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화. 상나라가 괴멸된다.
주군(周軍)과 제후군(諸侯軍)이 쳐들어가자,
상군(商軍)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주군(周軍)과 제후군(諸侯軍)이 어려울 때마다, 황하(黃河)의
하백족(河伯族)과 동이족(東夷族)이 나타나, 상군(商軍)의 저항을
물리쳐 주었으므로, 매번 고비를 넘기면서 계속 진군하게 되었다.
주군(周軍)은 병거(兵車) 300승을 앞세우고,
정예용사 3,000명과 45,000명의 군사와 함께
상(商)나라를 깊숙이 쳐들어갔다.
주군(周軍)과 제후군(諸侯軍)은 상(商)나라 수도인 조가(朝歌)와
가까운 목야(牧野) 들판에 다다르자, 다 같이 진채(陣寨)를 세웠다.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 주본기(周本紀)의
기록에 보면, 상(商)나라는 70만 대군이었으며,
주군(周軍)은 모두 40만 명 정도라고 적혀있다.
그러나 무경십서(武經十書)에 들어있는 당리문대(唐李問對)에
따르면, 주군(周軍)은 병거(兵車) 300승과 정예병 3,000명과
군사 45,000 명이었다고 하며,
상군(商軍)은 17만 명이나 되었지만, 노비(奴婢)들을 끌어모은
오합지졸(烏合之卒) 이었다고 적혀있다.
이제부터 회유작전(懷柔作戰)에 들어가야 한다.
우리 주군(周軍)은 세작(細作)들을 많이 풀어라!
상군(商軍)의 노비병(奴婢兵)에 위로하는
말을 퍼트리며 회유(懷柔) 작전을 펴라!
강태공(姜太公)은 육도(六韜), 삼략(三略)의 책략(策略)을 이용하여,
상군(商軍)의 노비병(奴婢兵)에 멸상책(滅商策)과 경상책(傾商策)으로
사기를 꺾어놓으면서 회유 작전에 들어갔다.
상군(商軍)의 군사들은 들으시오!
주왕(紂王)이 난폭하여 어차피 상(商)나라는 망하오!
상군(商軍)에서 탈출하여 우리에게 오시오!
먹을 것도 충분히 주고 포상(褒賞)도 해주며,
그리운 고향으로 돌려보내 줄 것이오!
며칠간이 지나자, 상군(商軍)의 노비병(奴婢兵)들은 주군(周軍)이
이겨야, 자기들이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퍼져나갔다.
이에 상군(商軍)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간파한 강태공(姜太公)은
돌격대를 뽑아 돌진시키며, 상군(商軍)의 동태를 살피기로 하였다.
기마병(騎馬兵)으로 돌격대 500명을 뽑아라!
선봉에 돌격대(突擊隊)를 세워라!
돌격대는 상군(商軍)의 중앙을 흔들어놓아라!
자, 주군(周軍)의 돌격대(突擊隊)는 어서 공격하라!
아니, 우리 돌격대(突擊隊)가 공격하는 데도
상군(商軍)이 창을 거꾸로 메고 있으면서
돌격대(突擊隊)에 일제히 길을 열어주는구나!
자. 되었다. 이때다!
병거(兵車) 300승은 모두 진격하라!
자, 우리 주군(周軍)과 제후군(諸侯軍) 모두는!
상군(商軍)을 겁내지 말고 거침없이 쳐들어가라!
돌격대(突擊隊)가 상군(商軍)의 중앙을 헝클어 놓고 있을 때.
상군(商軍)의 노비병(奴婢兵)들은 난폭한 주왕(紂王)을 원망하고
있었으므로, 전투 도중에 창끝을 꺼꾸로 돌리며 주군(周軍)과
합세하면서, 상군(商軍)을 무너트리고 말았다,
이는 천심(天心)과 민심(民心)이 상(商) 나라를 괴멸시킨 것이다.
이 방법은 육도(六韜)의 멸상책(滅商策)이며,
경상책(傾商策)인 무벌(無伐)을 함께 쓴 결과이다.
목야전투(牧野戰鬪)는 기원전 1050년에 일어났으며.
주무왕(周武王) 11년에 상(商) 나라를 멸망시켰는바
중국 역사상 최초로 대군(大軍)이 접전하는
대규모 전쟁으로 알려지며 기록하게 되었다.
주군(周軍)은 상(商) 나라의 수도인 조가(朝歌)를 점령하였으며,
이에 쫓기던 주왕(紂王)은 왕궁이 불타는 속에 뛰어들어 죽었다.
주무왕은 불더미 속에서 주왕(紂王)의 시신을 찾아내, 세 대의
붉은 화살을 쏘았으며, 주왕이 하사한 붉은 도끼로 목을 베었다.
어여쁜 달기(妲己)는 노비병들의 창칼에 갈기갈기 찢기고 말았다.
서경(書經)은 유교의 5경(五經) 가운데 하나이면서
크게 우서(虞書), 하서(夏書), 상서(商書), 주서(周書)의
4부로 되어 있으며,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이다.
이 목야전투(牧野戰鬪)는 상(商)나라의 역사서인
상서(商書)에 실려있으며, 20세기 초기에 은허(殷墟)
땅에서 출토된 유물인 갑골문(甲骨文)에서 확인되어
실존한 왕조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로써 550년을 이어온 상(商)나라는 주(周)나라에 멸망하였으며,
주무왕은 상(商)나라를 괴멸시킨 다음 날부터 제단을 쌓았으며,
하늘의 옥황상제(玉皇上帝)에게 정성껏 제사를 올려 드렸다.
