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 열국지 101∼200 회

제 149 화. 어느 곳에나 배신자가 있는가.

서 휴 2022. 8. 5. 16:09

149 . 어느 곳에나 배신자가 있는가.   


      방백方伯, 어서 들어오시오.
      태자마마, 이 깊은 밤중에 웬일로 부르셨나이까.

 

      이렇게 터놓고 이야기하여도 괜찮겠소.

      태자께서는 이제 안심하여도 되십니다.

 

      휴 우. 이제 말하리다.

      내가 몹시 위태롭소이다.

 

      동생 帶가 나의 동궁東宮 자리를 뺐으려하오.

      믿을 사람이라곤 그대 방백方伯 밖에 없소이다.

 

      세자께서는 아무 근심도 하지 마십시오.

      사실 이번 회합은 세자의 앞날을 탄탄하게

      만들기 위하여 이뤄진 모임입니다.

 

      태자, 이 소백小白이 책임지고

      태자를 다음 왕위에 추대하겠나이다.

      그때까지 태자께서는 자중자애自重自愛 하십시오.

 

      이 고마움을 어찌하면 좋겠소.
      태자께선 눈물을 흘리지 마시옵소서.

      아무 근심 마시고 기다리시면 되옵니다.


수지首止에서 열리는 회합은 제환공齊桓公이 태자 정을 위한

행사라는 걸 심복을 통하여 다 파악하게 된 왕후 혜후惠后,

 

이런 내용을 주혜왕周惠王에게 상세히 알려주자, 주혜왕周惠王은

깜짝 놀라며, 설마 하였던 일이라며 몹시 불쾌하게 생각하였다.


      주상, 이는 왕실에 대한 간섭이옵니다.
      제환공齊桓公이 태자를 불러낸 뜻이 불순합니다.

 

      주상. 이대로 두었다가는 왕실마저

      제환공齊桓公의 수족이 될까 두렵사옵니다.

 

왕후 혜후惠后의 말이 거듭되자, 주혜왕周惠王은 마침내 결심을

하게 되어, 참지 못하고 고함高喊을 지르게 된다.

 

      태재太宰 을 빨리 부르라.

      주상. 태재太宰 입니다.

 

      제환공齊桓公이 비록 초나라를 쳤다고는 하나?

      그가 초나라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주상께서는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주상, 와 초를 같이 비교할 수는 없나이다.

 

      오늘날 왕실과 중원이 두루 평안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제환공齊桓公의 공이 크옵니다.

 

      아니도다. 제환공齊桓公은 불순한 자다.

      제후들을 모아놓고 무슨 짓을 꾸밀지 누가 알겠는가.

 

      왕실의 일은 왕실이 알아서 처리하는 것이 아닌가.

      나의 뜻은 이미 정하여 졌도다.

 

      태재太宰는 지체하지 말고

      나의 밀서를 정문공鄭文公에게 전하라.  


태재太宰 은 형인 주혜왕周惠王으로 부터 굳게 봉해져 있는

밀서密書를 받고서 그 내용이 궁금했으나, 주혜왕周惠王의 일방적인

말에 마음이 불편해졌으므로 밀서密書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설마 하며 뜯어보지도 않고, 결국 심복 부하를 수지首止에 보내게

되며, 한참 회합 중인 정문공鄭文公에게 전하게 하였다.

 

      정문공鄭文公은 짐의 말을 잘 듣고

      반드시 꼭 이행履行 하도록 하라.

 

      태자 정이 부왕의 명을 어기고

      사사로이 무리를 모아 당을 짓고 있는바

      도저히 왕위를 계승시킬 수 없겠도다.

 

      나의 뜻은 차자인 왕자 대에게 있는 지라

      정백鄭伯은 제환공齊桓公을 버리고, 앞으로

      초와 함께 왕자 대를 보좌토록 하라.

 

      정백鄭伯이 과인의 뜻과 같이 잘 이행하면

      짐은 정백鄭伯에게 왕실의 국정을 맡기겠노라.

 

정문공鄭文公은 주혜왕周惠王에게서 난데없는 밀서를 받게 되자,

밀서의 내용을 곱씹어보는 중에, 주혜왕周惠王이 바라는 의도를

혼자서 깨달으며 싱긋이 웃고는 자기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이것이 무슨 소리인가.

