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 열국지 101∼200 회

제 117 화. 섣부른 욕심으로 자기가 죽는가.

서 휴 2022. 7. 9. 09:34

117 . 섣부른 욕심으로 자기가 죽는가.

 

나라 대부 사숙師叔이 주혜왕周惠王을 알현하러 낙양洛陽으로

떠나갔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금방 돌아와

자세한 보고를 올리는 것이다.

 

       어찌하여 이리도 빨리 다녀왔는가?

       왕실에 난이 일어나 왕성王城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그냥 돌아왔나이다.

 

       왕실에서 난이 일어나다니

       아니 무슨 난이 어떻게 일어났단 말인가?

 

사숙師叔은 그간에 왕실에서 일어났던 일과 자기가 수집한 정보를

꺼내 들며 차근차근하게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주장왕周莊王이 총애寵愛 하던 후궁後宮

       있었사온데, 그녀의 이름은 요희姚姬 이오라,

       사람들은 그녀를 왕요王姚 라 불렀나이다.

 

       왕요王姚의 소생으로 퇴라는 왕자가 있었는데

       주장왕周莊王은 왕자 퇴를 몹시 사랑하여 특별히

       대부 위국蔿國을 사부師傅로 삼아 보좌시켰나이다.

 

       주공, 왕자는 별난 취미가 있었사옵니다.

       별난 취미라니 무얼 말하는가?

 

       왕자 퇴頹는 소를 유난히 좋아하였나이다.

       왕자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거처를

       온통 외양간으로 만들었사오며

       친히 소를 수백 마리나 길렀사옵니다.

 

       심지어는 소에게 오곡五穀을 먹이고

       화려한 비단옷을 입히기까지 하여,

 

       세상 사람들은 왕자 퇴의 소들을

       문수文獸 라 부르며 빈정대었나이다.

 

       퇴는 출입할 때마다 항상 소를 타고 다녔고

       그의 시종侍從 들 또한, 소를 타고 다니게 하였나이다.

 

왕자 퇴는 주장왕周莊王의 총애寵愛를 받았기에, 그 주변에는

언제나 많은 벼슬아치가 들끓었으며, 왕자 의 사부 위국蔿國

비롯하여, 변백邊伯, 자금子禽, 축궤祝跪, 첨부詹夫, 등의 다섯

대부를 백성들은 눈여겨보며 오대부五大夫 라 불렀다고 한다.

 

오대부五大夫는 주장왕周莊王의 요리를 관리하는 선부選夫 석속石速

과도 각별하게 지내면서, 공공연히 자주 모이게 되었고,

서둘러 당을 만들고는 대단한 듯이 행세하였다.

 

       이런 행동은 주희왕周僖王 때에도 이어졌으며

       주희왕周僖王은 퇴의 형이었으나,

 

       동생인 왕자 퇴의 방약무인傍若無人 한 행동을

       제어하지 않고 그냥 놔뒀다고 합니다.

 

       그 사이에 주희왕周僖王 이 붕어崩御 하시고

       새로운 주혜왕周惠王이 신왕으로 즉위하였나이다.

 

주혜왕周惠王이 즉위하자, 이들 오대부五大夫는 퇴가 이제는

주혜왕周惠王의 윗사람인 숙부叔父가 되었다며, 이들은 더욱

교만 방자해졌다고 하였다.

 

       이것이 주혜왕周惠王의 눈에 거슬리게 되었으며

       마침내 주혜왕周惠王은 이들을 견제하기 위하여

 

       자금子禽 축궤祝跪 첨부詹夫의 전답을 몰수하고

       위국蔿國의 넓은 채원菜園을 빼앗아

       궁의 정원庭園으로 만들었으며

 

       변백邊伯의 큰 저택邸宅이 왕궁과 너무 가깝다며

       몰수해버려 궁에 보태었다.

 

       또한, 선부選夫 석속石速이 바치는 음식이

       맛이 없다고 트집을 잡으면서,

       그의 녹봉祿俸을 몹시 깎아버렸다.

 

이에 오대부五大夫와 석속石速은 주혜왕周惠王을 원망하는 마음이

깊어졌으며, 매일 한자리에 모여 울분을 토하는 것이다

 

       퇴왕자가 주왕周王이 되면 얼마나 좋겠소?

       퇴가 주왕周王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소?

       어떻소, 한번 저질러봅시다!

       좋습니다, 왕자 퇴를 왕으로 받듭시다.

 

왕자 퇴와 그의 사부 위국蔿國을 비롯한 변백邊伯, 자금子禽,

축궤祝跪, 첨부詹夫, 등의 오대부五大夫와 선부選夫 석속石速

자신들의 가병家兵을 총동원하여 난을 일으키고 만다.

 

그러나 뜻밖에도 왕실의 신료臣僚 들과 주공周公 기보忌父

소백召伯 등이 군사를 동원하여 반란군을 진압해 버렸다.

