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 열국지 101∼200 회

제 109 화.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봐야 한다.

서 휴 2022. 7. 4. 13:26

109 .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봐야 한다.

 

나라와 싸워서는 안 된다는 시백施伯의 논리 정연한 말에

노장공魯莊公을 비롯한 모든 대부는 입을 다문 채 아무런 반론을

펴지 못하고 있다.

 

반론보다 시백施伯의 말에 동조하는 사람이 많았으며, 다만

노장공魯莊公의 뜻이 어떠한지를 몰라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을

뿐으로 그들이 서로 망설이고 있을 그때 시종侍從이 들어온다.

 

       주공. 제환공으로부터 서신이 왔나이다.

       으음. 어서 읽어 보아라.

 

노후魯侯는 읽어보시오! 

와 노나라는 모두 주 왕실을 섬기는 형제의 나라요.

그런데 노후魯侯는 어찌하여 이번 북행北杏 모임에

불참하여 왕명을 어기는 죄를 범하였소이까.

 

과인은 왕실을 대행하는 몸으로 그 까닭을 묻는 것이오.

만일 노후魯侯께서 이해할 만한 답을 보내지 않는다면

나라가 두 마음을 품은 것으로 알고

그에 합당한 조처를 하지 않을 수 없소이다.

 

       위압적인 글이로구나.

       과인에게 치욕과 두려움을 주려 하는구나.

 

       몸을 굽혀 제나라 뜻에 동참할 것인가?

       아니면 전쟁할 각오로 싸워야 할 것인가?

       신료들은 어서 말해 보시 오!

 

제환공齊桓公은 문강文姜에게도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내 놓고

노장공魯莊公에게 양단간에 결정을 내리도록 촉구하게 하였다.

 

       어마마마, 어서 오십시오.

       주공. 와 제나라는 예전부터 혼인해온 사이입니다.

 

       어서. 화친和親 편지를 제나라에 보내시오.

       주공, 어미 말을 들어야 평화롭습니다.

       어마마마, 알겠나이다.

 

노장공은 생모인 문강文姜의 말에, 또한, 달리 어쩔 수 없었으므로

시백施伯에게 답서를 쓰게 하여 동맹을 맺자는 뜻을 전하게 된다.

 

       제환공齊桓公에게 답하나이다.

       과인이 원래 병이 있어 북행 땅 회맹에 참석하지

       못한 것을 이제 군후께서 왕명으로 꾸짖으니

       과인인들 어찌 허물을 알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성하城下에서 무릎을 꿇는 것은

       과인이 실로 백성들 앞에 부끄러운 일이며

       또한, 어찌 조상들을 대할 수 있겠습니까?

 

       군후께서 일단 국경 밖으로 물러나시면

       과인은 분부대로 복종하겠습니다!

 

3백 년 전에 일찍이 주공 단, 아들 백금伯禽이 다스리는 노

나라와 태공망太公望이 다스리는 제나라의 정책을 비교하여

보고는 노나라가 제나라를 이기지 못할 것을 예언한 바 있었다.

 

       그 예언이 맞는 듯 제나라와 노나라 간의

       동맹 회담은 말이 동맹의 회담일 뿐

       실제로는 항복이나 마찬가지였다.

 

제환공齊桓公은 노장공魯莊公의 답서를 받고 대단히 기뻐했다.

또한, 머물고 있던 수遂 나라 땅에서 깨끗이 물러갔다. 

 

       올해 가을에 회담하도록 합시다.

       회담 장소는 제나라 땅인 가땅으로 정합니다.

 

그해 가을이 되자, 노장공魯莊公은 회담 장소인 제나라의

땅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신료臣僚를 모두 불러 모았다.

 

       누가 과인과 함께 가땅에 가겠는가?

       왜 말들이 없소!

 

       주공, 조말曺沫 이옵니다.

       신이 주공을 모시고 가겠나이다.

 

       조말曺沫이 가는 건 내키지 않소.

       그대는 제군齊軍에게 세 번이나 패한 장수가 아니오.

       나라 사람들이 그대를 보고 비웃지 않겠는가?

 

       주공. 세 번 패한 것이 너무 부끄러워

       신이 꼭 가려고 하는 것이옵니다.

 

       이번에 가서 단 한 번으로 전날에 당한

       치욕恥辱갚아주고 돌아올 작정입니다.

 

       그대는 어떻게 치욕恥辱을 갚을 작정인가?

       주공. 그것은 신에게 맡겨주십시오.

 

       이번 회담 자체가 우리 노나라로서는

       또 한 번 패한 것이나 다름없도다.

 

       그대가 무슨 수로 치욕恥辱을 갚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다른 대책이 없으니 어쩔 수가 없구나!

       조말曺沫은 같이 가도록 준비하라!

