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7 화. 얕은 꾀로 봉토를 받는다
초성왕楚成王은 투곡오토鬪穀於菟의 말에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숙이다가 잠시 후 마침내 큰 결심을 하였다는 듯이 명령을 내린다.
황금과 비단을 일곱 수레 실어 갖다주도록 하라.
7개국 연합군 나라마다
넉넉한 음식을 보내 대접하도록 하라.
아울러 주周 왕실에 보낼 청모靑茅 한 수레를
제환공齊桓公에게 바쳐, 왕실에 상표上表 하도록 하라.
제환공齊桓公은 굴완屈完이 예물을 싣고 다시 찾아온다는 기별을
받자, 모든 제후에게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하여 놓고 기다리게 했다.
굴완屈完이 도착하자, 먼저 제군齊軍의 진중陣中 에서
제일 먼저 커다란 북소리가 울렸다.
그에 맞추어 연합군도 순서에 따라 북소리를 내다가
끝내 다 함께 치면서 하늘과 땅을 뒤흔들게 하였다.
이러한 연합군의 북소리는 자신들의 군세軍勢를 마음껏 과시하며
위압을 주면서, 유리한 조건으로 화친조약을 맺으려는 속셈이다.
제후齊侯 께옵서는 예물과 음식을 받아 주십시오.
굴완屈完 대부, 그동안 수고가 많았소.
많은 예물과 음식은 고맙게 받겠소.
아니, 왕실에 갈 예물마저 가져온 것인가.
왕실에 바쳐야 할 조공품인 이 청모靑茅는
초楚 나라가 왕실에 직접 바치도록 하시오.
제환공齊桓公은 초楚 나라의 예물과 음식을 받는 모든 절차가
끝나자, 굴완屈完을 보며 넌지시 제안하는 이야기를 한다.
그대는 우리 중원中原의 군사를 본 일이 있는가.
소신. 굴완屈完은 궁벽한 시골에 살아서인지
아직껏 중원中原의 군사를 보지 못하였나이다.
한번 보여주시오면 영광이겠나이다.
이에 제환공齊桓公은 호화스럽게 장식한 수레에, 손수 굴완屈完을
태우고, 연합군을 사열하기 시작한다.
7개국 연합군은 각기 한 방향씩 나누어 섰는데, 먼저 제군齊軍에서
북소리가 울리자, 각 나라 북들이 쉴 새 없이 울리며 장엄하고 엄청난
사열査閱을 끝마치자, 제환공은 굴완屈完을 돌아보며 묻는다.
잘 보았소. 과인에게 이러한 군대가 있는데
어찌 싸워서 이기지 못할 것이오.
소신, 굴완屈完이 한 말씀 올려도 되겠나이다.
괜찮소. 어서 말해보시오.
제후齊侯께서 중원中原의 맹주盟主가 되신 것은
오직 덕 德으로써 만백성을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번의 화친조약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군후께서 힘으로 이 땅을 노리셨다면
우리 초楚 나라는 험한 산을 성城으로 삼고
깊은 한수漢水를 못으로 삼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웠을 것입니다.
그리되면 백만 대군이라 한들 한 사람이라도
어찌 살아서 중원中原 땅으로 돌아갈 수 있겠나이까.
굴완屈完이 조용한 음성으로 대답하자, 순간 제환공齊桓公은
모골이 송연해지면서, 동시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대는 진실로 초楚 나라의 훌륭한 신하로다.
초楚와 동맹을 맺는 데 그대가 힘을 써야겠소.
군후께서 동맹 맺기를 원하신다니,
그것은 우리 초楚 나라의 복福 이기도 합니다.
신은 동맹이 맺어질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여 노력하겠나이다.
제환공齊桓公은 굴완屈完을 자신의 영중營中에 머물게 하고서는,
그 날 저녁부터 밤늦게까지 잔치를 열었으며, 이튿날 날이 밝자,
소릉召陵 땅에 제단祭壇을 빨리 세우게 하였다.
이제 각 제후께서 다 모이셨으니
신. 관중管仲이 의식儀式의 주례자가 되겠나이다.
제환공齊桓公 께서는 제후들을 대표하여
단壇 위로 먼저 올라가십시오.
굴완屈完은 초성왕楚成王의 대리인으로
비록 혼자이지만, 홀로 제단 위로 올라가시오.
