자, 아무도 모르게 강성絳城

숨어 들었다가 극예郤芮의 집 높은 담장을 뛰어넘어 들어갔다.

 

      발제勃鞮가 제 발로 찾아오자,

      깜짝 놀란 극예郤芮는 뛸 듯이 기뻐하며

      여이생呂飴甥 에게 급히 연락하여 오게 하였다.

 

      세 사람은 일치된 마음을 굳게 맹세하게 되면서

      발제勃鞮는 궁 안의 지형을 자세히 설명하여 준다.

 

극예와 여이생은 심어놓은 동조세력이 제법 많아지자, 중이重耳

죽이기만 하면 새로운 정권을 세울 수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이달 2월 그믐날 밤은 아주 캄캄합니다.

      밤 한 시에 궁에 불을 지르기로 정합시다.

 

      사흘 후의 밤이 그믐이지요.

      좋소이다. 한밤중에 거사합시다.

      중이重耳의 침궁寢宮 앞과 뒤로 쳐들어갑시다.

 

극예와 여이생과 발제, 세 사람은 짐승의 피를 입술에 바르고

생사고락을 같이하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며, 석 잔의 술도 마셨다.

 

발제勃鞮는 다음날 밤에 우울한 마음으로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다가

지난날을 돌이켜 보다 감회가 깊어지며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나는 중이重耳와 원수진 것도 아니며

      단지 명령에 따라 죽이려 하였을 뿐이다.

 

      옛날에 포읍蒲邑으로 달려가 중이를 베었었지.

      그러나 중이重耳가 담장을 넘어가는 바람에

      중이重耳의 옷 소맷자락만 겨우 끊었었어.

 

      다음번엔 자객들과 함께 책나라 땅에 갔을 때는

      겨우 반나절 전에 도망가고 없었어.

 

      일찍이 실패라고는 모르는 내가 두 번이나 죽이려다

      실패한 거야. 참으로 기이한 인연이 아니겠는가.

 

      내게 명령을 내렸던 진헌공晉獻公과 진혜공晉惠公

      그리고 진희공晉懷公 마저 모두 세상을 떠나가고 없지만

      좋은 뜻에서 명령을 내렸다고 할 수는 없어.

 

      내가 한창 젊었을 때의 진헌공晉獻公

      여러 가지로 용감하고 훌륭하시었었지.

 

      그러나 여희驪姬의 나쁜 꼬임에 빠지면서

      바른 판단 없이 무리한 명령을 많이 내렸었어.

 

      내가 두 번이나 죽이려 했던 중이重耳

      어려운 순간마다 나를 피해 나갔어.

 

      중이重耳는 하늘이 도와주는 것 같아.

      내가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아.

      내가 죽여본들 또 무슨 좋은 수가 생기겠어.

 

      극예와 여이생이 나라를 위해 한 게 뭐야.

      많은 충신을 죽이며, 나라의 국고도 탕진하고.

      백성들을 너무 괴롭혀 못살게 만들어놨잖아.

 

      내가 극예와 여이생과 어울려 바라는 게 무얼까.

      내가 지금 반역을 꼭 해야만 하겠는가.

 

      아니다. 아니야. 모든 게

      이 발제勃鞮의 생각이 아니었어.

      나는 내 생각으로 판단하며 살아본 일이 없어.

 

      나는 원래 착한 사람이었어.

      나는 나의 꿈을 위하여 항상 주군을 받들며 살아왔지.

 

      그러나 나는 그동안 꼭두각시로 살아온 거야.

      나는 꼭두각시로 살아야만 했을까.

 

      아니야. 나는 꼭두각시가 아니야.

      이제부터 정신 차리고 나의 판단으로 살아가야해.

 

      나는 이제부터 진정한 내 마음으로

      내 판단으로 살아가고 말겠어.

 

발제勃鞮는 지난 과거의 일을 담담히 생각하게 되면서, 고개를

몇 번씩 흔들게 되었으며, 살고 죽는다는 것에 초월하게 되었다.

이에 잠시 바람을 쐬고 오겠다면서 집 밖으로 나갔다.

 

        이제 나라가 안정되려는 순간에

        대역무도한 일을 일으키려 하다니

        이는 하늘의 도움 없이 성공할 수 없는 거지.

 

        하늘이 돕지 않는 사람이라면

        꼭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을 것이다.