      지금까지 제환공齊桓公은 많은 수고와 공적을

      이루어낸 주왕실의 대리인이라 할 수 있도다.

 

      는 왕호를 참칭僭稱 하며, 마지막 남은

      왕실의 자존심마저 짓밟은 오랑캐가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하여 나에게 제환공齊桓公을 버리고

      와 함께 왕실을 안정시키라는 것인가?

 

      주혜왕周惠王이 아무리 태자 정을 미워하고

      왕자 대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다 해도

      쉽게 내릴 수 있는 명이 아니지 않은가?

 

      혹 잘못된 밀서가 아니겠는가?

      주혜왕의 서명으로 보아 잘못된 건 아니로구나.

 

      주상께서 제환공齊桓公의 막강한 세력에

      혹여 불안과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으흠. 그렇구나.

      후계자 선정 문제가 아니라

      제환공齊桓公을 경계하는 마음이로구나.

 

      제환공齊桓公을 버리고 초와 함께

      왕실을 안정시키라는 밀명密命

 

      날로 위세가 커져가고 있는 제환공齊桓公

      경계警戒 하는 마음으로, 지금

      주혜왕周惠王은 불안과 위협을 느끼는 것이리라.

 

      흐흐. 잘 되었구나.

      우리 정나라가 초와 연합 세력을 구축하면서,

      내가 왕실의 국정을 맡게 된다면 ?

 

      그렇다. 이 기회를 잘만 이용한다면

      나도 패공覇公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정문공鄭文公은 주혜왕周惠王의 밀서에 자신도 모르게 입이 벙긋이

벌어졌으며, 자신의 야망에 대한 헛된 생각이 섬광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면서 마음이 벅차 오르며 끝내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벌써 한 밤 이로구나.

      조용히 대부들을 불러 모이게 하라.

 

      주공, 무슨 일이 있사옵니까.

      허 어, 좋은 일이 있소. 어서들 앉아 보시오.


      우리 선군이신 정무공鄭武公과 정장공鄭莊公 께서는

      왕실의 경사卿士 로서 모든 제후를 호령하였었소.

 

      그러던 것이 중간에 세도가 끊어져 버리니

      다른 제후의 명에 따르는 신세가 되고 말았소.

 

      더구나 나의 선군이신 정여공鄭厲公께서는

      지금의 천자를 왕위에 올리는 큰 공을 세우셨으나

      아직 아무런 우대優待를 받지 못하고 있소.

 

      나는 이 점이 늘 아쉬워 하였던 바이오.

      자, 다 들 이 밀서密書를 보시 오.

      이제 이 밀서密書로써 왕명이 나에게 내려졌소.

 

      이는 우리 정나라가 왕실의 국정을 운영하면서

      천하의 패권覇權을 잡아보라는 내용이므로

      이제 과인에게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 아니겠소.

 

      그대들은 모두 과인을 축복해주어야 하지 않겠소.
      . 이제 본국으로 돌아가 큰일을 도모해 봅시다.

 

      주공, 신 대부 공숙孔叔 이옵니다.
      모름지기 한 나라의 군주는 경솔해서는 아니 됩니다.

 

      주공, 경솔히 행동하면 친한 이를 잃게 되며

      친한 이를 잃게 되면 근심이 따라오게 되옵니다.

 

      제환공齊桓公은 우리 정나라를 위하여

      힘들게 연합군을 결성하였으며,

 

      손수 많은 물자를 드려, 먼 초나라까지

      원정을 갔던 은인이 되십니다.

 

      주공, 인제 와서 제를 버리고 초와 친해진다면

      그것은 곧 배은망덕背恩忘德 한 일이 되나이다.

 

      더욱이 제환공齊桓公 태자 정을 돕는 것은

      적장자嫡長子를 바로 세우려 하는 것이며

      이는 천하의 대의를 올바로 세우려는 것입니다.

 

      바라건대, 주공께서는 딴생각을 갖지 마십시오.

      대부 공숙孔叔은 어찌 자기 말만 하는가.


      우리가 천자의 명을 따르고 돕는 것을

      그대는 어찌 경솔한 행동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주공, 왕실의 대를 이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적장자嫡長子 이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지러움만 초래할 뿐이옵니다.

      지난날의 일들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사옵니다.

