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 열국지 101∼200 회

제 105 화. 내 손으로 내 아내를 바치는가.

서 휴 2022. 4. 30. 06:40

서휴 춘추열국지

 

105 . 내 손으로 내 아내를 바치는가.

 

채애공蔡哀公은 소녀와 초문왕楚文王을 번갈아 보면서, 기골이

건장하며 힘이 넘치면, 그러한 자는 어여쁜 여자를 좋아한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그는 자신을 속여 목숨까지 잃을 뻔하게 한

식후息侯에 대해 복수할 생각을 불현듯 떠올리게 되었다.

 

       왕이시여,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은

       남아의 마음을 설레게 하지요.

 

       대왕께서는 천하절색天下絶色을 보신 일이 있으신지요?

       대왕께서는 천하절색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초나라에 어찌 미인이 없겠소만

       천하절색 天下絶色 이라니 무슨 뜻으로 말하오?

 

       저는 천하절색을 본 적이 있지요.

       하나라의 말희末喜 ,

       상나라의 달기妲己

 

       그런 여인에 비하면 아마

       보름달과 반딧불의 차이일 것입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다 있었소?

       대관절 그 여인이 누구란 말이오?

 

       대왕께선 놀라지 마십시오?

       다름 아닌 식후息侯의 부인인 식규息嬀 입니다.

 

       식후息侯의 부인이 그토록 아름답단 말이오?

       대왕이시여, 저의 처제인데 어찌 모르겠습니까?

 

       눈은 가을물 같고 뺨은 복숭아꽃보다 고우며

       입술과 턱은 천상의 선녀보다 더 가냘프지요.

 

       아마 이보다 더한 천하절색은 없을 겁니다.

       호 오, 그리도 아름답단 말이오.

 

       내 식규息嬀를 한번 볼 수 있다면

       내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겠소.

 

       채후蔡侯는 만나게 해줄 수 있겠소?

       대왕의 위엄으로 못 할 것도 없소이다.

 

       대왕께선 순수巡狩를 나가실 적에

       두루 여러 나라를 돌아본다는 핑계로

       식나라에 들리시면 식규息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오호. 그렇긴 하오.

       만나기가 의외로 쉽구먼. 고맙소.

 

채애공蔡哀公은 초문왕楚文王이 어린애처럼 기뻐하는 걸 보며

잔치가 끝나자마자 여러 차례 절을 올리고 도망치듯 귀국하였다.

 

       식나라는 회수淮水 상류에 위치한

       강안江岸의 도시이며, 지금의

       호북성 신양시 동북쪽에 있는 식현息縣 일대이다.

 

나라는 후작侯爵의 작위를 받은 제후국이었으나, 나라가

강성해지자,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없이 주왕실을 배신하고,

나라에 조공을 바치기 시작하였다.

 

       아니. 어떻게 아무런 연락도 없이 오시다니요?

       아무 준비를 못 하여 황망하옵니다.

       아니 괜찮소. 순수巡狩 중에 잠깐 들린 것이오.

 

난데없는 초문왕楚文王의 방문을 받자, 식후息侯는 당황하면서도

관사館舍를 열어 깍듯이 모시며, 조당朝堂 에다 대연大宴을 베풀었다.

 

       식나라는 회수淮水를 끼고 있으면서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군요.

       아름다운 땅에는 어여쁜 꽃도 핀다 하지요?

 

초문왕楚文王은 식후息侯가 올리는 술잔을 받아 마시며 찾아온

의도가 따로 있는 바이므로 은근히 속마음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지난날 채나라를 친 것은 오로지

       식후息侯의 군부인君夫人을 위해서였잖소?

 

       아니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하하하. 채후蔡侯가 다 이야기하여 주었소.

 

       과인이 이곳까지 왔는데

       고맙다는 인사라도 받아야 하지 않겠소?

 

식후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으나, 감히 거역할 수가 없어 내당內堂

연락하자, 잠시 후 패옥佩玉 소리가 찰랑찰랑 나면서, 화려하게

차려입은 식규息嬀가 연회 석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대왕께서 찾아주시어 고맙습니다.

       아니 오, 괜찮소이다.

       이리 환대해주시어 감사합니다.

 

초문왕楚文王은 식규息嬀가 들어와 인사를 올리자, 눈이 너무 부셔

뜰 수도 없었으며, 놀란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으며 한동안 넋을 잃고

쳐다보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게 된다.

 

       너무나 반갑소이다.

       그대의 손길로 술잔을 받고 싶소이다.

 

       대왕, 황송하오나

       식나라의 예법상 직접 하지 못하오니

       어여쁜 궁녀의 잔을 받으시옵소서.

 

식규息嬀는 진나라 태생으로 어릴 적부터 예절 교육을 잘 받아

정도正道를 지킬 줄 알고 있었으므로 궁녀가 술을 밭치자, 두 번 절을

올리고 초문왕이 뭐라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내궁으로 들어가 버렸다.

 

       으음. 아니 이럴 수가!

       이리도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단 말이더냐!

 

       채애공蔡哀公의 말이 허언虛言은 아니었구나.

       과연 천생의 아름다운 여인이로다.

 

초문왕楚文王은 대연大宴을 아쉽게 끝내고 홀로 잠을 자는데

아름다운 식규息嬀의 모습이 아른거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다음날 답례한다는 명분으로 관사館舍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대왕께선 안녕히 주무시었습니까?.

       어제는 고마웠소. 자 답례의 잔을 받으시오.

 

식후息侯는 어제저녁에 자기 부인을 바라보는 초문왕楚文王

음흉스러운 눈빛을 보고는, 불안한 마음으로 겨우 앉아있었다.

