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 열국지 069∼100회

제 75 화. 나쁜 근원은 미리 잘라라.

서 휴 2022. 4. 21. 21:47

서휴 춘추열국지

 

75 . 나쁜 근원은 미리 잘라라.

 

      주공. 송장공宋莊公은 연합군과 함께 물러갔습니다.

      그러나, 쫓겨난 정려공鄭厲公이 아직 력성櫟城

      살면서 호시탐탐 복위를 노리고 있사오니,

      이 우환을 하루속히 없애야만 하옵니다.

 

      상경의 말이 맞소이다.

      그러나 어찌하면 좋겠소.

 

      당장 쳐들어가 물리칠 수도 없고

      뾰족한 방법이 없어 정말 큰일이오.

 

      주공, 이번 연합군과 싸웠듯이, 이들 네 나라는

      송, , , 나라이옵니다.

 

      이 모두 우리와 등을 지고 있으니

      이 모두 적국이라고 보아야 하옵니다.

 

      주공, 이를 한마디로 말하여 우리 정나라는

      주변의 적들에게 포위당해 있다고 봐야 합니다.

 

      주공, 이를 잘 헤쳐 나가지 않으면 언제 또,

      침공 당할지 모르는 위태한 상황입니다.

 

정소공과 제족은 진지하게 의논하기 시작하였으며 역성櫟城

정여공을 어떻게 하면 제거할까를 궁리하다가, 제족祭足

정여공鄭厲公제희공齊僖公 과의 관계를 생각해내었다.

 

      주공, 신 제족祭足 입니다.

      옛날 제희공齊僖公 께서 조상의 원수라며

      기나라를 침공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정여공鄭厲公은 기나라 편을 들어

      제나라와 맞서 싸운 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나라는 정여공鄭厲公미워하는

      마음이 아직도 남아 있을 것입니다.

 

      주공. 이번에 무슨 일인지 우리를 침공한

      연합군 중에 제나라만 가담치 않았습니다.

 

      이참에 제齊 나라와 우호를 맺으면 어떠실는지요.

      허나, 제나라가 우리와 동맹을 맺어주겠소.

 

      상경은 이를 어떻게 생각하시오.

      주공,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나이다.

 

      주공께옵서는 전에 북융北戎을 물리쳐

      제나라에 큰 공을 세운 바도 있습니다.

 

      주공께서 이제 다시 복위復位 하셨으니

      이제는 제나라와 수교를 맺으실 수 있사옵니다.

 

      마침, 나도 그걸 생각하던 참이었소.

      그러나 너무 오래된 일이라 믿어도 될지 모르겠소.

 

      주공, 때맞추어 노환공魯桓公이 제양공齊襄公을 위하여

      혼사를 주재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바, 잘하면

      노나라까지도 수교를 맺을 수 있사옵니다.

 

      만약에 두 나라의 도움을 받게 된다면

      송장공宋莊公의 침략을 물리칠 수 있사오며,

      또한, 정려공鄭厲公의 복위도 막을 수 있사옵니다.

 

      상경은 바른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 맞소.

      그리되면 얼마나 좋겠소.

 

      많은 생각을 하여본바 그동안 미안하였소.

      상경 제족祭足의 진실 된 충성심을

      이제야 알고 모두 믿게 되었소.

      늦은 감이 있으나 정말 너무나 고맙소.

 

      앞으로 우리 함께 나라를 잘 이끌어나가 봅시다.

      주공. 주공의 말씀에 감읍하나이다.

 

      주공, 신 제족祭足이 제나라에 가겠사옵니다.

      제양공齊襄公을 만나 뵙고, 주공의 뜻을 전하여

      좋은 성과를 가지고 오겠나이다.

 

      고맙소. 예물을 넉넉히 챙겨서

      천천히 잘 다녀오도록 하시오.

 

정소공鄭昭公과 제족祭足은 오랜만에, 서로의 마음이 통하면서

서로 깊이 믿게 되었으며, 이에 제족祭足은 기쁜 마음으로, 열 대의

수레에 황금과 비단을 나누어 싣고, 나라를 찾아가게 된다,

 

      그때 상경 제족祭足은 정여공鄭厲公을 방비할

      생각만을 하였지, 바로 눈앞에 가장 큰 적

      고거미高渠彌가 도사리고 있다는 걸 미처 생각지 못했다.

 

      정소공鄭昭公이 귀국하여 다시 군위에 올랐을 때

      가장 불안에 떨었던 사람도 바로 고거미高渠彌 였다.

 

      옛날 정장공鄭莊公은 고거미를 상경으로 삼고

      그 밑에 제족祭足을 두려 하였으나

      정소공鄭昭公이 반대하여 그리되지 못하였다

 

      또한, 제족祭足이 정소공鄭昭公을 몰아내고

      정여공鄭厲公을 세울 때도 앞장선 일이 있었다.