 

        이에 왕자 퇴와 오대부五大夫와 속석石速

        소땅으로 달아났으며,

 

        그곳에서 주왕실과 사이가 나쁜

        위와 연나라를 충동질하여

        다 같이 음모陰謀를 꾸미는 데 노력하였다.

 

        드디어 그들은 위군과 연군을 동원하여

        재차 왕성王城 인 낙양성洛陽城을 공격하였다.

 

        제2차 반란은 반란군이 승리하기에

        왕실의 주공周公 기보忌父와 소백 요

 

        할 수 없이 주혜왕周惠王을 모시고

        온땅으로 달아나고 말았다.

 

이에 오대부五大夫 등은 왕자 퇴를 추대하여 다시 왕으로 세우는

데 성공하였으며, 왕실을 완전히 차지하고 기고만장해졌다.

 

       주공, 신이 그간의 왕실에서 일어났던

       상황狀況 을 모두 말씀드렸나이다.

 

       그동안 사숙師叔은 고생하였도다.

       모처럼 왕실과 손을 잡으려 하였는데

       너무나 아쉽게 되었구나.

 

       정나라에 운이 따르지 않음인가?

       너무나 안타깝도다!

 

       주공, 신 숙첨叔詹 이옵니다.

       사숙師叔의 말에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지금 왕실은 반란자들의 소굴巢窟 로 변하여

       민심이 물 끓듯 일어나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오히려 우리에게 좋은 기회가 되옵니다.

 

       이 기회에 군사를 일으켜 주혜왕周惠王을 도와

       왕궁으로 환궁還宮 하게 도우신다면

       이보다 더 큰 공로는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 정나라는 낙양洛陽에 매우 가까우므로

       맹주를 자처하는 제환공齊桓公이 개입하기 전에,

       속히 군사를 일으켜 반란군을 제압하시옵소서.

 

       허 거, 정말 묘책妙策 이로다.

       숙첨叔詹의 말대로 왕실의 신뢰를 얻는데

       이보다 더 좋은 기회機會 가 없을 것이로다.

 

정여공鄭厲公은 발 빠르게 움직였으며, 먼저 사숙師叔을 급히 온

땅으로 보내어, 그곳에 피신해 있던 주혜왕周惠王과 그 일행들을

나라의 역성櫟城으로 정중히 모셔 들이게 하였다.

 

역성櫟城은 정여공鄭厲公17년간 머물던 곳이므로 궁실宮室

온전하게 보존되고 있어 보실만하였다.

 

       주상께옵서는 강건强健 하시온지요?

       정백鄭伯의 도움으로 많이 좋아졌소!

 

       주상, 다음 해 봄에 낙양성洛陽城 을 쳐들어가

       환궁還宮 하시도록 돕겠나이다!

       정백鄭伯, 그리된다면 얼마나 좋겠소?

 

정여공鄭厲公은 직접 역성櫟城으로 달려가 주혜왕周惠王을 찾아

알현謁見 하고, 왕실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군사를 몰고 낙양으로

쳐들어갔으나, 그러나 왕궁을 지키고 있던 위와 연나라의

연합군에 패하여 아무런 소득도 없이 정나라로 되돌아왔다.

 

       주공, 신 사숙師叔 이옵니다.

       우리 정나라 혼자 힘으로는 힘들겠나이다.

 

       위와 연나라가 모두 철수할 때를 기다렸다가

       괵나라와 연합聯合 하시어 공격攻擊 하시옵소서.

 

정여공鄭厲公은 그해 겨울 동안 서괵공西虢公에게 여러 차례

공들여 사자를 보내었으므로, 서로 연합하기로 합의하게 된다.

 

       다음 해 4, 땅에서 군사를 합류하여

       정여공鄭厲公 과 서괵공西虢公은 두 길로 나누어

       왕성王城 인 낙양성洛陽城으로 진격하였다.

 

       정여공鄭厲公은 주혜왕周惠王과 더불어

       병거兵車에 올라 친히 군사를 독려督勵 하면서

       낙양성洛陽城의 남문을 쳤으며

       서괵공西虢公은 다소 약한 북문을 향하여 쳐들어갔다.

 

이때는 위나라와 연나라 군대가 모두 철수한 뒤였으므로

왕성王城의 군사만으로는 두 나라 연합군을 상대하기가 어려웠다.

 

삽시간에 낙양성洛陽城 은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에 빠지자

위국蔿國이 퇴에게 위급함을 알리기 위하여 황급히 찾아갔다.

 

       주상. 사부 위국蔿國께서 뵙기를 청하옵니다.

       지금 소들에게 여물을 먹이고 있지 않으냐?

       다음에 오라고 하여라.

