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 열국지 101∼200 회

제 167 화. 평생의 인연을 만나는가.

서 휴 2022. 8. 18. 21:45

       54. 인생의 전환점

 

제 167 화. 평생의 인연을 만나는가.

      처자식을 지키려 허송세월하지 마시고
      큰 뜻을 이룰 수 있는 길을 찾아가십시오.

가정만을 지키려 망설이던 백리해百里奚는 두씨杜氏 부인의 

과감한 권유에 어느 나라든 벼슬길에 오르러 떠나게 되었다.

      어느 나라가 좋겠는가.
      이제 겨우 세력을 키우려는 진晉 나라는 아니고
      정鄭과 송宋과 노魯 나라는 뜻은 있으나 작은 나라이고 
      아니 된다면, 멀지만 제齊 나라까지 가보자.

백리해百里奚는 기원전 690년경에서 680년경인 10여 년간 뜻을
이루지 못하며, 그 당시 잘 산다는 먼 제齊 나라까지 가게 된다.

      그 당시 제齊 나라는 제양공齊襄公 시절이며  
      과거제도가 없을 때라, 특출하게 이름을 날리어
      아주 유명해지거나, 높은 사람의 추천을 받아야! 
      벼슬을 할 수가 있는 시대였다.

알아주는 사람도, 천거해주는 사람도, 애써도 줄을 타지 못하여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여 미관말직微官末職의 작은 자리도 

구하지 못한다.

더구나 가져온 여윳돈도 기댈 곳도 없는 신세가 되고 보니, 수년간
떠돌아다니며, 먹을 걸 찾아 제齊 나라의 논밭이 많다는 질䬹
땅까지 흘러들어와 마침내 처참한 거지가 되어 떠돌게 되었다.

      몹시 배가 고픕니다.
      먹을 걸 조금만 주십시오.

      멀쩡한 사람이 일도 안 하고, 
      왜 얻어먹으러 다니는 거요.
      에 키. 딴 데나 가보시오.

      배가 몹시 고픕니다.
      먹을 걸 조금만 주십시오.

      이리 들어와 보시 오?
      아니, 들어오라 하셨습니까? 
      괜찮소. 어서 들어와 보시 오.

      얻어먹으러 다닐 사람 같지는 않은데
      어떻게 이리 어려운 지경이 되었소.

      한마디로 어찌 설명하겠습니까?
      밥이라도 한술 주시면 고맙게 먹고 일어서겠습니다.

      몹시 배가 고픈 모양이구려.
      여보. 밥상 좀 차려오구려.

      밥상 받아보기는 수년 만에 처음입니다.
      정말 고맙게 먹겠습니다.

      고향은 어디요.
      예. 우虞 나라에서 왔습니다.
      먼 곳에서 왔구려.

      벼슬자리를 알아보러 온 거요.
      그렇습니다만 어찌 아시는지요.

      거지로 살 팔자는 아닌 것 같구려.
      마땅히 머물 곳이나 있소?

      떠돌아다니는 몸이 어찌 머물 곳이 있겠습니까?
      떠돌아다니지 말고 이곳에 있어 보면 어떻겠소?

      저를 받아주시겠다. 구요.
      누추한 몸이 어떻게 머물 수가 있겠습니까?

      괜찮소. 넉넉하진 않으나
      머물며 우리같이 앞날을 생각해 봅시다.

막역지우莫逆之友 라는 말이 있다.
없을 막莫. 거스를 역逆. 어조사 지之. 벗 우友.

        마음이 어긋나거나 거스르지 않는 막역어심莫逆於心과 
        서로를 알아보고 친해져 벗이 되었다는 
        수상여위우 遂相與爲友에서 친한 벗友을 뜻하는 
        막역지우 莫逆之友라는 말이 생겨난다.

본래의 뜻은 하늘과 땅의 이치를 깨닫게 되어 현실을 초월하며
너그러운 마음으로 속 깊은 사귐을 뜻하였으나. 세월이 흐르며
서로 아주 친해지게 된 친구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된다.

      간담상조 肝膽相照라는 말도 있다.
      서로에게 간과 쓸개를 비춰 보일 정도로
      숨기는 게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토진간담 吐盡肝膽은
      간과 쓸개를 다 토해내듯 서로의 사정과 마음을
      숨김없이 다 털어놓는다는 말이다.

관상을 볼 줄 알고, 세상일에 밝은 건숙蹇叔은 백리해百里奚를
불러들여 이야기를 나누며, 백리해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며, 

큰 꿈을 이루려 헤매는 것을 알게 되고, 둘인 서로 마음이 
통하여 의형제를 맺으며 한 살 위인 건숙 蹇叔이 형이 되었다.

