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6 화. 정도로써 굴복시키는가.
약 3백 년 전의 일이었다.
주周 나라 4대 주소왕周昭王이 남방에 있는
초楚 나라로 순수巡狩를 떠난 적이 있었다.
그때 초楚나라에서 배에 구멍을 뚫고
그 자리를 아교阿膠로 메꾼 후 배를 타게 하여,
주소왕周昭王이 그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강의 한가운데를 지날 무렵에
그 아교阿膠가 녹아 배가 침몰하면서,
물에 빠져 죽었다는 파다한 소문이 있었다.
관중管仲은 분명하게 대의명분을 세우려 굴완屈完에게 한 말이나,
주소왕周昭王의 일은 이미 3백 년 전의 모호한 옛날 일이기에, 보통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며 억지를 부리는 주장이라 할 수 있다.
그대 관중管仲은 들으시오.
공물을 바치지 않은 것은 우리 초楚 나라의 잘못이오.
앞으로는 주周 왕실에 공물을 바치도록 하겠소.
그러나, 3백 년 전의 일을 왜 들먹이는 것이오.
주소왕周昭王이 강물에 빠져 죽은 것이
초楚 나라가 저지른 일이라는 걸 어떻게 아오.
만일 그 진상을 자세히 알고자 한다면
한수漢水 강변에 찾아가 물어봐야 할 것이오.
그런 얘기를 할양이면 나는 이만 돌아가겠소.
필요할 때 또 만납시다.
굴완屈完 또한, 보통 배짱이 아니었기에 불쾌한 기색을 나타내지
않으면서,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주장할 것은 확실하게 주장하였다.
굴완屈完은 말을 마치자마자,
수레를 돌려 휭하니 사라져 가버리니,
관중은 할 말을 잊었으며
이로써 두 사람 간의 말씨름은 끝이 난다.
관중管仲은 진공進貢의 의무를 소홀히 한 초나라를 추궁함으로써
굴완屈完을 눌렀으나, 이에 굴완屈完은 주소왕周昭王의 일은
한수漢水에나 가서 물어보라고 조롱 함으로써, 관중管仲의 말문을
닫아버리고 주저없이 가져온 수레에 올라타고는 떠나간 것이다.
관중管仲은 멀어져가는 굴완屈完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면서, 비록 굴완屈完이 여의치 않으면
전쟁을 하겠다는 일전불사의 뜻을 보였으나,
관중管仲은 굴완屈完의 태도를 이해하며
이미 협상은 반정도 승산이 있다고 보았다.
관중管仲은 담백한 굴완屈完의 성품에 호감이 가면서, 은연중에
초楚 나라가 만만치 않다는 걸 생각하게 되었다.
초楚 나라에도 사람이 있구나.
굴완屈完은 똑똑한 사람이로다.
굴완屈完 이 저 정도라면
영윤令尹 인 투곡어토鬪穀於菟가
어떠한 사람인지 가히 짐작이 가는구나.
굴완屈完의 이러한 행동은 초楚 나라의 힘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굴완屈完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관중은
제환공齊桓公에게 돌아가 굴완屈完 과의 담판 내용을 보고한다.
굴완屈完이 속으로는 부끄러워하면서도
겉으로는 자기의 뜻을 조금도 굽히지 않으면서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나이다.
주공, 더는 머뭇거릴 까닭이 없나이다.
당장 진군進軍을 계속하여야 하겠나이다.
중보仲父, 무슨 뜻인지 알겠소.
자. 우리 연합군은 계속 진군하도록 합시다.
연합군은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하여, 형산荊山을 지났으며
여수汝水를 건너 한참을 내려왔다. 이제 얼마 안 가면
초楚 나라의 깊숙한 곳인 한수漢水에 이르게 된다.
연합군은 한수漢水 강변에 있는 경산陘山까지 왔으며
경산陘山의 경지陘地 땅에 당도하여 멈추게 된다.
이제 한수漢水를 건너가면 곧 영성郢城이 나온다.
모든 군사가 한수漢水를 건너가고자, 도강渡江 준비를 하는 중에
한수漢水의 건너편을 이리저리 바라보던 관중管仲은, 그 순간에
머릿속으로 섬광閃光이 번쩍 스쳐 지나가는 걸 느끼게 된다.
