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 열국지 101∼200 회

제 116 화. 자신의 죽음을 알 수 있으랴.

서 휴 2022. 7. 8. 18:09

116 . 자신의 죽음을 알 수 있으랴. 

 

        초문왕楚文王이 홧김에 채나라와 정나라를

        난데없이 침공하여 복속시키며 중원을 어지럽혔다.

 

        제환공齊桓公은 정나라의 숙첨叔詹이 찾아와

        변명하는 말이 너무 괘씸하여 옥에 가두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숙첨叔詹이 옥을 탈출하여,

        본국으로 도망치는 일이 생기면서

        와 정, 두 나라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된다.

 

        그런 와중에 주희왕周僖王이 죽고 아들 낭

        주혜왕周惠王이 된다. 이때가 기원전 676년의 일로

        제환공齊桓公 10년에 해당한다.

 

그 해에 초나라의 속국屬國 인 파나라 군주가 분노하여 초나라

땅인 나처那處를 갑자기 쳐들어오자, 이에 초나라는 커다란

변란을 겪게 된다.

 

        방금, 뭐라 하였느냐?

        나라가 쳐들어온단 말이냐?

        왜 쳐들어오는 것이냐?

 

        왕이시여, 지난번 신나라 공격 시에

        우리가 파군巴軍을 멸시하며 곤경에 빠트렸고

 

       또한, 우리 초나라의 간섭이 심하여

       받들지 못하겠다며 반란을 일으킨 것이옵니다.

 

        사태가 어찌나 급하였던지, 장수 염오閻敖

        국경을 방비하지 못하고 수챗구멍으로 빠져나가

        용수湧水를 헤엄쳐 겨우 목숨을 구했다 하옵니다.

 

        뭐라고, 도망쳐온 염오閻敖 가 어디 있느냐?

        신 장수 염오閻敖 이옵니다.

 

        반란군叛亂軍, 하나도 진압하지 못하다니

        저놈을 끌고 나가 당장 참수斬首 시켜버려라.

 

갑작스레 파나라가 쳐들어오자, 이에 쫓겨 할 수 없이 도망쳐온

염오閻敖 장수를 초문왕楚文王이 불문곡직不問曲直 하고, 참수斬首

시켜버리자, 염씨閻氏 일족은 너무 억울하게 죽였다며, 원망하면서

반란을 일으키기로 도모하게 되었다.

 

        초문왕楚文王을 죽여야 백성들이 편안해집니다.

        나라에 사람을 보내어 함께 초군楚軍을 공격하여

        초문왕楚文王을 아예 죽여버립시다.

 

반란을 일으킨 파나라 군사들이 공격하여오자, 초문왕楚文王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싸움터로 나가는데, 반란을 일으킬 염씨閻氏

일족이 상당수 포함된 걸 전혀 의심하지 못하고 진격하게 되었다.

 

        한창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지금, 바로 이때요.

        빨리 초문왕楚文王을 향해 활을 쏘시오.

 

전쟁 중에 염씨閻氏 일족은 파군巴軍 과 싸우는 척하다가, 별안간

돌아서서 활을 쏘았고, 화살은 초문왕의 뺨에 정확히 꽂히고 만다.

 

        초문왕楚文王이 쓰러졌다.

        . 이제 초나라 군사들을 쳐 죽여라.

        초군楚軍이 달아난다. 빨리 뒤쫓아라.

 

염씨閻氏 일족은 일제히 병거兵車를 돌려 초군楚軍을 닥치는 대로

죽이자, 초문왕楚文王은 화살에 맞은 뺨을 감싸 안고 도망쳤다.

 

         이번 진땅에서의 싸움에

         초군楚軍이 완전히 패하였도다.

 

         아 슬프구나.

         내 밑에서 반란이 일어나다니

         이 초문왕이 처음으로 패전을 맛보는구나.

 

결국, 초군楚軍이 대패大敗 하였으나, 군사력軍事力이 부족한

파군巴軍은 초문왕楚文王을 추격追擊 하여 끝내 죽이지 못하고,

그대로 군사를 거두어 본국인 파 나라로 돌아가게 된다.

 

        우리 염씨閻氏 일족은 다 들으시오.

        우리는 이제 초 나라에 살 수가 없소이다.

        나라에 들어가 파나라 사람이 됩시다.

 

초문왕楚文王이 겨우 목숨을 구해 영성郢城 으로 돌아왔을 때는

밤이 깊어 깜깜하였으므로 영성郢城의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성문을 빨리 열도록 하라!

