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룡산回龍山
서길수
용龍이 올라와 회룡산 回龍山을 만들다
8. 가제도와 가거도
가거도 可居島란 이름은 어떻게 생겨난 걸까
가거도 可居島란 이름은 지금도 왜 해석解釋이 분분할까
가거도 可居島에는 특이 特異한 동물 動物이 있었을까
있었다면 어떤 동물動物이며 그 숫자는 얼마나 되었을까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속의 물개는 어떤 물개일까
그러던 어느 날
유 영초 작가님의 바다사자의 섬이란 책을 만나게 되지요.
유 영초 작가님의 바다사자의 섬을 읽어보니
용궁에는 바다사자 獅子가 살지 않나 봐요
바다사자 들은 누구 밑에 들어가는 걸 싫어하여 몇 천 마리씩 무리를 지어
옮겨 다니며 그들의 왕국 王國을 만들어 나간답니다.
포유동물哺乳動物이면서 물갯과에서 가장 큰 바다사자의 큰 수컷은 1톤 이상의
몸 무개에 키가 3.5미터나 되고 북극 지방처럼 얼음이 둥둥 떠다니는 곳을
좋아하며 암컷 들을 10에서 15마리를 거느리며 살지요.
어릴 때는 검은 갈색이었다가 성장成長하면서 검은색 또는 황갈색黃褐色으로
변하며 큰 수놈이 우는 소리는 아프리카 사자 獅子처럼 우렁차답니다.
북극 지방의 얼음이 둥둥 떠다니는 곳을 좋아하고
풀이나 모래 더욱이 넓은 바위 위에서 모여살기를 좋아하지요.
바다사자 들이 모여 사는 곳을 참고參考삼아 살피러 가볼까요.
러시아와 알래스카가 국경선을 이루는 베링 해에서 출발하여야지요.
두 나라 사이의 베링 해the Bering Sea는 삼각형 모양이지요.
두 나라 사이의 제일 가까운 거리는 북극해로 나가는 85km로
이곳의 국경선國境線을 삼각형의 꼭지 점으로 본다면
양옆은 러시아와 알래스카의 연안이 되며 태평양을 향하는 아래쪽은
밑변을 이루며 배가 불룩한 삼각형 三角形의 모양새가 되지요.
3각형의 이 밑변은 태평양 연안 沿岸의 알래스카 반도에서
출발하여 알류샨 열도를 따라가며
누니바크 세인트로렌스 카라긴스키 넬슨 아마낙 섬 등
크고 작은 300여개의 수많은 섬이 이어지며
러시아의 캄차카 반도 Kamchatka 半島까지 따라오게 됩니다.
캄차카 반도 밑으로는 태평양을 향하여 섬들로 이어져 내려오는
쿠릴열도가 일본의 혹가이도 섬까지 연결되지요
쿠릴열도에서 러시아 쪽으로 캄차카 반도와 사할린 섬 사이의
바다 오호츠크 해海는 우리나라와 사할린 섬 사이의 동해東海보다
두 배나 넓으며 베링 해는 오호츠크 해 보다 두 배가 넘는 큰 바다가 되지요.
동해나 오호츠크 해나 배링 해나 쿠릴열도의 연안沿岸은
수심이 낮으면서 바다 식물 뿐만 아니라 해양생물이 많으며
연어 청어 대구 가자미 새우 크릴krill 등 먹이가 풍부하여
물개와 해달 그리고 바다코끼리 바다표범 고래 등이 살고 있으며
특히 수만 마리의 바다사자가 살았답니다.
바다사자는 추운겨울이 오기 전에 태평양太平洋 오른쪽 연안沿岸을 따라
알래스카에서 카나다를 지나 미국 연안沿岸까지 내려가며
왼쪽으로는 태반太半의 더 많은 바다사자 들이
우리나라와 일본의 연근해 沿近海로 내려옵니다.
우리나라 연근해 沿近海 중에는 동해의 독도獨島와
서해 가거도 可居島의 국흘도 國屹島에 찾아와 살았답니다.
울릉도 鬱陵島의 독도獨島와 가거도의 국흘도 國屹島는
섬島도 여汝도 바다 밑에는 암초暗礁들도 많으며
주변에 물고기가 많아 살기 좋은 환경環境이 되어있지요.
