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별은 뜨고 별은 지고.
제 115 화. 아름다운 여인이 말이 없다니.
제齊 나라에서는 신료들이 모두 조당朝堂에 모여
관중管仲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천하태평 시대를
추진하고 있으면서, 그해 7월을 맞이하였다.
그때 남방의 초楚 나라가 느닷없이 채蔡 나라를
공격하는 일이 발생하였으므로, 천하는 다시
뜻하지 않은 일로 시끄러워 진다.
도화桃花 부인 식규息嬀는 여러 해를 초문왕楚文王과 살면서도,
멸망한 식息 나라를 잊지 못하여 한 번도 그와 말을 나누지 않았다.
남녀 간의 사랑이란 그렇지 않은가?
언제나 사랑스러운 눈길로 보며
웃으며 말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 초문왕楚文王은 그대 도화桃花를 너무 사랑하거늘!
도화桃花는 나를 보고 왜 한 번도 웃지를 않는가?
도화桃花의 웃는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노라!
초문왕楚文王은 식후息侯의 부인인 식규息嬀를 빼앗기 위하여
식息 나라를 멸망시키면서까지 무리하게 자기의 부인을 삼았으며,
그런 후 너무 어여뻐 도화桃花 부인이라 부르고 있었다.
도화桃花 부인은 무얼 하고 있소?
그동안 두 아들, 웅간熊艱과 웅운熊惲을 낳지 않았소?
대관절 나와 말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오?
오늘은 그 답을 듣고야 말 것이오!
초문왕楚文王의 채근採根에도 불구하고 도화 부인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며, 그저 소리 내지 않으면서 눈물만 흘리고 있는다.
대관절 나와 말하지 않는 까닭이 무엇이오?
울지만 말고 오늘은 꼭 답을 하여야 하오!
아녀자의 몸으로 두 남자를 섬겼으니
무슨 면목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나이까?
식규息嬀가 다시 입을 다물고 하염없이 눈물만을 흘리자, 초문왕은
사랑하는 여인의 눈물을 보게 되면서, 가슴이 미어지며 찢어지는
듯 아파져 오자, 혼자서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지르고 만다.
부인은 너무 슬퍼하지 마오!
이 모든 것은 채애공蔡哀公 때문이 아니겠소?
내가 부인의 원수를 갚아주고 말겠소이다!
초문왕楚文王은 자신의 잘 못은 생각하지 않으면서 이 한 여인의
눈물에 군사를 일으켜 채蔡 나라를 쳐들어가게 된다.
느닷없는 침공을 당하게 된 채애공蔡哀公은 감히 맞설 생각을 하지
못하면서 웃통을 벌거벗고 육단肉袒의 모습으로 성 밖으로 나갔다.
육단肉袒은 고대 중국에서 군주가
항복할 때 행하는 의식으로
웃통을 벗고, 목에는 밧줄을 메고,
입에는 구슬을 물고,
회초리 한 묶음을 등에 지고,
손에는 한 마리의 양羊을 이끌고
적장 앞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승리한 쪽의 처분에 따르겠다는 뜻이 된다.
혹은 신하가 그 군주에게 죄를 청하며
어떠한 벌도 달게 받겠다는 뜻을 전하는 의식이다.
채애공蔡哀公은 윗옷을 벗고 육단肉袒의 모습으로 성 밖으로 나가
초문왕楚文王 앞에 꿇어 엎드리면서 용서를 빌었다.
왕이시여. 신 투단鬪丹 이옵니다.
채애공蔡哀公이 사죄와 복종을 하겠다며
윗옷을 벗고 육단肉袒의 모습으로
꿇어 엎드려 용서를 빌고 있나이다.
한 나라의 군주가 육단肉袒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치욕恥辱을 받는 것이옵니다.
왕이시여, 반드시 죽일 수는 없나이다.
저놈은 장난삼아 형제를 죽이게 한
아주 고약한 놈이로다.
왕이시여. 용서하여 주소서.
부고府庫에 있는 보화寶貨를 모두 다 드리겠나이다.
왕이시여. 살려만 주시옵소서.