        왕이시여, 신 대혼大閽 육권鬻拳 이옵니다.

 

        왕께서는 싸움에서 이기셨나이까?

        아니다. 졌노라!

 

        왕이시여, 신 육권鬻拳이 말씀드리나이다.

        우리 초군楚軍은 초무왕楚武王 이래로

        싸움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나이다.

 

        더구나 파나라는 보잘것없는 소국小國 입니다.

        그런데도 왕께서는 친히 나가시어 패하셨으니

        어찌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나이까?

 

        왕이시여, 마침 황나라가 우리에게

        조공朝貢을 바치지 않은 지 너무 오래되었나이다.

 

        왕께서는 속히 군사를 돌려 황나라를 쳐서

        굴복시키고 돌아오시옵소서!

 

        왕이시여, 그런 연후에야

        이 성문을 열어드리겠나이다!

 

육권鬻拳이 누구인가? 자기 칼을 초문왕楚文王의 목에 대면서

협박하여 채애공蔡哀公의 목숨을 살려낸 후, 스스로 두 다리를

자른 바 있는 충신이었기에, 육권鬻拳의 성품을 모두 알고 있었다.

 

        너희들은 육권鬻拳의 말을 들었느냐?

        육권鬻拳은 결코 성문을 열어주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황나라를 쳐들어가 이기지 못하면

        나는 절대로 돌아오지 않으리라!

 

초문왕楚文王은 그 길로 군대를 돌려 황나라로 쳐들어갔으며

적릉踖陵 땅에 이르러 황군黃軍 과 크게 일전을 벌이게 되었다.

 

        북채를 이리 내놓아라!

        내 친히 북을 치리라!

 

큰 상처를 입은 초문왕楚文王이 친히 북을 치며 사기士氣를 돋우자,

초군楚軍은 죽기를 각오하여 황군黃軍에게 대승을 거두었다.

 

        왕이시여, 대승이옵니다.

        이기긴 하였으나 많이 피곤하구나.

 

        술을 가져오너라.

        한잔하고 잠을 청하리라.

 

        왕이시여. 상처가 크사온데 괜찮겠나이까?

        술에 취해야 잠이 올 것 같도다.

 

초문왕楚文王은 황나라에 크게 이기고, 그날 밤 적릉踖陵 땅에서

깊은 잠을 자다가, 머리를 풀어 헤친 채 산발散髮을 하고, 퍼런 불빛이

빛나는 눈을 반짝이며 다가오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너는 누구냐?

        내가 식후息侯 이노라.

        , 아니. 너는 죽지 않았느냐?

 

        이놈아, 내게 무슨 죄가 있기에

        너는 무슨 이유로 내 나라를 없애고

        내 나라 강토를 빼앗았느냐?

 

        또 무슨 까닭으로 내 아내를 빼앗아 갔느냐?

        네 놈은 철천지 원수로다.

 

        내가 옥황상제玉皇上帝께 너의 죄를 낱낱이 고하고

        이제야, 너를 찾아왔노라!

 

죽은 식후息侯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손을 번쩍 쳐들어 초문왕의

상처 난 뺨을 세차게 내려쳐 때리자, 초문왕楚文王은 커다란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왕이시여, 무슨 일이옵니까?

        아니 어찌 된 일인가?

        식후息侯는 어디로 갔느냐?

 

        왕이시여. 꿈을 꾸시었나이까?

        많이 놀라시었나이까?

 

        왕이시여! 화살에 맞은 뺨이 더욱 찢어져

        많은 피고름이 흐르고 있나이다.

 

        , 아주 사나운 꿈이로구나!

        더 머물지 말고 빨리 돌아가도록 하자!

 

초문왕楚文王은 상처가 더욱 커져 통증이 몹시 심하여지자, 더는

싸울 마음이 없어졌으며, 어서 돌아가 쉬고 싶을 따름이었다.

 

        초군楚軍은 빨리 돌아가도록 하라.

        초군楚軍은 더 빨리 달리도록 하라.

 

        여기가 어딘가?

        이곳은 추땅이옵니다.

 

        쉬지말고 더 빨리 가도록 하여라!

        왕이시여. 밤이 매우 깊사옵니다.

 

        군사들이 쉬지 않고 달려와 많이 지쳐있나이다.

        그런가. 잠시 쉬었다가 곧 떠나도록 하라.

 

초문왕楚文王은 또 잠을 자다가 괴상한 소리를 지르면서, 몸을

일으키다가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장수들이 모여들었을 때는 이미 눈을 하얗게

        까뒤집은 채 싸늘한 시체屍體로 변하고 있었다.

