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 열국지( 001∼94회 )

제 59 화. 싸우지도 못하고 죽는다.

서 휴 2023. 3. 31. 16:34

59 . 싸우지도 못하고 죽는다.

 

       정군(鄭軍)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구나

       아니, 한밤중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이냐?

 

       공보가(公父嘉) 장수임

       정() 나라 군사들이 쳐들어온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간교한 놈들아침 먹고 싸우자고 먼저 말해 놓고선

       결전장의 약속을 지키지도 않는 놈들이구나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던 불빛은 어디로 갔느냐?

       병거(兵車) 소리도 간곳없고, 사방은 쥐 죽은 듯

       고요하다니. 참으로 이상도 하구나?

 

       모두 들 함부로 움직이지 마라

       저 늙은 공자 려()가 기만술(欺瞞術)을 쓰는 것이다

       모두 우리 눈을 속이려는 것이로다

 

       정군(鄭軍)은 모두 대성(載城) 안에 있다.

       대성(載城) 안에서 정군(鄭軍)이 나와야 한다.

 

       아무튼, 보초를 잘 서도록 하라

       소리는 요란하지만, 정군(鄭軍)은 몇 안 될 것이다.

 

공보가(公父嘉)는 수하 장졸과 함께 영문 밖으로 나갔으나, 아무

기척이 없자, 어쩔 수 없이 병거(兵車)에서 내려 영채로 들어갔다.

 

       장수 님, 왼편에서 함성이 들려옵니다.

       불빛도 다시 솟아오릅니다.

       장수 님, 적군입니다!

       아니, 잠 좀 자려는데 이건 또 무어냐

 

공보가(公父嘉)는 다시 병거(兵車)를 타고 영채 밖으로 나갔으나

왼쪽에서 솟아오르던 불빛이 사그라지면서, 이번에는 오른쪽에서

요란하고 커다란 병거(兵車) 소리가 잇달아 들려오고 있었다.

 

       저 늙은 공자 려()가 의병(疑兵)을 세워

       군사가 많은 것처럼 우리를 홀리려는 수작이다.

 

      모두 잘 살펴보기만 하도록 하라

      명령 없이 절대 움직이지 마라

 

공보가의 중군 병사들은 서슬 퍼런 명령에 감히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좀 시간이 흐르자 왼편에서 불꽃이 일어났다.

 

       공보가 장수 님, 적군입니다

       누구냐

       척후병입니다

       좌영(左營)의 채군(蔡軍)이 기습당하고 있습니다.

 

이때 정장공(鄭莊公)은 송(), (, ()가 서로 간에 합세하지

못하도록, 공보가(公父嘉)와 중군을 붙들어 놓았으며, 그사이에

좌영(左營)의 채군(蔡軍))을 습격하는 성동격서(聲東擊西) 작전을

쓴 것으로 보인다.

 

       성동격서(聲東擊西)

       소리 성, 동녘 동, 칠 격, 서녘 서西.

       동쪽에서 소리 지르고 서쪽을 공격한다.

 

동쪽을 쳐들어가는 척 소리를 지르면서 적을 교란(攪亂)시키며,

실제로는 서쪽을 공격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자, 빨리 채군(蔡軍)을 돕도록 하라!

       아니 1마 장이나 왔는데도 적군이 보이지 않는구나

 

       어떻게 된 것이냐. 적병이 어디에 있다는 것이냐?

       채군(蔡軍)이 기습당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그때 천지를 뒤흔들듯 시끄럽던 함성이 조용해지고, 다시 오른쪽

숲에서 불빛이 일기 시작하는 것이지만, 공보가(公父嘉)는 아직도

공자 려()와 정군(鄭軍)의 그림자조차 구경하지 못하고 있었다.

 

       허 어, 이거 어찌 된 일이냐

       좌영(左營) 이냐? 우영(左營) 이냐?

       도무지 알 수가 없구나!

 

       함성과 불빛이 우영(右營) 쪽에서 솟습니다.

       그래, . 모두 우영右營으로 가자!

 

칠흑같이 어두운 속에서 한 떼의 군마(軍馬)와 병거(兵車)가 몰려오,

공보가公父嘉 와 그의 중군은 싸울 준비를 하고 달려든다.

 

       적군이다

       적군이 분명한가

       그렇습니다

       공격하라한 놈도 살려두지 말고 다 죽여라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두 편의 군사들은 치열한 백병전을 펼치며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죽어 자빠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

오지만, 정군(鄭軍)의 특이한 소리는 전혀 나오지 않고 있었다.

 

       모두 싸움을 멈추어라

       자, 모두 횃불을 밝혀라.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아니, 우리 위군(衛軍)과 송군(宋軍)이 싸웠던 말이냐

 

       위()의 우재(右宰) 추(丑) 장수, 어떻게 된 일이요?

       글쎄요. 중군 쪽에서 불빛과 함성이 요란하기에

       송군(宋軍)을 도우러 달려오는 길이었소이다.

 

       허 어. 이거 큰 낭패가 났구먼

       우리끼리 살상을 감행하다니허 어,

 

()의 공보가(孔父嘉)는 정군(鄭軍)의 기만전술(欺瞞戰術)

속아 넘어간 걸 알아차리자, 몹시도 기가 막혔으며,

공자 려()간교한 술책에 분통이 터져 견딜 수가 없었다.