      주유왕周幽王이 왕자 백복伯服을 사랑하고

      주환왕周桓王이 왕자 극을 사랑하고

      주장왕周莊王이 왕자 퇴를 사랑하였다가

      어떻게 되었는가는 주공께서 더 잘 아실 것입니다.

 

      결국, 왕실을 어지럽히고, 목숨만 잃었을 뿐

      아무런 공적도 남기지 못하였나이다.

 

      주공께서는 옛사람들이 저지른 허물을

      어찌 다시 되풀이하여 따르려 합니까.


      만일 이번에 잘 못 생각하여,

      경솔히 주혜왕周惠王을 돕고

      제환공齊桓公을 배신한다면

      주공께서는 반드시 크게 후회하게 되옵니다.

 

      아닙니다. 주공,

      대부 신후申侯가 말씀 올리겠나이다.


      대부 공숙孔叔은 너무 강조하지 마시오.

      천자의 명을 따르며 돕는 것을

      어찌 경솔한 행동이라 할 수 있겠소.


정문공鄭文公은 공실 세력이 만만치 않은 공숙孔叔이 결사적으로

만류하자, 기가 꺾이고 있을 무렵에 불쑥 대부 신후申侯가 뛰어들어

정문공鄭文公의 야욕을 거들며, 은밀히 부추기기도 하였다.

 

      주공, 신 대부 신후申侯 이옵니다.
      주공, 대부 공숙孔叔의 말은 틀리나이다.

 

      우리는 천자의 신하이지,

      패공霸公의 신하가 아닙니다.

 

      주공께선 오직 천자의 명에 따라갈 뿐으로

      제환공齊桓公에 대한 아무런 배신이 아니옵니다.

 

      태자 정과 왕자 대중에, 누가

      다음 왕위에 오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주공께서는 일단 본국으로 돌아가시어

      잠시 사태를 관망해 볼 필요가 있나이다.

신후申侯는 구변이 좋고 아첨에 능한 사람으로, 원래 신나라

군주 신공申公의 생질이었으나, 나라가 초에 망하자,

 

의 신하가 되었다가, 말을 잘 들어주던 초문왕楚文王이 죽자,

나라에 귀화하여 대부 벼슬을 하고 있었기에, 사람들로부터

망국의 후예後裔 라며 손가락질을 받는 미움 덩어리였다.


      대부 신후申侯는 그렇게 생각하는가.

      주공, 천자의 말씀을 따르셔야 하옵니다.


      허 어, 그렇도다. 그대의 말이 옳도다.

      나의 마음은 신후申侯의 뜻으로 정하겠소.
      , 이제 모두 준비하시오.


정문공鄭文公은 신후申侯의 말에 따라, 밤사이에 소리소문없이

진채陣寨를 거두었으며, 정군鄭軍과 함께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방금方今, 무어라고 하였느냐.
      나라가 아무 기척도 없이 떠났단 말이냐.

 

      국내에 급한 일이 생겨 떠났다고 합니다.

      인사도 없이 떠나다니 아주 못 된 놈이로다.

      태자를 받들고 정나라를 당장 토벌하리라!

 

제환공齊桓公은 안색이 돌변했으며, 무엇보다도 모욕당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에 수지首止 회맹의 분위기는 살벌해졌다.


      나에게 모욕을 주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태자를 받들고 당장 토벌하리라!

      주공. . 관중管仲 이옵니다.
      주공께서는 대범하시어야 하옵니다.

 

      이는 우리가 태자 정을 세우려는 뜻을 미리 짐작하고,

      틀림없이 주혜왕周惠王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제후들의 분열을 노리며, 먼저 정문공鄭文公

      유혹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주공, 그러나 정나라가 빠졌다고 하여

      주공의 큰 계획에 지장을 가져오지는 않습니다.

 

      더욱이 아직 태자를 위한 맹약도 하지 않았나이다.

      주공, 우선 맹약부터 하고 난 후에

      제후들의 뜻을 모아 토벌하여도 늦지 않나이다.


정문공鄭文公으로 인하여, 수지首止의 분위기가 살벌하여 졌으나,

제환공齊桓公도 스스로 흥분한 걸 깨닫고는 조용하게 행동하였다.


      제후들의 마음이 흔들릴까 그래 본 것뿐이오.

      내 어찌 대사를 앞에 놓고 경솔할 수 있겠소.

 

150 . 조약을 헌신짝처럼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