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2 화. 음기를 버리지 못하는가.
제환공(齊桓公) 13년이며 기원전 673년에 노장공(魯莊公)의
생모인 문강(文姜)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
문강(文姜)은 천성적으로 음기(陰氣)가 많은 여인인가 보다.
그녀의 음탕(淫蕩) 한 모습을 잠시 들여다보자.
문강(文姜)은연인이자 오라비인 제양공(齊襄公)이
비참하게 죽자, 애통한 나머지 몸까지 쇠약해져
천식(喘息) 병에 걸려 병석에 눕는 일이 잦았다.
효성이 지극한 노장공(魯莊公)은 어머니인 문강(文姜)의 병을
고쳐주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던 중에, 어렵게 거(莒) 나라의
명의(名醫)를 불러오게 되었다.
어마마마. 거(莒) 나라의 명의(名醫)를 불렀나이다.
호오, 주공. 정말 고맙소.
명의(名醫) 임, 어서 오세요.
명의(名醫)라 하여 나이가 많은 줄 알았더니
젊기도 하고 건장(健壯)하며 잘 생겼구려!
마마, 신이 진맥하고자 하나이다.
조용히 팔을 내미십시오?
마마, 천식(喘息)이란 것은 기도(氣道)에
만성적(慢性的)인 염증(炎症)이 생기면서,
그로 인하여 기도(氣道)가 좁아지는 것이옵니다.
마음을 편히 가지시고 매일 꾸준히 약을 드시면서
당분간 찬 바람을 쐬지 마시옵소서.
문강(文姜)은 젊고 잘생긴 의원의 따스한 손길이 닿으며, 젊은
체온이 부드럽게 다가오자, 불현듯 음심(淫心)이 일어나, 끝내
참지 못하고, 힘차게 침상으로 잡아끌어 당기었으며, 앙칼지게
끌어안으면서 기어이 남녀의 관계를 맺고 마는 것이다.
오 호, 오랜만에 몸이 풀리는구나!
내 충분한 보물(寶物)을 줄 터이니
의원은 이곳에 오래 머물도록 하라!
마마. 소문이 나면 어쩌려 하시나이까?
소문은 걱정하지 마라!
마마. 이곳에 머문 지 3개월이나 되옵니다.
고향 집에 노모가 계시어 꼭 가봐야 하나이다.
잠시만 다녀오겠나이다.
잠시라고 하였느냐?
예 예, 한 달이면 되겠나이다.
한 달 안에 꼭 돌아오도록 하라.
겨우 문강(文姜)에게서 벗어난 의원은 도망치듯 자기 집이 있는
거(莒) 나라로 돌아갔으며, 문강(文姜)은 아무리 기다려 보아도
돌아오지 않자,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면서 직접 치료(治療)를
받아야겠다며, 거(莒) 나라로 달려가 그 의원 집에 묵는 것이다.
의원은 문강(文姜)의 끝없는 음욕(淫慾)을
만족하게 해주느라 나날이 수척(瘦瘠) 해지자,
마침내 꾀를 내어 정력이 세다고 자처하는
한 장사(壯士) 하나를 골라 천거하여 주었다.
문강(文姜)이 다행히 장사(壯士)에 흡족해하자,
의원은 얼른 다른 곳으로 아에 이사를 해버렸다.
문강(文姜)은 늙어가면서도 더욱 음욕(淫慾)을 즐겼으나, 오라비
제양공(齊襄公) 만큼 자신을 만족하게 해주지 못한다는 걸, 몹시
아쉬워하며, 마침내 천식(喘息)이 심해져 임종을 맞게 되었다.
어서 주공을 부르라!
어마마마, 부르셨나이까?
아들아, 내가 이제 떠날 것 같구나.
어마마마. 왜 그런 말씀을 하시나이까?
나는 오랫동안 살았다.
나는 제(齊) 나라 사람으로 노(魯) 나라에 시집왔다.
내가 일찍이 너의 짝으로 제(齊)의 애강(哀姜)과
맺어주겠다고 언약한 바 있지 않으냐?
지금까지 어지러운 변란의 연속이라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였으나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제(齊) 나라에 청혼하여
애강(哀姜)을 너의 배필로 맞아들이도록 해라.
더구나 제환공(齊桓公)이 패업(覇業)을
도모(圖謀) 하는 중이 아니겠냐?
제환공(齊桓公)과 좋은 관계를 이어가며
두 나라의 우호를 증진하도록 하라!
문강(文姜)이 떠나자, 노장공(魯莊公)은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후
문강(文姜)의 유언에 따라, 신료들과 혼사를 논의하게 되었다.
주공께서는 지금 상(喪)을 당하시어 빈소(殯所)를
모시고 있는 몸이므로 성급히 혼인할 수 없나이다.
제(齊) 나라는 선군이신 노환공(魯桓公)을 죽인
철천지원수의 나라입니다.
주공께서는 절대로 혼인하여서는 아니 됩니다.