 

       어제저녁 군부인에게 술 한 잔 받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 지금도 그 마음이 남아 있소!

 

       식후息侯, 은인을 이렇게 푸대접해도 되오!

       지금이라도 좋소. 부인을 불러내어

       내게 술 한 잔 직접 따르게 해보시오.

 

       대왕이시여, 본시 식나라의 예법에

       부인이 술자리에 나올 수 없게 되어있습니다.

 

       대왕께서는 이 점을 헤아려주십시오.

      식후息侯 야, 방금 무어라고 하였느냐!

 

       너는 계집을 위하여 채나라를 배반하더니

       이제는 교묘한 말로 나를 속이려 드는구나.

 

       너희들은 무얼 하느냐?

       당장 이 배은망덕한 자를 끌어내도록 하라!

 

식후息侯가 뭐라 변명할 틈도 없는 사이에 초나라 군사들이 달려

나와 잔치 자리를 에워싸더니, 심복 장수인 투단鬪丹이 성큼성큼

다가와 식후息侯의 손을 뒤로 묶어버리고 끌어내는 것이다.

 

       뭘 망설이느냐!

       내당內堂에 들어가 식규息嬀를 끌어내도록 하라!

 

투단鬪丹 장수는 군사를 거느리고 식궁息宮에 쳐들어가 내당內堂

살폈으나 보이지 않자, 식규息嬀를 찾으려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내가 못된 범을 집안으로 끌어들이다니

       내가 누구를 원망하리오.

       아. 이 모든 게 나의 불찰이로다.

 

식규息嬀는 조당朝堂의 연회장에서 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있을 때, 곧바로 초나라 군사들이 식궁息宮에 쳐들어오자,

모든 걸 깨달으며 체념하고서는 우물 속으로 몸을 던진다.

 

       군 부인은 잠깐 참으시오.

       군 부인은 식후息侯의 목숨은 생각지 않으시오.

 

       사셔야만 식후息侯 도 구할 수 있고

       원한도 갚을 수 있소이다.

       둘 다 죽으면 누가 식나라를 구하겠소!

 

식규息嬀는 우물에 몸을 던졌으나 투단鬪丹의 긴 창에 걸려, 겨우

떨어지지 않았으며 고개를 푹 숙이고 부르르 떨고 서 있게 된다.

 

       왕이시여. 여기 대령하였나이다.

       어허허. 이리 올라오시오.

 

       아름다운 여인은 안심하시오.

       내 식후息侯를 죽이지 않을 것이오.

 

       식나라의 종묘宗廟도 영원히 지켜 주리다.

       내 말만 잘 들어주시오.

 

초문왕은 너무 좋아하였으며 갖은 말로 위로를 하면서 관사館舍에서

자기 부인으로 삼아버렸고, 다음 날에 함께 초나라로 돌아갔다.

 

       어쩜 저리 어여쁠 수가 있을까.

       아아, 한 송이 불그레한 복숭아 꽃이야.

 

나라 사람들은 모두 식규息嬀의 아름다움에 도취하게 되었으며,

복숭아꽃처럼 아름답다고 도화桃花 부인이라 불렀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한양부漢陽府 밖에는

       도화동桃花洞 이라는 곳이 있으며,

       그곳에 도화부인桃花夫人의 사당祠堂이 있다.

 

이 당시 호증胡曾 선생과 당송唐宋 팔대가八大家는 안타까운 듯

다음의 시를 지어 노래 부르자. 널리 알려져 따라 부르게 된다.

 

       桃花夫人好顔色 (도화부인호안색)

       도화 부인 얼굴빛이 좋구나

 

       月中飛出雲中得 (월중비출운중득)

       달에서 나와 구름 중에 있는 것 같도다.

 

       新感恩仍舊感恩 (신감은잉구감은)

       새로운 사랑도 받고, 옛사랑도 함께하니

 

       一傾城矣再傾國 (일경성의재경국)

       처음엔 성이 망하고, 다음엔 나라가 망하도다.

 

초문왕楚文王은 식나라 영토를 초나라 땅으로 만들었으며

식후息侯를 여수汝水 땅에 살게 하며, 종묘宗廟의 신위神位 만을

모시도록 어느 한가한 지역에 열가구만(十家之邑)을 가지게 하였다.

 

       초문왕楚文王의 무자비한 조치에 식후息侯

       분한 마음을 참아내지 못하고 크게 후회하였으며

       탄식하며 살다가, 끝내 화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이로써 식나라는 그렇게 사라지고 만다.

 

이는 아름다운 여인과 색을 좋아하는 색마色魔에 관한 역사적

사실로, 시기심과 복수심으로 나라가 망해버리는 이야기이다.

당나라 초기의 유명한 시인 송지문宋之問의 시를 읽어 보자.

 

       可憐楚破息 (가련초파식)

       안타깝구나, 초나라가 무너지다니,

 

       斷腸息夫人 (단장식부인)

       가슴이 끊어질 듯 아픈 식규息嬀 .

 

       乃爲泉下骨 (내위천하골)

       차라리 우물에 빠져 뼈를 묻었더라면

 

       不作楚王嬪 (부작초왕빈)

       초왕의 후궁은 되지 않았으리라.

 

       楚王寵莫盛 (초왕총막성)

       초왕의 총애가 크다고 말하지 말라

 

       息君情更親 (식군정경친)

       식후息侯의 정이 더 가깝지 않겠는가.

 

       情親怨生別 (정친원생별)

      가까운 정과 생이별하다니 원통하구나

 

       一朝俱殺身 (일조구살신)

       차라리 어느 날 함께 죽었더라면.

 

106 . 올바른 군주의 자격은 어떤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