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 열국지 101∼200 회

제 190 화. 편안할 만하면 위험이 닥친다.

서 휴 2022. 9. 3. 15:30

190 . 편안할 만하면 위험이 닥친다.

 

        위주魏犨 , 나 조쇠趙衰의 말을 들으시오.

        공자가 겁이 나서가 아니오.

        대의명분을 내세워야 하기 때문이오.

 

        백성이 따라올 명분이 필요한 것이니

        반드시 명분을 찾아 다 같이 행동합시다.

 

은 나라라고 하지만 사실은 적적赤狄 인들의 여러 부족 중의

하나라 할 수 있으며, 그 수장을 책반翟班 이라 불렀다.


        중이重耳는 덕이 많은 사람으로 이름이 나 있는바

        그의 가신단은 70여명 이상으로 막강하였으며,

 

        장차 진나라를 바로잡을 사람은 오직

        중이重耳 공자뿐이라는 기대감으로

        가신들은 책나라에 와서 더욱더 강하게 뭉쳐진다.


이러한 가신단을 이끌어가는 주도적 인물인 사람은 다름 아닌

호언狐偃 이었으며, 나라 원로대신이자 국구國舅

호돌狐突의 아들이자 호모狐毛의 동생이기도 하였다.


본래 현사顯士의 기질이 농후한 호언狐偃은 책으로 망명한

이후에, 항상 외롭고 고달픈 망명객들에게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으며, 그들의 마음을 포근하게 안아주기도 하였다.

 

        언제나 여기에서 머물 수는 없도다.
        언젠가는 돌아가야 하리라!
        다만, 때를 기다려야 하지 않겠는가.


호언狐偃은 항상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면서 하늘을 보며,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었으며, 망명객들의 마음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무얼 그리 살피십니까.

        허 어, 좋은 걸 염탐하고 있지요.

        무얼 염탐한단 말입니까.

 

        제일 어여쁜 소저小姐를 찾고 있지요.

        아니 갑자기 어여쁜 소저小姐 라니 요.

 

        중이重耳 공자를 시중들 소녀가 필요하지요.

        아하, 그래서 바삐 다니셨군요.

 

        공자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있는 듯하여

        즐거운 방법으로 풀어드릴까 하오.

 

        허 허, 그거는 좋은 일이지요.

        호언狐偃은 생각이 참으로 깊소이다. 그려.

 

         그래 찾으셨습니까.

         내 참. 아직 못 찾았지요.

 

뒤늦게 가신단에 합류한 조쇠趙衰는 눈치가 빨랐으므로, 호언狐偃

속셈을 재빨리 알아차리고, 자기도 포성蒲城떠나기 전에 안타깝게

병으로 죽은 자기 부인을 생각하였다.

 

       조쇠趙衰는 진헌공晉獻公으로 부터 경땅을

       영지領地로 받은 조숙趙夙의 손자이며,

 

       대부 조위趙威의 동생으로 뒤늦게 포성蒲城에 들어와

       중이重耳의 가신단에 합류한 사람이다.

 

조쇠趙衰는 시문에 밝으면서도, 호탕하고 중후한 인품을 갖추고

있어, 의리와 충성심이 호언狐偃에 못지않은 40대의 사나이다.

 

        중이重耳는 지금까지 두 번 상처喪妻를 당하였다.

        첫째 부인은 멀리 동쪽 서나라 서후徐侯의 딸이었으나

        그러나 서영徐瑛은 일찍 병으로 죽었다.

        두 번째 부인은 진나라 대부의 딸인 복길福吉 이었으나,

        그녀도 포성蒲城에서 안타깝게 병사하여
        그 후로는 홀아비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가신단이 충성스럽다 해도, 마흔이 넘은 사내의 외로운

잠자리를 해소해줄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호언狐偃은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며, 참한 책족翟族 처녀를 찾고 있었다.


        소실小室을 구하는 거요, 을 찾는 거요.
        허 어, 소실小室이나 첩이나 그걸 내가 어찌 정하겠소.

 

        그건 공자께서 정할 일이 아니겠소.
        일단 참한 소저小姐를 골라 들이민다면

        공자는 싫어하진 않겠지요. 안 그렇소.

 

        그런데 원 참, 어여쁜 소저小姐를 못 찾겠어요.

        찾아도 없으니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소.

 

때마침 책나라 왕인 책반翟班이 찾아와, 공자 중이重耳를 만나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난후, 호언狐偃을 만나게 된다.

 

        호언狐偃, 공자는 홀아비가 아니요.

        홀몸으로 어찌 지낼 수 있겠소.

