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 열국지 201∼300 회

제 210 화. 고굉지신은 어떤 사람인가.

서 휴 2022. 9. 22. 17:50

210 . 고굉지신은 어떤 사람인가.

 

호언狐偃이 가까이 다가가 밥 한 그릇을 간절히 부탁하자, 이를

본 농부는 중이重耳 공자 일행이 남루한 거지 떼로 보였는지,

한참을 빈정거리면서 밥그릇에 흙을 가득 담아 내밀었다.

중이重耳 공자와 위주魏犨가 참다못해 큰 소리로 외쳤다.   

 

      촌 농부 놈이 이다지도 모욕을 주느냐.

      나라는 위, 아래로

      백성들까지 나를 모욕하는구나!

 

      저놈들을 업어놓고 볼기를 치리라.

      잠깐, 공자께서는 참으십시오.

 

      공자님. 저놈들의 밥을 모조리 빼앗아버리겠습니다.

      위주魏犨는 잠시 참도록 하라.

      어찌 강도가 될 수 있겠는가.

 

      공자님, 그렇습니다.

      강도가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공자님, 밥을 얻기는 쉬우나?

      흙을 얻기는 어렵습니다.

 

      흙을 준 것은 고맙게도 장차

      나라를 얻으라는 큰 뜻이 들어있습니다.

 

      이 흙은 하늘이 내려주신 보물입니다.

      공자께서는 오히려 저 농부에게 절을 올려야 합니다.

 

중이重耳가 높이 추켜올렸던 채찍을 내던지자, 호언狐偃은 자기를

조롱하던 농부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다.

 

       이를 본 가신들 모두가 호언狐偃의 뒤를 이어

       농부에게 무릎을 꿇자, 살벌했던 분위기는

       삽시간에 엄숙하게 변해버리고 만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농부는 얼이 빠졌으며, 중이重耳 일행이 멀리

간 다음에도 멍한 눈길로 바라보자, 다른 농부가 말한다.

 

      정말 미친놈들이로구나.

      너무 굶어 돌았나 보구려.

 

그러나 중이重耳는 농부에게서 받은 흙을 버리지 않고, 언젠가

이뤄낼 천하 패업覇業의 꿈처럼 소중히 간직하며 떠나갔다. 이에

후세의 한 시인이 이때의 일을 두고 다음과 같이 시를 읊은 바 있다.

 

       土地應爲國本基 (토지응위국본기)

       토지는 나라의 근본이리라.

 

       ​皇天假手慰艱危 (황천가수위간위)

       하늘이 농부의 손을 빌려 위로하도다.

 

       高明子犯窺先兆 (고명자법규선조)

       지각 있는 사람은 그 징조를 알았으나

 

       田野愚民反笑痴 (전야우민반소치

       어리석은 농부는 오히려 비웃었구나.

 

호언狐偃은 중이重耳가 몹시 화를 내자 조용히 달래며, 처참한

지경에서도 보통 사람의 생각을 넘어서는 말을 한다.

 

        호언狐偃은 중이重耳의 마음을 느긋이 풀어주면서

        앞날을 상상하게 하면서, 또다시 굳은 결심을

        만들어 나가게 하는 지혜를 발휘하였다.

 

허기진 중이重耳와 가신 일행은 또다시 한 동안을 걷게 되자,

모두 정신이 몽롱하여져 더는 걸을 수가 없게 되었다. 맨 먼저

중이重耳비틀거리면서 일행을 돌아보며 힘없이 말하였다.

 

      잠시 나무 밑에서 쉬었다 갑시다.

      공자님, 그리하소서.

 

호모狐毛는 지칠 대로 지친 중이重耳에게 무릎을 내주어 눕게

하면서, 마치 위로하기라도 하는 듯이 말하여 주었다.

 

      조쇠趙衰가 호찬壺饌을 조금 남겼을 겁니다.

      며칠이 지났는데 호찬壺饌이 있기나 하겠나.

 

      허 어, 위주魏犨가 말하겠소.

      호찬壺饌(병에든 음식)이 조금 있다고는 하나?

      자기 먹기도 바빠 벌써 먹어 치웠을 겁니다

 

      위주魏犨 야, 너라면 혼자 먹어 치웠을 테지만,

      조쇠趙衰는 그럴 리가 없는 분이다.

 

      선진先軫 , 내 참, 좀 두고 봐라.

      헛수고하지 말고 고사리나 캐러가자.

