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 화. 주나라, 재앙이 찾아오는가.
왕이시여. 신 소목(召穆) 공(公) 이옵니다.
만백성의 입을 막는다는 것은
둑으로 물을 막기보다 더 어렵나이다.
이리하시면 머잖아 재앙이 따라오나이다!
만백성의 입을 막고 있는 저 무당을
하루빨리 쫓아내시옵소서!
무당은 신령(神靈)스러운 사람이오!
소목(召穆) 공(公)도 뭔가 잘못 저지른 일이
혹시나 있는 것이 아니오?.
주상, 어찌 신을 의심하시나이까?
허 어, 의심이야 할 리가 있겠소.
하지만, 조금만 더 참으시오!
조금 있으면 국고가 채워질 것이오.
이제, 중지할 때가 다가오고 있소!
기원전 844년 주려왕(周厲王)은 더 많은 재물을 모으기 위해
간신(奸臣) 이공(夷公)을 등용하고, 산림과 하천과 저수지를
국가 소유로 선포하여 백성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으며
그곳에 들어가 나무를 하거나 고기를 잡을 경우, 많은 세금을
물리는 국가 독점 정책을 시행했다.
그러함에도 주려왕(周厲王)은 끝까지 현신(賢臣)인 예량부(芮良夫),
주정(周定) 공(公), 소목(召穆) 공(公) 등의 간언을 듣지도 않으면서
간신 이공(夷公)을 앞세워 폭정을 계속 시행해 나갔다.
주여왕(周厲王)이 무도하게 나라를 경영하자
이를 얕본 융적(戎狄)이, 노략질하다가
임시 수도인 견구(犬丘)까지 쳐들어왔으며
진중(秦仲) 일가를 살해까지 하였다.
이때의 진중(秦仲) 일가는 비자(非子)의 후손으로 왕성(王城)을
지키는 경비를 맡고 있었으며, 진(秦)나라를 세우기 전의 일이다.
이에 주여왕(周厲王)은 융적(戎狄)을 치도록
경대부(卿大夫) 등에 명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자
이공(夷公)은 그 틈을 타 경대부(卿大夫)들에
나눠주었던, 토지와 소택(沼澤 저수지) 등의
관리권을 모두 회수하여 국가 소유로 독점해버렸다.
마침내 폭정을 참다못한 백성과 신료들이 힘을 합쳐 일제히
궁(宮)으로 쳐들어갔으며, 갑자기 이공(夷公)과 무당을 죽여
버리자, 이에 겁이 난 주여왕(周厲王)은 얼른 체(彘) 땅으로
도망가 버렸으므로, 갑자기 왕의 자리가 비게 되었다.
도망간 주여왕(周厲王)이 왕위를 비웠으며,
또한, 그 아들마저 찾을 수가 없게 되자
주정(周定) 공(公)과 소목(召穆) 공(公)을 비롯한
중신들이 함께 의논하며 정치하였다고 하여,
이일을 공화정(共和政)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기원전 841년인 그해에,
주(周)나라 처음으로 공화(共和) 시대가 열리게 된다.
기원전 826년이 지날 무렵에 주여왕(周厲王)이 망명지 체(彘)
땅에서 죽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체(彘) 땅은 현 산서성의 곽현(霍縣) 부근으로,
분수(汾水)가 흐르는 강안(江岸)의 한 고을이다.
주여왕이 쫓겨날 때, 세자 정(靜)의 안위를 걱정한 소목(召穆)
공(公)이 남몰래 산골 집에 무려 14년간을 숨겨 주었으며,
다행히 공화정(共和政)이 끝나게 되자,
소목(召穆)이 앞장서 왕으로 옹립하여 주었기에, 세자 정(靜)이
제11대 주선왕(周宣王)으로 즉위하게 되었다.
나는 아버지처럼 하지 않을 것이다
먼저 백성이 잘살도록 보살펴 주어야 한다!
앞으로, 주정(周定) 공(公)과 소목(召穆) 공(公)은
방숙(方叔), 소호(召虎), 윤길보(尹吉甫), 신백(申伯),
중산보(仲山甫), 등과 국사를 잘 의논하여
나라가 올바르고, 안정되게 이끌어 나가주시오!
주선왕(周宣王)은 주무왕(周武王)처럼 어느 곳에나 볼 수 있도록,
강태공(姜太公)의 치국(治國) 방략을 단서(丹書)로 써서 붙여놓고
눈에 띌 때마다 읽으며 좌우명으로 삼았다.
주선왕은 융적(戎狄) 중에서 서쪽의
견융(犬戎)이 공물을 바치지 않자,
그곳의 다섯 왕을 사로잡은 후
네 마리의 백록(白鹿)과 네 마리의 백랑(白狼)을
얻는 등으로 대승을 거두고 돌아왔다.
즉위 4년 차인 기원전 824년에 진중(秦仲)으로
하여금 융적(戎狄)을 치도록 하였으나,
그는 도리어 융적(戎狄)에게 패하며 살해당했다.
이에 진중(秦仲)의 아들 장공(莊公)을 불러 군사
7천을 주니, 장공(莊公)은 융적(戎狄)을 패퇴시켰다.
즉위 22년에는 이복동생이며 막내인 우(友)에게 정(鄭)
나라를 세우게 하며 정환공(鄭桓公)이 되게 하였다.
27년 후인 기원전 797년에 태원(太原)의
융적(戎狄)을 쳤으나 이기지 못하였으며,
또 5년 후인 기원전 792년에 조융(條戎)과
분융(奔戎)을 쳤으나 크게 패하였다.