 

이때 왕자 퇴는 후원에서 소들에게 여물을 먹이고 있었으므로

성 밖의 사정을 알지 못하여, 소에게 바쁘게 여물을 먹이고 있어

다음에 오라면서 사실상 만날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하는 수 없구나. 가까운 위나라에

       원군援軍을 요청하는 국서國書를 써서 보내리라.

 

왕자 퇴의 사부師傅 위국蔿國이 위나라에 원군援軍을 청하는

국서國書를 써서 보내고 있을 무렵에, 낙양성洛陽城 안의 백성들은

성밖에 주혜왕周惠王이 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우레와 같은

환호성을 지르며, 몰려가 낙양성洛陽城 성문을 열어젖히고 말았다.

 

       주상, 신 위국蔿國이 다시 왔사옵니다.

       위국蔿國, 이게 무슨 함성喊聲 소리요!

       주상. 이제 큰일 났사옵니다.

 

       낙양성洛陽城 안의 백성들이 성 밖에 주혜왕周惠王

       와 있다는 것을 알고 우레와 같은 환호성歡呼聲을 지르며,

 

       몰려나가, 남문의 성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주왕周王과 정여공鄭厲公을 모시고 들어왔습니다.

 

       주상, 어서 빨리 피하셔야 합니다.

       주상, 신 위국蔿國이 한탄하옵니다.

 

       주상, 소 때문에 다 잡은 천하를 놓쳤습니다.

       주상, 아아. 원통하옵니다.

 

위국蔿國은 이렇게 탄식歎息 하고는, 칼을 뽑아 스스로 자기 목을

찌르고 죽었으며, 자금子禽, 축궤祝跪, 첨부詹夫는 백성들에게

사로잡혀 맞아 죽었으며, 변백邊伯은 어디론가 달아나고, 그러나

왕자 퇴만은 요행히 서문으로 빠져나가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선부選夫 석속石速 !

       소를 빨리빨리 몰아라!

 

       주상. 소들이 살이 쪄 잘 걷지를 못하나이다!

       주상, 소들을 버리시옵소서.

 

       이 아까운 소들을 버릴 수는 없잖느냐?

       어떻게 하던 빨리 가게 하여보아라!

 

왕자 퇴는 비단緋緞 옷을 입은 소 떼를 몰고 가니, 도망가는

속도가 매우 느려, 결국 추격해온 정군鄭軍에게 사로잡혀,

얼마후가 되자, 낙양성 남문에 걸린 퇴의 목을 볼 수가 있었다.

이에 염옹髯翁이 왕자 퇴의 어리석음을 시를 지어 탄식했다.

 

       挾寵橫行意未休 (협총횡행의미휴)

       왕의 총애를 믿고 제 마음대로 하더니

 

       私交乘舋起奸謀 (사교승흔기간모)

       사사로이 모의하여 역모를 꾸몄구나.

 

       一年南面成何事 (일년남면성하사)

       일 년 동안 왕이 되어 무얼 하였던가?

 

       只合關門去飼牛 (지합관문거사우)

       단지 성 밖에 나가 소를 먹였을 뿐이로다

 

주혜왕周惠王은 정여공鄭厲公과 서괵공西虢公의 도움을 받아 겨우

낙양성洛陽城에 돌아와 다시 왕좌를 차지하게 되었다.

 

       짐이 다시 낙양성洛陽城 에 돌아온 것은

       정백鄭伯과 괵공虢公의 공이 너무나 크도다.

 

      정백鄭伯에게 호뢰虎牢 동쪽의 땅과

      거울 달린 허리띠를 하사下賜 하노라.

 

      괵공虢公에게는 주천酒泉의 땅과

      제사 때 쓰이는 옥잔玉盞을 하사下賜 하노라.

 

정여공鄭厲公은 왕자 퇴의 난을 진압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며

마치 자기가 왕인 양 큰 연회를 베풀면서 거들먹거렸다.


       정여공은 참 소갈머리 없는 사람이오.

       왕자 퇴의 행동을 본받고 있소이다.
       저자도 머지않아 화를 당할 것이오.

연회장에 모인 사람들이 겉으로 말하지 않았으나 속으로는 모두

손가락질하고 있다는걸 정여공鄭厲公 만 모르고 있었다.

 

       이제, 주상을 등에 업고 천하를 평정해

      우리 정나라를 우뚝 세워보리라.

 

정여공鄭厲公은 그해 5월이 되자, 주혜왕周惠王 앞을 물러 나와

나라로 돌아간다.

 

       그러나 정여공鄭厲公은 돌아가는 도중에

       먹은 음식에 체하여,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며,

       겨우 신정新鄭 에 당도糖度 하기는 하였지만,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숨을 거두게 되니,

       뜻을 펴보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죽고 말았다.

 

뒤를 이어 세자 첩이 새로이 군위君位에 올라 정문공鄭文公

되며, 그때가 제환공齊桓公 13년이며 기원전 673년에 해당한다.

 

118 . 문강, 음기를 버리지 못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