 

뒤늦게 온 조쇠趙衰가 호찬壺饌을 내놓았으나, 중이重耳가 기어이

받지 않으면서 끝까지 양보하였다,

 

      공자께선 이 호찬壺饌을 받으시오.

      아니, 호찬壺饌을 지금까지 남겨두고 있었소.

 

      그대도 배가 고프지 않소.

      공자님, 어서 드십시오.

      아니요. 그대가 드시오.

 

일행들은 큰 통에 물을 끓이고 따온 고사리를 삶았으며, 그나마

호찬壺饌을 섞어 모두가 고사리 국물로 허기를 겨우 달랬다.

 

      아무리 귀한 귀족이라 하나

      급히 도망가는 신세들은 처량하기만 하였다.

 

      더구나 그렇게 성실하던 두수頭須가 모든 걸

      가지고 도망가 버리자,

 

      졸지에 아무것도 없는 빈손으로 떠나게 되었으며,

      며칠을 굶어가며 배고픔에 허덕이면서, 그래도

      계속하여 나라 쪽인 동쪽으로만 가고 있다.

 

지칠 대로 지치고 배곯을 데로 곯은 중이重耳와 가신들은 서로

이끌어주며, 식사 시간이 되면, 서로 말하지 않아도

 

먹을 만한 나물이나 고사리를 뜯어 삶았으나, 이제는 소금마저

떨어져 소금을 치지 못하게 되니, 밍밍한 맛에 목에 넘어가지

않았으며, 허기진 배에 더욱 감질만을 더 일으킬 뿐이었다.

 

      중이重耳와 가신 일행은 그런대로 풍족하게 살아가며

      배고픔을 몰랐으나, 이리 처참한 지경으로 굶어보기는

      처음이라, 사나흘부터는 자꾸 물만을 마시니

      물마저 보기가 싫어지며 기운마저 빠져버린다.

 

      고생을 전혀 모르고 떠받침만 받으며

      귀하게 자라온 중이重耳 공자는 오직 하였으랴.

 

며칠 후에는 개자추介子推가 보이지 않더니, 바가지에 고깃국을

가지고 와 내놓으니, 중이重耳는 허겁지겁 맛있게 꿀꺽꿀꺽 삼켰다.

 

      이 맛있는 고깃국이 어디서 생겨났소.

      개자추 介子推는 이 맛있는 고깃국을

      어디서 얻어온 것이오.

 

개자추介子推는 고단한 망명길에서도 지극한 정성으로 중이重耳 

공자를 모시며, 자기의 허벅지 살을 베어내 대접을 한 것이다.

 

중이重耳와 가신 일행은 개자추介子推가 자기 허벅지살을 베어내

국 끓인 것을 알게 되자, 모두 큰소리로 통곡하며 한없이 흐느꼈다.

 

      개자추介子推의 본명은 개추介推 이며,

      는 후일에 붙인 호칭으로, 그 당시 자子 자는

      존경의 뜻을 나타내는 글자로 쓰이고 있었다.

 

개자추介子推는 산서성山西省 북쪽의 개휴介休 라는 지방의

면상綿上 에서 태어난 사족士族 출신의 젊은이었다.

 

      면상綿上은 산간 마을이라 면산綿山 으로도 불리었으며,

      그는 일찍이 큰 뜻을 품고 면상綿上을 떠나

      나라의 강성絳城으로 향하던 중에

 

      명망이 자자하던, 공자 중이重耳가 포읍蒲邑

      거처한다는 소문을 듣고, 발길을 돌려

      포읍蒲邑에 찾아 들어가 가신단에 합류했다.

 

개자추介子推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으로,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만 하였으므로, 좀처럼 중이重耳 나 다른 가신들의

눈에 띄지 않는, 무명의 가신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개자추介子推가 중이의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은 책나라를

떠나 유랑 길에 오르면서,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이 생길 때마다.

그가 먼저 나서서 해결하곤 하는 성실한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대에게 너무 많은 신세를 지는구려.

     장차 무엇으로 은혜를 갚을 수가 있겠소.

 

     신 개자추介子推를 비롯한 우리 가신들은

     공자를 모시고 귀국하오면 공자의

     고굉지신股肱之臣이 되고 말 것입니다.

 

고굉지신股肱之臣 이라는 말은

넓적다리 고팔뚝 굉갈 지신하 신.으로

 

임금이 가장 믿고 중히 여기는 신하가 되어, 진심으로 임금을 위하는

팔다리가 되겠다는 뜻으로 서경書經의 익직益稷에서 나온다.