 

        정실을 구할 거요, 소실을 구하는 거요

        망명한 처지에 무얼 구하고 무얼 바랍니까.

        그건 공자가 정할 것이오.

 

        걱정해주시어 감사하오나? 폐를 끼치고 싶지 않소.

        알겠소. 나도 알아서 판단해 보겠소.

        자 이제 이만 가보겠소.

 

며칠후 책반翟班이 찾아와 공자 중이重耳를 만나고 나가며,

한참 후에 호언狐偃을 찾아내 이야기 나누면서 제안을 한다.

 

        호언狐偃은 나와 같이 사냥이나 갑시다.

        좋지요. 어디로 갑니까.


        맨날 그렇게 돌아다녀 봐야 어찌 사냥감을 찾겠소.

        아니, 사냥감을 찾았단 말이오.

 

        보고가 들어와 봐야 알 것 같소.

        나도 홀아비인 공자를 그냥 놔둘 수 없어

        이리저리 찾는 중이오.

 

        책반翟班 , 공자 중이重耳의 여인이 될 소저小姐

        아름다운 미모보다는 성품이 더 중요하며,

        상냥하면서 붙임성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참한 소저小姐가 있습니까.
        있긴 한데 그게 참 쉬운 일이 아니오.


        무슨 까닭이 있습니까.
        산 너머 부락에 소문난 어여쁜 자매가 있소.

 

        산 너머라면 적적赤狄인 장고여廧咎如가 아닙니까.

        그렇소. 적적赤狄의 수장인 장고여廧咎如의 두 딸이오.

 

        적적赤狄 족장의 딸이란 말입니까.
        장고여廧咎如 하고는 원수지간이라 하던데

        그게 그리 쉽게 내주겠소이까?


        허 어. 가서 뺏어오면 되는 것 아니겠소.

        왕께서는 시원시원하여 좋습니다.

 

        얼마 전에 장고여廧咎如에게 기습을 당한 적이 있었소.

        호언狐偃, 진 빚은 갚아야 하지 않겠소.

        모레 새벽에 쳐들어갑시다

 

위주魏犨와 선진先軫은 가신단 중에서 제일 어린 20대이면서,

가장 싸움을 잘하는 젊은이로, 특히 선진先軫은 한때 할아버지인

선우先友께서 걱정할 만큼 불량배 짓도 서슴지 않았으나,

두뇌가 명석하여 시문도 많이 읽고 아는 진지한 면이 있었다.

        호언狐偃 선생님께서 부르셨습니까.

        그렇다네. 위주魏犨와 선진先軫은 언제든

        칼을 뽑을 준비가 되어있는가.

 

        아니 사냥하러 가신다고 하시면서

        무슨 전투 준비를 하란 말씀입니까.

        두 가지 다네. 단단히 준비나 하게나.

 

위주魏犨와 선진先軫은 무슨 일인가 하고 의아하게 쳐다 보다가

호언狐偃이 빙그레 웃자, 둘은 영문도 모르면서 따라 웃었다.


책반翟班이 기마대騎馬隊를 이끌고, 높은 산을 달려 올라가는데

말타기에 익숙지 않은 선진先軫은 돌이 깔린 길에서 두 번이나

낙마하였으나, 그때마다 오뚝이처럼 발딱 일어나 선봉을 선다.

        선진先軫은 할아버지를 꼭 빼닮아 용감하군.

        그러다 보면 명마도 탈 수 있겠구나.


호언狐偃은 선진先軫의 용맹함을 칭찬하고 있는데, 책군翟軍

기마대는 산을 넘어 서쪽 산기슭을 쏜살같이 질주하여 갔으며

기습적으로 장고여廧咎如 마을을 순식간에 점령해버린다.

 

        큰 마을을 점령하였으니 일단 멈추어라.

        아니, 왜 멈추고 나아가지 않습니까.


        그대, 호언狐偃 은 알지 않소.

        오늘 사냥감은 어여쁜 소저小姐가 아니겠소.

        큰 마을을 마구 유린 하면 큰 싸움이 되고 마오.

 

        그렇게 되면 협상의 여지가 없어지며

        장고여廧咎如의 딸을 진상 받기 어렵게 되오,


호언狐偃이 감탄하는 사이에, 의 책반翟班은 적적赤狄의 수장인

장고여廧咎如에게 사자를 보내어 자기의 뜻을 전한다.

 

        장고여廧咎如는 나와 협상합시다.

        나와 무얼 협상하자는 것이오.


        내가 협상을 제안하겠으니

        네가 먼저 성의를 보여야 할 것이오.

 

        , 헌상품獻上品은 양곡糧穀 열 수레이며

        협상할 대상은 그대의 두 딸이오.

