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 열국지( 001∼94회 )

제 16 화. 무당이 나라를 다스리는가.

서 휴 2023. 3. 13. 19:37

 6. 주나라의 암운.

 

16 . 무당이 나라를 다스리는가.

 

       강공(康公), 따님들을 내게 줄 수 있겠소

       고맙습니다만 안 될 말씀이옵니다

 

       신의 딸들은 평범한 곳에 시집보내어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것이 좋사옵니다.

 

       내가 놓치기에는 너무 아깝소이다

       강공(康公), 정말 청을 안 들어주는 거요

       죄송하옵니다. 그저 용서하시옵소서

 

주공왕(周共王)은 몹시 화가 나 호위 군사를 시켜, 밀국(密國)

멸망시키니, 여자 문제로 제후국을 망친 일은 주()나라가 생긴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 되었으며, 이로부터 왕도(王道)가 무너진다.

 

       이후에는 왕의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 제후들이 선심을

       쓰듯이 자기의 딸을 받치는 관례(慣例)가 생겨나고 말았다.

 

7대 주의왕(周懿王)의 이름은 간()이며, 주공왕(周共王)

아들이었다. 주의왕(周懿王)은 기원전 899년에 즉위하여

기원전 874년까지 25년간 재위하였다.

 

       북방의 유목민족인 융족(戎族) 중에서 험윤(玁狁)

       자주 공격하여 아주 힘든 시기였으므로, 할 수 없이

       도읍지를 임시로 호경(鎬京)에서 견구(犬口)로 옮기었다.

 

       주의왕(周懿王) , 나라 하늘에서 하늘이 두 번

       밝았다는 일식 기록이 있는바, 이 기록을 바탕으로

       주의왕(周懿王) 원년이 기원전 899년인 것을 알게 된다.

 

8대 주효왕(周孝王)의 이름은 벽방(辟方) 이다. 주목왕(周穆王)

차남으로 주공왕(周共王)의 아우이자, 주이왕(周夷王)의 숙부였으나,

주이왕(周夷王)이 너무 어렸으므로, 대신으로 주효왕(周孝王)이

즉위하여 기원전 892년부터 기원전 886년까지, 6년간 주()나라를

다스리게 되었다.

 

       아바마마, 그냥 왕위에 계속 있으시지요?

       아들아, 그건 안 될 말이로다!

 

       내 이미 형님과 형수께 물려주기로 약속을 한 바이다.

       내 어찌 약속을 어길 수가 있겠느냐

 

       아들아. 너는 왕위에 너무 욕심내지 마라

       과도한 욕심은 재앙을 불러오기 쉽노라

 

9대 주이왕(周夷王)은 주의왕(周懿王)의 아들이면서, 삼촌인

성실한 주효왕(周孝王)으로부터 순조롭게 왕위를 물려받았다.

 

       주()나라는 주문왕(周文王) 때부터 서쪽의

       유목민족인 곤이(昆夷)의 환난(患亂)이 있었으며,

       북쪽에는 험윤(玁狁)의 침공이 자주 일어났었다.

 

()나라는 이들로부터 나라를 수호(守護)하기 위하여, 아래와

같이 하나의 방침을 만들었다.

 

       나라 안을 전복(甸服)이라 정하고

       제후의 나라를 후복(侯服)이라 하였으며,

       제후국이 아닌 부족을 빈복(賓服)이라 불렀다.

 

       오랑캐의 거주지를 요복(要服)이라 칭하고,

       융적(戎翟)이 사는 곳을 황복(荒服)이라 하여

       모두 오복(五服)으로 구분하였다.

 

       전복(甸服)에서는 제()를 드리고,

       후복(侯服)에서는 사()를 올리며,

       빈복(賓服)에서는 향()을 피우게 하고,

 

       요복(要服)에서는 공물(貢物) 만을 바치고,

       황복(荒服)에서는 신하로서 복종하기만을 바란 것이다.

 

       이는 영원히 주() 왕실을 받들어야 한다는 뜻으로

       선왕께서 무력에 힘쓴 것이 아니라 백성의 근심을

       불쌍히 여겨 그 해악(害惡)을 제거하려 하신 것이다.

 

이러한 방침은 주() 왕실에서 구분을 지었을 뿐이었으므로

빈복(賓服)이나, 요복(要服)과 황복(荒服) 지역에서는 이를 잘

지키지 않았다.

 

       어느 날 황복(荒服) 지역의 험윤(玁狁)이 조공을 바치지

       않자, 주이왕(周夷王)은 괵공(虢公)에게 육사(六師)

       이끌고 태원(太原)에 있는 융족(戎族)을 치도록 명하니,

       그는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말 천 필을 노획하였다.

 

험윤(玁狁)의 침략은 사서에 뚜렷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들을

은말(殷末)에서 주초(周初)까지는 귀방(鬼方)이라고 불렀다.

 

       주이왕(周夷王)이 크게 잘못한 일로는

       기() 나라 기양후(杞煬侯)의 모함을 받아들여

       제()의 제애공(齊哀公)을 억울하게 죽인 일이었다.

 

       이 일로 제() 나라는 기() 나라를 원수로 삼아

       대대로 150년 동안이나 싸우게 했다.

 

주이왕(周夷王)은 기원전 886년부터 기원전 879년까지 7년간

재위하며, 무난한 정치를 하다가 아들인 여왕(厲王)에게 물려준다.

 

10대 주여왕(周厲王)은 패기가 넘치면서 활기찬 성품으로,

어느 날 중신들을 모아놓고, 너무 큰 의욕을 가지고 일대 연설을

하게 된다.