그리고 2년 후인 기원전 790년에
진인(晉人)이 분수(汾水) 일대의 낮고 습한(汾隰)
땅에서 북융(北戎)을 패배시키자,
신융(申戎)과 분융(奔戎)은 강융(姜戎)과 힘을
합하여, 변방의 읍락(邑落)을 점령하였다.
주선왕(周宣王)은 다음 해인 기원전 789년에는 신융(申戎)을
패배시켰으며, 그에 이어 남방의 초(楚)나라를 토벌하여
처음으로 복종시켰다.
그에 따라 초(楚)나라에 공물을 바치게 하였으나,
초(楚)나라는 특별한 산물이 나지 않으므로
살펴본 결과 가시나무가 많은 나라이었으므로
매년 제사에 쓸 돗자리와 술을 담그는 데 쓰이는
약초인 청모(菁茅) 한 수레만을 공물로 바치게 했다.
이때 다른 공물을 보내지 않는다고 책하지!
않은 것은, 특별한 산물이 나지 않는 곳이므로
초(楚)나라인 형만(荊蠻)을 제어하는 데는
그 정도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서이다.
주선왕(周宣王)은 이렇게 큰 전투를 여러 번 벌려 융족(戎族)을
토벌하여 조공을 받았으며 또한, 융적(戎狄)을 물리쳐 태원(太原)
땅을 차지하고, 나라를 안정시켜 백성들을 잘살도록 만들었다.
이에 백성들은 문왕(文王), 무왕(武王)과 성왕(成王),
강왕(康王)의 치세를 다시 이루어, 주 왕조를
찬란하게 중흥시켰다 하여, 선왕중흥(宣王中興)의
좋은 시기라 하면서 주선왕(周宣王)을 칭송하였다.
그러나, 비록 주선왕(周宣王) 중흥을 이루었다고
했으나, 단서(丹書)를 계율로 삼아 행한 공덕이
집마다 창문에 새겨지는 경지에 이른
주무왕(周武王)의 치세에 미치지 못했고,
남만(南蠻)의 먼 나라가 여러 번 통역을
바꾸어가면서까지 백치(白雉)를 공물로 바칠 정도로
교화를 크게 행했던 성왕(成王)과 강왕(康王)의
치세에도 역시 미치지 못했다고 하였다.
조용한 날이 얼마 지나지 않아 주선왕(周宣王) 재위 39년이며,
기원전 789년이 되자, 예상치 않은 일이 생긴다.
그때 견융(犬戎)이 크게 반발하며 들고 일어나, 조공(朝貢)을
바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지금 뭐라고 하였느냐?
견융(犬戎)이 정말 조공(朝貢)을 바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고 하였느냐?
그러하옵니다. 그들의 형편이 어렵다고 합니다.
고얀 일이로다! 찾아와 사정하여도 어려울 판에
뭐, 쳐들어와 보라고 하는 말도 하였느냐?
하긴 그렇사옵니다.
좋다, 다들 쳐들어갈 준비를 하여라.
저 견융(犬戎)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말리라.
주선왕(周宣王)은 서쪽 오랑캐인 견융(犬戎)이 조공을 바치지
않겠다면서 오히려 큰소리치자, 급한 마음에 직접 친정에
나섰으나, 왕실의 주군(周軍)은 천무(千畝) 땅에서 싸우다가
강융(姜戎)에게 협공당하여, 병거(兵車)와 군사를 많이 잃었다.
천무(千畝)는 장차 진(晉)나라의 영지가 되며, 현 산서성(山西省)
개휴시(介休市) 남쪽 천무원(千畝原)을 말한다.
우리가 어떻게 오랑캐에게 패했단 말이냐!
저런 오랑캐에게 패한 원인이 무엇인가?
주상, 우리가 견융(犬戎)을 패배시키고 있을 때,
난데없이 강융(姜戎)이 협공하여 패한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견융(犬戎)과 강융(姜戎) 중에서
어느 쪽을 먼저 쳐야 하겠는가?
주상, 신 중산보(仲山甫) 이옵니다.
너무 자주 토벌을 감행하다 보니,
군사들이 너무 지쳐있어 힘듭니다!
잠시 군사들을 쉬게 하시옵고
시간을 가지고 군사들을 조련하여야 합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러나 시간이 없도다.
태원(太原) 땅에다 훈련장(訓鍊場)을 차리고
군사와 인부를 더 징용하여 밤낮없이 훈련 시켜라!
군사를 다시 동원하여 정벌할 계획이었으나 군사의 수가 충분치
않았으므로, 주선왕(周宣王)은 몸소 태원(太原)으로 가서 그곳의
호구를 조사하여 백성들을 징발했다. 태원(太原)은 지금의
고원주(固原州)이며 본래 융적(戎狄)의 땅을 점령한 곳이었다.
주상, 훈련할 예산이 없나이다!
필요한 예산은 세금을 더 거두어 충당시켜라!
왕이시여. 무리하옵니다.
이번 견융(犬戎)과의 싸움에서 손실이 너무 큰바
지금은 안정을 찾아야 할 때이므로
이제 유화정책(宥和政策)을 펴시면서
시간을 벌다가 차후에 만반의 준비가 되면
견융(犬戎)과 강융(姜戎)이 안심하고 있는 그때
한꺼번에 완전히 섬멸시키시옵소서?
그도 옳은 말이다. 그러나 빨리 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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