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 열국지( 201∼300회)

제 210 화. 진나라의 계보는 어떠한가.

서 휴 2023. 7. 9. 13:52

      61. 백리해의 인생

 

210 . 진나라의 계보는 어떠한가.

 

       ()나라는 황하(黃河)의 서쪽 맨끝에 있어,

       중원(中原)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으며,

       오제(五帝) 중의 한 명인 전욱(顓頊)이 선조였다.

 

전욱(顓頊)의 후예(後裔)에 여수(女修)라는 여인이 어느 날 베틀에

앉아 베를 짜고 있는데, 제비 한 마리가 알을 떨어뜨리고 날아가자,

여수(女修)는 그 알을 먹고, 아들 대업(大業)을 낳았다.

 

        대업(大業)은 소전(少典) 씨의 딸인 여화(女華)

        부인으로 삼아 아들 대비(大費)를 얻었으며

 

        대비(大費)는 우()를 매일 열심히 도우며

        물을 다스리는 치수(治水) 공사를 하게 되었는데

 

        공사를 잘 하였다며 순()임금이 우()를 칭찬하자

        ()는 대비(大費)의 도움이 컸기 때문이라고

        그 공을 대비(大費)에게 돌려주었다.

 

        그래서 순()임금이 대비(大費)의 공을 칭찬하며

        검은 깃털이 달린 지휘봉 조유(皂游)를 상으로 내리며

 

        옥녀(玉女)라는 여자를 주어 부인으로 삼게 하면서

        그리고 영()이라는 성씨를 하사하였다.

 

대비(大費)는 우()와 함께 물을 다스리며, 흉악한 짐승을 몰아내고

또한, 축목(畜牧)의 일을 맡아보면서 모든 일을 성심껏 잘 해내자,

또 칭송하는 말을 듣게 되면서, 백예(伯翳)라 불리게 되었다.

 

        백예(伯翳)는 대렴(大廉)과 약목(若木) 이라는

        두 아들을 낳았는데, 약목(若木)

        () 나라를 받아 비() 씨의 선조가 되었다.

 

        대렴(大廉)은 아들 비렴(蜚廉)을 낳았는데

        그는 달리기를 매우 잘하여, 하루에 5백 리를

        갈 정도로 뛰어났다고 한다.

 

비렴(蜚廉)의 아들 중에 오래(惡來)가 있었는데, 힘이 장사여서

맨손으로 능히 호랑이 가죽을 찢을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하며

 

()나라 말기 주왕(紂王)이 비렴(蜚廉)과 그 아들 오래(惡來)

총애하자, 그들은 포악무도한 일을 저지르는 일에 돕게 되었다.

 

        주무왕(周武王)이 주왕(紂王)을 죽이고,

        () 나라를 평정하여 주()나라를 세우자,

        제일 먼저 비렴(蜚廉)과 아들 오래(惡來)를 죽였다.

 

비렴(蜚廉)5대손으로 조보(造父) 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말을 기르고 다루는 데 아주 탁월한 솜씨를 발휘하였다.

 

        이때는 주목왕(周穆王) 시대로, 한 번은

        주목왕(周穆王)이 서쪽으로 순수(巡狩)를 나갔다가

        도성에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에 조보(造父)는 주목왕(周穆王)의 수레를 몰아

        천릿길을 하루 만에 돌파하였으며

 

        그 덕분에 손쉽게 난()을 진압하게 되자

        그 공으로 조보(造父)는 조() 땅을 하사받았다.

 

이로써 조보(造父)는 조씨(趙氏)가 되었으며, 그 후 조씨의 일족

중에 조숙대(趙叔帶)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왕실에서 벼슬을

하다가, 주유왕(周幽王)의 악정을 피하여 진() 나라로 망명했다.

 

        후일 진문공(晉文公)이 패업을 이루는 데

        일등공신이 되었던 조쇠(趙衰)가 바로

        이 조보(造父)와 조숙대(趙叔帶)의 후손인 셈이다.

 

        또 조보(造父)의 자손으로 비자(非子)가 있었다.

        비자(非子)는 견구(犬丘) 땅에 살면서

        말의 사육과 번식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주효왕(周孝王)이 이 소문을 듣고서

        비자(非子)에게 견수(肩水)와 위수(渭水) 사이에서

        말을 기르게 하였는데 말을 잘 번식시켰다.