두 분은 삽혈歃血의 피를 입에 바르시고
제후분들도 따라서 맹세하십시오.
自今以後 世通盟好 (자금이후 세통명호)
오늘 이후로는 대대로 우호 할 것을 굳게 맹세하노라!
성대한 속에 우호조약은 맺었으나,
초楚는 아무런 손해를 입지 않았기에
초楚 나라는 국력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으므로,
제齊와 연합군이 물러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초楚가 다시 중원을 침범하는 힘의 여유를 주었다.
이로 말미암아 제환공과 관중은, 초楚 나라가 다시 중원을 침범하는
빌미를 주었면서 염옹 선생은 시를 지어 비난하였다.
南望躊躇數十年 (남망주저수십년)
남쪽을 쳐다보며 주저하기를 수십 년
遠交近合各紛然 (원교근합각분연)
멀고 가까운 곳이 힘을 합해 분연히 일어났도다.
大聲罪狀謀方壯(대성죄상모방장)
큰 소리로 죄상을 밝혀 장한 기세를 떨치며
直革淫名局始全(직혁음명국시전)
못된 버릇을 고쳐 시비를 모두 밝혔어야 했다.
소의 귀를 잘라 제환공齊桓公을 비롯한 연합군의 제후들과 굴완이
입술에 피를 바르며, 맹세하는 모든 의식으로 화친조약이 끝나자,
관중管仲은 굴완屈完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하였다.
귀국에 잡혀가 있는 정鄭 나라 장수 담백聃伯 을
정鄭 나라로 돌려보내 주시면 고맙겠소이다.
귀공께서도 채목공蔡穆公이 제환공齊桓公에게 지은
죄를 용서하시어 채蔡 나라로 돌아가게 해주십시오.
두 사람은 서로의 요구를 들어주었고, 제환공齊桓公은 초楚와
동맹을 맺으며 모든 일이 끝나자, 각 제후에게 회군명령을 내리려
하는데, 이때 갑자기 허許 나라의 허군許軍이 도착하였다.
패공霸公. 허許 나라 대부 백타百陀 이옵니다.
허許 나라는 패공霸公의 도움으로 상례를 잘 치렀으며
허목공許穆公에 이어 세자 업業이 군위에 올라
허희공許僖公이 되었나이다.
새로운 주공, 허희공許僖公 께옵서는
패공霸公의 은덕에 조금이나 보답하고자
적은 수 이오나, 허군許軍을 보냈사옵니다.
적다 마시고 받아 주시옵기를 바라나이다.
허 어. 대단히 고맙소.
이제 보다시피, 모든 게 끝이 났소.
돌아가 허희공許僖公께 고마움을 전해주시오.
이때 귀환하려는 도중에 포숙아鮑叔牙가 수레를 몰고 관중管仲
가까이 다가와서, 궁금하였던 바를 물어보게 된다.
초楚 나라의 가장 큰 죄罪 는
왕호를 참칭僭稱 한 것이었네.
자네는 어찌하여 그 문제는 추궁치 아니하고
그깟 포모苞茅 바치지 않은 것만을 따졌는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네.
허 어. 초楚 나라가 스스로 왕이라 자칭한 지가
벌써 3대째나 된다는 걸 알고 있지 않은가.
내가 만일 초楚의 왕호 참칭僭稱을 문제삼아
꾸짖었다면, 초성왕楚成王은 결코 머리 숙여
우리의 조건을 들어주지 않았을 것이네.
그리되면 남은 것은 싸우는 것뿐이 아니겠는가.
초楚 나라는 영토가 넓을 뿐만 아니라,
내가 보기에 군사도 강할 것이네.
만약 싸움을 벌여 전쟁이라도 하게 된다면
어찌 1, 2년 싸움으로 결판이 나겠는가.
아무래도 10년은 족히 싸워야 하는데
그 피해가 어떠하겠는가를 생각해 보았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조공 바치지 않은 것만을
트집을 잡아, 초楚 나라가 할 말이 없게 만든 것이네.
이것만으로도 우리 주공께서는
큰 공업功業을 이루신 것이 아니겠는가.
허 어. 내가 생각이 짧았소.
과연, 중보仲父의 말이 맞는 것이네.
과연, 중보仲父의 높은 식견과 지혜에 감탄하오.
