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3 화. 가도멸괵이 무슨 뜻인가.
우공虞公. 내일이나 모래나 날씨를 보아
우리 멋지게 사냥이나 한번 합시다.
좋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좋은 사냥터가 있지요.
기산箕山은 좋은 곳이라, 그리 가도록 하시지요.
이제 이극里克이 아프다는데 만나볼까 하오.
사냥 갈 날을 정하여 연락 주시 오.
진헌공晉獻公은 이극里克과 상의 된 계략에 따라, 진군를 합세시키려
찾아온 것이며, 백리해百里奚는 진헌공이 이극里克을 만나러 가는
모습을 보면서, 몹시 걱정되어 신중하게 또다시 우공虞公에게 간한다.
주공, 아무래도 심상치 않습니다.
왜 이렇게 많은 군사가 왔겠습니까.
괵虢 나라와 전쟁 중인 걸로 알고
지원하러 온 것이라 말하지 않았소.
주공, 아무래도 대비를 잘하셔야겠습니다.
우리 주력군에게 잘 대비를 시켜야겠습니다.
진후晉侯와 얼굴을 맞대며 이야기도 하였고
함께 사냥하며 친목을 도모하기로 하였잖소.
서로 믿는 사이가 되었는 데 뭘 그리 걱정 하시오.
백리해百里奚가 대비책을 세우자고 여러 번 말했으나, 우공虞公은
진헌공晉獻公의 신의를 믿겠다면서, 전혀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우공虞公은 우군虞軍의 위용을 자랑하고 싶어, 그저 기산箕山으로
사이좋게 사냥 가는 데만 관심이 쏠려있는 것이다.
진공晉公. 우리 기산箕山은 경치도 아름답고
사냥 거리가 많으니 함께 즐기도록 하시지요.
우공虞公. 어떻습니까. 이참에 우虞와 진晉이
멋지게 사냥 시합을 하면 어떻겠습니까.
좋습니다. 사냥 시합 한번 멋지게 해봅시다.
맹수를 많이 잡는 쪽이 이기는 거로 합시다.
우공虞公은 사냥터인 기산箕山으로 가며, 백리해百里奚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주력부대를 동원하여 진헌공에게 세를 과시하려 한다.
주공, 주력부대는 성을 지켜야 합니다.
주공, 주력부대는 사냥터에 보내면 안 됩니다.
그냥 사냥이 아니라, 시합이라 하지 않소.
우리 우虞 나라 체면을 세워야 하지 않겠소.
내 참, 진군晉軍이 많은데, 우리도 진군晉軍
숫자와 비슷하게는 하여야 이기지 않겠소.
우공虞公과 진헌공晉獻公은 이른 아침 8시인 진시辰時에 시작한
사냥에서 서로 이기려고 뛰어다니며, 기산箕山의 곳곳을 누비며,
오후4시인 신시申時에 이르렀을 때, 우공과 진헌공이 기분 좋게
서로 만나게 된다. 이때 갑자기 성안에서 급보가 왔다.
백리해百里奚 대부님. 요세繇勢 이옵니다.
왜 그리 급하게 헐떡이는가.
큰일 났습니다. 성안에 큰불이 났습니다.
아무래도 변變이 난 것 같습니다.
주공. 빨리 돌아가셔야 합니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는가.
우공虞公. 무슨 일이오?
성城에 불이 났다고 합니다.
불이 났으면 끄면 되지 않겠소.
한 참 무르익은 사냥인데 멋지게 마무리나 지읍시다.
백리해百里奚는 우공虞公에게 빨리 돌아가자고 하였으나, 진헌공의
말에 따라 또 사냥을 하게 되자 이제는 변이 났다며 파발이 달려왔다.
그제야 우공虞公은 백리해百里奚와 급하게 우虞 나라 성문에
다다르니 성벽 위에는 이미 진군晉軍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우공虞公, 나는 이극里克 장수입니다.
길을 빌려주시어, 괵虢을 주시고,
이제 우虞 나라까지 주시니,
너무나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이미 순식荀息과 이극里克이 점령한 바라 성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어, 되돌아가 사냥터에 있는 주력부대를 불러오려 하였으나
이 또한 진헌공晉獻公의 진군晉軍에게 제압당한 뒤였다.
내, 궁지기宮之奇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후회 막심이로다.
어찌하여 그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소.
주공께서 궁지기宮之奇의 말도 듣지 않았는데
어찌 제 말을 귀담아 들었겠습니까.
