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9 화. 자신의 죽음을 어찌 아랴.
초문왕(楚文王)이 정(鄭) 나라를 쳐들어가고 있을 때, 초군(楚軍)은
이미 항복한 채(蔡) 나라 땅을 밟고 질러가게 되니,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으며, 곧바로 쳐들어가 너무 일찍 정(鄭) 나라 국경에 닿게
되었다. 이때 정여공(鄭厲公)은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초(楚) 나라가 아무 이유 없이 쳐들어오다니
어찌해야 좋겠는가?
신 숙첨(叔詹) 이옵니다.
우리가 그동안 사자를 보내지 않아
초문왕(楚文王)이 분노한 것이옵니다!
주공께서는 그간의 사정을 말씀하시고
화평(和平)을 청하시옵소서.
초문왕(楚文王)의 갑작스러운 침공에 매우 놀란 정여공(鄭厲公)은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채(蔡) 나라와 마찬가지로 매년 조공을
바칠 것을 다짐하며 화평을 제안하자, 초문왕은 이를 받아드리며
정(鄭) 나라의 예물을 받은 후 초군을 되돌려 초(楚)로 되돌아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중원의 맹주인 제환공(齊桓公)이 가만히 있지를
않았으며, 사자를 보내어 한바탕 몹시 꾸짖자, 정여공은 고심 끝에
정경 숙첨(叔詹)을 제(齊)에 보내 극구(極口) 변명을 하게 하였다.
신 숙첨(叔詹). 제후(齊侯)께 인사 올리나이다.
정여공(鄭厲公)은 정말 괘씸하도다!
정(鄭) 나라가 초(楚) 나라와 화평을 맺었다니!
어찌 맹약을 어기며 배신을 하는 건가?
제후(齊侯) 임, 용서하소서!
갑자기 쳐들어온 초(楚) 나라의 위세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나이다.
그렇다면 왜 구원을 요청하지 않았는가?
그럴 시간이 없었사옵니다.
만일 맹주께서 초(楚) 나라를 제압하여 주신다면
우리 정(鄭) 나라는 매년 세물(歲物)을 바치겠나이다.
괘씸하구나! 내 어찌 세물(歲物)을 바라고 하는 말인가?
숙첨(叔詹), 저자의 하는 말이 몹시 건방지도다!
저자를 옥에 가두도록 하라!
제환공(齊桓公)은 숙첨(叔詹)의 변명이 괘씸하고 얄미워 그대로
옥에 가두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숙첨이 탈출하여, 본국으로
도망치는 일이 생기자, 두 나라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초문왕(楚文王)이 홧김에 채(蔡) 나라와 정(鄭) 나라를
난데없이 침공하여 복속시키며 중원을 어지럽힌 것이다.
제환공(齊桓公)은 정(鄭) 나라의 숙첨(叔詹)이 찾아와
변명하는 말이 너무 괘씸하여 옥에 가두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숙첨(叔詹)이 옥을 탈출하여,
본국으로 도망치는 일이 생기면서
제(齊)와 정(鄭), 두 나라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된다.
그런 와중에 주희왕(周僖王)이 죽고 태자 낭(閬)이
주혜왕(周惠王)이 된다.
이때가 기원전 676년의 일로 제환공(齊桓公) 재위 10년에 해당한다.
그 해에 초(楚) 나라의 속국(屬國)인 파(巴) 나라 군주가 분노하여
초(楚) 나라 땅인 나처(那處)를 갑자기 쳐들어왔으며, 이에 초(楚)의
초문왕(楚文王)은 커다란 변란을 겪게 된다.
방금, 뭐라 하였느냐?
파(巴) 나라가 쳐들어왔단 말이냐?
왜 쳐들어오는 것이냐?
왕이시여, 지난번 신(申) 나라 공격 시에 우리가
파군(巴軍)을 멸시하며 곤경에 빠트렸고
또한, 우리 초(楚) 나라의 간섭이 심하여
받들지 못하겠다며 반란을 일으킨 것이옵니다.
사태가 어찌나 급하였던지, 장수 염오(閻敖)는
국경을 방비하지 못하고 수챗구멍으로 빠져나가
용수(湧水)를 헤엄쳐 겨우 목숨을 구했다 하옵니다.
뭐라고, 도망쳐온 염오(閻敖)가 어디 있느냐?
신 장수 염오(閻敖) 이옵니다.
반란군(叛亂軍)도 제대로 진압하지 못하다니
저놈을 끌고 나가 당장 참수(斬首) 시켜버려라!
갑작스레 파(巴) 나라가 쳐들어오자, 어쩔 수 없이 도망쳐온
염오(閻敖) 장수를 불문곡직(不問曲直) 하고, 참수(斬首)시켜버리자,
염씨(閻氏) 일족은 초문왕(楚文王)이 너무 억울하게 죽였다며,
원망하면서 반란을 일으키기로 도모하게 되었다.
초문왕(楚文王)을 죽여야 백성이 편안해집니다!
파(巴) 나라에 사람을 보내어 함께 초군(楚軍)을
공격하면서 초문왕(楚文王)을 죽여버립시다!
반란을 일으킨 파(巴) 나라 군사들이 공격하여오자, 초문왕은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싸움터로 나가는데, 반란을 일으킬 염씨(閻氏)
일족이 상당수 포함된 걸 전혀 의심하지 못하고 진격하게 되었다.