 

노장공魯莊公은 아무래도조말曺沫 믿지 못하여 망설였으나,

할 수 없이 데리고 제나라를 향해 출발하여 가땅으로 갔다.

제환공齊桓公은 이미 가땅에 제단을 쌓아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노장공魯莊公은 먼저 사자를 보내 

       제환공齊桓公에게 사죄했으며

       제환공齊桓公 도 사자를 보내

       노장공魯莊公에게 동맹 날자를 통보하였다.

 

동맹을 맺는 날이 되었다. 나라가 쌓은 제단은 7층 높이였으며

7층의 맨 위에는 커다란 대황기大黃旗를 세워놨는데, 휘날리는

사이로 방백方伯 이란 글자가 뚜렷이 보였다.

 

        제단 아래에는 제단의 사방을 빙 둘러가며 

        높고 커다란 청, ,

        제나라의 용맹한 장수들이 잡고 있으며,

        그 뒤로 씩씩한 군사들이 늘어서 있고,

 

        층마다 향탁香卓을 놓아 지나치며

        몸에 붙은 잡귀를  몰아내게 배려하였으며,

        중간층에는 동곽아 東郭牙가 안내역을 맡아 서 있었다.

 

        제단의 맨 위인 7층에는 붉은 상인 착주반着朱위에

        삽혈歃血의 피를 담을 옥우玉盂(옥잔)를 놓았다.

 

        그리고 양편에 술잔을 올려놓을 수 있는 상

        반점反坫을 놓고, 금으로 만든 술통인 금준金樽

        옥 술잔인 옥가를 올려놓았다.

 

이처럼 준비한 상양옆으로 시중들 시인寺人 이 서 있으며

중앙에 관중 管仲이 영접관 迎接官으로 서 있으며, 제환공齊桓公

노장공魯莊公을 맞이하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다.

 

이는 모두 제나라의 위세를 보여주는 것이며, 노장공魯莊公

겁박 주어, 앞으로 두 말없이 제나라를 잘 따르라는 뜻이었다.

 

       어휴 우, 저 높은 곳을 올라가게 하다니.

       어휴, 제단의 기상氣象이 정연定連 하고,

       너무 엄숙하여 나의 어깨를 움츠러들게 만드는구나.

 

노장공魯莊公이 어깨가 움츠러들어 혼자 중얼거리는데, 동맹 의식을

진행하는 제나라 중손추仲孫湫가 다가와 말을 한다.

 

       신하 한 사람만을 데리고 제단에 올라가십시오.

       나머지 사람들은 단 아래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조말曺沫은 갑옷 차림에 노장공魯莊公 곁에 붙어있으면서 보호한다.

노장공魯莊公은 한 계단 한 계단을 오를 때마다, 제환공의 위세에

눌려 몸을 떨었으나, 그 뒤를 따르는 조말曺沫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것이다.

 

       거기, 잠깐 서시 오.

       오늘은 두 나라가 서로 동맹을 맺는 경사스러운 날이오.

 

       이런 자리에 어찌 흉기를 지니고 올라갈 수 있겠소?

       허리에 찬칼을 이리 내려놓으시오!

 

제단의 중간 층계에 서 있던 동곽아東郭牙조말曺沫의 앞을

가로막으며 차고 있는 칼을 내려놓게 하였다.

 

      그러나 조말曺沫조귀曹劌는 대답 대신 두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니,

      조말曺沫 살벌한 기에 눌려, 동곽아東郭牙

      자신도 모르게 한걸음 뒤로 물러나 버렸다.

 

그때 조말曺沫은 조용히 미소 지으며 들고 있던 칼을 내밀어 주는

것이다. 노장공魯莊公과 조말曺沫은 다시 걸음을 옮겨 올라갔으며,

이윽고 제단 맨 꼭대기에 이르자, 북소리가 세 번 울렸다.

 

       두 분은 맞절하시옵소서!

       다음 차례는 삽혈歃血 행사이옵니다.

 

       검은 소와 백마의 피를 그릇에 담아

       두 군주 앞에 내놓겠나이다.

 

바로 그때 조말曺沫이 별안간  자기 품 안에서 시퍼런 단도短刀를

갑자기 꺼내더니, 제환공齊桓公의 목에 갖다 대면서 찔러 죽일

기세로, 끌어안고 마는 것이다.

 

       이게 무슨 짓인가?

       물러서지 못할까?

 

예상치 못한 조말曺沫의 행동에 제환공齊桓公은 기절할 듯이

놀랐으며, 공포의 빛이 얼굴에 역력歷歷 하자, 관중管仲 또한,

매우 놀랐으나 침착하게 재빨리 조말曺沫 앞으로 다가가 물어본다.

 

       그대는 누구 시 오?