아니 오! 어머니의 유언을 무시할 수 없소!
상(喪) 중에 혼인하는 것이 빠르다면
삼년상을 마친 후에 혼례를 치르도록 하십시오.
반대와 찬성이 팽팽한데, 특히 대부 어손(御孫)은 제(齊) 나라와
혼인을 맺으면 장차 해로운 일이 생긴다면서 극구 반대를 하였다.
주공, 선군께서 제(齊) 나라의 음모로 죽었나이다.
그러함에도 제(齊) 나라 여인을 맞이하는 것은
백성들이 보아도 그렇고, 이치에도 맞지 않나이다.
허허, 모친의 유언을 따르지 않는 것은 불효가 되오.
유언에 따라 청혼 사절을 보낼 것이오!
노장공(魯莊公)은 부친인 노환공(魯桓公)을 위로하기 위해 사당을
새로 짓고, 기둥에 붉은 칠을 하였으며, 서까래마다 화려한 장식을
하여, 정성껏 제사를 올림으로써 망자의 영혼을 달래주었다.
주공, 노장공(魯莊公)이 청혼 사절을 보내왔사옵니다.
으흠, 아주 오래전의 언약을 지키려 하는구나.
두 동맹국(同盟國) 간의 혼례인바 쾌히 승낙하노라.
혼례식을 성대하게 치러지도록 준비하라.
제환공(齊桓公)은 혼인을 쾌히 승낙하였다. 이때가 노장공(魯莊公)
재위 24년으로 37세였으며, 제(齊) 나라의 애강(哀姜)이 노(魯)의
정실부인(正室夫人)이 되면서, 아울러 잉첩(媵妾)으로 따라온
동생인 숙강(叔姜)도 노장공(魯莊公)의 부인이 되었다.
제(齊)와 노(魯), 두 나라는 좋은 뜻으로 혼례를 치렀다.
애강(哀姜)은 기대에 부풀어 노(魯) 나라로 시집을 왔으나,
장차 애강(哀姜)으로 인하여 노(魯) 나라의 공실에
또 한바탕 피바람이 불어 닥칠 것이라고 짐작하는
사람은 대부 어손(御孫) 외에 아무도 없었다.
제(齊) 나라는 바쁜 일정이 지나가자, 신료(臣僚) 들이 조당(朝堂)에
모여들어, 편한 마음으로 지난날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주공, 신 공손(恭遜) 습붕(襲封) 이옵니다.
주공께서 맹주에 오른 지도 10년이나 되었나이다.
10년이 지나는 사이에 천하뿐만 아니라
우리 제(齊) 나라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나이다.
이제 우리나라 경제가 탄탄하게 이뤄졌으며
군사력도 더욱 강건(剛健)하게 구축이 되었나이다.
산동반도(山東半島) 만 해도 곳곳에 하나의
마을 같은 작은 나라들이 산재(散在) 하였기에
그곳에 군사를 파견하거나 항복을 받아내며,
흩어져 있는 나라들을 병탄(倂呑) 하였나이다.
그렇긴 하나, 어려울 때도 많았소.
옛날 제희공(齊僖公) 때는 산융(山戎)의 침략을 받아
정장공(鄭莊公)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였소.
사실이 그러하였다. 주무왕(周武王) 시절에 태공망(太公望)이 광대한
산동반도(山東半島) 지역을 제(齊) 나라 영토로 삼는 데 성공했으나,
그 후 힘이 쇠약해지자, 다시 주변의 소국(小國)과 이족(夷族) 들이
자주 침범하면서 국경의 개념도 유명무실해졌었다.
이런 상태가 3백 년 가까이 지속하여오던 중에
정장공(鄭莊公)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였으나
그 후로는 걸출한 제환공(齊桓公)과 명신 관중(管仲)이
등장하여 10여 년이 지나는 사이에 주변의 소국(小國)과
이족(異族) 들을 모두 흡수하며 통합시켰다.
병탄한 소국(小國)과 이족(異族) 나라의 수만도 35개국이나 되었다.
이족(異族)은 회수(淮水)와 제수(濟水) 유역에 살던 소수 민족이다.
제환공 18년까지 소국들을 통합하면서, 마지막엔
서(徐) 나라마저 병탄하며, 마침내 산동반도(山東半島)
일대를 모두 다스리게 되었다.
이렇게 제(齊) 나라 영토는 태공망(太公望) 시절보다 더 넓어졌으며
국경 지역의 경계도 확실하게 구분하여 놓았다.
그 이듬해는 기원전 667년으로 주혜왕(周惠王)
재위 10년이며 제환공(齊桓公)은 재위 19년이었다.
그해 6월에 제환공(齊桓公)은 또다시 송(宋), 노(魯),
진(陳), 정(鄭)의 네 나라 군주들을 송(宋) 나라
영토인 유(幽) 땅으로 불러내어
네 번째로 회맹을 가짐으로써, 제환공(齊僖公)
자신이 패공이 되었음을 재확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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