 

        내가 설사 중이를 죽이는 데 성공한다 할지라도

        20 년간 함께 유랑생활을 했던 호걸들이 많은데

       그들이 내가 편안히 살아가도록 놔두겠는가?

 

       차라리 새로 즉위한 중이를 몰래 찾아가

       이 일을 알린다면 어찌 되겠는가.

 

       나의 위급한 처지도 벗어날 수 있음이라!

       그래, 이것이야말로 나라와 백성을 구하는

       훌륭한 계책이 되지 않겠는가?

 

깊은 밤에 발제勃鞮가 먼저 호언狐偃의 집으로 살며시 스며들자,

발제勃鞮를 보게 된 호언狐偃은 깜짝 놀라며 단호하게 말한다.

 

      아니. 너는 발제勃鞮가 아닌가.

      호언狐偃 , 그간 안녕하시었습니까.

      허허, 용케도 살아있었구먼

 

      너는 참으로 대담하구나.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찾아왔는가.

 

      발제勃鞮, 너는 이제야 죽으러 찾아온 것인가.

      호언狐偃 , 죽음이 두렵고 목숨이 아깝다면

      어찌 맨몸으로 찾아왔겠습니까.

 

      소신은 중이重耳 공자에게 아무 원한이 없습니다.

      진문공晉文公에게 원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저 주군들이 시키는 대로 하였을 뿐입니다.

 

      진헌공晉獻公과 진혜공晉惠公 그리고

      진희공晉懷公의 명령을 수행하였을 뿐입니다.

 

      어찌 신하 된 자로, 중이重耳 공자를 죽이라는 명령을

      어찌 거역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이 발제勃鞮는 단지 신하 된 자로,

      그 당시 주공의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발제勃鞮, 무슨 목적으로 찾아왔는가.

      주공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발제勃鞮, 나에게 먼저 말하라.

      사직社稙의 존망이 달린 중요한 일입니다.

 

      호언狐偃 , 제 말을 믿지 않으신다면 지금까지

      이룩한 모든 일이 물거품이 될 수 있습니다.

 

      발제勃鞮, 사직社稙의 존망이라고 하였느냐.

      그것이 무엇인지 나에게 말해보라.

 

      호언狐偃 , 안 됩니다. 주공을 직접 뵙고

      직접 말씀드릴 때 같이 들으십시오.

 

      호언狐偃 대부께서는 나라를 구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주변을 다 물리치시고 주공과 함께 들으셔야!

      어려움을 잘 대비하여 고비를 넘길 수 있습니다.

 

호언狐偃은 날카롭게 발제勃鞮의 눈동자를 살피며, 진심이 우러나와

찾아왔다는 걸 믿게 되었으로 발제勃鞮와 함께 궁으로 들어갔다.

 

      주공께 알현을 청한다고 전하여라.

      주공께선 이미 잠자리에 드셨습니다.

 

      이 호언狐偃이 반드시 뵈어야 한다고 전하여라.

      호언狐偃 , 어서 들어오시랍니다.

 

      발제勃鞮는 여기서 잠시 기다리게.  

      주공을 모시고 나올 테니

      주공을 설득하고 못 하고는 알아서 하게.

 

호언狐偃이 침실로 들어가자, 진문공晉文公은 자다가 갑자기

일어나 어수선한 얼굴로 침상에 걸터앉아있었다.

 

      무슨 일로 한밤중에 찾아왔소.

      내관 발제勃醍가 제 발로 찾아왔습니다.

 

      지금 발제勃醍 라 하였소.

      그자가 무엇 때문에 나를 찾아온 것이오

      또 나를 암살하러 온 것이오.

 

      주공, 그건 아닙니다.

      단지 사직社稙의 존망과 관계된 일이라며

      직접 뵙고 말씀드리겠답니다.

 

      그놈이 사직社稙 이란 말을 한단 말이오.

      옛날 생각이라면 당장 죽이고 싶소.

      그자를 만나고 싶지 않소.

 

      주공, 성인聖人도 아무리 보잘것없는 자의 말이라도

      버리지 않고 귀담아듣는다고 하였습니다.

 

      혹여 지난날의 분노에 치우쳐 생길지 모를

      중대사를 놓쳐서는 아니 되옵니다.

 

      알겠소. 그자가 어디 있단 말이오.

