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 열국지 101∼200 회

제 168 화. 과감해야 운명을 바꾸는가.

서 휴 2022. 8. 19. 14:51

168 . 과감해야 운명을 바꾸는가.

 

        큰 미루나무 美柳가 서 있는 미루나무美柳

        이 근처가 옛집이 있던 곳일 터인데

        옛집은 어디로 가고 잡초만 우거져 있는가?

 

        옛날의 집은 부엌도, 방문도, 창호도, 기둥도,

        지붕을 받치던 서까래도 없어지고

        잡초 속에 집의 기초만이 찔끔 솟아있구나.

 

너무나 황당이 바라보며 서 있기만 하는 백리해百里奚의 모습에

한 노인 부부가 다가와 아는 체를 하며 말을 건다.

 

        이 사람 백리시百里視 아비가 아닌가.

        아니. 아저씨 아닙니까?

        아니. 아주머니 안녕하셨습니까?

 

        그렇다네. 왜 이제야 왔는가?

        너무 먼 길로 다녀오느라 늦었습니다.

 

        안다. 아네. 고생이 많았겠지.

        집사람과 아이는 어디로 갔습니까?

 

        무심한 사람. 십오여 년이 짧은 세월인가.

        오래되었지. 우여곡절 迂餘曲折이 많았다네.

 

        길쌈을 하기도하고 동네 궂은일은 도맡아 하며

        자네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네.

 

        전쟁은 자꾸 벌어지며 극심한 흉년이

        오 년이나 계속되니 어떻게 견디어 내겠나.

 

        자네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아봐야겠다며

        자네를 찾아 떠나갔네.

 

        어디로 갔습니까?

        모른다네. 하도 오래된 일이 아닌가?

 

노부부는 살던 옛집 자리가 틀림없다며, 백리해百里奚요세繇勢

비롯한 시종에게 음식을 대접하며 옛일을 더듬어 이야기하여주었다.

 

        내 사랑하는 두씨杜氏 부인과 아들 백리시百里視

        어디에서 무얼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얼마나 먹고 살기 힘들었으면

        어린 아들을 안고 떠나버렸을까.

 

        어디로 갔을까? 혹시 죽지는 않았을까?

        살아있기나 한 걸까?

 

백리해百里奚는 너무 늦게 찾아온 자신을 후회하며 회한悔恨

눈물을 훔치면서 돌아왔다. 다음날부터 요세繇勢를 앞세워 돈을

풀어가면서, 아무리 수소문하여도 찾아내지를 못하였다.

 

        백리해百里奚는 잉신媵臣의 몸이 되어, 혼례 행렬을

        따라가면서 만감이 서려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나라 진헌공晉獻公의 큰딸 백희伯姬의 혼례 행렬은 대단하여,

나라 백성들이 구경하러 몰려나오며 인산인해를 이뤘다.

 

        높은 장대에 진나라 깃발을 단 기수단이

        말을 타고 앞장서 나아가니, 군악대가

        북을 치며 뿔소라들을 힘차게 불어댄다.

 

        네 마리의 말이 신부 백희伯姬의 꽃마차를 이끌며

        잉첩媵妾 들의 꽃가마들이 줄을 이어가고 있다.

 

잉신媵臣과 잉녀媵女 들은 신부인 백희伯姬와 잉첩媵妾 들의  꽃

가마를 앞과 뒤와 양옆을 감싸면서 보호하는 듯 주의 깊게 살펴보며

가고 있으며, 그 뒤에 취주악단吹奏樂團이 뒤따른다.

 

        거문고와 비슷한 금과 향비파鄕琵琶를 뜯으며

        흥겹게 정연히 줄을 서서 따라가고

 

        대나무로 만든 대금, 중금, 소금 등 디지竹笛들이

        함께 소리를 내면, 질 나팔이 불어지며

        비파를 뜯으면 얼후와 고쟁이가 소리높인다.

 

        야오구腰敲를 멘 어여쁜 여자들이 몸을 꼬며

        어여쁘게 춤을 추면, 뒤따라 남자 무용수들이 춤추고

 

        가면을 쓴 한 떼의 춤꾼들이 흥겹게 춤을 추며

        흥을 돋우며 나아가는 장면은 실로 장관을 이룬다.

 

폐백 幣帛을 실은 수레들이 줄을 이어가며, 앞뒤로 많은 군사가

나라의 위용을 자랑하듯 당당하게 행진하여 나아간다.

 

나라 강성絳城과 진나라 옹성雍城까지의 거리는 소들이

끄는 수레들이 많아 보름 이상이나 걸리니 모두 빨리 가야 한다.