명심하라. 다음에는 용서치 않으리라.
채애공蔡哀公의 이러한 행동에 초문왕楚文王은 차마 죽이지!
못하고, 채蔡 나라의 부고府庫에 있는 보화만을 빼앗아 돌아갔다.
채애공蔡哀公이 초문왕楚文王에게
육단肉袒으로 용서를 빌었다 하지요?
허, 나도 소문을 들었소이다.
중원中原 천지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초楚 나라가 강대해져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중원中原을 침범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초楚 나라를 막을 수 있는 나라는
오직. 제齊 나라 밖에 업소이다.
우리가 모두 제齊 나라와 동맹을 맺어
각자 나라를 지켜내야 하지 않겠소이까?
채애공蔡哀公이 초문왕에게 육단肉袒의 모습으로 용서를 빌었다는
사실은 중원의 제후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는 초楚 나라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중원을 침범할 수 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건으로 우려하던 바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초楚 나라의 행패에 각 나라 제후들은 공포와 두려움에 몸을 떨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중원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한 제환공에게
의지하려는 분위기가 일기 시작하였다.
송宋 과 진陳 나라는 초楚 나라와 가까운바
초楚 나라를 반드시 견제牽制 하여야 하오.
제齊 나라만이 초楚 나라를 막을 수 있소이다.
제환공齊桓公이 중원 회맹의 맹주가 되었으니
이제 제환공齊桓公에게 우리 다 같이 뭉쳐야 합니다.
이로 인하여 제후들 스스로 반초反楚 동맹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제齊 나라를 중심으로 뭉치게 되는 동맹을, 더욱
공고히 구축構築 하려 드는 계기가 되었다.
주공. 신 관중管仲 이옵니다.
초楚 나라의 행패를 막아야 하나이다.
다음 해 봄에 위衛 나라 견甄 땅에 제후들을 불러
다시 모이도록 하시옵소서.
제환공齊桓公은 마침내 견甄 땅에 모든 제후를 불러, 제2차 회맹을
가지면서, 삽혈歃血 행사로써 동맹을 맺으며, 중원의 제후들로부터
맹주盟主 라는 칭호를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왕실의 주희왕周僖王 도 선單 나라 선백單伯을 파견해
줌으로써, 이 견甄 땅의 회합을 정식으로 인정하였다.
어지러움이 시작된 춘추시대 이래로, 첫 번째 패공覇公이 탄생하는
순간이 된 것이다. 이때가 제환공 재위 7년 만의 일이다.
중보仲父. 패공覇公은 되었는데
앞으로 어찌해야 하겠소?
주공. 아직도 어지러운 세상이옵니다.
주공께서 패공覇公은 되었사오나
중원中原의 여러 제후는 자국의 이득을 위하여
주공을 우두머리로 내세운 것뿐이옵니다.
때에 따라 상황이 변하면, 제후들은 언제든지
동맹에서 탈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천하를 이끌 체계가 세워져 있지 않으며
또한, 천하를 제압할 군사력도 부족하옵니다.
주공,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나이다.
주공, 진정한 패업覇業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주공, 역사는 기존의 질서를 지키려는 세력과
새로운 질서를 이루려는 세력의 끊임없는 충돌입니다.
관중管仲은 패공霸公에 오른 것에 만족해하는 제환공齊桓公에게
이렇게 간하면서, 지금까지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였다.
주공. 초楚 나라를 주시해야 하옵니다.
중보仲父는 초楚 나라에 대해 말해보시오.
기존의 질서를 지켜내려는 중원의 여러 나라와
자신만의 새로운 질서를 이룩하려는 욕심으로
온 힘을 쏟아붓고 있는 초楚 나라와
이제는 충돌을 피할 수가 없게 되었나이다.
양측의 힘이 팽팽해질수록, 이 시대는
더욱 어지러움으로 치달을 수 있사옵니다.
주공께서 중원의 맹주로 부상浮上 하였사오나?
아직 초楚 나라를 제압한 것은 아니옵니다.