여러 번 말씀드렸으나
주공께서는 상대의 속셈을 모르셨습니다.
주공, 바로 오늘같이 어려운 날,
신이라도 주공 곁에 남아 모시고 있습니다.
우공虞公 임. 주지교舟之僑 입니다.
잠깐 머무시오.
군후께서는 감언이설에 속아
괵虢을 팔고, 우虞도 망쳤으니
이제는 더 갈 곳이 없습니다.
우虞 나라 조상의 제사나 지낼 수 있도록
진晉 나라에 귀순하십시오.
멀리서 말발굽 소리와 먼지가 일어나더니, 주지교舟之僑가
달려와 귀순하라며 고함치니, 우虞는 진晉에 편입되었으며,
또한 우공虞公과 백리해百里奚는 포로가 되고 말았다.
이때가 주혜왕周惠王 22년이며 기원전 655년의 일이었다.
이때 가도멸괵假道滅虢 이란 말이 이렇게 생겨난 것이다.
가도멸괵假道滅虢
거짓假으로 길道을 빌려 괵虢을 없앤다滅. 는 뜻으로
풀이되지만, 우虞 나라마저도 멸망되어 사라졌다.
어리석어, 믿을 사람의 깊은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혼자만의 생각으로 상대를 덥석 믿는 어리석은 군주의
종말을 역사는 이렇게 보여주는 것이다.
진헌공晉獻公이 성안으로 들어와 백성들을 위무하여 안심시켰다.
순식荀息이 왼손에는 벽옥璧玉을 들고 오른손에는 굴산지마의
말고삐를 끌고 나와서는 진헌공晉獻公 앞으로 대령하고 말한다.
주공. 신 순식荀息 이옵니다.
우공虞公에게 주었던 것들을 모두 찾았습니다.
굴산屈産의 명마名馬 와 수극垂棘의 벽옥璧玉 입니다.
알겠노라.
우공虞公. 길을 빌려주고 나라도 받쳤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오.
자. 이 보물들을 모두 받으시오.
우공虞公은 나라 대신에 귀한 보물을 손에 쥐게 되었다.
이에 염옹髥翁 이 안타까운 마음에서 읊은 시가 있다.
璧馬區區雖至寶 (벽마구구수지보)
벽옥과 굴산지마가 비록 천하의 보물이었다지만
請將社稷較何如 (청장사직교하여)
어찌 한 나라의 사직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不夸荀息多奇計 (불과순식다기계)
순식의 묘책을 칭송하지 않을 수 없다 하더라도
還笑虞公眞是愚 (환소우공진시우)
진실로 우공의 어리석음이 정말 가소롭구나!
진헌공晉獻公은 괵虢과 우虞, 두 나라 전쟁을 마무리를 짓고 나자
순식荀息에게 우공虞公의 처리 방안을 물어보게 된다.
우공虞公을 죽여야, 되겠소. 아니겠소.
주공, 우공虞公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아무 짓도 못 합니다.
우虞 나라 민심도 있고 하니, 살려주시어
조상의 제사나 지내게 하여 주십시오.
우虞 나라는 망하고 우공虞公을 살려주니, 백리해百里奚 만이
우공虞公 곁에 남았으며, 요세繇勢가 시종의 잔일을 맡아보게 된다.
진晉 나라는 경耿, 곽藿, 위魏 나라에 이어 괵虢과 우虞 마저
병합함으로써, 이제 사방 1천여 리에 달하는 넓은 영토를
보유하게 되는 강대국이 되었다.
더구나 괵虢 과 우虞 나라를 병탄함으로써
황하黃河 만 건너면 곧바로 중원中原으로
나갈 수 있는 교두보橋頭堡를 마련한 것으로,
실로 오랜만의 숙원宿願을 이뤄낸 것이다.
진헌공晉獻公은 하나씩 모든 일이 정리되자, 모든 신료를 모이게
하고는, 유쾌한 어조로 논공행상을 발표하게 된다.
일등공신 인 순식筍息을
공자 해제奚齊의 태부太傅로 삼노라. 아울러
우虞 나라 일부의 땅을 영지로 하사하노라.
이극里克에게 하양下陽 땅을 하사하노라.
위 두 사람은 오늘부터 경卿의 벼슬을 부여하노라.
또한, 경耿, 곽藿, 위魏 나라 정벌 때 공을 세운
조숙趙夙에게 경耿 땅을 내리며
필만畢萬에게 위魏 땅을 하사하노라.
