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북방, 융족을 정벌한다.
제 154 화. 방백의 역할을 다하는가.
중보(仲父)는 요즘 무얼 하시오?
주공, 어서 오십시오.
지난날 정(鄭) 나라 세자 홀(忽)에게
혼쭐이 난 오랑캐가 어찌 움직이는지
세작(細作) 들을 풀어볼까 하나이다.
제(齊) 나라 북쪽으로 연(燕) 나라는 발해만(渤海灣)의 북쪽 일대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북쪽에는 북융(北戎)인 산융(山戎)이 있었다.
지금의 만리장성(萬里長城)이 끝나는 곳에
유명한 관문(關門)인 산해관(山海關)이 있으며,
그 산해관(山海關)을 지나면 지금의 하북성과
요령성의 경계까지 산융(山戎)의 영토이며,
지금의 천진(天津)에서 동북쪽으로 약 150km
더 올라가면 천안(遷安) 이라는 곳이 나오는데,
바로 산융(山戎)의 도읍지였다.
당시에는 중원(中原)의 나라들이 산융(山戎)의
그 일대를 영지(令支)라고 불렀으며,
산융(山戎)의 이름도 영지국(令支國)이라 하였다.
그 지역은 주(周) 나라 왕조가 강성했던
주무왕(周武王)과 주성왕(周成王) 시절에도
험한 산과 강으로 가로막힌 험지였으므로,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아주 불편한 곳이었다.
그래서 그때까지 중원(中原)의 손길이 전혀 미치지
못하고 있는 무풍지대(無風地帶)로 남아 있었다.
영지국(令支國)은 이렇듯 멀고 험한 지리적 여건을 이용하여, 주(周)
왕실에 조공을 바친 일이 한 번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틈만
나면 중원을 침범하여 곡식과 가축과 부녀자를 약탈하곤 하였다.
특히 그들은 점점 강력한 힘이 생기자,
이웃 나라인 연(燕) 나라를 자주 침범하였으며,
그 후로는 연(燕) 나라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남쪽인 제(齊)까지 침공하였다가 정(鄭) 나라 세자 홀(忽)에게
혼쭐이 난 오랑캐가 바로 산융(山戎)이며, 곧 영지국(令支國)이다.
밀로(密盧) 임금임. 중원(中原)에서는 제(齊) 나라가
여러 제후국을 통합하여, 이제 제환공(齊桓公)을
패공(覇公)이나, 방백(方伯)이라, 부른답니다.
으흠, 알고 있었노라! 그게 걱정이노라!
제환공(齊桓公)의 힘이 북쪽까지는 닿지 않으나,
만일 그의 영향력이 북방까지 미치면서
연(燕) 나라와 함께 국경을 튼튼히 방비하게 된다면
우리는 어느 곳에서 곡식(穀食)을 가져와야 하겠는가?
밀로(密盧) 임금님, 신 속매(涑買) 이옵니다.
임금님께서는 근심하실 일이 없습니다.
제환공(齊桓公)이 중원의 패자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남방의 초(楚) 나라를 제압하지 못하였으므로
이곳 북방까지 신경을 쓸 여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연(燕) 나라가 도움을 청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근심이 된다면, 이번 기회에 군사를 일으켜
연(燕)과 제(齊) 나라의 통로를 끊어버리십시오.
그리하면 연(燕) 나라는 중원에 도움을 청하고 싶어도
길이 없어 청할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좋도다. 그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바로다.
융병(勇兵) 1만을 이끌고 연(燕) 나라를 쳐들어가자.
연(燕) 나라는 주무왕(周武王)이 은(殷) 나라를 멸망시키는 데 공이
컸던 소공(召公) 석(奭)에게 분봉(分封)하여 준 제후국이다.
연(燕) 나라는 지금의 북경(北京) 일대를 영토로 한 나라로,
땅은 비록 넓었으나, 워낙 땅이 척박(瘠薄)하고
중원과도 멀리 떨어져 있어 내왕이 드물었다.
이러한 지리적 여건으로, 연(燕) 나라는 문화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았으며, 게다가 서북쪽과 동쪽으로는 이족(異族) 들에 둘러싸여
있어, 언제나 그들의 침략에 시달려야만 하였다.
또 산융(山戎)이 쳐들어온단 말이냐?
아 아, 우리가 아무리 방비하여도,
저 영지국(令支國)의 1만이 넘는 용사들을
도저히 막을 수가 없겠구나.
제환공에게 원군을 요청하면 들어줄 것인가?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로다!
일단 원군을 요청해 보자!
연(燕)의 군주 연장공(燕莊公)은 군대를 동원하여 방어에 나섰으나
물밀듯 쳐들어오는 산융(山戎)의 기세를 꺾을 수가 없었다.