오히려 이리 떼 같은 초楚 나라의 야성을
더욱 자극해 놓았을 뿐으로,
이를 잘 파악하는 초楚 나라도 더더욱
중원 진출의 야망을 키워나갈 것입니다.
초楚 나라로 인하여 더욱 어지러워질 것이오니
이에 대해 대비를 하셔야 하옵니다.
중보仲父,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겠소?
주공, 아무래도 정鄭 나라가 문제가 될 것입니다.
이때의 정여공鄭厲公은 역성櫟城에 머물면서, 정백鄭伯의 자리를
되찾고자, 수시로 초楚 나라에 사자를 보내어 도움을 받으려다가
뒤늦게 제齊 나라의 도움을 받아, 다시 정백鄭伯의 자리에 올랐다.
정여공鄭厲公이 제齊 나라의 도움을 받아
신정新鄭을 접수하고 정백鄭伯에 올랐다고 하였느냐?
그래서 우리 초楚 나라를 배신하고 회맹에 가담하여
제환공齊桓公을 맹주로 세웠다는 것이 사실인가?
왕이시여, 그러하옵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어떻게
어찌 하루아침에 배신한단 말인가?
정여공鄭厲公이 제齊 나라만 알고
우리 초楚 나라가 있는 것은 모르는구나.
괘씸하도다.
그냥 둘 수 없도다.
내 반드시 정鄭 나라를 정벌하고 말리라.
초문왕楚文王은 일절 조공朝貢 도 바치지 않고, 사자를 보내지 않는
정鄭 나라의 정여공鄭厲公에게 분노하였으므로, 이에 또 한 차례
군사를 일으켜 정鄭 나라를 향해 쳐들어간다.
이때 초군楚軍은 이미 항복한 채蔡 나라 땅을 밟고 질러가게 되니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으며, 곧바로 쳐들어가 너무 일찍 정鄭 나라
국경에 닿게 되었으므로 정여공鄭厲公은 아무 대비도 하지 못했다.
초楚 나라가 아무 이유 없이 쳐들어오다니
어찌해야 좋겠는가?
신 숙첨叔詹 이옵니다.
우리가 그동안 사자를 보내지 않아
초문왕楚文王이 분노한 것이옵니다.
주공께서는 그간의 사정을 말씀하시고
화평和平을 청하시옵소서.
초문왕楚文王의 갑작스러운 침략에 매우 놀란 정여공鄭厲公은
채蔡 나라와 마찬가지로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하고, 매년 조공을
바칠 것을 다짐하며 화평을 제안하자, 초문왕은 이를 받아드리며
정鄭 나라의 예물을 받은 후 군사를 되돌려 초楚 나라로 되돌아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중원中原의 맹주인 제환공齊桓公이 가만히 있지를
않으며, 사자를 보내어 한바탕 몹시 꾸짖자, 정여공은 고심 끝에
정경 숙첨叔詹을 제齊 나라에 보내어 극구極口 변명을 하게 하였다.
신 숙첨叔詹. 제후齊侯께 인사 올리나이다.
정여공鄭厲公은 정말 괘씸하도다.
정鄭 나라가 초楚 나라와 화평을 맺었다는 것은
곧 회맹會盟의 약속을 저버린 것이로다.
어찌 배신행위가 아니겠는가?
정鄭 나라는 어찌하여 배신을 하는가?
제후齊侯 임, 용서하소서.
갑자기 쳐들어온 초楚 나라의 위세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나이다.
그렇다면 왜 구원을 요청하지 않았는가?
그럴 시간이 없었사옵니다.
만일 맹주께서 초楚 나라를 제압하여 주신다면
우리 정鄭 나라는 매년 세물歲物을 바치겠나이다.
괘씸하구나. 내 어찌 세물歲物을 바라고 한 말인가?
숙첨叔詹, 저자의 하는 말이 몹시 건방지구나.
저자를 옥에 가두도록 하라.
제환공齊桓公은 숙첨叔詹의 변명이 괘씸하고 얄미워 그대로 옥에
가두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숙첨叔詹이 탈출하여, 본국으로
도망치는 일이 생기자, 두 나라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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