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5 화. 과감해야 운명을 바꾸는가.
내 사랑하는 두씨(杜氏) 부인과 아들 백리시(百里視)는
어디에서 무얼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얼마나 먹고 살기 힘들었으면
어린 아들을 안고 떠나버렸을까.
어디로 갔을까? 혹시 죽지는 않았을까?
살아있기나 한 걸까?
백리해(百里奚)는 너무 늦게 찾아온 자신을 후회하며, 회한(悔恨)의
눈물을 훔치면서 돌아왔다. 다음날부터 요세(繇勢)를 앞세워 돈을
풀어가면서, 아무리 수소문하여도 찾아내지를 못하였다.
백리해(百里奚)는 잉신(媵臣)의 몸이 되어, 혼례 행렬을
따라가면서 만감이 서려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진(晉)나라 진헌공(晉獻公)의 큰딸 백희(伯姬)의 혼례 행렬은 대단해,
진(秦)나라 백성들이 구경하러 몰려나오며 인산인해를 이뤘다.
높은 장대에 진(晉)나라 깃발을 단 기수단이
말을 타고 앞장서 나아가니, 군악대가 북을 치며
뿔소라들을 힘차게 불어댄다.
네 마리의 말이 신부 백희(伯姬)의 꽃마차를 이끌며
잉첩(媵妾) 들의 꽃가마들이 줄을 이어가고 있다.
잉신(媵臣)과 잉녀(媵女) 들은 신부인 백희(伯姬)와 잉첩(媵妾)
들의 꽃 가마를 앞과 뒤와 양옆을 감싸면서 주의 깊게 살펴보며
가고 있으며, 그 뒤에 취주악단(吹奏樂團)이 뒤따른다.
거문고와 비슷한 금(琴)과 향비파(鄕琵琶)를 뜯으며
흥겹게 정연히 줄을 서서 따라가고
대나무로 만든 대금, 중금, 소금 등 디지(竹笛) 들이
함께 소리를 내면, 질 나팔이 불어지고
비파를 뜯으면 얼후와 고쟁이 소리를 높인다.
야오구(腰敲)를 멘 젊고 어여쁜 여자들이 몸을 꼬며
어여쁘게 춤을 추면, 뒤따라 남자 무용수들이 춤추고
가면을 쓴 한 떼의 춤꾼들이 흥겹게 춤을 추며
흥을 돋우며 나아가는 장면은 실로 장관을 이룬다.
폐백(幣帛)을 실은 수레들이 줄을 이어가며, 앞뒤로 많은 군사가
진(晉) 나라의 위용을 자랑하듯 당당하게 행진하여 나아간다.
진(晉)나라 강성(絳城)과 진(秦)나라 옹성(雍城)까지의 거리는
소들이 끄는 수레들이 많아 보름 이상이나 걸리니 빨리 가야 했다.
내 나이 벌써 60이 다 돼가는구나!
이렇게 강행군을 따라가자니 다리가 절름거리는구나!
현실에 거부하지 않으며 열심히 살아왔건만
어쩌다. 내 인생의 마지막을 이렇게 끝내려는 것인가?
눈물은 비참하게 흐르며 허리는 더 굽어지는구나!
이 늙은 몸이 시집가는 여자의 종이 되었으니,
이보다 더한 굴욕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제 노비로 살아가야 하는가?
일생을 노비로 살란 말인가?
나의 운명이 이렇게 기구하단 말인가?
아니야.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은
분명히 나가고자 하는 길이 아닐 거야
한번 살다가 죽는 것이 인생이 아니던가.
한번 죽으면 그뿐인 인생인데!
이렇게 덧없이 살다 갈 수는 없는 거야!
이렇게 일생을 끝마칠 수는 없는 거야!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해!
새로운 길로 떠나가야 만 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좋은 방법은 없는 것일까?
진헌공(晉獻公)의 큰딸 백희(伯姬)의 혼례 행렬은 높고 낮은 산을
넘고 내를 건너며, 어느덧 이레째 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옛날에는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24시간을
둘로 나누어 12시간대로 사용하였다.
이를 십이지(十二支)라 하며, 자(子),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亥)의 12시간이다.
첫 번째인 자시(子時)는 오후 11시부터 오전 01시까지이며
두 번째인 축시(丑時)는 오전 01시부터 오전 03시까지이다.
자시(子時)에는 귀신들이 사람 집에 들어오므로, 우리는 돌아가신
부모임이나, 조상 임의 영혼(靈魂)이 들어오시리라 믿으므로
그 자시(子時)에 제사(祭祀)를 지내는 것으로 보인다.
귀신(鬼神)은 죽은 사람의 넋이 많으며 또한,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기운을 가지고 있어. 사람에게 화복(禍福)을
내려 준다는 신령(神靈) 스러움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축시(丑時)가 되면 찾아왔던 귀신들이 나갈 시간이므로, 자시(子時)와
축시(丑時) 사이에 들어오고 나가는 귀신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사람의 눈을 감기고 코를 골며 잠을 자게 만드는 것이리라.
백리해(百里奚)는 칠흑(漆黑)같이 어두운 밤에
살며시 일어나 곤히 잠자는 사람들을 본다.
봇짐을 어깨와 겨드랑이에 단단히 동여매고
작은 보자기는 허리에 단단히 감아 맨다.
그리고 여러 군막(軍幕) 사이를 조심스레 살피며
경비 군사(軍士)들을 피해 살금살금 빠져나온다.