 

        내 나이 벌써 60이 다 돼가는구나!

        이렇게 강행군을 따라가자니 다리가 절름거리는구나!

 

        현실에 거부하지 않으며 열심히 살아왔건만

        어쩌다. 내 인생의 마지막을 이렇게 끝내려는 것인가?

        눈물은 비참하게 흐르며 허리는 더 굽어지는구나!

 

        이 늙은 몸이 시집가는 여자의 종이 되었으니,

        이보다 더한 굴욕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제 노비로 살아가야 하는가?

        일생을 노비로 살란 말인가?

        나의 운명이 이렇게 기구하단 말인가?

 

        아니야.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은

        분명히 나 가고자 하는 길이 아닐 거야

 

        한번 살다가 죽는 것이 인생이 아니던가.

        한번 죽으면 그뿐인 인생인데

 

        이렇게 덧없이 살다 갈 수는 없는 거야!

        이렇게 일생을 끝마칠 수는 없는 거야!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해!

        새로운 길로 떠나가야 만 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좋은 방법은 없는 것일까?

 

진헌공晉獻公의 큰딸 백희伯姬의 혼례 행렬은 높고 낮은 산을 넘고

내를 건너며, 어느덧 이레째 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옛날에는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24시간을

        둘로 나누어 12시간대로 사용하였다.

 

이를 십이지十二支라 하며, , , , , , , ,

, , , , 12가지 시간을 말한다.

 

        첫 번째인 자시子時는 오후 11시부터 오전 01시까지이며

        두 번째인 축시丑時는 오전 01시부터 오전 03시까지이다.

 

자시子時에 귀신鬼神 들이 세상에 들어오므로, 우리는 그 시간대에

돌아가신 부모임이나, 조상 임의 영혼靈魂이 들어오시리라 믿으며,

자시子時에 제사祭祀를 지내는 것으로 보인다.

 

        귀신鬼神은 죽은 사람의 넋이 많으며,

        귀신鬼神신비하고 초자연적인 기운을 가지고 있어.

        사람에게 화복禍福을 내려 준다는

        신령神靈 스러움을 가지고 있다고도 한다.

 

축시丑時 가 되면 찾아왔던 귀신鬼神 들이 나갈 시간이므로,

자시子時와 축시丑時 사이에 들어오고 나가는 귀신鬼神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사람의 눈을 감기고 코를 골며 잠을 자게 만드는 것이리라.

 

        백리해百里奚는 칠흑漆黑 같이 어두운 밤에

        살며시 일어나 곤히 잠자는 사람들을 본다.

 

        봇짐을 어깨와 겨드랑이에 단단히 동여매고

        작은 보자기는 허리에 단단히 감아 맨다.

 

        여러 군막軍幕 사이를 조심스레 살피며

        경비 군사軍士 들을 피해 살금살금 빠져나온다.

 

        왔던 길을 급히 뒤돌아 가다가

        캄캄한 산속으로 숨어 도망친다.

 

아니나 다를까, 이른 아침이 되자, 나라 군사들이 샅샅이

뒤지며 뒤를 쫓아오고, 말을 탄 여러 기마병騎馬兵이 대오隊伍

이루지 않으면서도, 갈 길을 앞질러 막으려 삼엄하게 지나간다.

 

        잡히면 그 자리에서 즉각 죽이거나

        끌려가도 죽게 되기는 매한가지다.

 

백리해百里奚는 수색조搜索組가 뒤쫓아 잡으러 오리라 생각하고

밤낮으로 숨어 도망치며 내달린다. 그렇게 도망치며 며칠을

도망쳤는지 어디로 얼마나 갔는지 알지 못하나,

 

여하튼 동쪽을 향하여 무조건 가게 되었으며, 이른 새벽에 알지도

못하는 어느 황하黃河 강변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달아나는 것이 상책이라는 삼십육계三十六計가 있다.

        제서齊書의 왕경즉전王敬則傳에 나오는

 

        王敬則曰 檀公 三十六策 走爲上計

        왕경즉왈 단공 삼십육책 주위상계.

 

즉 단공檀公이 말한 36가지의 책략計策 중에  상대방이 너무 강

하여 대적하기 힘들 때는 달아나는 것이 가장 나은 계책이라며

삼십육계三十六計 중의 맨 마지막에 나온다.

 

        힘이 약할 때는 일단 피했다가 힘을 기른 다음에

        다시 싸우는 것이 옳다는 말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빈 마음을 채울 수 없어, 정처 없는 발길을 옮길

때도 있고, 때로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날 때도 있고, 때로는 급히

피해 가야 할 때도 있으리라.