      백리해百里奚를 알아본 건숙蹇叔은 
      서로 간에 뜻을 거스르지 않으며 
      막역지우 莫逆之友로 가까워진다.

      아우, 동네의 소를 한번 키워보지 않겠소.
      잘 키워주면 조금이나마 보답을 받을 것이오.

      형님, 그렇습니까.
      몇 마리든 모아주면 열심히 키워보겠습니다. 
      그래요. 소를 키우면 많은 명상을 할 수 있지요.

그때에는 소와 말이 귀한 재산이었으며, 소는 밭을 갈고, 무거운
수레를 끌며, 또한 말은 움직이는 교통수단이라 비싸고 귀했다.

      건숙蹇叔의 살림도 넉넉지 않았으니
      동네에 잘사는 집들의 소를 모으면, 백리해百里奚는
      소의 성질을 잘 파악하여 열심히 키워준다.

키우는 소마다 살이 찌고 윤기가 난다고 하니, 서로 맡기게 되니 
소의 숫자가 불어나게 되었고, 그 보답으로 곡식을 받아와 살림에
보태게 되니 조금 여유가 생겨나면서, 이제 겨우 자기 앞가림을 
하게 되면서, 둘은 세상 이야기를 나누며 앞일을 의논하게 되었다.

      형님. 공손무지公孫無知가 제양공齊襄公을 죽이고
      새로이 군주가 되어 인재를 찾는다며
      고을마다 방을 커다랗게 붙였다고 합니다.

      임치성臨淄城으로 가서 공손무지公孫無知를 만나보겠습니다.
      동생은 임치臨淄로 가서는 아니 되오.

      죽은 제양공齊襄公의 아들들이 타국에 머물러 있는데,
      공손무지公孫無知가 주공을 죽이고 군위를 빼앗았다니
      어찌 앞날이 평탄할 리 있겠소.

      반드시 공손무지公孫無知는 위태로울 것이니
      그 밑에서 벼슬살이를 하여서는 아니 되오.

백리해百里奚는 건숙蹇叔의 충고를 받아들여, 임치臨淄로 가려다
그만두자, 얼마 뒤에 과연 공손무지는 연칭連称과 관지보管至父와
대부 옹름雍廩에게 살해당하였으므로, 백리해百里奚는 결국
건숙蹇叔의 만류로 위험에서 피해 갈 수 있었다.

      형님. 소문을 들었습니까.
      주周 왕실의 왕자 퇴頹가 소를 매우 좋아하여
      소를 잘 기르는 사람에게 후한 상을 내린답니다.

      형님. 낙양洛陽으로 올라가 의탁해볼까 합니다.
      대장부는 경솔히 타인에게 몸을 맡기면 안 되오.

      경솔히 벼슬을 살다가 그 주공을 버리면 
      불충한 자가 되며, 

      또한, 못난 주공과 끝까지 고생한다면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라 할 것이오.
      아우는 가지 않는 것이 좋겠소.

      형님. 형님에게 신세를 질 수만은 없는 노릇입니다.
      가서 한번 만나 살펴보기라도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아우는 가더라도 조심하고 또 조심하오.
      나도 집 안을 정리한 후에 뒤따라가겠소.

백리해百里奚는 왕자 퇴頹 와 소뿐만 아니라, 시국 이야기도 
나누며 서로의 마음이 통하여, 이제 높은 벼슬을 받기로 하였다.

      동생. 내가 왕자 퇴頹를 만나본 바로는
      그가 꿈은 크나 허황한 생각이 많고

      주변에 쓸 만한 인재가 너무 없어 오래가지 못할 것이오.
      미련을 가지지 말고 집으로 돌아갑시다.

건숙蹇叔의 말과 같이 얼마 지나지 않아, 왕자 퇴頹는 주혜왕을
쫓아내고, 주周 나라의 왕이 되었으나 주혜왕周惠王이 정鄭 나라의 
도움을 받아 왕자 퇴頹를 죽이며, 다시 환궁하게 되었다.

두 번씩이나 위험에서 벗어난 백리해百里奚는 건숙蹇叔의 명석한 
혜안에 감탄하며 더욱 존중하게 되었다.

      사필귀정 事必歸正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일 사事. 반드시 필必. 돌아갈 귀歸. 바를 정正

      세상의 모든 일은 결국 옳은 이치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올바르지 못한 짓은 일시적으로 통할 수 있으나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마침내 올바른 곳으로
      돌아가게 되어있다는 말이다. 

백리해百里奚는 제齊 나라에서 이제 더는 설 자리가 없다는 판단이
들며, 딱히 갈 곳도 없고, 차라리 고향인 우禹 나라 미루나무 골에 
돌아가 가족과 함께 고생하는 그것이 났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므로, 
어느 날 건숙蹇叔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푸념 섞인 말을 하게 된다.