 

나라는 초문왕의 시체屍體를 맞아들여 장례를 치렀으며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사람은 도화桃花 부인의 두 아들 중에

큰 아들인 웅간熊艱 이었다.

 

        왕이시여. 신하 육권鬻拳 이옵니다.

        신은 두 번이나 왕의 명령을 거역하였나이다.

 

        하지만 왕께서는 신을 죽이지 않았소이다.

        내 어찌 왕의 은혜恩惠를 잊을 수 있겠나이까.

        이제 왕을 따라 지하로 갈까 하나이다.

 

        내 가족들은 내 말을 잘 들어라.

        내가 죽거든 반드시 영성郢城성문 곁에 묻어라.

        나는 죽어서도 영성郢城의 성문을 굳게 지키겠노라.

 

육권鬻拳은 말을 다 마치자, 칼을 뽑아 스스로 자기 목을 찔렀으며

처연하게 초문왕楚文王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다.

 

후일, 노나라의 태사太史를 지낸 좌구명左丘明은 그의 저서

춘추좌씨전 春秋左氏傳을 통하여 육권鬻拳의 죽음을 극찬하였다.

 

        육권鬻拳 이야, 말로 군주의 진정한 신하로다.

        언제나 서슴없이 충간忠肝 하였으며

 

        충간忠肝 후에는 군신의 예를 범하였다 하여

        자기 몸에 스스로 형벌을 가하여

        군주를 올바른 길로 인도함을 잊지 않았도다.

 

초문왕楚文王이 추땅에서 죽었다는 소식이 중원中原의 여러

나라에 전하여지게 되자,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 기뻐하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뻐한 것은 정나라의 정여공鄭厲公 이었다.

 

        초문왕楚文王이 죽었도다!

        우리 정나라에 몹쓸 짓을 하더니 객사하였구나.

 

        우리 정나라는 주왕실의 피가 면면히 흐르는

        희성姬姓 의 나라가 아닌가!

 

        무공武公 이나 장공莊公 시대에는 중원中原을 호령했던

        자긍심自矜心이 높은 군사 강국이었노라.

 

        그러던 것이 어쩌다가 초나라에 조공을

        바치지 않으면 안 되는 신세로 전락하여

        이 얼마나 굴욕적인 일을 당하며 살아왔는가!

 

        이제야 초나라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도다!

        오늘부터 초나라와의 모든 관계를 끊어버려라!

 

        주공. 신 정경 숙첨叔詹 이옵니다.

        옛말에 타인에 의지하는 자는 늘 위태로움이 따르고

 

        남의 밑에 있는 사람은 항상 그렇듯,

        굴욕을 면할 수 없다고 하였나이다.

 

        우리 정나라는 제와 초나라 사이에 끼어

        위태로움과 굴욕 속에 지내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處地 가 되고 말았습니다.

 

        주공께서는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작정입니까?

        나도 그 점을 몹시 안타깝게 여기고 있소.

        하지만 힘이 없는 걸 어찌하겠소.

 

        주공. 돌이켜보시옵소서.

        환공桓公, 무공武公, 장공莊公,  3대에 걸쳐

        열국列國의 제후들을 호령할 수 있었던 것은,

        왕실의 경사卿士 신분을 활용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제환공齊桓公이 패업覇業을 이루고,

        맹주盟主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왕실王室 을 잘 받들었기 때문입니다.

 

        왕실王室 과의 관계로 보면 제나라보다

        우리 정나라가 훨씬 친밀하고 가깝나이다.

 

        지난해 새로이 주혜왕周惠王이 왕위에 올랐사온데

        주공께서는 어찌하여 이 기회에 왕실에 조례朝禮 하여

        왕의 후광後光을 받을 생각을 하지 않으시나이까?

 

        과 진, 두 나라가 주혜왕周惠王을 알현하자

        연회宴會를 베풀어 주었으며,

 

        보옥寶玉 다섯 쌍과 준마駿馬 세필을

        하사하여 주었다고 하옵니다.

 

        주공, 만일 주왕周王의 후광에 힘입어

        선군들의 옛 지위를 다시 찾기만 한다면,

        대국들이 간섭할지라도 두려운 것이 없나이다.

 

정경 숙첨叔詹은 정여공鄭厲公의 뜻이 작지 않음을 알고 있었던바

은근히 권하자, 정여공도 조금도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알겠노라. 대부 사숙師叔에게 명하노라.

        그대는 낙양洛陽의 주왕周王을 알현하고 오라.

 

117 . 섣부른 욕심으로 자기가 죽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