 

      대부 고거미高渠彌는 세자 홀때부터

      이미 악연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그때의 일을 잘 기억하고 있는 고거미高渠彌는 복위한

정소공鄭昭公이 언제 보복의 칼을 들이댈지 몰라 늘 두려워하였다.

 

      보복을 당하기 전에 반드시 상대를 먼저 제거해야 한다.

      그때까지 우선은 겉으로 순종하는 척하면서

      때가 오기를 호시탐탐虎視眈眈 기다려야 한다.

 

호시탐탐虎視眈眈

범 호, 볼 시노려볼 탐, 범이 볼 탐

 

범이 눈을 부릅뜨고 먹이를 노려본다.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하여 기회를 노리고 형세를 살피는 모습을

비유하는 말이다.

 

      이는 주역周易의 이괘의 육사효六四爻

      효사爻辭 인데, 여기에서 호시탐탐이 유래했다.

 

워낙 지혜롭고 꾀 많은 제족祭足을 두려워하여 섣불리 실천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기회만을 노리던 고거미高渠彌는 제족祭足

아무런 방비도 해놓지 않고 제나라로 떠나가자마자,

 

이를 절호의 기회로 여기면서 재빠르게 움직여 나갔으며, 먼저

나라에 머물고 있는 공자 미를 불러들이는 것이다.

 

      미공자님, 나라 망명 생활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제족祭足이 이제 제나라로 떠나갔습니다.

      내 그동안 제족祭足이 무서워 꼼짝하지 못했으나

      이제 신정新鄭은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있소이다.

 

      이제 안심하시고, 당분간 저의 집에 숨어 계십시오.

      거사할 만반의 준비를 해놓겠습니다.

 

어느 나라나 매년 네 번의 계절에 따라, 군주가 직접 성대하게

제사를 올리게 되는데, 봄 제사를 약, 여름 제사를 사,

가을 제사를 상이라 하였으며, 겨울 제사를 증이라 하였다.

 

증제烝祭는 대한大寒이 지나 섣달 마지막인 진일辰日이 되면,

이날을 랍일臘日 이라고도 하며, 랍제臘祭 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미공자님, 증제烝祭 올리는 날, 같이 나갑시다.

      이만한 좋은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고거미高渠彌는 이 증제烝祭 날을 거사 일로 잡고, 날쌘 암살자들을

모두 불러들이며, 심복 군사들을 준비시키고 기다리게 하여 놓았다.

 

신정新鄭의 외딴 곳에 있는 태묘太廟 행차하는 정소공鄭昭公

어가御駕에는 대부분의 제를 치르기 위한 수행원들로 무기를 지닌

군사는 이삼십 명에 불과하였다.

 

      증제烝祭, 제삿날이 되자,

      정소공은 유유히 제실祭室로 향하는데,

      한적한 곳에 이르자 별안간 숲속에서

      매복해 있던 한 떼의 무리가 뛰쳐나온다.

 

이들은 정소공鄭昭公의 어가御駕를 둘러싸며, 앞뒤로 호위하던

군사들을 무자비하게 죽이면서 달려드는 것이다.

 

      아니, 웬 놈들이냐!

      거, 누구 없느냐!

      거, 아무도 없느냐!

 

어가御駕를 호위하던 무사들이 죽기도 하고 달아나기도 하자,

정소공鄭昭公은 피할 수 없어, 깊은 상처를 입고 숨을 거두고 만다.

 

      백성들에게 급하게 공포하노라.

      애석하게도 정소공鄭昭公이 도적들에게 피살되었도다.

      보위를 비워놓을 수 없어 미공자를 세우노라.

 

고거미高渠彌는 정소공鄭昭公이 도적 떼들의 칼에 죽었다고

선포하고, 즉시 공자 미를 군위에 모시면서 정권을 모두

잡았으며, 그리고 급하게 제나라에 사람을 보내었다.

 

      정소공鄭昭公은 세자 때부터,

      이미 고거미高渠彌 악독함을 알고 있으면서,

      또 두 번씩이나 정백鄭伯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살피지 못하고 단속하지 않았다.

 

이렇게 흉악한 신하를 미리 자르지 못함으로써, 복위한 지 3년도

채 안 되어 스스로 화를 불러, 죽임을 당했다고 탄식하였다.

 

      明知惡草 自當鉏  (명지악초 자당서)

      蛇虎如何 與共居  (사호여하 여공거)

      我不制人 人制我  (아부제인 인제아)

      當年枉自 識高渠  (당년왕자 식고거)

 

      나쁜 풀은 마땅히 호미로 완전히 파내야 하거늘

      뱀과 호랑이가 여하히 함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남을 제압하지 못하면 남이 나를 제압하는 것을

      돌아와 알면서도 고거미에게 죽임을 당하였도다.