주공. 강 건너편에 복병伏兵 이 있사옵니다.
주공, 이쪽과 저쪽을 보시옵소서.
으음, 숲속이 이상한 것 같소.
모든 군軍에 영令을 내리노라.
모든 군사는 이곳에 영채營寨를 세우고
더 나아가지 말며, 결코 강을 건너서는 아니 된다.
제후 齊侯께서는 무슨 명령을 내리는 것이 오.
우리는 이미 초楚 나라 영토에 깊이 들어왔소이다.
왜 한수漢水를 빨리 건너지 않고
이곳에 진채陣寨를 세워 머물게 하는 것이오.
빨리 강을 건너가야, 조금이라도
초楚 나라 영성郢城에 가까이 가게 되지 않겠소.
이곳에 오래 머물게 되면
군사들만 피로하게 될 것이오.
명령을 거두시고 서둘러 도강을 합시다.
신. 관중管仲이 설명하겠나이다.
저 한수漢水 건너편을 한번 바라보시옵소서.
저곳에 이미 복병伏兵 을 숨겨두었습니다.
아니, 그걸 어떻게 아오.
강가의 새 떼들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것이
그 증거라 할 수 있나이다.
과연 물새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구려.
초성왕楚成王이 굴완屈完을 미리 보낸 것으로
미루어보아, 길목마다 우리와 맞서 싸울 준비를
해 놓았음이 분명하며, 저들은 이미
매복하고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군사라는 것은 한 번 싸움을 시작하면
어느 군사나 원상태로 돌아갈 수가 없나이다.
그러므로 굳이 어렵게 강을 건너가서
무리하게 초군楚軍과 싸울 필요가 없으며,
우리는 우리의 큰 군세軍勢를 과시함으로써
초楚 나라가 두려운 마음을 품게 만들며
스스로 항복하여 굽혀 들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한수漢水를 건너가지 않고 있으면
초楚 나라는 반드시 또 사람을 보내올 것입니다.
그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잘 대처하면,
싸우지 않고 저들의 항복을 받아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후들은 관중管仲의 말을 선뜻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현지의 상황은 관중管仲이 예측한 대로 진행되었다.
굴완屈完이 형산荊山에서 연합군을 붙들고 있는 사이에,
초성왕楚成王은 투자문鬪子文을 총대장으로 삼았으며
정鄭 나라에 출정 나간 투렴鬪廉과 투장鬪章,
두 장수와 그의 군사들을 불러들여 합하였으며
한수漢水 서남쪽을 시작으로 이남以南에 이르기까지,
만반의 전투 태세를 갖추어놓고 있었다.
연합군이 한수漢水를 건너오기만 하면,
단숨에 짓밟을 작전을 펼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초성왕楚成王의 계획은 이를 미리 간파해버린
관중管仲에 의하여 여지없이 깨지고 빗나가게 되었다.
저들은 한수漢水를 왜 건너오지 않는 것이냐.
왕이시여. 정탐偵探 병이옵니다.
연합군은 한수漢水 강가인 경지陘地에
진채陣寨를 세운 채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나이다.
왕이시여, 신 투자문鬪子文 이옵니다.
관중管仲은 병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경지陘地에 머무를 뿐 건너지 않는 것은
반드시 무슨 계책計策이 있을 것입니다.
마땅히 사람을 한 번 더 보내어 저들의 허실을
탐지한 후에, 일전을 겨루든지 화평을 하든지
양단간에 결정을 내려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투곡어토鬪穀於菟도 관중管仲이 이미 초楚 나라의 계책을 간파하고
있다고 보았으며, 또한 제환공齊桓公의 위명僞名이 천하를 울리고
있기에, 초성왕楚成王도 섣불리 전투를 주장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누구를 보내는 것이 좋겠소.
굴완屈完이 관중管仲과 대면對面 하였으니
한 번 더 다녀오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왕이시여, 신 굴완屈完 이옵니다.
신은 저들에게 왕실에 조공을 바치지 않은
우리의 잘못이라고 분명히 시인하고 돌아왔습니다.
왕께서 청화請和 할 생각이시라면 신이 가보겠으나
그러나 끝까지 싸울 생각이시라면
다른 유능한 사람을 뽑아 보내시옵소서.