 

주효왕(周孝王)은 크게 기뻐하여 비자(非子)에게 진() 땅을

봉읍으로 주었고, 끊어졌던 영() 씨의 제사를 다시 잇게 하였다.

 

        비자(非子)로부터 6대가 지나 진양공(秦襄公) 대가

        되었는데, 이때는 주유왕(周幽王)이 악정을 펴다

        견융(犬戎)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진양공(秦襄公)은 제일 먼저 달려가 견융(犬戎)

        진압(鎭壓)하였으며, 연이어 주평왕(周平王)

        즉위하여, 낙양(洛陽)으로 천도하는데

        공을 세우자 그 공으로 백작(伯爵)의 관작을 받았다.

 

        또한, () 왕실의 발원지인 기산(岐山) 땅을

        하사받음으로써, 이때부터 정식으로 제후국이 되었다.

 

진양공(秦襄公)이 죽고 진문공(秦文公)이 즉위하자, 그는 진양공의

뜻을 이어받아 끊임없이 침공하는 융족들을 몰아내고,

 

기산(岐山) 땅에서 풍읍(豊邑)까지 진()나라 땅으로 삼는 등으로,

영토를 크게 넓히면서, 기산(岐山)에다 커다란 성읍을 구축하니,

바로 평양(平壤)이며, 옹성(雍城) 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나라가 안정되기까지 융족들과 100여 년 동안

        끊임없이 싸우며, 여러 명의 군주가 전사하기도 하였다.

 

        이윽고 100여 년이나 지나며, 기원전 659년경에

        6대 진덕공(秦德公)은 개()를 잡아

        충재(蟲災)를 방지하는 제사를 올림으로써

 

        처음으로 복()날을 만들었으며 개()를 잡아먹으며

        열독(熱毒)을 다스리게 하였다니, () 날에 개고기를

        먹도록 하는 풍습을 만든 장본인이 되었다.

 

        진덕공(秦德公)의 아들인 진목공(秦穆公)

        기원전 660년에 진() 나라 제9대 군주로

        즉위하여, 현명한 군주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이때 이웃인 진()의 진헌공(晉獻公)은 상하 2군을 창설하였으며,

(), (), (), (), (), 등을 점령하여 병탄하였다.

 

또한, 대륙의 동쪽인 산동반도에는 제() 나라의 제환공(齊桓公)

패공(霸公)이 되어 천하에 이름을 날리고 있을 때였다.

이때 진목공(秦穆公)은 조례에서 자기의 포부를 말하게 된다.

 

        천하의 군주들이 활발히 움직이는데, 나는 겨우

        모진(茅津) 땅의 융족(戎族)을 토벌하여

        황하(黃河) 북쪽으로 몰아내는 성과만 올렸을 뿐이오

 

        언제까지 이 궁벽한 곳에만 머물러야 하겠는가

        . 진목공(秦穆公)은 이대로 머물지 않으리라

       

        융족(戎族) 들을 하루빨리 모두 제압해야 하고

        제압하고 나면, 언젠가는 중원(中原)에 진출하여

        한 번쯤 천하의 패공(覇公)이 되어야 할 것 아닌가?

 

        먼 동쪽에는 제() 나라의 제환공(齊桓公)

        천하의 강력한 패공(覇公)으로 군림하고 있으며

 

        중원(中原)으로 나가려 해도 진() 나라가

        앞을 가로막고 있는 형편이 아닌가

 

        또한, 진헌공(晉獻公)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어.

        진군(晉軍)의 막강한 군사력을 당할 수가 없도다.

 

        그러나, 먼 앞날에 내 기필코 힘을 키워내

        , 반드시 중원의 패공(覇公)이 되고 말리라!

 

() 나라는 황하(黃河)의 맨 서쪽 상류 지역으로 산악이 많아

궁벽한 나라로 알려졌으므로, 뛰어난 인재들이 모여들지 않았다.

 

        우리 진() 나라에는 왜 인재들이 모여들지 않는가?