 

       왕실이 이래서야 무슨 일을 하겠소!

       창고란 게 모두 텅텅 비어있지 않소?

 

       왕실은 모름지기 재정이 든든해야!

       백성을 위하는 일도 할 수 있고

 

       재정이 든든해야! 군사들이 나아가

       오랑캐들을 물리칠 수가 있지 않겠소!

 

       선왕(先王)들이 너무 소극적으로 생각하였기에

       나라가 이 지경으로 가난하게 된 것이 아니겠소!

 

       하오나. 주공(周公) (), 임께옵서

       엄명으로 말씀하시었나이다.

 

       무슨 말씀을 하셨다는 거요?

       순리에 따르며 무리하지 말라 하셨나이다.

 

       주상, 서두르지 마시옵소서?

       이 모두 선왕들께서 지나치게 융족들과 싸우면서

       국고가 탕진된 것입니다.

 

       주상, 천천히 국고를 채워나가야지

       서두르시면 부작용이 생겨납니다.

 

       아니, 서두르지 말라니

       이대로 손 놓고 손가락만 빨고 있으란 말이오.

 

       나는 그럴 수 없소이다

       빨리 국고를 채워 놓고 말겠소이다

 

() 왕실의 재정 부족은 구조적인 문제로, 호경(鎬京) 주변의

여러 융족(戎族)이 수시로 침공하다 보니, 방어하고 토벌하느라

군사비 지출이 너무 많았던 것이 원인이었다.

 

주여왕(周厲王)은 즉위하자마자, 약해져 있는 왕실의 국력을

만회하고자, 주공(周公) ()의 유훈(遺訓)을 무시해서라도,

적극적인 정책을 펼쳐나가 부강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결심만을

하게 되면서, 국고 만을 채워 놓을 생각을 하였다.

 

       우선 국고(國庫)를 많이 채워 놓아야 하오

       재물이 모여야! 여러 일을 벌일 수 있지 않겠소?

 

       이재(理財)에 밝은 이공(夷公)을 등용하겠소

       주상, 이공(夷公) 이라 하시었나이까?

       주상, 이공(夷公), 그자는 아니 되옵니다.

 

       허허, 누가 그렇게 반대하는 것이오?

       주상, . 예양부(芮良夫) 이옵니다.

 

       주상, 이공(夷公)이 지금까지 하였던 것으로 보아,

       누구에게나 모두 착취(搾取)하는 방식만으로

       재정을 재건하려 한다면 위험천만한 일이 되옵니다

 

       착취(搾取)는 못 하게 할 것이오!

       그러나 조금은 거둬들여야 하지 않겠소?

 

이공(夷公)은 등용되자마자, 제후, 귀족, 백성을 모두 가리지 않고,

어떻게 하든 간에 각종 명분을 만들어 붙여가며, 세금과 벌과금을

무리하게 걷었으므로, 불만에 싸여 탄원하는 일이 자꾸 벌어졌다.

 

       왕이시여. 신 소목(召穆) () 이옵니다.

       주상, 너무하시옵니다.

 

       나라를 부강하게 하려면 여러 방법이 있사온데

       어찌하여 무리한 세금(稅金)과 벌과금만을 물리며

       왜 이렇게 무리하게 거둬들이시나이까?

       너무나 원망(怨望)하는 소리가 높사옵니다

 

       이러다간 제후들과 백성들도 왕실의 명()을 받들지

       않을 것이며, 어떤 명령에도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허 어, 소목(召穆) ()은 지금 뭐라고 하였소?

       허 참, 좀 무리가 되더라도 일단 이공(夷公)을 따르시오!

 

       나라를 부흥시킬 사람은 이공(夷公), 그자밖에 없소!

       나라를 위하여 잠시 비상수단을 쓰는 것이오.

       조금만 더 참고 협력을 좀 해주시오?

 

       주상, 백성과 제후들의 불만이 높아져

       나라에 재앙이 따라올까 염려되옵니다.

 

       소목(召穆) (),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내 마땅한 방법을 찾아볼 것이오!

 

주여왕(周厲王)은 자기를 원망(怨望)하는 귀족과 백성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자, 궁리 끝에 엉뚱한 방법을 생각해내 발표를 한다.

 

       위() 나라에서 무당을 불러왔소.

       이 무당은 상()나라 때부터 신령(神靈)하다

       하여, 그의 말은 백성들 모두가 믿소이다.

 

       이 무당은 누구의 마음도 신령(神靈)처럼

       용하게 꿰뚫어 보고 있소

 

       불만이 있는 사람은 무당과 먼저 상의하시오!

       만약, 무당과 상의하지 않고, 나를 비방하는

       자들은 모두 색출하여 벌할 것이오!

 

       이제부터 무당에게서 고발당하지 않도록 하시오!

       고발당하는 자는 그것으로 끝장이 날 것이오!

 

주여왕(周厲王)이 무당(巫堂)을 앞세운 공포 정치를 하게 되자,

비방하는 사람은 줄어들었으나, 귀족과 백성들은 입을 다물게 되며,

조정의 신료들과 제후들조차 입조(入朝)하기를 꺼리게 되었다.

 

친한 사람끼리 만나도 주여왕(周厲王)에 대한 원망하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하게 되면서, 겨우 손짓과 눈짓으로 생각을 전하는 것이다.

  

       이제 나를 비방하는 자가 없게 되었도다

       그동안 무당의 공로가 너무 큰 바이오

 

       허허. 나를 비방하는 자가 없으니

       나는 정치를 잘하는 것이 아니겠소?

 

17 . 주나라에 재앙이 찾아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