       나는 노나라 장수 조말曺沫 이오!

       으음. 조말曺沫 장수를 여기서 만나는구려.

 

       어서 원하는 바를 말씀하시오.

       좋소, 조말曺沫이 말할 것이오.

 

       그동안 우리 노나라는 많은 수모를 겪었소

       듣자 하니, 제나라는 약한 자를 돕고 힘없는 자를

       일으켜 세운다고 하는데, 어째서 우리 노나라를

       위해선 한 번도 힘을 쓰지 않는 것이오?

 

       그대가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오?

       조말曺沫은 어서 말씀하시오?

 

       좋소, 말하겠소.

       지난봄에 우리 노나라 부용인 수나라를 빼앗겼소.

       이것은 제나라가 강한 것만을 믿고서 한 짓이오.

 

       잡아간 포로들과 빼앗은 땅을 돌려주면

       우리 노나라는 제나라를 믿고서

       피를 발라 맹세를 할 것이오.

 

조말曺沫의 말을 들은 관중管仲은 즉시 제환공齊桓公을 돌아보며,

조말曺沫의 요구 사항에 대한 답을 물어보는 것이다.

 

       주공께서는 노나라의 요구를 들어주십시오.

       허 어, 알겠노라.

 

       노魯 나라 장수 조말曺沫은 안심하라.

       과인은 수땅과 요구 사항을 돌려주겠노라.

 

       고맙사옵니다. 조말曺沫,

       엎드려 제후齊侯께 큰절을 올리겠나이다.

 

제환공이 겁에 질린 가운데서도,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승낙하자,

일촉즉발의 위기는 지나가고, 동맹 의식은 예정대로 진행되어

입술에 피를 바름으로써 삽혈歃血 의식은 그렇게 끝이 나게 되었다.

 

노장공魯莊公조말曺沫이 숙소로 돌아가자, 나라 대부들은

이 일을 뒤늦게 알고는 조말曺沫의 무례한 행동을 규탄하는 것이다.

 

       주공. 신 동곽아東郭牙 이옵니다.

       조말曺沫은 참으로 무엄한 자입니다.

 

       당장에 노장공魯莊公을 붙잡아

       조말曺沫에게 당한 모욕을 갚으시옵소서.

 

       과인도 조금 전의 그 공포를 생각하면

       조말曺沫을 씹어 먹어도 성이 풀리지 않겠도다.

 

       내 어찌 이런 모욕을 받고

       그자를 온전히 살려 보낼 수 있으리오.

 

       내일 날이 밝으면 조말曺沫을 잡아 죽이리라.

       주공. 신 관중管仲 이옵니다.

 

       주공께서는 이미 조말曺沫에게 수땅을

       돌려주겠노라고 약속을 하시었사옵니다.

 

       일반 백성들도 한 번 약속하면 지켜야 하거늘

       주공께서 어찌 두말할 수 있겠나이까?

       이제는 그런 말을 거론하지, 마시옵소서.

 

       하지만 그 약속은 목숨을 위협받는 상태에서

       한 것이라, 아까의 약속은 지키지 않아도 되오.

       나는 수땅을 돌려주지 못하겠소.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말씀입니다.

       목숨이 위급한 상황에서 한 약속도 약속입니다.

 

       위협을 받은 상태에서 약속했다 하여 그것을

       저버린다면 그것은 작은 기분 풀이에 불과하오나?

 

       약속한 대로 수땅을 돌려주시면

       천하의 제후들로부터 신망信望을 얻을 것입니다.

 

       주공께서 수땅만을 얻는 것이 목적이라면

       서슴없이 조말曺沫을 죽이시옵소서.

 

       하지만 천하를 거느리는 패공霸公이 되시려 한다면

       약속대로 수땅을 노나라에 돌려주십시오.

 

관중管仲의 말을 듣고 있던 제환공齊桓公은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깊은 뜻을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들며 말을 하였다.

 

       중보仲父의 말씀이 백번 옳소이다.

       나는 수땅이 아니라 다만 천하를 바랄 뿐이오.

 

다음날 제환공은 다시 노장공魯莊公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면서

조말曺沫을 용서하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임치臨淄로 돌아오자마자

그가 원하는 데로 빼앗았던 수나라와 촉땅을 되돌려주었다.

 

       제환공齊桓公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협박당하여 위기를 모면하려고 한 말이긴 하였어도

       일단 한번 뱉은 말은 그대로 지키고 마는 사람이로구나!.

 

       제환공齊桓公은 의로운 사람이다!

       제환공齊桓公은 믿고 따를 만한 제후諸侯 이다.

 

       우리도 동맹에 가담하도록 합시다.

       좋소, 우리도 제환공齊桓公에게 연락합시다.

 

 110 . 자기 그릇에 따라 사람을 알아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