 

        공자 려()! 네 이놈

        내 기필코 네 간을 꺼내 씹어먹고 말리라

        우재(右宰) () 장수, 각자 진채로 돌아갑시다.

 

공보가(公父嘉)는 한바탕 엉뚱한 싸움을 치른 것에 몹시 분해서

이를 갈며, 자기의 중군(中軍)이 있는 영채(令寨)로 돌아가며,

날이 밝으면. 복수전을 펼치리라고 부득부득 또 이를 갈았다.

 

       허 허, 공보가(公父嘉) 장수, 어서 오시 오

       나, 고거미(高渠彌)가 한참 동안 기다렸소

 

공보가(公父嘉)가 자기의 진채(陣寨)에 이르렀을 때, 언제 이리

빨리 쳐들어왔는지 정() 나라 장수 고거미(高渠彌)가 창을 비켜

든 채 병거(兵車) 위에 우뚝 서서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어어, 저놈들이 언제 온 것이냐?

       어어, 정말 큰 일이구나!

 

공보가(公父嘉)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놀랄 뿐만 아니라,

늘어선 정군(鄭軍)의 규모를 보며 도저히 당할 수 없음을 간파하자,

재빨리 병거(兵車)를 돌리고는 냅다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이제 정군(鄭軍)은 보이지 않는구나

       아 아, ()나라 제일의 장수인 내가

       싸우지도 않고 도망을 치다니 정말 한심한 일이로다

 

달아나던 공보가는 정군이 보이지 않자, 밤새도록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기를 따라온 군사의 숫자를 세어보니, 불과 500

명에 불과하였으므로 몹시 한탄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놈, 공보가 야

       이리로 올 줄 알고 기다린 지 오래되었노라

 

매복하여 기다리던 공손 알()과 영고숙(穎考叔)이 긴 창을 비켜

들고 당당히 서서 기다리자, 공보가(公父嘉)는 기겁을 하고 만다.

 

       공보가(公父嘉) 장수 님

       저희가 막아낼 터이니 어서 달아나십시오

 

다행히 뒤따르던 수하 부장이 공보가(公父嘉)를 감싸며, 정군

향해 힘차게 덤벼드니 한바탕 어지러운 싸움이 벌어졌다.

 

공보가(公父嘉)는 도저히 이겨내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며, 수하의

군사들과 함께 다시 한참을 달아나다가 잠시 쉬려 하였다.

 

       어디서 편안히 쉬려 하느냐

       이 공자 려()가 얼마나 기다린 줄 아느냐

 

겨우 공손 알()과 영고숙(穎考叔)의 추격을 벗어나 조금 숨을

돌리려는데, 이번에는 능글맞은 공자 려()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판사판이다. 돌파하라!

       덤벼라, 한 번 죽지 두 번 죽겠느냐!

 

공보가(公父嘉)와 수하 장졸들이 죽기 살기로 달려들자, 그 기세에

눌린 정군이 주춤하는 사이에 간신히 포위망을 뚫고 달아난다.

 

       공보가(公父嘉) 장수 님

       아무래도 큰길은 겁이 납니다.

 

       큰길로는 상구(商丘)까지 가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병거(兵車)를 버리시고, 산속으로 가야겠습니다.

 

       겨우 20여 명밖에 살아남지 않았구나.!

       할 수 없다. 산길로 돌아갈 수밖에 없구나!.

       무작정 동남쪽만 바라보고 가면 될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통곡할 일이었다. 날이 밝으면 정정당당히

겨뤄 보자는 그 말을 믿은 것이 더욱 분통을 터트리게 하였다.

 

       처음에 6천여 명이나 쳐들어가지 않았느냐?

       이제 겨우 20여 명이 살아서 돌아가다니!

       우리 송()나라에 귀국하여 뭐라 말하겠는가?

 

공보가는 살아 돌아가는 것이, 죽기보다 더 어렵다는 걸 깊이깊이

실감하며, 겨우 살아남은 20여 명과 함께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주공, 신 공자 려() 이옵니다.

       송군(宋軍)은 겨우 20여 명이 살아 돌아갔습니다.

 

       위() 나라 장수 우재(右宰) ()는 공손 알()

       창에 찔려 죽었으며, 살아 돌아간 자가 거의 없습니다.

 

       채군(蔡軍)도 역시 살아 돌아간 자가 거의 없습니다.

       주공, 모두 전멸되었다고 보시면 되옵니다.

 

       수고들이 많았도다

       이제 송(), (), () 세 나라는

       당분간 일어서지 못할 것이 분명하도다

 

이리하여 송(), (), ()의 남은 군사는 포로가 되었으며

수많은 병거(兵車)와 치중(輜重)도 모두 정나라의 차지가 되었다.

이때의 전투를 후세의 한 사관(史官)이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主客雌雄尙未分 (주객자웅상미분)

       주인과 객의 자웅이 미처 구분되지 않았는가.

 

       庄公智計妙如神 (장공지계묘여신)

       장공이 세운 지략이 묘하기가 마치 귀신 같구나.

 

       分明鷸蚌尙持勢 (분명휼방상지세)

       이것은 분명 황새와 조개가 서로 물고 늘어져

 

       得利還歸結罔人 (득리환귀결망인)

       그물을 치고 기다리던 어부가 차지한 것이리라.

 

60 . 급할 때 인품이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