        () 나라의 관중(管仲) 같은 뛰어난 인재를 찾아내

        우리 국력을 키워내며, 나의 야망을 펼쳐보리라

 

진목공(秦穆公)은 한창 젊은 나이에 군주가 되었으며, 젊은

패기만큼이나 포부가 큰 만큼, 언젠가는 패업(霸業)을 이루어

한 번쯤은 기어이 패공(霸功)이 되고 싶은 야망이 있었다.

 

        주공, . 공자 칩() 이옵니다.

        장차 중원(中原)에 진출할 기반을 갖추려면

        먼저 국력을 키워내야 하옵니다.

 

        우리 진()나라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이오니

        우선 침략이 없도록 주변 나라들과 우호를 맺어

        나라를 안정시켜야 힘을 키울 수가 있나이다.

 

        옳은 말이오. 무슨 좋은 방법이 있겠소?

        지금 진()나라는 괵()과 우()를 병합하여

        이제 황하(黃河)를 모두 점령하였으므로

        얼마든지 중원으로 곧바로 나갈 수 있습니다.

 

        주공. 이제 가까운 융족(戎族) 들은 다스렸으므로

        우선으로 진() 나라와 친분을 두터이 하여

        국력을 키우며 기회를 봐야 하나이다.

 

        좋은 방안을 말해 보시 오.

        주공께선 군위에 오른 지 6년이나 돼 오나?

        정실부인(正室夫人) 자리가 비어있습니다.

 

        ()의 진헌공(晉獻公)에게는 백희(伯姬)라는

        어여쁜 큰딸이 있사오니, 먼저 진() 나라에

        청혼하여, 우호를 맺는 것이 좋을듯합니다.

 

        백희(伯姬)라는 큰딸이라. 좋은 생각이오.

        누가 혼사를 추진할 수 있겠소.

 

        주공, 신이 진() 나라를 찾아가

        진헌공(晉獻公)에게 청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진헌공은 이웃 나라인 진() 나라에서 청혼이 들어오자, 혼사를

맺는 게 좋은지 시초점(蓍草占)을 쳐보라고 하자, 태사(太卸)

()는 대나무 통에 대나무 젓가락을 넣고 흔들기 시작한다.

 

       주공, 뇌택귀매(雷澤歸妹)라는 괘를 얻었나이다.

       그 육효(六爻)의 점사는 다음과 같사옵니다.

 

       士刲羊 亦无衁也  (사규양 역무황야 )

       장사가 양을 찔렀는데 웬일인지 피가 나지 않는구나.

 

       女承筐  亦无貺也  (여승광 역무황야)

       여자가 광주리를 이고 있는데 그 안에 아무것도 없구나!

 

       西鄰責言 不可償也 (서린책언 불가상야)

       서쪽의 이웃이 꾸짖으나 갚을 길이 없구나!

 

       허 어, 태사(太卸) ()는 그 괘를 풀이해보라.

       주공, 천천히 들으시옵소서.

 

       서쪽에 있는 진()이 앞으로 진()을 꾸짖는다는

       괘는 서로 사이좋게 지낼 수 없다는 뜻입니다.

 

       또한, 귀매(歸妹)란 여자가 시집을 간다는 말입니다.

       ()이 변하여 이()가 되면, 그 괘()는 규()

       되는데, (), ()는 모두 길한 괘가 아닙니다.

       결코, 혼인을 허락하여선 아니 됩니다.

 

       허 어, 뭐 그리 안 좋게 나오는가?

       어서 태복(太卜) 곽언(郭偃)을 부르라

 

진헌공은 태복(太卜) 곽언(郭偃)을 불러 거북점(龜卜구복)을 치게

하니, 곽언(郭偃)은 거북의 등껍질인 귀갑(龜甲)을 불에 구워본다.

 

       주공, 그 징조가 대길로 나옵니다

       주공, 육효(六爻)의 점사를 말하겠나이다.

 

       松柏爲鄰 (송백위린소나무와 잣나무가 서로 이웃하니

       世作舅甥 (세작구생대대로 혼인할 사이며 

       三定我君 (삼정아군세 번이나 우리 군주를 정해주니.

       利于婚媾 (이우혼구혼인하면 이로움이 있을 것이며

       不利寇    (불리구   )   싸우면 좋지 않으리라

 

211 . 운명인가, 한때의 시련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