 

        허 어,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

        말로 안 되면 짓밟을 수밖에 없소이다.


책반翟班과 앙숙怏宿 관계인 장고여廧咎如는 난데없이 기습당한

입장이라 조금은 양보하려 하나, 너무 터무니없는 제안에 분개한다.


        양곡糧穀 열 수레는 너무 많다.

        또한, 내 딸은 곤란하고 더욱 안 된다.

        어찌 두 딸을 인질로 내놓겠는가.


탐탁지 않은 답변에 분노하는 책반翟班은 곧바로 장고여廧咎如

마을로 쳐들어가려고 기마대騎馬隊에게 돌격 명령을 내리려 한다.

 

        책반翟班 임은 잠깐 멈춰주시오.
        제가 장고여廧咎如를 설득해보겠소이다.

 

호언狐偃은 책반翟班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재빨리 말에 올라

위주魏犨와 선진先軫과 함께 장고여廧咎如 마을로 들어가 버린다.


        나는 진나라의 호언狐偃 이란, 사람이오.
        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책반翟班이 아니라

        나의 주인이신 중이重耳 공자요.


        호언狐偃 이라는 그대는 잘 모르겠지만,

        중이重耳 공자라면 포성蒲城의 영주이며

        많은 가신과 이곳에 와있다는 소문은 들었소.


        아니, 잠깐, 그렇다면 그 중이重耳

        내 딸과 인연을 맺으려 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장고여廧咎如 족장님.

 

        그러나, 두 따님이 자격을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준다고 하셔도 받지 않을 것이니 안심하시오.


        방금 무어라고 하였소.
        자격이 안 되면 받지 않겠다니

        그대의 말은 너무 오만하지 않소.

 

        내, 두 딸에 무슨 하자가 있단 말인가.

        허 허. 나에게 모욕을 주다니 될 말이오.


장고여廧咎如는 기가 막힌다는 듯이 두 눈을 크게 부릅뜨면서,

호언狐偃노려보다가, 자기 용사들을 향하여 고함을 질렀다.

 

        내 딸을 보고 그대가 뭐라 말하는지 보겠소.

        어서 숙외叔隗와 계외季隗를 데려오너라!

 

장고여廧咎如는 자신감에 넘친 고함을 지르고 나서는 어깨를

으쓱대며 호언狐偃의 표정을 살피면서 거만하게 벙긋이 웃는다.

 

        아니, 정말 대단한 소저小姐 입니다.
        그렇소이까. 이래도 자격을 말하겠소.


장고여廧咎如의 두 딸이 영채令寨 안으로 들어오자, 호언狐偃

넋을 잃은 듯 쳐다보며 천하절색이라며 감탄하고 만다.


        아까의 내 말은 취소하겠소이다.

        중이重耳 공자의 여자로 손색이 없습니다.

 

        결코, 책반翟班 에게는 넘기지 않을 것이오.

        이 호언狐偃이 사나이로서 약속하는 바이오.

 

        지금은 비록 나라를 떠난 망명 공자이지만

        훗날 진나라의 군주로 귀향하실 분입니다.

 

        우리와 좋은 인연을 맺어 잘 교류해두면

        장고여廧咎如 부족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오.


장고여廧咎如는 당당한 호언狐偃의 태도에 호감과 신뢰를 하게

되었으며, 웃으면서 선선히 호언狐偃에게 제안하는 것이다.

 

        좋소. 이 둘 중에 누구를 원하시오?
        둘 다, 모두를 원합니다.
        허허, 내 참, 방금 뭐라 말하였소.

 

장고여廧咎如는 놀랐으나, 그 당시에는 한 남자에게 여자 형제가

함께 시집가는 풍습이 있었으므로, 호언狐偃의 제안을 승낙하였다.

 

        위주魏犨와 선진先軫은 두 소저小姐를 잘 모셔라.

        다시 찾아와 인사 올리겠습니다.
        장고여廧咎如 족장님, 안녕히 계십시오.


호언狐偃이 장고여廧咎如 족장의 두 딸인 숙외叔隗와 계외季隗

데리고 책반翟班 앞에 나타나자, 두 소저小姐를 보며 깜짝 놀란다.

 

        허 어. 호언狐偃은 참 대단하시오.

        책반翟班 , 덕분에 하사품을 잘 받았습니다.
        책반翟班 , 정말로 고맙습니다.

        이제 먼저 가보겠습니다.

 

호언狐偃은 책반翟班에게 허리를 깊이 숙여 감사의 인사를 하고 

가신단이 모여 있는 곳으로 내려가서 중이重耳에게 보고한다.

 

191 . 어느 인생이나 마지막은 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