어서, 유리옥(羑里獄)에 갇힌 충신들을 모두 풀어주어라.
억울하게 죽은 비간(比幹)의 묘를 개장하여 주어라!
주왕(紂王)의 형인 미자(微子)에 공작(公爵)의
작위를 주어, 송(宋)나라를 이루게 하여라!
주왕에게 직간(直諫)하다가 쫓겨나, 어려운 난세에도
매우 어질어 칭송받는 상용(商容)에게 표창하며,
그가 살던 마을 사람들에게도 표창을 내리노라!
주무왕(周武王)은 주왕(紂王)의 아들인 무경(武庚)에게, 상(商)
나라의 선왕들에게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봉지(封地)를 주면서
상(商) 나라 유민의 민심을 안정시켜 나갔다.
주무왕(周武王)은 5년 동안 천하가 안정되자,
기원전 1046년에 주(周)나라가 중국 천하의
새로운 왕조(王朝)임을 선포하였다.
주(周)나라의 도읍을 풍읍(豊邑)에서 시안(西安) 근처의
호경(鎬京)으로 옮기고, 이를 종주(宗周)라 불렀다.
풍읍(豊邑)에 주(周) 왕실의 종묘(宗廟)가 남아 있었으므로
풍읍(豊邑)을 풍경(豊京)이라 고쳐 부르게 하였으며
주(周)나라로 다시 건립된 후부터, 13대가 서주(西周)에
있을 때까지, 풍경(豊京)에서 나랏일을 보았다.
주무왕(周武王)은 이제 주(周)나라가 천하의 왕국이 된바, 비로써
왕실의 예법으로, 할아버지인 고공단보(古公亶父)를 태왕(太王)으로
추숭하여 주태왕(周太王)이라 받들게 되고, 아버지인 서백(西伯)
희창(姬昌)을 주문왕(周文王)으로 추존하여, 위패(位牌)를 모시었다.
상(商)나라 때의 공(公), 후)侯, 백(伯)의 작위(爵位)에서
자(子), 남(男)을 더하여 5가지로 작위(爵位)로 늘리었다.
작위(爵位)를 받은 귀족은 여러(諸) 가지를 살핀(侯)다는 뜻으로
제후(諸侯)라 부르게 되며, 제후(諸侯)가 다스리는 봉지(封地)를
제후국(諸侯國)이라 부르게 되었다.
주무왕(周武王)이 나누어준 봉지(封地)는
왕실의 동성(同姓) 제후국(諸侯國)이 약 56개이며,
성(姓)이 다른 이성(異姓) 제후국(諸侯國)이 70여 개며
작위(爵位)를 받지 못한 부족국(部族國)까지 합한다면,
200여 개의 나라가 있었다고 추측된다.
주(周) 나라도 봉건국가(封建國家)라 부르게 되며,
제후국((諸侯國) 들을 열국(列國)이라 부르게 된다.
세월이 흐르면서, 제후국(諸侯國) 들이 서로 세력을 확장하는
등으로 각축전을 벌이게 되면서, 이에 200여 개나 되던 나라들이
서로 싸우는 시대가 바로 춘추시대(春秋時代)가 되며,
그 후 12개 나라로 압축되다가 7개 나라로 줄어드는
시기를 전국시대(戰國時代)라고 불리게 되는 것이다.
강태공(姜太公)은 일등공신으로 땅이 제일 비옥하고, 물산(物産)이
풍부하며, 자기의 고향인 하내(河內)가 있는 산동반도(山東半島)
지역을 봉지(封地)로 받는다.
사상보(師尙父)께서는 동쪽으로 동해까지,
서쪽으로 황하(黃河)가 닫는 곳까지,
남쪽으로 목령(穆岭)까지, 북쪽으로 무채(无棣)까지,
그 누구든 복종하지 않는 자는 군사를 풀어 정복하라!
강태공(姜太公)은 주무왕(周武王)이 내린 칙지(勅旨)에 따라, 제일
광활한 지역을 하사받아, 명실공히 대국의 행렬에 서게 되었다.
산동반도(山東半島)는 주(周)나라의 제후국(諸侯國)이
되었으며, 강태공은 제(齊) 라고 나라 이름을 지으면서
초대 군주가 되며 제(齊)나라의 시조(始祖)가 되었다.
강태공(姜太公)은 제齊 나라의 정치제도를 개혁하여,
번쇄(煩瑣) 한 제도와 절차가 많은 예절을 간편하게
하였으며, 상업을 발전시켜 천하 상인들이 모여들게
하였으므로, 그 당시에 가장 잘사는 나라를 만들었다.
강태공(姜太公)은 어릴 때부터 빈한한 생활을 하다가, 80세인
고희(古稀)의 나이에 주문왕(周文王)에 발탁되어, 주(周)나라의
재상이 되었으며, 주문왕이 죽자 아들인 주무왕(周武王)을 도와
상(商)나라를 무너트리고, 천하의 주(周)나라 왕조를 세웠다.
사師(스승) 중에 가장 존경받는 사상보(師尙父)가 되어
주문왕(周文王). 무왕(武王). 성왕(成王). 강왕(康王).
4대에 걸쳐 왕의 스승인 태사(太師)를 지냈다.
제 12 화. 강태공의 업적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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