대국흘도 소국흘도 개린여 신여 작은여 두억여 검은여 납덕여로
이루어진 국흘도 國屹島에는 암초暗礁들도 많이 깔려있으며
개린 여에는 모여 놀기 좋은 넓은 바위 광장廣場도 있답니다.
울릉도와 독도는 신라 때부터 우리나라 땅으로 되어있으며
조선왕조실록에 그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지요
그러나 우리가 발전을 늦추어 우리강토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사이에
일본은 먼저 서양 문물을 받아드려 여러 가지 산업기술이 앞서게 되며
조선 제26대 임금이신 고종高宗과 1883년에 조일어업협약을 체결하여
동해안과 남해안의 해양자산을 자기들 마음대로 가져가며
1904년에는 서해안 어업권마저도 탈취하여 가져가므로 써
우리나라 바다의 모든 수산물은 일본인들의 손에 넘어가게 되지요.
조선 제26대 임금이신 고종高宗은 1895년에
도감제 島監制를 실시하여 울릉도를 행정 관리하게 됩니다.
1899년에는 울릉도의 인구가 2,000명에 이르자 1900년에는
대한제국大韓帝國(광무 4년) 칙령 41호로 정부 지방 행정 제도를 개편하면서
울릉도와 죽도와 석도(독도)를 묶어 울도군 鬱島郡을 만듭니다.
1903년 울도 군수 심흥택은 원시림原始林이 가득한 울릉도에서
일본인들이 규목樛木 들을 불법 도벌盜伐하여 가는 것을 막습니다.
규목樛木 들은 나뭇가지가 많은 느티나무 등을 말하며
지름이 1m 가 넘는 몇 아름드리 귀貴한 나무들로
나뭇결과 색깔이 아름다운 고급 가구재 家具材가 되지요.
울릉도에 몇 아름드리 귀貴한 규목樛木 나무가 하나도 없는 것은
일본인들이 불법 도벌盜伐 하여갔기 때문이지요.
가거도에도 분명 원시림과 더불어 귀한나무들이 많았을 터인데
왜 그 흔적痕跡은 왜 하나도 보이질 않을까요.
혹여 그 자료資料를 찾지 못해서 일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섬나라이기 때문에 어려움을 덜 겪던 일본은 1868년 무쓰히토 睦仁가
일본의 왕이 되면서 명치明治라는 연호를 쓰며 각 섬들을 통일하고
앞선 서양문물西洋文物을 받아들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개혁改革으로
혁신革新을 일으켜 일본을 부강 富强하게 만들면서 근대화 近代化를 이루고
이시기를 명치유신明治維新이라 부르며 더 잘살 욕심에
남의 나라를 빼앗기 위하여 군비軍備를 확충擴充 하고
1894년에 청일전쟁淸日戰爭을 일으켜 1895년에 승리 하고난 후
1904년에 노일전쟁露日戰爭도 일으켜 1905년에 승리를 하며
1905년에 우리나라를 강압적强壓的으로 강점强占을 하지요
일본이 나날이 발전하다보니 생활용품이나 산업용이나 군수용품 등으로
부드럽고 얇고 질긴 바다사자의 가죽의 수요需要가 많이 늘어나면서
일본의 사냥꾼들이 우리나라 연근해沿近海로 찾아오며
바다사자가 많이 사는 독도獨島에 몰려듭니다.
일본인 수산업자인 나카이 요사부로는 독도의 바다사자에 대한
어로독점권漁撈獨占權을 대한제국에서 받아내도록 일본에 요청要請합니다.
독도獨島는 대한제국 영토이기 때문에 바다사자를 잡는 어로漁撈에 대한
독점권을 대한제국大韓帝國에서 받아달라는 요청要請이었지요.
노일전쟁露日戰爭을 일으킨 일본 정부는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있는 독도獨島의 중요성을 깨닫고
우리나라를 식민지植民地로 만들면 자기들 땅이 된다며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라 이름 지어 시네마현 부속附屬 도서島嶼로
지정하는 고시 40호를 1905년 1월 28일에 발표합니다.
이로써 일본은 나카이 요사부로에게
어로독점권漁撈獨占權을 허가하여 주며
자기들이 독도獨島를 관리하고 있다는 자료 資料를 남기지요.