      형님, 세월은 참으로 빠른가 봅니다.
      고향을 떠나온 지도 어언 15년이나 훌쩍 넘어
      이제 나이가 50이나 되어갑니다.

      그동안 가족의 안부도 알지 못하는바
      차라리 한 고을의 작은 벼슬이라도 하며
      가족과 함께 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고향인 우虞 나라로 돌아갈 생각이 있소?
      우虞 나라는 작은 나라요. 

      우공虞公 이란 사람은 변변치 못하여 
      큰 뜻을 펼칠 수가 없을 것이오.

      아우, 기다린 김에 좀 더 기다려봅시다
      이곳에서 좀 더 알아보는 게 어떻겠소.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을지 생각이 안 나오. 
      동생이 굳이 떠나겠다면 나도 이 질䬹 땅을 떠날까 하오.

       아우, 우虞 나라에 아는 사람이 있긴 하오.
       동생의 어려운 처지를 아는 바이니
       우虞 나라에 같이 가서 그 친구에게 부탁하여 봅시다. 

건숙蹇叔은 가지 못하게 하였으나, 백리해百里奚의 어려운 형편을
아는지라, 백리해와 같이 우虞 나라까지 가주며, 막역한 친구인
우虞 나라 재상宰相 궁지기宮之奇에게 백리해를 추천하게 된다.

우虞의 재상 궁지기宮之奇는 건숙蹇叔의 말을 믿고, 백리해를
우공虞公에게 좋게 추천하여 중대부中大夫 벼슬을 받게 하였다.

      아우는 재상宰相 궁지기宮之奇가 현명하니
      그의 말에 잘 따라야 할 것이오.

      이제 아우는 잘 있으시오. 
      나는 송宋 나라 명록촌鳴鹿村에 들어가 있을 터인바
      훗날 그곳에서 만나면 좋겠소이다. 

      형님, 그동안 보살펴주시어 고맙습니다.
      훗날 명록촌鳴鹿村으로 찾아가 뵙도록 하겠습니다.

건숙蹇叔은 명록촌鳴鹿村 으로 떠나가고, 백리해百里奚는 갖은 
고생하다가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의형인 건숙蹇叔의 도움으로, 

고향 땅에서 우虞 나라의 중대부中大夫가 되었으며
재상 궁지기와 더불어 우공虞公의 신하가 되었다.

      나라는 작지만 내가 태어나 
      자라난 내 고향이 아닌가.

      이제 욕심도 꿈도 버리고, 
      복잡한 세상사 다 잊어버리고

      착한 나의 두씨杜氏 부인과 
      어린 아들 백리시百里視를 찾아
      알뜰살뜰히 편안하게 살아가기만 하리라.

백리해百里奚는 중대부中大夫의 바쁜 일정이 지나자, 시종侍從
무사武士인 요세繇勢 등을 거느리게 되어, 두씨杜氏 부인과
어렸던 아들 백리시百里視가 보고 싶어, 서둘러 옛집이 있는
미루나무 골을 찾아 나서게 된다.

      여보女寶. 얼마나 기다리었소.
      십오여 년 만에 찾아가는 것이오.     
      이제 벼슬을 하였소이다.
      이제는 우리 가족 모여 살 수가 있소이다.

백리해百里奚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 보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였을 
것이며, 두씨杜氏 부인과의 약속을 지켜냈다며,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을 것으로, 그는 많은 감회가 서리며 가고 있었다.

      돈을 벌지 못하는 남편으로 모진 고생을 하면서도
      살림살이가 아무리 어렵더라도, 남자가 출세하려면
      집을 나서야 한다며, 남편의 뜻과 마음을 믿어주었던 
      두씨杜氏 부인이 아니던가.

한 마리뿐인 씨암탉을 잡고, 쌀이 없어 겨우 기장 쌀과 노란 조를 
그나마 얻어와 밥을 지었으며, 땔감이 없어 부엌 문짝을 뜯어 
태우면서, 한 마리 씨암탉 백숙白熟을 밥상에 올리며, 

한 숟갈이라도 더 떠먹여 떠나보내려 애쓰던 애틋한 두씨杜氏 
부인의 모습이 이슬비처럼 지나가고 있다.

      옛 모습 그대로일까. 건강하기나 할까?
      어렸던 아들 백리시百里視는 얼마나 자랐을까.
      보고 싶은 마음은 왜 눈시울을 자꾸 적시는가.

귀하신 몸이 시종을 거느리고 말을 타고 동네 어귀에 들어서자
동네 꼬마들이 뒤따르며, 부녀자와 노인이 신기한 듯 바라본다.

제 168 화. 과감해야 운명을 바꾸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