왔던 길을 급히 뒤돌아 가다가
캄캄한 산속으로 숨어 도망친다.
아니나 다를까, 이른 아침이 되자, 진(晉)나라 군사들이 샅샅이
뒤지며, 말을 탄 여러 기마병(騎馬兵)이 대오(隊伍)를 이루지
않으면서도, 갈 길을 앞질러 막으려 삼엄하게 지나간다.
잡히면 그 자리에서 즉각 죽이거나
끌려가도 죽게 되기는 매한가지다.
백리해(百里奚)는 수색조(搜索組)가 뒤쫓아 잡으러 오리라 짐작하고
밤낮으로 숨어 도망치며 내달린다.
그렇게 도망치며 며칠을 도망쳤는지 어디로 얼마나 갔는지, 알지
못하나, 여하튼 동쪽을 향하여 무조건 가게 되었으며, 며칠 지나자
이른 새벽에 알지도 못하는 황하(黃河) 강변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달아나는 것이 상책이라는 삼십육계(三十六計)가 있다.
제서(齊書)의 왕경즉전(王敬則傳)에 나오는
王敬則曰 檀公 三十六策 走爲上計
(왕경즉왈 단공 삼십육책 주위상계)
즉 단공(檀公)이 말한 36가지의 책략(策略) 중에 상대방이 너무
강하여 대적하기 힘들 때는 달아나는 것이 가장 나은 계책이라며
삼십육계(三十六計) 중에서 맨 마지막에 나온다.
힘이 약할 때는 일단 피했다가 힘을 기른 다음에
다시 싸우는 것이 옳다는 말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빈 마음을 채울 수 없어, 정처 없는 발길을 옮길
때도 있고, 때로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날 때도 있고, 때로는 급히
피해 가야 할 때도 있으리라.
때로는 가기 싫은 길을 가야 할 때도 있으며
때로는 살아내기 위하여 긴급히 떠나기도 한다.
모두 인생이 살아가는 여정에 나오는 길이기도 하다.
마음과 발길이 어디로 가느냐, 하는 방향에 따라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될 것이며
새로운 인생관으로 새롭게 변할 수도 있다.
백리해(百里奚)는 이제는 쫓아오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안심하고는
황하(黃河)의 강물을 한 모금 머금고, 부르튼 발을 씻고는, 천천히
건숙(蹇叔)이 살고 있다는 명록촌(鳴鹿村)을 떠올렸다.
희망이나 모든 걸 체념하고,
세상만사 다 잊어버리고
이제 명록촌(鳴鹿村)에 찾아들어
건숙(蹇叔)과 함께 조용히 살고 말리라.
명록촌(鳴鹿村)은 송(宋)나라에 있으니
황하(黃河)를 건너 동쪽으로 따라가 보자.
송(宋)나라로 가는 길은 작은 나라들과
주(周) 왕실과 정(鄭) 나라를 지나가야 하니
족히 이십 여일은 걸릴 것이다.
백리해는 황하를 건너 이정표(里程表)도 없는 동쪽으로 따라가며,
주(周) 왕실이나 정(鄭) 나라에 불현듯 붙잡혀 불상사를 당하지
않으려, 조심스레 여리박빙(如履薄氷)이란 말처럼 걷는다.
여리박빙(如履薄氷)
같을 여(如). 밟을 리(履). 엷을 박(薄). 얼음 빙(氷)으로
살얼음판을 밟고 가듯 아주 조심스레
주변을 살피며 걸어간다고 할 수가 있다.
진군(晉軍)의 감시를 완전히 벗어나 안심할 수는 있으나, 그래도
조심은 하며 불상사(不祥事)를 겪지 않으려 하면서. 음식과 술을
팔며, 잠을 재워주는 객잔(客棧)을 만나면, 만두를 사 먹고,
가다가 야산의 과일로 배를 채우며 황하를 따라 걷는다.
황하(黃河)를 따라가다 들판과 숲도 이어지고
산을 넘으며, 지나는 사람에 알음알음 물어보며
들판을 지나 또 산을 넘어가다가 알 수 없는
골짜기를 따라가게 된다.
골짜기를 지나 빨리 간다는 것이 알 수 없는 산속에서
한수(漢水)의 한 지류를 따라가게 된 것이다.
송(宋)나라 쪽으로 간다는 것이 높은 산을 넘어 골짜기를 따라
점점 더 깊숙이 가다 보니, 초(楚)의 완성(宛城) 지역에 들어왔다.
아차, 잘못 왔구나.
송(宋)나라가 아니고 초(楚) 나라에 오다니!
큰일이다. 빨리 돌아가야 한다.
사람들을 피해 들판이나 숲속을 헤매더라도
반드시 송(宋)나라 쪽으로, 가야만 한다.
완성(宛城)은 옛 신(申) 나라이며 지금의 신현(申縣) 일대를 말한다.
초(楚)가 신(申) 나라를 점령하여 한수(漢水) 일대를 장악하면서
중원으로 나가는 전진기지였으므로, 경계가 살벌할 수밖에 없었다.
완성(宛城)의 성주 투반(鬪班)은 영윤(令尹)으로 있는
투곡오토(鬪穀於菟)의 아들이며, 초성왕(楚成王)도
인정하는 막강한 배경과 용맹성을 가지고 있었다.
백리해(百里奚)는 그때 하필이면, 성주(城主)가 사냥하고 있을
때를 맞추어 산속을 헤매게 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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