 

      개자추介子推의 말은 온몸을 바쳐

      중이重耳 공자의 팔다리 역할을 다하겠다는

      맹서盟誓 이며 희망이었으리라.

 

개자추介子推가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내 국을 끓여 중이重耳에게

바쳤다는 일화는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다만 자신의 은공을 드러내지 않는 개자추介子推의 성격을 잘

나타나게 하려고 지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개자추介子推가 허벅지 살을 베어내 국을 끓였다는

      일화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

      좌구명左丘明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국어國語 등에도 실려 있는 내용은 하나도 없다.

 

      다만 장자莊子의 도척盜蹠 편에, 개자추介子推

      충성이 지극한 사람이다. 자신의 허벅다리 살을 베어

      배고픈 주인을 먹였다.라고 기술되어 있을 뿐이다.

 

장자莊子의 도척盜蹠 편에 개자추介子推의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는

것은, 중이重耳 일행이 나라로 가는 도중에 겪는 고통과 시련이

얼마나 참담慘澹 하였는가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라 할 것이다.

이에 염옹髥翁 이 시를 지어 개자추介子推의 충성심을 노래하였다.

 

       孝子重歸全 (효자중귀전)

       효자는 몸을 중히 보전하여야 하나니

 

       虧體謂親辱 (휴체위친욕)

       몸을 상하는 행위는 부모를 욕보임이라.

 

       嗟嗟介子推 (차차개자추)

       감탄하노라 개자추여!

 

       割股充君腹 (할고충군복)

       허벅지 살을 베어 주군의 배를 채워주는 구나

 

       委質称股肱 (위질칭고굉)

       이처럼 충성하는 일을 고굉股肱이라 하였다

 

       腹心同禍福(복심동화복)

       가슴속은 주군과 화복을 같이하려는 일념이리라.

 

       豈不念親遺(개불년친유)

       어찌 부친이 물려준 몸을 괘념치 않았겠는가?

 

       忠孝難兼國(충효난겸국)

       충효는 나랏일 처럼 이루기 힘든 일인데

 

       彼哉私身家(피재사신가)

       집안의 사사로운 몸만을 생각하는 그대들이여!

 

       何以食君祿(하이식군록)

       그렇게 록을 받아먹기가 부끄럽지 않은가?

 

중이重耳와 가신 일행은 지치고 허기진 배를 움켜잡으며, 겨우

먼 제 나라를 애처롭게 찾아가 비로써 관문에 들어서게 되었다.

 

      아 아저기가 임치성 臨淄城 인가.

      임치성臨淄城을 바라보니 눈물이 나는구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를 반겨줄 거냐 요.

      어서 성문에 연락이나 해봅시다.

 

      나라는 주문왕周文王과 강태공姜太公

      합세하여 상나라를 무너트리고 세운 나라다.

 

      강태공姜太公은 그 공로로 산동반도山東半島

      봉토封土로 받음으로써 제나라가 탄생되었도다.

 

강태공姜太公 나라를 잘 이끌어, 제일 발전한 나라가 되며,

도성은 영구營丘 였으나, 성 옆으로 치수淄水가 흐르고 있어, 자꾸

치수淄水 강을 건너가야 한다며, 점차 임치臨淄 라 부르게 되었다.

 

      임치臨淄는 원래부터 큰 도시였으나,

      제환공齊桓公이 즉위하고, 관중管仲이 재상이

      되고부터는 더욱 화려하고, 번화하여졌으며

      임치臨淄가 좁을 만큼 큰 도시로 발전하였다.

 

나라가 안정되고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펼침으로써,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성안이 가득 차게 되자, 성 밖에도 마을이 생겨날

정도로 번잡하여 졌으므로,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입을

벌리며, 감탄하게 되는 곳이기도 하였다.

 

      , 이것이 패업覇業을 이룬 나라의 도성이로구나.

      지금 감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나라처럼 우리를 받아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소.

 

중이重耳와 가신 일행들은 끊임없이 걸으며 이틀은 거르고 하루는

얻어먹으며 마침내 제나라에 당도하게 되었다.

 

       이제 더 갈 곳도 없도다. 

       겨우 있다고 해봐야!

       아주 먼 남방의 초나라가 있을 뿐이다.

 

       그 먼 곳까지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이제 또 구걸하며 걸어간다는 것은,

 

       갈 만한 힘도 남아 있지 않았으므로,

       모두 불안해지며 감히 수문장 앞으로

       나서기가 두렵기까지 하였다.

 

 211 . 약속을 저버리면 어떻게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