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 열국지( 101∼200회)

제 150 화. 섣부른 욕심으로 죽는가.

서 휴 2023. 6. 7. 14:45

 150 섣부른 욕심으로 죽는가.

 

초문왕은 상처가 더욱 커져 통증이 몹시 심하여지자더는 싸울

마음이 없어졌으며, 어서 돌아가 쉬고 싶을 따름이었다.

 

        초군(楚軍) 빨리 돌아가도록 하라.

        초군(楚軍) 더 빨리 달리도록 하라.

 

        여기가 어딘가?

        이곳은 추(땅이옵니다.

 

       쉬지 말고 더 빨리 가도록 하라

        왕이시여밤이 매우 깊사옵니다.

 

        군사들이 쉬지 않고 달려와 많이 지쳐있나이다.

        그런가잠시 쉬었다가 곧 떠나도록 하라.

 

초문왕(楚文王)은 또 잠을 자다가 괴상한 소리를 지르면서, 몸을

일으키다가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장수들이 모여들었을 때는 이미 눈을 하얗게

        까뒤집은 채 싸늘한 시체로 변하고 있었다.

 

초문왕의 시체를 맞아들여 장례를 치렀으며,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사람은 도화(桃花부인의 두 아들 중에 큰아들인 

웅간(熊艱이었다.

 

        왕이시여신하 육권(鬻拳이옵니다.

        신은 두 번이나 왕의 명령을 거역하였나이다.

 

        하지만 왕께서는 신을 죽이지 않았소이다.

        어찌 왕의 은혜를 잊을 수 있겠나이까

        이제 왕을 따라 지하로 갈까 하나이다.

 

        내 가족들은 내 말을 잘 들어라

        내가 죽거든 반드시 영성(郢城) 성문 곁에 묻어라.

        나는 죽어서도 영성(郢城)의 성문을 굳게 지키겠노라.

 

육권(鬻拳)은 말을 다 마치자칼을 뽑아 스스로 자기 목을 찔렀으며

처연하게 초문왕(楚文王)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었다.

 

후일, (나라의 태사(太史)를 지낸 좌구명(左丘明)은 그의 저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통해 육권(鬻拳)의 죽음을 극찬했다.

 

        육권(鬻拳이야말로 군주의 진정한 신하로다.

        언제나 서슴없이 충간(忠肝)했으며

 

        충간(忠肝) 후에는 군신의 예를 범했다 하여

        자기 몸에 스스로 형벌을 가하여

        군주를 올바른 길로 인도함을 잊지 않았다.

 

초문왕이 추(땅에서 죽었다는 소식이 중원의 여러 나라에

전해지게 되자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가 기뻐하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뻐한 것은 정(나라 정여공(鄭厲公) 이다.

 

        초문왕(楚文王)이 죽었다

        우리 정(나라에 몹쓸 짓을 하더니 객사했구나

 

        우리 정(나라는 주(왕실의 피가 면면히 흐르는

        희성(姬姓)의 나라가 아닌가

 

        무공(武公)이나 장공(莊公시대에는 중원(中原)

        호령했던 자긍심(自矜心)이 높은 군사 강국이었노라.

 

        그러던 것이 어쩌다가 초(나라에 조공을

        바치지 않으면 안 되는 신세로 전락하여

        이 얼마나 굴욕적인 일을 당하며 살아왔는가

 

        이제야 초(나라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부터 초(나라와의 모든 관계를 끊어버려라

 

        주공신 정경 숙첨(叔詹이옵니다.

        옛말에 타인에 의지하는 자는 늘 위태로움이 따르고

        남의 밑에 있는 사람은 항상 그렇듯,

        굴욕을 면할 수 없다고 하였나이다.

 

        우리 정(나라는 제()와 초(사이에 끼어

        위태로움과 굴욕 속에 지내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處地)가 되고 말았습니다.

 

        주공께서는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작정입니까?

        나도 그 점을 몹시 안타깝게 여기고 있소.

        하지만 힘이 없는 걸 어찌하겠소.

 

        주공돌이켜보시옵소서.

        환공(桓公), 무공(武公), 장공(莊公),  3대에 걸쳐

        열국(列國)의 제후들을 호령할 수 있었던 것은,

        왕실의 경사(卿士신분을 활용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제환공(齊桓公)이 패업(覇業)을 이루고,

        맹주(盟主)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왕실(王室)을 잘 받들기 때문입니다.

 

        왕실(王室)과의 관계로 보면 제(나라보다

        우리 정(나라가 훨씬 친밀하고 가깝나이다.

 

        지난해 새로이 주혜왕(周惠王)이 왕위에 올랐사온데

        주공께서는 어찌하여 이 기회에 왕실에 조례(朝禮)하여

        왕의 후광(後光)을 받을 생각을 하지 않으시나이까?

 

        ()과 진(), 두 나라가 주혜왕(周惠王)을 알현하자

        연회를 베풀어 주었으며보옥(寶玉다섯 쌍과

        준마(駿馬세필을 하사하여 주었다고 하옵니다.