굴완屈完은 과인의 말을 잘 듣도록 하라.
화평和平을 하든지, 싸우든지 간에,
모든 것을 그대에게 맡길 터이니
그대가 알아서 잘 협상하도록 하라.
이에 굴완屈完은 다시 단신으로 한수漢水를 건너 경지陘地 땅에
찾아갔으며, 7개국 연합군이 주둔하는 곳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에 관중管仲은 굴완屈完이 다시 온다는 소식을 듣자, 얼굴을
활짝 펴게 되며, 제환공齊桓公에게 이 상황을 알리게 되었다.
주공. 초성왕楚成王이 굴완屈完을 다시 보내는 것은
마음속에 화평和平 할 뜻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주공께서는 굴완屈完을 예의로써
정중히 대접하여 주십시오.
굴완屈完은 제齊의 영채令寨에 들어서자, 제환공齊桓公에게 절을
두 번 올렸으며, 제환공 역시 두 손을 모아 정중하게 답례하였다.
그대가 다시 이곳에 온 까닭이 무엇이오.
삼가 제후께 아룁니다.
우리 초楚 나라가 주周 왕실에 조공인 포모苞茅를
바치지 않은 것은 분명히 우리 초楚 나라의 잘못입니다.
우리 왕께서도 그 점에 대하여 인정하고 계십니다.
앞으로는 해마다 주 왕실에 조공을 바치겠나이다.
그러니 군후君侯께서는 중원中原의 대군大軍을
1사一舍 밖으로 물러가게 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물러가시면 신이 돌아가 우리 왕에게
화친조약 和親條約을 맺을 수 있도록 설득하겠나이다.
1사一舍 란, 군사 전체가 하루에 진군進軍 할 수 있는 거리를 말하며
옛날에는 군사가 하루에 대략 약 30리 길을 옮길 수 있었다고 한다.
굴완屈完의 신중한 제안은 서로 간에 전쟁을 피하자는 마음이면서,
서로의 체면을 합리적으로 세워주는 방안이었기에, 제환공齊桓公도
선선하게 승낙하여 굴완屈完의 제안을 들어주기로 하였다.
그대가 초성왕楚成王을 잘 보좌하여
초楚 나라가 주周 왕실의 신하로서
직분을 다한다면 더는 바랄 것이 무엇이겠소.
나는 그대의 말을 믿고 우리 연합군을
1사一舍 밖으로 몰릴 것을 약속하는 바이오.
제환공과 굴완의 대화는 예비회담 豫備會談의 성격이었으나 모두
순조롭게 진행되자, 굴완屈完은 제환공齊桓公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초楚 나라로 돌아가 초성왕楚成王에게 보고하였다.
제환공齊桓公 과는 이야기가 잘 된 것이오.
예. 왕이시여, 그러하옵니다.
연합군을 1사一舍 밖으로 물러나?
우리의 답변을 기다리게 하였나이다.
신 또한 매년 조공을 바치겠다고 약속하였사오니
왕께서도 그들에게 신용을 잃지 않으셔야 하옵니다.
왕이시여. 세작細作의 보고이옵니다.
중원中原 7개국 연합군이 경지陘地에서
1사舍 밖인 소릉召陵 땅으로 물러갔사옵니다.
주周 왕실에 매년 조공을 바치기로 하면서, 왕실의 신하로서 직분을
다하겠다고 사전 약조하며, 너무 빠르게 협상하고 돌아오자, 이에
초성왕楚成王은 초楚 나라의 자존심을 구겼다며 크게 분노하다.
연합군은 우리 초楚 나라의 강성함을 두려워하였기에
뒤로 물러서며 그리 쉽게 약조하겠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공연히 조공 만을 바치겠다고 약속 하였구나.
굴완屈完은 어찌 그리 쉽게 약속하고 돌아왔는가.
굴완屈完은 어서 말해보라.
왕이시여. 신 투곡어토鬪穀於菟 이옵니다.
제환공齊桓公은 초楚의 신하에 불과한 굴완屈完에게
1사一舍를 물러가며 약속한 바를 지키고 있사온데
어찌하여 왕께서는 중원中原의 여러 제후에게
굴완屈完을 거짓말쟁이로 만드시려 하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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