      지금 이 처소 밖에 와 있습니다.

 

진문공晉文公은 그래도 마음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시종을 불러 밖에 있는 발제勃醍에게 말을 전하게 했다.

 

      네가 나를 죽이려다가 잘라버린 옷을

      나는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도다.

 

      나는 그 옷을 볼 때마다 너를 잊지 않고 있었노라.

      너는 나와 무슨 원한이 그리 많이 맺혀있어.

      그리도 악착같이 나를 죽이려 하였느냐.

 

      내 당장 너를 죽일 수도 있으나,

      지난 과거를 들추어내지 않겠다는 맹세를

      극예郤芮에게 한 바이므로 너를 죽이지 않겠도다.

 

      지금 당장 여기에서 사라지지 않으면

      너를 붙잡아 참수형에 처하리라.

 

이때까지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발제勃醍는 진문공晉文公

이러한 말을 전해 듣자, 안에서 들으라며 큰소리로 외쳐댔다.

 

      주공은 19년 동안이나 열국을 유랑했다면서

      아직도 세상 물정을 모르십니까.

 

      소신 발제勃醍는 진헌공晉獻公과 진혜공晉惠公

      그 당시 군주였기에 명령에 따른 것뿐입니다.

      소신 발제勃醍의 뜻이 아니었나이다.

 

      주공, 옛날에 관중管仲은 공자 규를 위해

      제환공齊桓公을 활로 쏘아 죽이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환공齊桓公은 과감히 관중管仲을 등용하여

      마침내 관중管仲의 도움으로 천하 패권을 잡았습니다.

 

      주공께서 소신을 만나주고 안 만나주고는

      주공의 마음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신이 떠나고 나면, 머지않아

      주공께 큰 환난이 닥칠 것이니,

      소신은 다만 이 문제를 걱정할 따름입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진문공晉文公은 몸을 부르르 떨며, 발제勃醍

외치는 소리 속에 충격적으로 머리에 와닿는 것이 있었다.

 

      제환공齊桓公과 관중管仲 이란 말이지.

      그래 발제勃醍 가 관중管仲을 말한단 말이지.

 

      자신을 죽이려고 활을 쏘았던 관중管仲

      제환공齊桓公은 재상으로 맞아들여, 마침내

      천하의 첫 패공이 되는 위업을 달성 했으렷다.

 

진문공晉文公이 혼자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들어 호언狐偃을 보자,

호언狐偃은 진문공晉文公의 흔들리는 마음을 눈치채게 된다.

 

      주공, 호언狐偃이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발제勃醍는 뭔가 중대한 말을 하고자 합니다.

 

      주공께서 발제勃醍 같은 자 하나를 용납하지 못하고

      어찌 천하를 경영한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주공께서는 발제勃醍를 꼭 만나보십시오.

      알겠소. 발제勃醍를 들라 하시오.

 

그러나 발제勃醍는 진문공晉文公을 보고서도 지난날의 일에 대해

사죄를 청하지도 않고, 군위에 오른 것에 축하의 말도 하지 않았다.

 

      과인은 다시 괘씸한 생각이 치밀어 오르는구나.

      너는 어찌하여 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축하의 말를 하나도 올리지 않는 것이냐.

 

      지금이라도 당장 죽고 말겠다는 심정이냐.

      주공, 소신 발제勃醍의 말을 들어보시옵소서.

 

      주공, 주공께서 군위에 오르셨다고는 하지만

      아직 축하를 받기에는 너무 빠르옵니다.

 

      이 발제勃醍의 말을 들으셔야만, 비로소

      축하를 받을 만큼 군위가 튼튼해질 것입니다.

 

      좋다, 지금부터 너의 말을 들어보리라.

      주공, 좌우를 물리쳐주십시오.

 

      주변의 너희들도 다들 물러가라.

      , 이제 말하도록 하라.

 

      주공, 정말로 긴급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호언狐偃 대부는 상관없습니다만

 

      나머지 시종들도 모두 내보내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말씀드리지 못하겠나이다.

 

발제 勃醍가 요구하자, 힘이 장사며 칼도 잘 쓰는 걸 잘 알고 있는

진문공晉文公은 옛날 일이 생각나게 되어 의심의 표정을 지었다.

 

244 . 심복은 어떨 때 나타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