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7 화. 가정의 화목은 여자가 가져온다.
조희(趙姬)의 청을 들은 진문공(晉文公)은 즉시 사자를 책(翟) 나라에
보내, 숙외(叔隗)와 그 아들 조순(趙盾)을 강성(絳城)으로 데려왔다.
서방님, 숙외(叔隗)는 소첩의 형님이 되시옵니다!
서방님은 내실의 순서를 다시 정하셔야 합니다.
허 어, 조희(趙姬)는 무슨 말을 하려는 거요?
서방님을 먼저 섬긴 사람은 숙외(叔隗) 이오니
당연히 숙외(叔隗)가 첫째가 되어야 합니다.
정실 자리를 숙외(叔隗)에게 넘겨주겠나이다!
그건 곤란하오. 조희(趙姬)는 주공의 따님이오!
곤란하다니요?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숙외(叔隗)는 저보다 나이가 많을 뿐만 아니라
아들 순(盾)은 재능도 뛰어납니다.
아들 순(盾)을 적자(嫡子)로 삼기 위해서도
숙외(叔隗)에게 정실 자리를 내주는 것이 옳습니다.
소첩은 곁방으로 옮겨 지내겠습니다.
만일 대부께서 저의 청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저는 궁으로 돌아가 다시는 나오지 않겠습니다.
조희(趙姬)가 이렇게 나오자, 숙외(叔隗)도 정실부인 자리는 당연히
조희(趙姬)가 그대로 있어야 한다면서 완강하게 버티게 되자, 이에
난처하게 된 조쇠(趙衰)는 할 수 없이 진문공(晉文公)을 찾아간다.
주공, 신의 집안에 이런 일이 생겼나이다.
주공께서 조희(趙姬)를 잘 타일러주십시오.
내 딸이 그처럼 사양한다니 흐뭇한 일이오.
이는 옛날 태임(太任)의 어짊을 보이는 것 같소!
태임(太任)은 주(周) 나라를 세운 주문왕(周文王)의 어머니로서
지(摯) 나라 임씨(任氏)의 둘째 딸이며, 왕계(王季)에게 시집갔다.
태임(太任)의 성품은 단정하고 성실하며
한결같이 오직 덕(德)을 행하였다.
그녀는 주문왕(周文王)을 임신하고서는
눈으로는 사악(邪惡)한 빛을 보지 않고,
귀로는 음란(淫亂)한 소리를 듣지 않고,
입에서는 오만(傲慢)한 말을 내지 않았다.
주문왕(周文王)은 태어나자, 그는 일찍부터 총명하고 사물의 이치를
너무 쉽게 이해하면서, 하나를 가르치면 백 가지를 깨우쳤다.
마침내 주문왕(周文王)이 주(周) 나라를 세운
시조(始祖)가 되자, 군자들이 말하기를
태임(太任)이 태교(胎敎)를 했음이라 했다.
주(周 )나라 시절에 부덕(婦德)이 훌륭했던 여자로는 태임(太任),
태강(太姜), 태사(太姒)를 꼽으며, 왕실의 삼모(三母)라고 불렀다.
주공, 그러하오나. 어찌 그리 할 수 있겠나이까?
아니요. 들어보니 내 딸의 말이 틀리지 않소이다.
그러니 숙외(叔隗)를 정실로 세우고
조희(趙姬)를 두 번째 부인으로 해도
크게 흠이 되지 않을 것이오.
이에 조쇠(趙衰)는 진문공(晉文公)의 말에 따라, 숙외(叔隗)를 정실로
정하고, 조희(趙姬)를 둘째 부인으로 삼았다. 아울러 조순(趙盾)은
적자가 되어 당주(堂主)로서의 일을 배우게 할 수 있었다.
이때 조순(趙盾)의 나이 17세로, 아버지 조쇠(趙衰)를 닮아
기상이 씩씩하고, 활을 잘 쏘며, 무예도 출중했으며,
예의범절도 바르고, 시서(詩書)에도 능했다.
조쇠(趙衰)는 그러한 조순(趙盾)을 매우 사랑했으며
또한, 부인인 조희(趙姬)에게서도 아들 셋을 봤다.
큰아들의 이름은 동(同)이고, 둘째는 괄(括) 이며,
그리고 셋째는 영(嬰)이라 이름 지었다.
중이(重耳)는 귀국해 진문공(晉文公)이 되자마자, 극예(郤芮)와
여이생(呂飴甥)이 곧바로 일으킨 난을 일으켰을 때, 발제(勃鞮)와
진목공(秦穆公)의 도움을 받아 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었다.
이렇게 국정도 안정이 되고, 조쇠(趙衰)를 비롯한 명명 파들의
생활도 안정되자, 지나간 일들도 올바르게 정리하기로 하였다.
국정을 안정시키느라 그동안 너무 고생이 많았소!
이제 억울하게 죽은 충신들을 살펴봐야 하겠소.
하나도 빠짐없이 알아보고 목록을 만드시오!
진문공(晉文公)은 경정(慶鄭)을 비롯한 칠여대부(七閭大夫) 등과
억울하게 죽은 충신들의 무덤을 개장하며 비를 세워 위로하였다.
주공. 호언(狐偃)이 아뢰오.
순식(荀息)은 지난날 선군과 어리석은 약속을 지키려
해제(奚齊)와 탁자(卓子)의 난에 죽긴 하였으나
그의 충절은 가상하옵니다.