일본은 이 근거根據 하나를 가지고
독도獨島를 자기들의 섬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1900년 전후로 이십여 년이 넘는 기간에
일본의 원양어선들이 총알로 쏘아죽이고 가죽을 벗겨가니
평화롭던 바다사자들이
독도獨島에서도 국흘도 國屹島에서도 사라지게 되지요
1900년대를 전후하여 몇 가구가 살지 않던 가거 도에
때 아닌 대포소리가 요란搖亂하게 울려 놀라게 됩니다.
총소리도 들어보지 못한 가거도 사람들은
대포소리로 전해지고 있으나 총銃 소리로 봐야겠지요
더욱이 놀라운 사실事實은 1910년에 흑산도를 방문한 미국인
해양학자海洋學者 에듀루스가
돌아가 논문論文을 발표함으로써 밝혀진 바로는
전全 세계世界 고래鯨 중 10%가 새끼를 낳으려고
가거도可居島와 흑산도黑山島 일대를 찾아온다고 하였으니
이 일대에 얼마나 많은 고래들이 찾아 모여 들었을까요.
일본 강점기强占期 하에서 귀신고래를 무려 1300마리 이상을 잡아가
귀신고래는 우리나라에서 사라지게 되었답니다.
다른 고래들은 또 얼마나 잡아갔으며 또 얼마나 사라졌을까요.
일본의 원양어선들은 가거초와 가거도에 그리고 흑산도 일대에서
고급 물고기와 고래 그리고 바다사자를 마음대로 잡아갔지요.
가거도의 백년등대가 1907년 10월에 불을 밝혔으니
이때의 시기時期를 잘 알려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바다사자에 대한 어획漁獲 독점권을 거머쥐게 된
일본인 나카이 요사부로의 다케시마 어렵회사는
독도獨島에서만 8년간에 걸쳐 1만 5천여 마리의 바다사자를 남획하였다는
일본의 기록으로 보면 실제實際로는 그 몇 배를 잡아간 셈이 되겠지요.
가거도 可居島의 국흘 도에서는 얼마나 잡아갔을까요.
바다사자의 대왕이라는 이름을 붙인 리앙쿠르가
1934년 7월 독도에서 총을 맞아 머리에 구멍이 나있는 체로
박제가 되어 시마네현 자연사 박물관에 현재에도 전시되고 있습니다.
고문헌古文獻 속에서 확인되는 독도獨島의 이름은
512년 우산도 于山島
1471년 삼봉도 三峰島
1794년 가지도 可支島
1900년 석도 石島
1906년 독도 獨島 등이 있습니다.
조선의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 정조正祖 40권에는 가지도 可支島에 가보니
가지어가 놀라 뛰어 나왔다. 라는 기록記錄이 나오지요
옛날의 우리는 바다사자를 가지어 가제 강치로 부르며
독도를 가지어可支魚가 사는 섬이라는 뜻으로
가지도可支島라 기록하였지요.
독도獨島의 옛 이름은
바다사자들이 모여 사는 가지도 可支島가 됩니다.
가거도可居島는 가지도 可支島와 연관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가거도의 이름이 만들어진 연유緣由는 어떨까요.
가거도可居島의 국흘 도에 바다사자들이 많이 살다보니
가거도可居島의 원래 이름은 바다사자가 많이 모여 사는
가제도可諸島가 아니었나 생각하게 합니다.
이 깊은 뜻이 분명하게 전해 내려오지 않다 보니
가제도可諸島가 변하여 가거도可居島라는 이름이 된 것이 아닌지
세밀한 조사調査를 하여 근거根據를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가거도 可居島에 얼마 살지 않던 사람들이 떠나기도 하고
어렴풋이 전해오는 이야기는 물개라고 하니
물갯과의 바다사자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며
가거도 可居島에는
찾아내야할 자료資料나 기록記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가거도 회룡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회룡산 10.물안개 (0) | 2015.01.22 |
---|---|
회룡산 9.국쿨도 (0) | 2014.12.30 |
회룡산 7.멸치잡이 노래 (0) | 2014.12.09 |
회룡산 6.대풍마을 (0) | 2014.12.02 |
회룡산 5.아홉골래미 (0) | 2014.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