나머지 공로자에게도 그에 합당한 상을 내리겠노라.
각자 대부들의 지위와 실력은 자기가 보유하는 영지의 위치와
땅의 면적으로 구분되는 것이기도 하였다.
진헌공晉獻公은 이번 논공행상에서 아낌없이
풍족한 상을 내렸으며, 신료들 모두가 공평한
상이라고 하였으나,
그 속에는 교묘한 정치적 술수로 공자 해제의
정치적 배경을 탄탄하게 구축한 것이며,
특히 이극里克을 신생으로부터 떼어놓으려는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고,
또한 어느 편에 가담치 아니하고, 항상
중립적 위치에 있었던, 조숙趙夙 과 필만畢萬,
두 사람을 자기편의 동조자로 끌어들인 것이다.
조숙趙夙은 1백여 년 전 주유왕周幽王에게 직간을 하다가 면직을
당하였으며, 그때 주유왕周幽王의 횡포橫暴를 피해, 진晉 나라로
망명한 조숙대趙叔帶의 후손이었고, 이번 경耿, 곽藿, 위魏 나라를
정벌할 때 진헌공의 병거兵車를 조종한 차부車夫 였다.
필만畢萬은 주周 나라 필공畢公의 후예로서 병거兵車의
차우車右로써 특히 위魏 나라 공략 시에는 위魏의 성벽을
타고, 가장 먼저 올라가 진나라 깃발을 꽂은 장수이었다.
이극里克이 주지교舟之僑 와 같이 괵虢과 우虞 나라 지역地域을
다스리게 되었다,
주공, 해제奚齊의 뒤를 탄탄하게 받쳐줄
사람들을 배치하여 주시어 진실로 고맙나이다.
이번 논공행상에 여희驪姬가 가장 기뻐하였으며, 이제부터는
세자 신생申生을 어떻게 제거하느냐 하는 것에만 골몰하게 된다.
세상을 꿰뚫어 보는 현자賢者 도,
지략智略이 뛰어난 장수將帥도
더불어 자기 뜻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긴 세월 동안 갈고 닦으며 기다려도
만나지 못하여 또 기다리는 세월이 있는 모양이다.
포로가 된 백리해百里奚가 잠시도 우공虞公 곁을 떠나지 않으니
아무 쓸모 없는 사람을 알뜰히 잘도 모신다며 모두가 비웃는다.
백리해百里奚는 어디 계시오.
주지교舟之僑 장수께서 어떤 일이오.
재상 궁지기宮之奇는 어디로 갔소.
우공虞公이 어리석어 나라가 망한다며
벌써 떠나간 지 오래되었소.
그대는 우공虞公을 왜 모시고 있는 거요.
내가 지혜 없어 섬기고 있기는 하지만
우공虞公이 비록 무능하고 우매愚昧 하다 할지라도
나마저 떠나면 나는 충심을 버리는 것이며
또한, 우공虞公이 의지할 때가 없소이다.
우공虞公이 어려움에 부닥쳐 있을 때
떠나는 것은 나의 도리가 아닐 것입니다.
허허, 이제 우虞 나라는 망한 것이 아니겠소.
어리석게 굴지 말고, 진晉 나라에 벼슬하여
같이 공이나 세워봅시다.
내 그대를 진헌공에게 추천하여
진공晉公께서 대부 벼슬을 내리겠다 하였소.
고마운 말씀이나, 비록 망한 군주이지만
우공虞公께서 세상을 뜨셔야 가능할 일이오.
이제 진晉의 대부가 된 주지교舟之僑는 백리해百里奚가 현자라며,
진헌공晉獻公에게 추천하여 대부 벼슬을 내리겠다고 승낙을 받자
마자 찾아온 것이다.
군자는 자기 나라를 떠나더라도
원수의 나라에는 가지 않는 법이거늘
하물며 나에게 벼슬까지 하란 말인가.
나는 벼슬을 하더라도 진晉 나라에서는 하지 않으리다.
주지교舟之僑는 백리해百里奚의 말이 자신이 찾아온 성의를
무시하는 것이며, 또한, 빈정댄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으며, 몹시
분개하면서, 마음속 깊이 섭섭한 감정을 품으며 돌아가게 된다.
코가 석 자나 빠진 놈이 앞으로 살아갈 생각을
하여야지, 자존심만 세우려 하고 있구나.
백리해百里奚를 두고 현자라더니
한낱 어리석은 놈에 불과하구나.
건방진 놈, 어디 두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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