옳은 말이오. 순식(荀息)의 아들 순림보(荀林父)에게
대부 벼슬을 내리도록 하시오.
그리고 원로대신 호돌(狐突)의 묘를 개장하시오.
진문공(晉文公)은 너무나 원통하게 죽은 외할아버지인 호돌(狐突)의
묘를 마안산(馬鞍山)에 개장하면서 너무나 슬퍼하며, 호모(狐毛)와
호언(狐偃) 형제 또한, 슬프게도 큰소리로 눈물을 흩뿌리며 우니,
이에 모든 대부가 함께 고개 숙여 절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진양(振揚) 땅 마안산(馬鞍山)에 사당을 세우라.
이제부터 마안산(馬鞍山)을 호돌산(狐突山)으로 부르라.
그 후 진문공(晉文公)은 민심이 수습되면서 나라 기강이 확립되자,
그동안 공적을 쌓은 유공자들에게 포상을 시행하기로 공표한다.
논공행상(論功行賞)의 기준은 다음과 같도다.
1등 공신: 19년간 함께 망명한 신하
2등 공신: 국내에서 귀국을 힘써준 신하
3등 공신: 귀국 시 항복하고 영접한 신하
진문공(晉文公)은 또 1, 2, 3등 공신(功臣) 중에서도 공로의 경중을
가려냈으며, 다시 상하로 나누어 상(賞)을 포상하였다.
이때 포상을 받은 공신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등 공신
상급 : 조쇠(趙衰), 호언(狐偃).
차급 : 호모(狐毛), 서신(胥臣), 위주(魏犨), 선진(先進).
호사고(狐射姑), 전힐(顚頡) 외 다수
2등 공신
상급 : 난지(欒枝), 극진(郤溱), 난순(欒盾), 극곡(郤穀)
차급 : 주지교(舟之僑), 기만(祁滿) 외 다수
3등 공신
상급 : 극보양(郤步揚), 한간(韓簡).
차급 : 양유미(梁繇糜), 가복도(家僕徒), 도격(屠擊),
극걸(郤乞), 선멸(先篾) 외 다수
논공행상의 내용을 살펴보면, 진문공(晉文公)과 함께 고생하며
유랑했던 가신들의 입지가 크게 강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로가 있는 자로서 상을 받지 못한 자가
있다면 자진하여 신고하도록 하라.
빠진 자는 별도로 포상을 시행하겠노라.
이에 따라 포상은 원만하게 진행되었으며, 이때부터 진(晉) 나라의
핵심 권력은 모두 망명 파인 가신단이 차지하게 되며, 혹여 명단에
빠진 사람을 염려하여, 누구나 보도록 강성(絳城)의 성루(城樓)에
조서(調書)를 걸며, 자진 신고하고 찾아오기를 바랐다.
내가 주공을 19년 동안이나 곁을 지키며
궂은일을 도맡아 하지 않았는가?
나는 당연히 큰 상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포상에서 빠진 건 뭔가 크게 잘못되었도다.
강성(絳城)의 성루에 걸린 조서를 보고 맨 먼저 쫓아온 사람은
바로 진문공(晉文公)의 가노(家奴)인 호숙(壺叔) 이었다.
호숙(壺叔)은 공신 명단에 넣어주지 않은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너무나 억울하다면서, 진문공(晉文公)을 찾아가 호소했다.
주공께선 유랑할 때의 노고에 보상하는 상을
다른 사람에게는 모두 내리시면서!
유독 저에게 내리지 않으신 이유는
혹시 신에게 무슨 다른 죄가 있어서입니까?
주공, 신(臣)은 포읍(蒲邑)에서부터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따라다녔으며
오늘날까지 주공을 모시고 있사옵니다.
1만여 리가 넘는 길을 주공을 따라 유랑하며
발바닥이 찢어지고 많이 굶기도 하였습니다!
한시도 편안한 잠을 자지 못하며 주공을 모셨사온데
주공께선 공신 명단에 신만을 빼놓으셨으니,
신이 무슨 죄라도 지은 것이 있사옵니까?
호숙(壺叔) 아, 네가 고생한 것을 모두 알고 있노라.
너를 위해 상세히 그 이유를 말해 주마!
이번에 상을 내리면서 정한 기준이 무엇이며
그 내용이 어떠한지 너는 아느냐?
이번에 공을 논하면서 다음과 같이 하였노라.
첫째 인(仁)과 의(義)로써 나를 지도하여
깨닫게 해준 사람에겐 상급의 상을 내렸다.
묘책으로 나를 도와 여러 제후로부터 욕되지 않게
해준 사람에게는 그다음 상을 내렸고,
온갖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던져가면서
나를 보호해준 사람에겐 차급의 상을 내렸다.
간단히 줄여 말하자면,
가장 으뜸 되는 상은 덕(德)에 대해 준 것이고,
그다음은 재능에 대해 준 것이고,
또 그다음은 공로에 대해 준 것이다.
내 몸을 위해 백방으로 애써준 수고로움은
중요하긴 하지만 필부의 힘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위에서 말한 것에 비할 바가 아니노라.
내 말을 알아들 수 있겠느냐?
나는 1등, 2등, 3등 공신에 대한 포상이 끝난 후
너를 비롯한 많은 천신(賤臣)들에게도 보답할 것이다
상을 내려줄 것이니, 너무 염려치 마라!
제 318 화. 자기 공을 스스로 말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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