 

        때로는 가기 싫은 길을 가야 할 때도 있으며

        때로는 살아내기 위하여 긴급히 떠나기도 한다.

        모두 인생이 살아가는 여정에 나오는 길이기도 하다.

 

        마음과 발길이 어디로 가느냐, 하는 방향에 따라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될 것이며

        새로운 인생관으로 새롭게 변할 수도 있다.

 

백리해百里奚는 이제는 쫓아오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안심하고는

황하黃河의 강물을 한 모금 머금고, 부르튼 발을 씻은 후, 천천히

건숙蹇叔이 살고 있다는 명록촌鳴鹿村을 떠올리며 가기로 하였다.

 

        희망이나 모든 걸 체념하고,

        세상만사 다 잊어버리고

 

        이제 명록촌鳴鹿村에 찾아들어

        건숙蹇叔과 함께 조용히 살고 말리라.

 

        명록촌鳴鹿村은 송나라에 있으니

        황하黃河를 건너 동쪽으로 따라가 보자.

 

        나라로 가는 길은 작은 나라들과

        왕실과 정나라를 지나가야 하니

        족히 이십 여일은 걸릴 것이다.

 

백리해百里奚는 황하黃河를 건너 이정표里程表 도 없는 동쪽으로

황하黃河를 따라가며, 지나는 길에 작은 나라들이나 주왕실이나

나라에 불현듯 붙잡혀 불상사를 당하지 않으려, 조금 보태어

말한다면, 여리박빙如履薄氷 이란 말처럼 걷는다.

 

        여리박빙如履薄氷

        같을 여. 밟을 리. 엷을 박. 얼음 빙.으로

 

        살얼음판을 밟고 가듯 아주 조심스레

        주변周邊을 살피며 걸어간다고 할 수가 있다

 

        나라를 완전히 벗어나 안심할 수는 있으나,

        그래도 조심은 하여야 불상사不祥事를 겪지 않으리라.

 

음식과 술을 팔며, 잠을 재워주는 객잔客棧을 만나면, 만두를

사 먹고, 가다가 물로 풀로 과일로 배를 채우며 황하를 따라 걷는다.

 

        황하黃河를 따라가다 들판과 숲도 이어지고

        산을 넘으며, 지나는 사람에 알음알음 물어보며

        들판을 지나 또 산을 넘어가다가

        알 수 없는 골짜기를 따라가게 된다.

 

        골짜기를 지나 빨리 간다는 것이 알 수 없는 산속에서

        한수漢水의 한 지류를 따라가게 된 것이다.

 

나라에 간다는 것이 높은 산을 넘어 골짜기를 따라가다가

점점 더 깊숙이 가다 보니, 나라에 들어와 완성宛城 가까이

들어오게 되고 만 것이다.

 

        아차, 잘못 왔구나.

        나라가 아니고 초나라에 오다니

        큰일이다. 빨리 돌아가야지.

 

        사람들은 반드시 피해야 하며,

        들판이나 숲속을 헤매더라도 반드시

        나라 쪽으로 동쪽으로만 가야 한다.

 

완성宛城은 옛 신나라의 땅으로 지금의 신현申縣 일대를 말한다.

나라가 신나라를 점령하여 한수漢水 일대를 장악하면서

또한, 중원中原으로 나가기 위하여 전진기지로 삼고 있었으므로,

완성宛城은 경계가 살벌할 수밖에 없었다.

 

        완성宛城의 성주 투반鬪班영윤令尹으로 있는

        투곡오토鬪穀於菟의 아들이며, 초성왕楚成王

        인정하는 막강한 배경과 용맹성을 가지고 있었다.

 

백리해百里奚는 그때 하필이면, 성주城主가 사냥하고 있을 때를

맞추어 산속을 헤매게 된 것이다.

 

        세작細作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저, 수상한 저자를 잡아라.

 

사냥꾼들은 산속을 헤매며 숨어서 살살 가는 백리해百里奚

태도가 수상하여, 첩자로 오인하고, 성주 앞에 꿇어 앉힌다.

 

완성宛城의 군사들과 사냥꾼들이 둘러싸며, 붙들어온 백리해를

꿇어 앉히고, 성주가 직접 심문하기 시작한다.

 

        너는 누구냐?

        너는 어디서 왔느냐?

        너는 이곳엔 무엇 하러 왔느냐?

 

 169 . 보답과 명성은 어떻게 따라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