한창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지금, 바로 이때요!
초문왕(楚文王)을 향해 빨리 활을 쏘시오!
전쟁 중에 염씨(閻氏) 일족은 파군(巴軍)과 싸우는 척하다가, 별안간
돌아서서 활을 쏘았고, 화살은 초문왕의 뺨에 정확히 꽂히고 만다.
초문왕(楚文王)이 쓰러졌다!
자. 이제 초(楚) 나라 군사들을 쳐 죽여라!
초군(楚軍)이 달아난다! 빨리 뒤쫓아라!
염씨閻氏 일족은 일제히 병거兵車를 돌려 초군楚軍을 닥치는 대로
죽이자, 초문왕(楚文王)은 화살에 맞은 뺨을 감싸 안고 도망쳤다.
이 바람에 초군(楚軍)은 진(津) 땅에 완전히 패하였다.
아 슬프구나! 내 밑에서 반란이 일어나다니!
이 초문왕이 처음으로 패전을 맛보는구나.
결국, 초군(楚軍)이 대패(大敗)하였으나, 군사력(軍事力)이 부족한
파군(巴軍)은 초문왕(楚文王)을 추격하여 끝내 죽이지 못하고,
그대로 군사를 거두어 본국인 파(巴) 나라로 돌아가게 된다.
우리 염씨(閻氏) 일족은 다 들으시오!
우리는 이제 초(楚) 나라에 살 수가 없소이다.
파(巴) 나라로 들어가 파(巴) 나라 사람이 됩시다.
초문왕(楚文王)이 겨우 목숨을 구해 영성(郢城)으로 돌아왔을 때는
밤이 깊어 깜깜하였으므로, 영성(郢城)의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성문을 빨리 열도록 하라!
왕이시여, 신 대혼(大閽) 육권(鬻拳) 이옵니다.
왕께서는 싸움에서 이기셨나이까?
아니다. 졌노라!
왕이시여, 신 육권(鬻拳)이 말씀드리나이다.
우리 초군(楚軍)은 초무왕(楚武王) 이래로
싸움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나이다.
더구나 파(巴) 나라는 보잘것없는 작은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왕께서는 친히 나가시어 패하셨으니
어찌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나이까?
왕이시여, 마침 황(黃) 나라가 우리에게
조공(朝貢)을 바치지 않은 지 너무 오래되었나이다.
왕께서는 속히 군사를 돌려, 황(黃) 나라를 쳐서
굴복시키고 돌아오시옵소서
왕이시여, 그런 연후에야
이 성문을 열어드리겠나이다!
육권(鬻拳)이 누구인가? 자기 칼을 초문왕(楚文王)의 목에 대면서
협박하여 채애공(蔡哀公)의 목숨을 살려낸 후, 스스로 두 다리를
자른 바 있는 충신이었기에, 육권(鬻)拳의 성품을 모두 알고 있었다.
너희들은 육권(鬻拳)의 말을 들었느냐?
육권(鬻拳)은 결코 성문을 열어주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황(黃) 나라에 쳐들어가 이기지 못하면
나는 절대로 돌아오지 않으리라!
초문왕(楚文王)은 그 길로 군대를 돌려 황黃 나라로 쳐들어갔으며
적릉(踖陵) 땅에 이르러 황군(黃軍)과 크게 혈전을 벌이게 되었다.
북채를 이리 내놓아라!
내 친히 북을 치리라!
큰 상처를 입은 초문왕이 친히 북을 치며 사기(士氣)를 돋우자
초군(楚軍)은 죽기를 각오하여, 황군(黃軍)에게 대승을 거두었다.
왕이시여, 대승이옵니다.
이기긴 하였으나 많이 피곤하구나.
술을 가져오너라!한잔하고 잠을 청하리라.
왕이시여. 상처가 크사온데 괜찮겠나이까?
술에 취해야 잠이 올 것 같도다!
초문왕은 황(黃) 나라에 크게 이기고, 그날 밤 적릉(踖陵) 땅에서
깊은 잠을 자다가, 머리를 풀어헤친 채 산발(散髮)을 하고, 퍼런
불빛이 빛나는 눈을 반짝이며 다가오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너는 누구냐?
내가 식후息侯 이노라!
아, 아니. 너는 죽지 않았느냐?
이놈아! 내게 무슨 죄가 있기에 너는 무슨 이유로
내 나라를 없애고, 내 나라 강토를 빼앗았느냐?
또 무슨 까닭으로 내 아내를 빼앗아 갔느냐?
네 놈은 철천지원수로다!
내가 옥황상제(玉皇上帝)께 너의 죄를 낱낱이 고하고
허락받아, 이제야, 너를 찾아왔노라!
죽은 식후(息侯)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손을 번쩍 쳐들어 초문왕의
상처 난 뺨을 세차게 내려쳐 때리자, 초문왕(楚文王)은 커다란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왕이시여, 무슨 일이옵니까?
아니 어찌 된 일이냐?
식후(息侯)는 어디로 갔느냐?
왕이시여. 꿈을 꾸시었나이까?
많이 놀라시었나이까?
왕이시여! 화살에 맞은 뺨이 더욱 찢어져
많은 피고름이 흐르고 있나이다.
아, 아주 사나운 꿈이로구나!
더 머물지 말고 빨리 돌아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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