제환공齊桓公이 초楚 나라를 굴복시키며, 화친조약和親條約을
맺게 된 사실은 제환공齊桓公의 여러 업적 중에서 가장 빛나는
실적實績 이라고 할 수 있다.
포숙아鮑叔牙가 관중管仲의 혜안에 몹시 찬탄하며 감탄하자,
이에 대해 호증胡曾 선생이 시를 지어 노래했다.
楚主南海目无周 (초주남해목무주)
초왕은 남해에 있으면서 주왕실을 안중에 두지 않아
仲父當年善運籌 (중보당년선운주)
중보가 당년의 일을 잘 헤아려 대책을 세웠다.
不用寸兵成款約 (불용촌병성관약)
한 명의 군사도 쓰지 않고 화의를 맺었으니
千秋伯業誦齊侯 (천추백업송제후)
제환공의 백업은 천추에 빛나게 되어 칭송받았다.
이제 8개 나라의 연합군이 회군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진陳 나라
대부 원도도轅濤塗는 정鄭 나라 대부 신후申侯를 찾아가 만나면서,
무언가를 서로 협력하려고 말을 걸었다.
회군回軍 하는 8개 나라가 우리 진陳 나라와
귀 정鄭 나라를 지나가게 될 것이오.
이 많은 군사軍士 가 지나가게 되면,
그들을 먹이고 대접하는데 막대한 비용이 들 것이오.
그리되면 참으로 감당 하기 어렵소이다.
그러하니 동쪽으로 돌아가게 합시다.
그리되면 서徐 와 거莒 두 나라가
우리 대신 수고를 하게 될 것이오.
정鄭 나라 대부 신후申侯는 어찌 생각하시오.
좋소. 좋은 의견이오.
제후齊侯에게 말씀드려 보구려.
진陳 나라 대부 원도도轅濤塗는 정鄭 나라 대부 신후申侯를 믿고서
제환공齊桓公을 찾아가 건의 드리게 되었다.
패공霸公. 신은 진陳 나라 대부 원도도轅濤塗 이옵니다.
제후齊侯 께옵서는 이제 흔쾌히 초楚를 쳤나이다.
이번 회군 하실 때 만약 동쪽으로 돌아가신다면
제후들과 함께 아름다운 산천을 구경하시면서
군사 들도 그간의 피로를 풀게 될 것이며
동쪽으로 지나가는 나라마다
제후齊侯의 위엄威嚴을 펼치게 되면서,
만백성의 존경을 받게 될 것이 옵니다.
그도 좋은 방법이오.
잠시 의논해야 하니 돌아가 기다려보시오.
진陳 나라 대부 원도도轅濤塗가 나가고 나자, 얼마 안 되어 정鄭
나라 대부 신후申侯 가 제환공齊桓公에게 뵙기를 청하였다.
주공, 정鄭 나라 대부 신후申侯가 뵙기를 청하옵니다.
으응. 어서 들라 하라.
패공. 신 정鄭 나라 대부 신후申侯 이옵니다.
알고 있노라. 무슨 일이 있는가.
군사는 시기에 맞추어 움직여야 하옵니다.
이는 백성과 군사들의 수고를 덜기 위해서입니다.
이곳 연합군의 군사들은 봄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쉬지를 못하여 몹시 피곤해져 있나이다.
이번에 진陳과 정鄭 나라를 경유하여 회군하시면
군사들을 훨씬 배불리 먹일 수가 있사옵니다.
만일 동쪽 길을 택하시오면,
훨씬 멀 뿐만 아니라 길도 험한지라,
가뜩이나 피곤한 군사들을
더욱 지치게 할까 두렵나이다.
군사들은 늘 아끼고 돌봐주지 않으면
다음 차례의 싸움에 지장이 많을 것입니다.
진陳 나라 대부 원도도轅濤塗가
동쪽 길로 회군回軍 하자는 것은,
혹여 진陳 나라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줄이고자 함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군사를 아끼는 마음에서 본다면
이는 좋은 계책이라 볼 수 없나이다.
제후齊侯께서 이점을 살피시기를 바라나이다.
정鄭 나라의 신후申侯가 가르쳐주지 않았더라면
과인이 잘못 판단하였으면 일을 그르칠 뻔하였도다.
신후申侯 대부, 가르쳐 주어 참으로 고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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