그는 할 수 없이 사자(使者)를 샛길로 보내어,
중원의 패자(覇者)로 부상한 제환공에게
원군을 요청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그 무렵 제환공은 중원 진출을 노리는 초(楚)나라의 움직임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을 뿐으로, 북쪽 오랑캐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도 못하며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더구나 제환공(齊桓公)은 주혜왕(周惠王)에게서
방백(方伯) 이라는 직위를 제수(除授) 받은 후로는
명실공히 중원의 패자가 된 것에 만족하면서
날마다 술과 여자와 사냥으로 세월을 보낼 뿐으로,
나라 안팎의 모든 일은 관중(管仲)에게 맡기고 있었다.
그런 중에 느닷없이 연장공(燕莊公)의 원군 요청을 받게 되자
제환공(齊桓公)은 은근히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중보(仲父)! 영지(令支)가 연(燕) 나라를 침공하다니
남쪽의 초(楚) 나라만 상대하기도 벅찬데
이제 북쪽 오랑캐까지 신경을 써야 하겠소?
이번 일은 그냥 내버려 뒀다가 연(燕) 나라 스스로
해결하게 놔두는 것이 나을듯싶소.
중보(仲父)는 어찌 생각하시오?
주공, 신 관중(管仲) 이옵니다.
주공께서 비록 패업(覇業)을 이루셨다고는 하오나?
낙양(洛陽) 일대의 중원을 상대로 한 것일 뿐입니다.
남쪽에는 초(楚) 나라가 왕으로 군림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산융(山戎)과 그 옆 서쪽에는
적융(狄戎)이 많이 산재해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우리의 우한(憂患) 거리입니다.
만일 주공께서 진정한 패공(覇公)이 되기를 원하신다면
바로 이 우환(憂患) 거리부터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번에 산융(山戎)이 연(燕)을 침범하지 않았더라도
우리가 먼저 그들을 마땅히 응징해야 하거늘!
연(燕) 나라가 침공받은 이 마당에
어찌 구경만 하고 가만히 있겠나이까?
이는 결코 패공(覇公)으로서 취할 도리가 아닙니다.
더욱이 산융(山戎)의 형세는 중원(中原)의 등짝을
겨냥하고 있는 창끝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당연히 그들을 정벌하여 배후를 안전하게 해놓아야!
마음 놓고 초(楚) 나라와 대결할 수 있나이다!
관중(管仲)의 이 같은 설명에 제환공은 문득 깨달으며, 미안한
듯 얼굴을 붉히면서, 태도를 고치고는 관중(管仲)에게 말한다.
허 어, 패업(覇業)의 길이 멀고 멀 거를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여 미안하오.
중보(仲父)의 말씀대로 산융(山戎)을 쳐서
배후를 안정시키고,
초(楚) 나라를 제압해야 만이 우리 제(齊) 나라가
진정한 패자국이 된다는 말이 맞을 것이오!
제환공(齊桓公)은 관중(管仲)의 마음을 확실히 깨달았으므로,
곧바로 제군(齊軍)을 대대적으로 일으켰다.
제환공(齊桓公)은 영척(寧戚) 만이 임치(臨淄)에
남게 하고, 친히 중군(中軍)을 이끌면서
연(燕) 나라를 향해 제수(濟水)를 건너갔다.
관중(管仲)은 좌군과 우군을 이끌며 포숙아(鮑叔牙), 빈수무(賓須无)
공손습붕(恭遜襲封), 왕자 성보(成父) 등 대부분 중신도 종군시켰다.
밀로(密盧) 임금임. 신 속매(涑買) 입니다.
제환공(齊桓公)이 대군(大軍)을 이끌면서
북상(北上)하여 오고 있다고 합니다.
빨리 영지(令支)로 돌아가야겠습니다.
그냥 이대로 돌아가서야 하겠느냐?
인제 다시 오기 어려울 것이다.
자, 연(燕) 나라 여자들과 가축들을
철저히 약탈하여 많이 가지고 돌아가자.
영지국(令支國) 임금 밀로(密盧)는 재빨리 군사를 돌려 달아나면서,
얼마나 무참하게 약탈하였던지, 연(燕) 나라 땅에는 10여 리를
지나가도 개 짖는 소리 한 번을 제대로 들을 수 없을 지경이다.
오랑캐의 폐해(弊害)가 이렇듯 심할 줄은 몰랐구나!
연(燕)이 이렇게 심한 피해를 보며 살아왔단 말인가?
제환공은 행군하는 동안에 폐허가 되다시피 참혹한 현장을 보면서,
연신 혀를 차며 가다가 연(燕) 나라 땅인 계문관(薊門關)에 이르렀다.
이때 연장공(燕莊公)이 병거(兵車)를 몰고 나와 영접하였다.
제 155 화, 제환공, 북방을 평정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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