 

        주공만일 주왕(周王)의 후광에 힘입어

        선군들의 옛 지위를 다시 찾기만 한다면,

        대국들이 간섭할지라도 두려운 것이 없나이다.

 

정경 숙첨은 정여공의 뜻이 작지 않음을 알고 있었던바 은근히

권하자정여공도 조금도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알겠노라대부 사숙(師叔)에게 명하노라.

        그대는 낙양(洛陽)의 주왕(周王)을 알현하고 오라.

 

()의 대부 사숙(師叔)이 주혜왕(周惠王)을 알현하러 낙양으로

떠나갔으나얼마 지나지 않아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금방 

돌아와 자세한 보고를 올리는 것이다.

 

       어찌하여 이리도 빨리 다녀왔는가?

       왕실에 난이 일어나 왕성(王城)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그냥 돌아왔나이다.

 

       왕실에서 갑작스레 난이 일어나다니

       아니 무슨 난이 어떻게 일어났단 말인가?

 

대부 사숙(師叔)은 그간에 왕실에서 일어났던 일과 자기가 수집한

정보를 꺼내 들며 차근차근하게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주장왕(周莊王)이 총애하던 후궁이 있었사온데

       그녀의 이름은 요희(姚姬이오라,

       사람들은 그녀를 왕요(王姚)라 불렀나이다.

 

       왕요(王姚)의 소생으로 퇴()라는 왕자가 있었는데

       주장왕(周莊王)은 왕자 퇴()를 몹시 사랑하여

       특별히 대부 위국(蔿國)을 사부(師傅)로 삼았나이다.

 

       주공(왕자는 별난 취미가 있었사옵니다.

       별난 취미라니 무얼 말하는가?

 

       왕자 퇴() 소를 유난히 좋아하였나이다.

       왕자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거처를 온통

       외양간으로 만들며 친히 수백 마리나 길렀사옵니다.

 

       심지어는 소에게 오곡(五穀)을 먹이고

       화려한 비단옷을 입히기까지 하여,

 

       이에 세상 사람들은 왕자 퇴의 소들을

       문수(文獸)라 부르며 빈정대었나이다.

 

       ()는 출입할 때마다 항상 소를 타고 다녔고

       그의 시종(侍從들 또한소를 타고 다니게 하였나이다.

 

()는 주장왕(周莊王)의 총애를 받았기에그 주변에는 언제나

많은 벼슬아치가 들끓었으며, 왕자 ()의 사부 위국(蔿國)

비롯하여변백(邊伯), 자금(子禽), 축궤(祝跪), 첨부(詹夫), 등의

다섯 대부를 백성들은 오대부(五大夫)라 불렀다.

 

오대부(五大夫)는 주장왕(周莊王)의 요리를 관리하는 선부(選夫

석속(石速)과도 각별하게 지내면서공공연히 자주 모이게

되었으므로 서둘러 당()을 만들고는 대단한 듯이 행세하였다.

 

       이런 행동은 주희왕(周僖王때에도 이어졌으며

       주희왕(周僖王)은 퇴()의 형이었으나,

 

       동생인 왕자 퇴()의 방약무인(傍若無人

       행동을 제어하지 않고 그냥 놔뒀다고 합니다.

 

       그 사이에 주희왕(周僖王이 붕어(崩御하시고

       주혜왕(周惠王)이 신왕으로 즉위하였나이다.

 

주혜왕(周惠王)이 즉위하자이들 오대부(五大夫)는 왕자 퇴()

이제는 주혜왕(周惠王)의 윗사람인 숙부(叔父)가 되었다면서

이들은 더욱 교만 방자해졌다고 하였다.

 

       이것이 주혜왕(周惠王)의 눈에 거슬리게 되었으며

       마침내 주혜왕(周惠王)은 이들을 견제하기 위하여

 

       자금(子禽), 축궤(祝跪), 첨부(詹夫)의 전답을 몰수하고

       위국(蔿國)의 넓은 채원(菜園)을 빼앗아

       궁의 정원(庭園)으로 만들었으며

 

       변백(邊伯)의 큰 저택이 왕궁과 너무 가깝다며

       몰수해버려 궁궐에 보태었다.

 

       또한선부(選夫석속(石速)이 바치는 음식이

       맛이 없다고 트집을 잡으면서,

       그의 녹봉(祿俸)을 몹시 깎아버렸다.

 

이에 오대부(五大夫)와 석속(石速)은 주혜왕(周惠王)을 원망하는

마음이 깊어졌으며매일 한자리에 모여 울분을 토하였다

 

       (왕자가 주왕(周王)이 되면 얼마나 좋겠소?

       ()가 주왕(周王)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소?

       어떻소 한번 저질러봅시다

       좋습니다왕자 퇴()를 왕으로 받듭시다.

 

 151 . 풍전등화에 복귀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