 

한편 제양공齊襄公은 정나라 제족祭足에게서 정소공鄭昭公의

복위 소식을 듣고는 매우 반가워하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허허. 정소공鄭昭公이 복위하였다니 정말 다행이오.

      옛날 북융北戎이 쳐들어 왔을 때, 세자 홀의 뛰어난

      지략과 용맹성을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소이다.

 

      제족祭足은 마침 제나라에 잘 오신 것이오.

      좋소. 좋은 날로 맹약날짜를 잡읍시다.

 

      그리고 답례 사절을 정나라에 보낼 터이니

      제족祭足은 답례 사절과 함께 돌아가도록 하시오.

 

제양공齊襄公이 상경 제족祭足의 방문으로 정소공鄭昭公의 소식을

듣자, 매우 반가워하였으며, 곧바로 답례答禮 사절을 정나라에

보내려고 하는데, 제족祭足에게 긴급한 전갈이 오고 마는 것이다.

 

      제나라에 있는 제족祭足은 지체하지 말고

      빨리 귀국하여 고거미高渠彌와 함께 정사를 돌보라.

 

제족祭足은 달려온 사자로부터 자세한 보고를 받아보니, 이미

고거미가 정소공을 시해하였고, 공자 미를 옹립하였다는 것이다.

 

      신, 제후齊侯께 아뢰나이다.

      국내 사정으로 긴급히 돌아가야 하겠사옵니다.

 

      왜 무슨 일이 있소.

      정소공鄭昭公이 시해를 당하였다 하옵니다.

 

      상경 제족祭足은 방금 뭐라 하였소.

      정소공鄭昭公이 시해당한 게 사실이오.

      틀림없이 그러하옵니다.

 

      허 내참, 어느 놈의 소행이오.

      내 곧바로 제군齊軍을 일으켜, 나라를 토벌하고

      고거미高渠彌와 공자 미를 주살하고 말리라.

 

      제군齊軍은 어서 출군 준비를 하여라.

      내 단칼에 정나라를 토벌하고 말리라.

 

제양공齊襄公이 길길이 뛰며, 당장 정나라에 쳐들어갈 기세를

올리자. 나라 신료들이 다 함께 나서며 극구 만류하는 것이다.

 

      주공. 혼사를 앞두고 있사오니

      잠시 참으셔야 하옵니다.

 

      이제 곧 락수濼水에 가시어야 하며

      노환공魯桓公 부부를 영접해야 하옵나이다.

 

      신, 제족祭足 삼가 아뢰나이다.

      제후齊侯께 정말로 죄송하옵니다.

 

      모두 잘 살피지 못하고 떠나온

      이 못난 제족祭足의 불찰이 되고 말았습니다.

 

      소신을 봐서라도 용서하시옵소서.

      상경 제족祭足은 돌아가시오.

      내 반드시 복수하여 주리다.

 

제족祭足은 정소공鄭昭公과 이제야 겨우 마음이 합해져, 둘이서

함께 나라를 잘 이끌어나가려 하였는데, 전혀 예기치 않은

고거미高渠彌의 반란으로, 또다시 큰 혼돈에 빠지게 되었다.

 

      知者千慮 必有一失 (지자천려 필유일실)

      아는 자는 천 가지를 염려하지만,

      그중에 한 가지는 반드시 놓치는 일이 있다.

      사기史記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나오는 말이다.

 

옛 말에 꾀 많은 자가 천 가지를 걱정하여 잘 챙기더라도 반드시

한 가지 실수는 따른다. 고 하였다.

 

      그렇게 세심하며 사려 깊은 제족祭足도 설마 하며,

      고거미高渠彌를 놓치고 만 것이다.

 

그때 고거미高渠彌는 오로지 정소공鄭昭公 만을 제거했을 뿐이로

다른 신료들은 그대로 유임시키며 혼란을 거져오지 않았다.

 

      주공, 신 고거미高渠彌 이옵니다.

      제족祭足은 성품이 어질고, 상황판단이 빠르며

      오랫동안 여러 나라와 교분을 많이 쌓은 바이므로

      앞으로 주공께 많은 도움이 되실 겁니다.

 

고거미高渠彌는 제족祭足 과는 지금까지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서로 간의 마음이 통하고 있다고 믿었으므로, 제족祭足을 하루빨리

귀국시켜 정국을 안정시키려 생각하였다.

 

      모든 걸 파악한 제족祭足이 안심하고 귀국하니,

      고거미高渠彌는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으며,

      공자 미는 신료들과 함께 연회까지 베풀어 주었다.

 

76 . 이복 남매끼리 사랑하면 행복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